충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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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忠淸道)는 충청남도, 충청북도대전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 일대를 관할했던 행정구역을 일컫는 말로, 호서 지방(湖西地方)에 해당한다.

명칭[편집]

충청도의 이름은 충주청주의 앞글자를 따온것이다. 고려 1106년(예종 1년)에 관내도와 중원도, 하남도를 합쳐서 양광충청주도(楊廣忠淸州道)로 하여 처음으로 충청도라는 명칭이 생겼다.

역사[편집]

조선 전기[편집]

조선 1395년(태조 4년)에 양광주(楊廣州) 예속의 군현을 나누어 경기도와 충청도로 분할시켰고 관찰사를 충주에 두었다. 1413년(태종 13년)에 8도(道)로 나뉘고, 충청도에 공주목, 청주목, 충주목, 홍주목(현 홍성군)이 설치되었다. 1598년(선조 31년)에 충청도 감영공주목으로 옮겼다.

1505년(연산군 11)에 충청을 내시 김처선의 출신지라 배척[1]하여 조선시대 충청도의 중심지였던 공주의 앞글자를 따서 충공도로 개칭하였으나 다음해 중종반정으로 회복하였다.

조선 중기[편집]

1540년(중종 35)에는 충주가 예성으로 강등되면서 다시 '청공도'가 되었으나 중종이 "무익"하다고 여겨 다음해 다시 복귀하였다. 1550년(명종 5)에는 충주의 역모로 청홍도[2]라고 했고, 다시 선조 때 충청도로 회복하였다.

1612년(광해군 4)에는 청주에 역모가 발생해 충청도 서부의 중심지였던 홍주(홍성)의 앞글자를 따서 '충홍도'로 개칭하였으나[3] 다음 해 충주에서 유인발이 난을 일으키자 충주 역시 다시 강등되고 도명은 공홍도로 바뀌었다. 인조 반정 이후 다시 충청도로 돌아갔다.

조선 후기[편집]

1628년(인조 6)에 괴산, 충주의 역모로 '공청도'로, 18년 뒤 다시 공주의 역모로 1646년(인조 24) '홍청도'로 고쳤고, 7년(10년)만인 1653년(효종 4)에 다시 충주를 충원현에서 회복하여 충청도, 1658년(효종 9)에 다시 청주를 서원현으로 강등하여 '충홍도', 1661년(현종 2)에 홍주의 역모로 '충공도'라고 했다가 다시 다음해 충청도로 삼았다. 다시 1680년(숙종 6) '공청도', 1681년(숙종7) 그 전해 청주의 간음사건으로 강등 된 것을 청풍현이 있다고 뒤늦게 고쳐 '공홍도', 1689년(숙종 15) 1월 '충홍도'로 하고 8월 다시 충청도로 회복했다. 1735년(영조 11)에는 청주와 충주가 모두 난을 일으켜 '공홍도'(나주, 원주/전라도-> 전광도,강원도-> 강춘도)로 했다가 1747년(영조 23)에 다시 충청도로 회복시켰다. 1777년(정조 원년) '공충도', 1778년(정조 2년) '홍충도'(강원도 -> 원춘도)로 했다가 다음해 회복했다. 1804년(순조 4) '공충도', 1813년(순조 13년) 다시 충청도, 1817년(순조 17년)에는 '공청도', 1826년(순조 26) 1월에는 다시 충청도라고 했으나 다시 10월에는 '공충도', 1834년(순조 34)에서 헌종 즉위년 사이에 다시 충청도로 여러번 개칭되었다.

근대[편집]

1862년(철종 13)에는 '공충도'로 개칭되었고, 1871년(고종 8년) 최종적으로 충청도로 돌아왔다. 경계도 수차례 조정되었다.

1895년 을미개혁(乙未改革)이 추진되어 23부제를 실시하여 공주부, 홍주부, 충주부로 관할 구역이 삼분되었다.

1896년(고종 33년)에 13도제가 실시되면서 충청도는 충청남도충청북도로 분리되었다. 대전부·강경읍·공주읍·조치원읍의 1부 3읍과 대덕군·공주군·논산군·부여군·보령군·홍성군·서산군·아산군·예산군·서천군·연기군·천안군·청양군·당진군 등 14군을 충청남도로, 청주읍·충주읍 2읍과 청주군·충주군·옥천군·영동군·보은군·제천군·괴산군·음성군·진천군·단양군 등 10군을 충청북도로 하였다. 공주부에 속해 있던 금산군은 1896년 전라북도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 충청남도로 이관되었고, 평택군은 1914년 경기도로 이관되었다.

현대[편집]

1989년 대전시가 대전광역시로 승격되어 충청남도에서 분리되었다. 2012년 7월 1일 충청남도 연기군공주시 일부, 충청북도 청원군 일부를 일원으로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였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연산군일기 57권, 연산 11년 4월 4일 기미 4번째기사 ○傳旨議政府曰: "臣之事君, 當盡其誠敬, 而近者奸閹[null 金處善]忘覆載之恩, 懷不肖之心, 厭敎叱君, 人臣之罪孰大於是? 自開闢以來所未有, 豈可竝容於天地之間乎? 玆置重典, 施及其子, 籍其産、瀦其宅, 所居鄕竝革罷, 以滌兇邪, 以戒後來。 其曉諭中外。" 의정부에 전지(傳旨)하기를, "신하가 임금을 섬김에는 그 정성과 공경을 다하여야 하거늘, 요사이 간사한 내시 김처선이 임금의 은혜를 잊고 변변치 못한 마음을 품고서 분부를 꺼리고 임금을 꾸짖었으니, 신하로서의 죄가 무엇이 이보다 크랴! 개벽(開闢) 이래로 없었던 일이거늘, 어찌 천지 사이에 용납되랴! 이에 중죄로 처치하고 그 자식에게까지 미치게 하며 그 가산을 적몰하고 그 가택을 못 파고 살던 고향을 아울러 혁파하여, 흉악하고 간사한 것을 씻어내서 뒷일을 경계하노니, 중외(中外)에 효유하노라." 하였다.
  2. 명종실록 9권, 명종 4년 5월 21일 경인 3번째기사 ○改忠淸道爲淸洪道, 降忠州爲維新縣。 以[null 李芑]爲議政府領議政, [null 李瀣]爲淸洪道觀察使, [null 李致]爲維新縣監。 【史臣曰: "復以[null 李芑]爲議政府領議政。 每成一獄, 輒陞[null 芑]等之職, 嗚呼痛哉!"】 충청도(忠淸道)를 고쳐 청홍도(淸洪道)로 만들고, 충주(忠州)를 강등시켜 유신현(維新縣)으로 만들었다. 이기(李芑)를 의정부 영의정으로, 이해(李瀣)를 청홍도 관찰사로, 이치(李致)를 유신 현감으로 삼았다. 사신은 논한다. 다시 이기를 의정부 영의정으로 삼았다. 옥사(獄事)가 한번씩 이루어질 적마다 이기 등의 직급이 올라가니 아, 슬프도다!
  3. 광해군일기[중초본 56권, 광해 4년 8월 11일 임신 1번째기사] ○壬子八月十一日壬申傳曰: "赴京咨文中, 忠洪道改號之由, 中朝人不無致訝之理, 使使臣臨時善對事, 議定言送。" 【時, 淸州罪人伏逆, 降爲縣, 改稱忠淸道爲忠洪道故云。】 전교하기를, "【부경하는 사신의 자문(咨文) 중에 있는】 충홍도(忠洪道)로 개호(改號)한 사유에 대해 중국 조정 사람들이 의아해 할 경우가 없지 않을 것이니, 사신으로 하여금 임시해서 잘 대답할 일로 의정(議定)해서 말해 보내라." 하였다. 【이때 청주(淸州)의 죄인이 복역(伏逆)되어 현(縣)으로 강등시키고 충청도를 충홍도로 고쳤기 때문에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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