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LG 치타스 1996–2003 시즌
시즌 통계
[편집]시즌 전 대회 기록
[편집]※ K리그 챔피언십 경기 결과를 포함하지 않은 순수 정규리그 승무패 승점과 골득실이다.
※ 1998 1999, 2000 시즌은 무승부시 승부차기가 시행되었으며 승부차기를 무승부로 처리하는 통산 기록 규정에 근거한 승무패를 별도로 아래에 표기하였다.
※ 아: 아디다스컵, 프: 프로스펙스컵, 필: 필립모리스코리아컵, 대: 대한화재컵
시즌 | 리그 팀수 |
K리그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 | 실 | 차 | 승점 | 리그컵 | FA컵 | 수퍼컵 | AFC 챔피언스리그 |
감독 |
---|---|---|---|---|---|---|---|---|---|---|---|---|---|---|---|
1996 | 9 | 9위 | 32 | 8 | 8 | 16 | 44 | 56 | -12 | 32 | 8위 (아) | 16강 | 진출 실패 | 조영증 | |
1997 | 10 | 9위 | 18 | 1 | 8 | 9 | 15 | 27 | -12 | 11 | 10위 (아) A조 3위 (프) |
4강 | 박병주 | ||
1998 | 10 | 8위 | 18 | 9 8 |
0 2 |
9 8 |
28 | 28 | 0 | 23 | 4강 (아) 3위 (필) |
우승 | 박병주 | ||
1999 | 10 | 9위 | 27 | 10 8 |
0 4 |
17 15 |
38 | 52 | -14 | 24 | 준우승 (아) B조 4위 (대) |
4강 | 준우승 | 조광래 | |
2000 | 10 | 우승 | 27 | 19 17 |
0 5 |
8 5 |
46 | 25 | +21 | 53 | 4강 (아) A조 5위 (대) |
8강 | 진출 실패 | 8강[3] | 조광래 |
2001 | 10 | 준우승 | 27 | 11 | 10 | 6 | 30 | 23 | +7 | 43 | A조 4위 (아) | 8강 | 우승 | 진출 실패 | 조광래 |
2002 | 10 | 4위 | 27 | 11 | 7 | 9 | 37 | 30 | +7 | 40 | 4강 (아) | 32강 | 진출 실패 | 준우승[4] | 조광래 |
2003 | 12 | 8위 | 44 | 14 | 14 | 16 | 69 | 68 | +1 | 56 | 미개최 | 32강 | 미개최 | 진출 실패 | 조광래 |
[1] 당시 공식 대회명칭은 1999-2000 아시안 컵 위너스컵으로 아시안 컵 위너스컵은 2002-03 AFC 챔피언스리그에 통합되었다.
[2] 당시 공식 대회명칭은 2001-02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으로 2002-03 AFC 챔피언스리그로 대회명칭을 개명하고 확대 재출범하였다.
시즌 | 진출 팀수 |
순위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 | 실 | 차 | 승부차기 | 감독 |
---|---|---|---|---|---|---|---|---|---|---|---|
2000 | 4 | 우승 | 2 | 1 | 1 | 0 | 5 | 2 | +1 | 4-2 승 (챔피언결정전 2차전) | 조광래 |
시즌 총평
[편집]1996 시즌 총평
[편집]3년 연속 정규리그 성적 부진 외에도 3년 계약 종료에 따라[1] 조영증 감독이 자연스럽게 물러났다.
1997 시즌 총평
[편집]구상범 차상광 최태진 등 1990년 우승의 주역들이 뒷날 타 팀(일본 포함) 이적 - 노쇠화 때문에 은퇴한 것도 있었지만 최용수 박철 등 주축 선수들의[2] 군 입대, 이적 등 잇다른 악재가 터져 3승 18무 14패로 최하위를 면치 못했다.
1998 시즌 총평
[편집]1996년 말 2년 계약으로 감독 취임했던 박병주가 부임 첫 해인 1997년 최용수 박철 등 주축 선수들의[3] 군 입대, 이적 등 잇다른 악재가 터져 3승 18무 14패로 최하위를 면치 못한 데다 이 해(1998년) 시즌 종료 후[4] 조광래 감독이 지휘봉을 잡는 것이 확정된 상황이었음에도 레임덕에 빠지지 않고 끝까지 팀 분위기를 유지한 끝에 FA컵에서 울산 현대를 격파하여[5] 우승컵을 차지해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1999 시즌 총평
[편집]정규리그 9위에 머물렀으나[6] FA컵에서 3위를 차지했다.
2000 시즌 총평
[편집]조광래 감독이 이 해 정규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린 동시에[7] AFC 챔피언스 리그 8강에 오르며 단숨에 K리그 주요 감독 반열에 올랐다.
2001 시즌 총평
[편집]2002 시즌 총평
[편집]2003 시즌 총평
[편집]안양 LG 치타스는 2000년도 재창단을 한다는 각오로 최태욱, 박용호, 최원권, 김동진 등 고졸 최대어들을 영입하는 등 당대의 파격적인 유망주 육성 프로젝트를 실시하며 팀 개편작업을 단행했다.[8]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유형렬 (1996년 11월 15일). “프로축구"새감독 찾습니다" 내년창단「대전」감독에 김기복씨 거론”. 경향신문. 2023년 7월 30일에 확인함.
- ↑ 유형렬 (1998년 10월 13일). “박병주 LG감독 퇴진”. 경향신문. 2023년 7월 30일에 확인함.
- ↑ 유형렬 (1998년 10월 13일). “박병주 LG감독 퇴진”. 경향신문. 2023년 7월 30일에 확인함.
- ↑ 유형렬 (1998년 10월 13일). “박병주 LG감독 퇴진”. 경향신문. 2023년 7월 30일에 확인함.
- ↑ 전기병 (1998년 11월 26일). “◇FA컵 대회서 우승한 안양 선수들이 상금증서...”. 조선일보. 2023년 7월 30일에 확인함.
- ↑ 민학수 (1999년 11월 11일). “국내 축구 왕중왕“나야 나””. 조선일보. 2023년 7월 30일에 확인함.
- ↑ 박상현 (2008년 1월 13일). “부산, 뉴캐슬 아닌 맨유 닮아라!”. 데일리안. 2023년 7월 30일에 확인함.
- ↑ “영파워 업그레이드, 안양 LG 치타스”. 오마이뉴스. 2003년 3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