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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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로고.png
전체 이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단
Manchester United Football Club
별칭 The Red Devils
설립 연도 1878년 뉴턴 히스 LYR FC로 창단
경기장 올드 트래포드
수용 인원 75,653명
구단주 글레이저 가문
회장 조엘 글레이저, 에이브럼 글레이저
감독 주제 무리뉴
리그 프리미어리그
2016-17 시즌 6위
어웨이
서드
Soccerball current event.svg 최근 시즌
홈구장 올드 트래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풋볼 클럽(영어: Manchester United Football Club,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단)은 잉글랜드 맨체스터에 있는 프로축구단이다. 전 세계적으로 약 3억명의 팬덤을 가지고 있으며,[1] 1964-65 시즌 이래 단 1번의 시즌을 제외하고는 잉글랜드에서 최다 평균 관중 기록을 차지해왔다. 프리미어리그 창설 당시 원년 구단이었으며 현재까지 계속 소속해 있다.

구단은 1878년 랭커셔 요크셔 철도의 뉴턴 히스 지부 실업팀인 뉴턴 히스 LYR FC(Newton Heath LYR F.C.)로 설립되었고, 1902년 4월 26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개명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는 2010-11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으로 잉글랜드 프로축구 역사상 19번째 1부 프로축구리그 우승을 기록해, 기존에 리버풀 FC가 갖고 있던 최다 우승 기록을 경신했다. 구단은 1991-92 시즌부터 2012-13 시즌까지 단 한 차례도 3위 아래의 순위로 시즌을 마친 적이 없을 정도로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래 꾸준한 성적을 거두어왔다. 또한 구단은 잉글랜드 FA컵에서 총 12회 우승하여 아스널 FC 다음으로 많은 우승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968년에는 에우제비오벤피카를 꺾고 잉글랜드 축구단으로는 최초로 유러피언컵을 들어올렸다.[2] 1999년에는 바이에른 뮌헨과의 결승전에서 나온 극적인 역전승으로 두 번째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 해 UEFA 챔피언스리그, 프리미어리그, 잉글랜드 FA컵 3개의 주요 타이틀을 석권하여 이른바 트레블을 달성하였다.

1990년대 후반 이래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는 가장 부유한 구단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근래에는 전 세계 축구단 가운데 최고의 수입 기록을 지속적으로 기록해 왔다. 유럽의 저명한 프로축구단들의 모임인 G-14의 회원이기도 하며,[3] 2007년 포브스의 세계 스포츠 구단 평가에서는 14억 5300만 달러의 평가를 받아 전 세계 축구단 중에서 1위를 기록했다.[4] 그리고 구단은 2017년 1월 19일(한국 시각) 2015-16 시즌에 6억 8,900만유로(약 8,62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여, 11년 연속 연간수익 1위를 달성한 레알 마드리드를 제치고 연간수익 1위에 등극했다. 그리고, 2017년 7월 13일(한국시각)에 36억 9,000만 달러(약 4조 2,176억원)의 구단 가치를 기록해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등을 제치고 최고의 가치를 지닌 축구 클럽으로 이름을 올렸다.

현재 감독은 조세 무리뉴이고, 주장은 마이클 캐릭이고 부주장은 안토니오 발렌시아다.

역사[편집]

1905–06 시즌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

유나이티드의 역사는 1878년 랭커셔 요크셔 철도의 뉴턴 히스 지부 실업팀인 뉴턴 히스 LYR F.C.(Newton Heath LYR F.C.)의 설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5] 유니폼은 지금과는 달리 녹색과 노란색을 좌우 대칭으로 넣은 유니폼이었다. 1892년 철도 지부와의 관련을 끊고 “Newton Heath F.C.”로 명칭을 변경, 독립적인 클럽으로 변모하였고, 풋볼 리그(The Football League)에도 참가하였다. 1902년 2500파운드의 부채로 인해 클럽이 위기에 빠졌는데, J. H. 데이비스의 투자로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클럽의 주장인 해리 스태퍼드가 그의 애견 세인트버나드를 기금 모금 행사에서 자랑했고 데이비스는 개를 사기 위해 스태퍼드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클럽의 주장은 제안을 거절했고 대신 데이비스가 클럽에 투자하기를 설득했다고 한다. 한편, 클럽의 명칭과 관련하여 “맨체스터 센트럴(Manchester Central)”과 “맨체스터 셀틱(Manchester Celtic)”이 제안되기도 했는데, 이탈리아계 후손인 루이스 로카(Louis Rocca)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제안해 그것으로 결정되었다. 1902년 4월 26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의 개명이 확정되었다.[6] 데이비스는 기존 유니폼의 색인 녹색과 금색 대신에 붉은색과 흰색으로 바꾸었다.[출처 필요]

1902년 9월 28일 제임스 웨스트가 감독직을 사임한 이후 어니스트 만그날이 사무장으로 임명되었고 1부 리그로 팀을 승격시킬 임무를 맡게 되었다. 첫 시도는 디비전 2의 5위로 그쳤다. 만그날은 클럽에 새 얼굴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고 해리 모거와 딕 더크워스, 존 피켄 등을 영입했고 400파운드를 들여 찰리 로버츠를 데리고 왔다. 결국 2부 리그 1905-06 시즌에서 2위를 차지하여 1부 리그로 마침내 승격하였다. 1908년에는 클럽 역사상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리고 다음해 FA컵을 최초로 우승하였다. 1910-11 시즌을 우승하였고 그 와중에 올드 트래퍼드로 홈구장을 이전하였다. 1910년 2월 19일 리버풀 FC를 상대로 올드 트래퍼드에서의 첫 경기를 치렀다. 1922년에는 2부 리그로 강등되는 일을 겪기도 하였는데 1925년에 1부 리그에 복귀하였다. 그러나 다시 1931년에는 강등하는 등 요요 클럽(승격과 강등을 반복하는 팀)으로 불리기도 했다. 1938-39 시즌에서 14위를 차지한 이래로 1부 리그에 안정적으로 머물기 시작했다.[출처 필요]

1945-1969 (버즈비 시대)[편집]

1945년 맷 버즈비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는 등장하면서부터 자신의 선수 선발권 및 선수 이적, 훈련 방법 등에서의 권한을 요구하였다(그가 바로 직전에 머물렀던 리버풀에서는 이런 요구가 묵살되고 해임되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그의 주장에 동의하고 그에게 권한을 맡기었다. 버즈비가 성사시킨 첫 계약은 선수가 아니라 수석 코치 지미 머피였다. 1947, 48, 49년 2위를 차지하고 1948년에는 FA컵을 우승하는 등 상당한 성적을 거두었다. 버즈비는 클럽이 육성하고 있는 유스 팀 선수들에 주목했고 1956년에 팀 평균 나이가 불과 22세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시즌 103골로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다. 어린 선수를 중용하는 정책은 클럽 역사의 전환점을 가져다주었고 이 선수들을 ‘버즈비의 아이들’(Busby Babes)이라고 불렀다.[7] 버즈비는 버즈비의 아이들과 함께 공격 축구로 맨체스터의 팬층을 확고하게 구축했다.[8]

뮌헨 비행기 사고를 추모하기 위해 올드 트래퍼드에 걸린 시계.[9]

1958년 2월 6일 뮌헨 비행기 참사가 발생했다.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유러피언 컵 준결승행을 확정하고 귀국하던 선수단을 태운 비행기가 중간지 뮌헨에서 연료 공급을 받고 이륙을 하는 도중 이륙 실패로 공항의 경계벽과 충돌하였다. 이 사고로 선수 8명과 코칭스태프를 포함해 총 15명이 사망하였다. 2번의 이륙 시도가 이미 있었고, 3번째 시도에서 이륙에 필요한 충분한 속력을 내지 못해 이륙에 실패했다. 버즈비 감독도 비행기에 탑승하여 심각한 부상을 입었으나 구조되었다. 7명의 선수는 사고 당시 사망했고, 중상을 입은 선수 한 명은 2주일 후에 병원에서 사망했다.[출처 필요]

사고 이후 유러피언 컵을 포기할 것이라는 루머가 나돌았지만, 부상 중인 버즈비를 대신해 지미 머피가 임시 감독직을 맡고 대회에 계속 참가하였다. 참사에도 불구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FA컵 결승전까지 올랐다. 1960년대 초반을 거치면서 버즈비가 다시 팀을 정비하였고 데니스 로 등을 영입하고 젊은 선수 육성에 주력했다. 그 결과로 조지 베스트라는 맨체스터의 영웅을 탄생시켰다.[10] 1963년 FA컵을 들어 올렸으며, 1964년 시즌에는 2위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1965년과 1967년에는 리그 우승을 달성하였으며, 1968년에는 벤피카를 4:1로 꺾고 드디어 유러피언 컵을 들어 올렸다.[11] 이는 뮌헨 비행기 사고 10년째가 되는 해였고 잉글랜드 클럽 사상 최초로 해당 대회를 우승하였다. 1960년대의 버즈비 시대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유럽 올해의 선수(발롱도르)를 3명이나 배출하는 기록을 올렸다. 1964년에는 데니스 로, 1966년에는 보비 찰턴, 1968년에는 조지 베스트[12] 가 수상자였다. 1969년 버즈비는 감독직에서 물러났고 리저브팀 감독이자 전 맨유 선수였던 윌프 맥기니스가 감독직에 올랐다.

1969-1986[편집]

버즈비의 시대는 뒤로하고, 새로운 감독 윌프 맥기니스 체제에서 1969-70 시즌에 실망스럽게 8위에 머물렀고 1970-71 시즌에는 실망스러운 시즌 초반 성적으로 결국 리저브팀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사임했던 버즈비가 6개월간 팀을 잠깐 맡았는데 결국 1971년 여름에 그는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셀틱을 유러피언 컵 정상에 올려놓은 존 스타인(Jock Stein)이 새로운 감독으로 취임할 뻔했으나 계약 성사 직전에 그의 포기 의사로 결국 프랭크 오패럴(Frank O'Farrell)이 감독직에 올랐다. 하지만 18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1972년토미 도허티(Tommy Docherty)가 그의 뒤를 이었다. 도허티는 팀을 강등 위기에서 구했으나, 1974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결국 강등되었다. 이 무렵에 골든 트리오라고 불렸던 조지 베스트데니스 로, 보비 찰턴이 팀을 떠났다.[출처 필요])

강등 직후 다음 시즌에 곧장 1부 리그로 복귀하였으며, 스티브 코펠(Steve Coppell)이 이 시즌 막바지에 데뷔하였고 FA컵 준우승을 차지했다. 1977년에는 리버풀을 2:1로 꺾고 FA컵을 들어 올렸다. 도허티의 이와 같은 성공과 대중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불륜 사건에 휘말려 해임되었다. 데이브 섹튼(Dave Sexton)이 1977년 여름에 그의 자리를 이었고 수비적인 전술을 구사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버즈비와 도허티의 공격 전술을 선호했던 서포터들로부터 인기를 잃었고 우승에는 못 미치는 성적으로, 해임 직전의 7연승에도 불구하고 1981년에 감독직에서 물러나야 했고 론 앳킨슨(Ron Atkinson)이 감독 자리에 올랐고 웨스트 브롬에서 브라이언 롭슨(Bryan Robson)을 당시 잉글랜드 이적료 기록을 깨면서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데리고 왔다.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983년, 1985년 FA컵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1985-86 시즌 리그 초반 10연승에도 불구하고 우승을 리버풀에 내주고 말았고 다음 시즌에는 실망스러운 성적으로 강등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다. 결국 앳킨스는 성적 부진의 책임으로 해임되었다.[출처 필요])

1986-2013 (알렉스 퍼거슨 시대)[편집]

알렉스 퍼거슨 감독

알렉스 퍼거슨애버딘에서 맨체스터의 감독으로 왔고, 앳킨슨의 뒤를 이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직에 올랐다. 그의 첫 시즌 성적은 11위였다. 다음 시즌인 1987-88에는 2위라는 성적을 거두었고 브라이언 매클레어(Brian McClair)가 조지 베스트 이후로 오랜만에 시즌 20골을 달성했다. 그러나 다음 두 시즌 유나이티드의 성적은 좋지 않았고 팬들의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다. 1990년에는 해임 위기에까지 몰렸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크리스털 팰리스를 FA컵에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1990-91에는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에서 스페인 챔피언 FC 바르셀로나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는 실망스러운 결과로 리즈 유나이티드에 리그를 내줬다. 한편, 1991년에 런던 증권거래소에서 4700만 파운드의 주식 평가를 받아 대중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13]

1992년 11월 에리크 캉토나의 합류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는 활기가 돌았다. 라이언 긱스를 비롯한 폴 인스, 데니스 어윈, 개리 팰리스터와 함께 1992-93 시즌 우승을 이끌어 1967년 이후로 26여 년 만에 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노팅엄 포레스트(Nottingham Forest)로부터 이적해 온 로이 킨의 활약으로 1993-94 시즌에 최초로 리그컵과 FA컵을 동시에 들어 올리는 더블을 달성하였고, 로이 킨은 주장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1994년 1월 20일 과거 맨유에 영광을 안겼던 버즈비가 사망,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슬픔을 맛보기도 했다.[출처 필요])

1994-95 시즌에 캉토나는 인종 차별적 모욕을 한 크리스털 팰리스의 서포터 매슈 심슨을 이른바 쿵푸 킥으로 가격해 8개월의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 시즌에서 마지막 시즌 경기를 비기고 FA컵 결승전에서 에버턴에 패배함으로써 리그와 FA컵에서 모두 2위에 머물렀다. 팬들은 퍼거슨 감독이 주요 선수들을 팔고 데이비드 베컴폴 스콜스, 게리 네빌, 필 네빌과 같은 유스팀 선수들을 중용하는 방침에 격분하였다. 하지만 이 선수들은 곧장 잉글랜드 대표팀으로 발탁되었고 놀라운 플레이를 선보이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1995-96년에 더블을 안겼다. 잉글랜드 클럽으로서는 더블을 두 번 했던 팀은 없었기에 그 기록을 ‘더블 더블’(Double Double)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1996-97년에는 시즌 우승을 차지했고 칸토나는 30세의 나이로 축구 선수로서 은퇴를 선언했다.[출처 필요])

1998-99 (트레블)[편집]

트레블 트로피 - 리그, 챔피언스리그, FA 우승컵 (좌측부터)

1998-99 시즌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프리미어리그, FA컵,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함으로써 잉글랜드 프로축구팀 역사상 한 시즌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팀이 되었다. 12월 19일 미들즈브러 FC에 2:3으로 패한 이후 33경기 동안 무패행진을 달렸으며, 토트넘 홋스퍼프리미어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2:1로 꺾고 79점의 승점을 기록, 애스턴 빌라를 1:0으로 꺾고 78점의 승점을 기록한 아스널을 1점 차이로 따돌리고 우승하였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회고에 따르면 프리미어리그 우승이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14]

FA컵에서는 준결승 2차전에서 로이 킨마르크 오버르마르스에게 거친 태클을 가하며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한 어려운 상황에서, 골키퍼 슈마이헬데니스 베르흐캄프페널티킥을 막아냈고 연장전에 돌입하여 라이언 긱스가 하프라인에서부터 수비수 4명을 제친 후 환상적인 골을 넣으며 결승에 극적으로 진출하였다. FA컵 결승전에서는 폴 스콜스테디 셰링엄의 골로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2: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하였다.[출처 필요])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조별 리그에서 FC 바르셀로나와 두 차례의 3:3 무승부를 기록하며 명승부를 펼쳤고 맨체스터가 토너먼트에 진출할 수 있었다. 8강에서는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을 맞아 승리를 거두었고 4강에서 유벤투스 FC와 만났다. 1차전 홈에서 열린 경기에서 긱스의 골로 1:1로 비긴 맨유는 2차전에서 전반 필리포 인차기에게 연속 2골을 허용하여 탈락의 위기에 몰렸다. 한 골을 만회한 맨유는 후반이 시작되기 전 드와이트 요크앤디 콜의 득점에 힘입어 3:2로 승리, 결승에 진출했다.[출처 필요])

캄프 누에서 열린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바이에른 뮌헨과의 접전 끝에 이른바 캄프 누의 기적을 일구어 내며 2:1의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었다. 마리오 바슬러에게 한 골을 허용해 0:1의 상황에서 정규 시간이 종료되고 주어진 추가 시간 3분 동안, 교체 선수로 투입된 테디 셰링엄올레 군나르 솔샤르가 2골을 몰아서 넣으며 트레블(삼관왕)을 달성하였다. 당시 UEFA 회장이었던 렌나르트 요한손은 경기 종료 2분 전에 VIP 박스에서 나와 바이에른 뮌헨의 리본으로 장식된 유럽컵 트로피를 들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러나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역전승을 거두었고 리본을 급히 교체하는 일이 있었다.[15]

트레블의 달성으로 알렉스 퍼거슨에게는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가 수여되었으며, 이후 열린 인터콘티넨털컵에서 파우메이라스를 로이 킨의 골로 1: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하였다.[출처 필요]

트레블을 달성하는 데 퍼거슨 감독이 육성한 유소년팀 출신 선수들의 활약이 빛났다. 베컴을 비롯한 폴 스콜스, 라이언 긱스, 니키 버트, 게리 네빌, 필 네빌 등이 큰 활약을 펼쳤다. 또한 야프 스탐 및 드와이트 요크, 앤디 콜, 올레 군나 솔샤르 등 이적생들을 적절히 조화되어 활약을 펼쳐주었으며, 테디 셰링엄이나 데니스 어윈 등 베테랑의 활약도 빛났다.[16]

1999-2007 (트레블 그 후)[편집]

2000년, 2001년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에서 각각 91점, 80점의 승점으로 아스널을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하였으나, 챔피언스리그 우승에는 실패하였다. 2000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G-14의 창립 멤버가 되었다. 한편 퍼거슨은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좋은 성적을 위해 예전보다 수비적인 전술을 채택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2001-02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자서전 파동으로 팀에 분란을 일으켰던 트레블 멤버 야프 스탐SS 라치오로 이적시키는 우여곡절 끝에 아스널리버풀에 이어 3위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다음 시즌은 83점의 승점으로 아스널을 또다시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다.[출처 필요])

2003-04 시즌을 앞두고 유소년팀에서부터 계속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였고 프리킥과 세트 피스 상황에서 큰 활약을 해왔던 데이비드 베컴이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의 불화로 팀을 떠나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2003년 2월 15일 홈에서 열린 FA컵 5라운드 아스널전에서 0:2로 패한 후 라커룸 내에서 퍼거슨 감독이 축구화를 걷어찼는데 공교롭게도 베컴의 얼굴에 맞아 상처를 입혔고 두 사람의 갈등을 더욱 증폭시켰었다.[출처 필요] 리오 퍼디낸드는 2003년 12월 도핑 테스트에 불참해 잉글랜드 축구협회로부터 8개월의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아 큰 논란을 촉발시켰다. 퍼디낸드의 공백 속에 리그 우승을 아스널에게 내주었지만 FA컵에서는 밀월을 3:0으로 따돌리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출처 필요])

2004-05 시즌에는 3위에 머물렀으며 FA결승전에서는 승부차기 끝에 폴 스콜스의 실축으로 아스널에게 트로피를 내줬다. 시즌 말에는 맬컴 글레이저가 구단을 인수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2005년 5월 12일 그는 구단 경영권을 획득했고, 런던 증권 거래소에서 구단을 제외시킬 것을 공언했다. 인수 사실이 확정되자 일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은 거대 자본이 순수한 축구 구단을 잠식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맬컴의 구단 인수가 격렬히 반대하고 경기가 있는 올드 트래퍼드에서 반대 퍼포먼스를 행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일부 서포터들은 FC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라는 그들만의 클럽을 만들어 현재 노던 프리미어리그 프리미어 디비전에 참여 중이다.[출처 필요])

직전 시즌의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AC밀란을 상대로 골을 넣는 등 맹활약을 한 박지성퍼거슨 감독이 점찍어 두었고, 박지성은 대한민국 최초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가 되었다.[출처 필요] 박지성은 에버턴과의 시즌 첫 경기이자 데뷔전에서 지치지 않는 플레이로 퍼거슨 감독을 비롯한 팀 관계자들을 만족시켰다.[17] 한편, 시즌 중간 주요 선수의 부상과 기존 442에서 433으로의 전술 변동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자, 로이 킨이 팀의 젊은 선수들을 언론을 통해 맹렬히 비난했다. 퍼거슨 감독과의 충돌로 인해 로이 킨이 구단을 떠나 셀틱으로 이적하는 내홍을 겪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였다. 가브리엘 에인세앨런 스미스, 라이언 긱스폴 스콜스 등의 줄부상으로 시즌 내내 어려움을 겪었으나, 루이 사아의 활약으로 2006년 리그 컵(칼링 컵) 결승에서 위건 애슬레틱을 4:0으로 누르고 차지했다. 그러나 뤼트 판 니스텔로이는 자신을 중용하지 않은 퍼거슨 감독의 전술 변경으로 팀을 떠나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출처 필요])

프리미어리그 2006-07에는 공격 축구가 살아나 시즌 동안 83골을 작렬시켰으며, 골 득실차 +56의 우수한 기록으로 우승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17골을 넣는 맹활약을 펼쳤고 PFA 올해의 선수상 등 각종 시상식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한편 이 시즌 중간에 헨리크 라르손이 두 달간 임대되어 와서 훌륭한 활약을 하였다. 그러나 챔피언스리그에서는 4강에서 AC 밀란에게 패배했다. FA컵 결승전에서는 연장전까지 가는 경기에서 0:1로 패배했다. 2007년 3월 13일, 유럽대항전 첫 진출 및 EEC를 출범시킨 로마 조약 50주년 기념 경기를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유럽 올스타(유럽 XI팀)와 치렀다. 루니가 2골을 넣은 가운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4:3의 승리를 거두었다.

2008-2013[편집]

2013-2014 (모예스 시대와 긱스 임시 체제)[편집]

2014-2016 (루이 판 할 시대와 12년 만에 이뤄낸 FA컵 우승)[편집]

2016-현재 (조세 무리뉴 시대와 팀 창단 최초로 유로파리그 우승)[편집]

맨유는 2016년 5월 27일 루이스 반 할 후임으로 조세 무리뉴와 3년 계약을 맺어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무리뉴는 맨유 감독 부임 이후, 선수 개편을 단행하였는데 15-16 시즌 때 활약을 펼쳤던 신성 래쉬포드, 보스윅잭슨 두 유망주 선수와 2020년까지 재계약을 맺었고, 2016년 6월 8일(한국시각)에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비야레알 CF에서 활약한 코트디부아르 출신 수비수 에릭 베일리와 4년 계약을 맺고 영입하였는데 이는 무리뉴가 영입한 첫번째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2016년 6월 10일(한국시각)에 맨유에 10년 넘게 활약한 베테랑 미드필더 마이클 캐릭과 2017년 6월까지 1년 재계약을 맺었다. 그 후, 2016년 7월 1일(한국시각)에 아약스, 유벤투스, 인테르, FC 바르셀로나, AC 밀란, 파리 생제르맹 등 다수의 클럽에서 우승을 이끌었던 스웨덴 국가대표 출신 공격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1년 계약을 맺고 영입을 확정, 무리뉴가 영입한 두번째 선수가 되었으며, 즐라탄무리뉴는 인테르 시절 이후, 7년 만에 맨유에서 재회하게 되었다.

무리뉴 감독은 맨유에 부임 이후 자신의 오른팔이자 새로운 수석코치인 루이 파리아를 데려왔다. 한편, 2016년 7월 2일(한국시각)에는 지난 시즌까지 맨유의 수석코치에 있었던 라이언 긱스가 무리뉴 감독으로부터 21세 이하(U-21) 팀 감독직까지 제안받았지만, 끝내 거절하였고, 결국 29년 만에 맨유를 떠났다. 그 이후, 긱스는 영국 방송 ITV에서 해설가로 활동하기로 했다[18].

그 후, 2016년 7월 6일(한국시각)에는 무리뉴 체제 이후, 3번째 영입한 선수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뛰었던 아르메니아 출신 미드필더 헨리흐 므키타리안까지 영입하였는데 므키타리안은 아르메니아 출신 선수 중 EPL에 유일하게 입성한 선수가 되었으며, 맨유는 므키타리안 영입을 통해 구단 역사상 최초로 아르메니아 출신 선수를 보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6년 7월 16일(한국시간) 무리뉴의 맨유 감독 데뷔전인 위건과의 친선 경기에서 2-0 승리를 거둬 기분 좋은 출발을 하며, 프리시즌 일정을 순조롭게 시작했다.

그 후, 2016년 7월 31일(이하 한국시간)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열린 갈라타사라이와 친선경기에서 5-2 승리를 거두었다.

2016년 8월 7일(한국시각)에는 레스터 시티와의 커뮤니티 실드 경기에서 제시 린가드와 즐라탄의 골을 묶어 제이미 바디가 한 골 만회한 레스터 시티에 2-1 승리를 거두고 21번째 커뮤니티실드 우승을 차지하여 이번 시즌의 전망을 밝게 하였다.

2016년 8월 9일(한국시각)에는 맨유가 영입한 4번째 선수는 유벤투스에서 활약하던 폴 포그바와 5년 계약을 맺고, 1억 1천만 유로(약 1천357억 원)의 최고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4년 만에 재영입하였다. 이는 2013년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가레스 베일을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에서 데려 올 때 지급한 1억100만 유로(약 1천350억 원)를 뛰어넘는 역대 최고의 이적료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 후, 수비수인 패트릭 맥네어도널드 러브를 묶어 5.5M 파운드[19]에 선덜랜드로 이적시켰고, 무리뉴 체제에 제외되었던 야누자이도 선덜랜드로 임대이적시켰다. 그 후, 8월 13일(한국시각)에 열린 본머스와의 EPL 1라운드에서 마타와 루니, 즐라탄의 골을 묶어 3-1 승리하여 리그 첫 승을 신고하여 순조로운 출발을 선보였으며, 8월 20일(한국시각 새벽)에 열린 사우스햄턴과의 EPL 2라운드 경기에서 즐라탄의 2골을 묶어 2-0 승리를 거두고 리그 2연승을 달렸다.

그리고, 2016년 8월 28일(한국시각 새벽)에 있었던 리그 3라운드인 헐 시티와의 원정 경기에서 후반 추가 시간에 터진 래쉬포드의 극장골을 앞세워 1-0 승리, 리그 3연승을 달렸으나, 2016년 9월 10일(한국시각)에 있었던 맨체스터 더비에서 1-2 패배를 당해 연승 행진을 아쉽게 마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9월 10일(한국시각)에 있었던 맨체스터 더비에서 1-2 패배를 시작으로 9월 16일(한국시각 새벽)에 있었던 유로파리그에서 페예노르트에게 0-1 패배, 9월 18일(한국시각)에 있었던 왓포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1-3 패배를 당하여 무리뉴 체제의 맨유는 3연패로 위기를 맞게 되었으나, 9월 24일(한국시각)에 있었던 레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4-1 대승을 거둬 연패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10월에 들어선 이후, 리그와 유로파리그에서는 무패 행진을 이어가는 듯 했으나, 첼시에게 0-4 대패를 당하여 7위로 떨어졌지만, 2016년 10월 27일(한국시각 새벽)에 있었던 맨시티와의 풋볼 리그 컵 경기에서 후안 마타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고 8강 진출에 성공하였으며, 지난 맨체스터 더비 경기에서 당했던 패배를 갚았으며, 지난 첼시에게 당한 대패의 충격에 벗어났다. 그리고 2016년 11월 7일(한국시각)에 있었던 스완지와의 리그 11라운드 경기에서 3-1 승리를 거둬 리그 무승의 사슬을 끊었으며, 2016년 11월 25일(한국시각 새벽)에 있었던 페예노르트와의 유로파리그 조별 예선 5라운드 경기에서 4-0 대승을 거두었다.

그 후, 2016년 12월 9일(한국시각 새벽)에 유로파리그 조별 경기에서 조르야 루한스크를 2-0으로 물리치고, 32강 진출을 확정지었으며, 2016년 12월 11일(한국시각)에 있었던 토트넘과의 리그 홈 경기에서 미키타리안의 결승골에 힘입어 1-0 승리를 거둬 지긋지긋했던 리그 무승부의 사슬을 끊어 오랜간만에 승리를 장식하였으며, 2016년 12월 27일(한국시각 새벽)에 열린 선덜랜드와의 리그 홈 경기(박싱데이)에서 3-1 승리를 거두고, 리그 4연승에다가 11경기 무패 행진을 기록하였다.

2017년 1월 1일(한국시각 자정)에 열린 미들즈브러와의 리그 홈 경기에서 맨유는 무리뉴의 선수 교체와 백스리 전환과 변칙 전술 등 탁월한 용병술 덕에 2-1 대역전승을 거두고, 2017년의 첫 해를 승리와 동시에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의 75번째 생일을 승리로 장식하였다.

2017년 1월 6일(한국시각)에 영국 맨체스터에 위치한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레딩과의 2016-17 잉글랜드 FA컵 3라운드에서 맨유는 웨인 루니가 통산 249호골에 성공하여 바비 찰튼의 '맨유 최다골'과 동률을 이뤘다. 이 날 경기에서 맨유는 루니와 마시알, 레쉬포드(2골)가 골을 기록하여 레딩에 4-0 대승을 거두고 FA컵 32강에 진출하였다.

이번 겨울이적시장에서는 별다른 영입 소식은 없지만, 팀의 3번째 골키퍼인 샘 존스톤이 남은 시즌을 아스톤 빌라로 임대 이적을 통해 보내는 대신 벨레넨스스로 임대를 떠났던 골키퍼 조엘 페레이라를 조기 복귀시켰다. 그리고, 방출설이 나돌고 있는 펠라이니와 2018년까지 재계약을 맺었고, 무리뉴 체제에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한 모르간 슈네데를랭이 2200만 파운드(320억원) 이적료를 기록하며 에버턴으로 이적하였고, 2017년 3월 21일(한국시각)에는 주전 경쟁에 밀려 리그에서 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시즌 중, 미국 메이저 리그 사커시카고 파이어로 이적하였다.

2017년 1월 16일(한국시각)에 열린 노스웨스트 더비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거둬 10연승 행진이 무산되었으나, 16경기 연속 무패 기록은 이어갔다. 그 후, 2017년 1월 20일(한국시각)에는 무리뉴 체제에서 완전히 제외된 멤피스 데파이올랭피크 리옹으로 이적시켰다.

2017년 1월 22일(한국시각)에 열린 스토크 시티와의 리그 원정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거둬 17경기 연속 무패를 이어감과 동시에 이 날 골을 기록한 웨인 루니는 맨유 통산 250번째 골을 기록하여 보비 찰턴의 기록(249골)을 넘어섰다.

2017년 2월 6일 오전 1시(한국시간) 영국 레스터에 위치한 킹 파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2017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24라운드 레스터 원정서 3-0 완승을 거둬 15경기 무패(8승 7무)를 달렸다. 이 날 승리를 거둔 맨유는 바르셀로나(14경기 무패)를 제치고 유럽 5대리그 유일 무패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뮌헨 비행기 참사 59주기를 맞아 뜻 깊은 승리를 기록하였다. 더불어 전성기를 누렸던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 체제 이후 4시즌 만에 이루었으며, 2017년 2월 12일(한국시간)에 왓포드를 2-0으로 꺾고 역대 통산 프리미어리그 최초로 누적 승점 2000점을 기록했다.

2017년 2월 20일 오전 1시 15분(한국시간) 영국 블랙번에 위치한 에우드 파크에서 열린 블랙번과의 2016-17 에미레이츠 FA컵 5라운드(16강)에서 래쉬포드와 즐라탄의 골을 묶어 2-1로 역전승을 거두고 8강 진출 확정, 8강에서 첼시를 상대했지만 캉테에게 결승골을 내줘 0-1로 패배, 4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그 후, 2017년 2월 27일 오전 1시 30분(한국시간)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2017 EFL컵 결승전에서 즐라탄의 2골과 린가드의 1골을 기록한 맨유가 사우샘프턴에게 3-2로 승리하여 통산 5번째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리고, 2017년 3월 19일 오후 9시(한국시간) 리버사이드 스타디움서 열린 2016-17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29라운드에서 미들즈브러를 상대로 3-1로 승리하여 리그 5위를 도약함과 동시에 EPL 최초 600승을 달성하였다.

2017년 4월 17일(한국시간)에는 무리뉴 더비라고 불리는 첼시와의 리그 33라운드 경기에서 무리뉴의 전술적인 지략으로 승부수를 띄운 결과 래쉬포드와 안데르 에레라의 골로 2-0 승리를 거둬 올 시즌 2패를 당한 복수극을 연출하였다. 2012년 10월 29일(3-2 승리) 이후로, 12경기 동안(5무 7패) 첼시에게 승리하지 못했던 맨유는 이 날 경기에서 승리를 따내 무려 5년 만에(1631일) 승리를 거둬 22경기 무패를 기록함과 동시에 5위를 기록하여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진출의 희망을 이어갔다.

2017년 4월 21일 오전 4시 5분(한국시간) 영국 맨체스터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안더레흐트와의 2016/2017 UEFA 유로파리그 8강 2차전에서 로호와 즐라탄의 부상 악재 속에서 미키타리안과 래쉬포드의 골로 연장 접전 끝에 2-1 승리를 거뒀다.

그 이후, 주전 선수들의 부상 및 징계 등 여러 악재를 견뎌 온 무리뉴는 UEFA 유로파리그에 집중하기 위해 리그에서는 유스 선수들을 위주로 한 로테이션을 활용하였고, 2017년 5월 21일(한국시각)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리그 최종전 경기에서 2-0 승리를 거둬 리그 6위로 시즌을 마감하였지만, 2017년 5월 25일(한국시각 새벽)에 유로파리그 결승전에서 아약스를 2-0으로 무너뜨리고, 창단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하여 다음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에 진출 하는 쾌거를 달성하여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2016-17 시즌 후, 맨유는 발렌시아와 캐릭 등 베테랑 선수들과 재계약에 성공했지만, 지난 시즌에 28골을 기록하며 공격을 이끌었던 즐라탄은 유로파리그 2차전에 입었던 부상 여파로 인하여 맨유와 1년 만에 이별하였다. 그리고, 2017년 6월 11일(한국시각)에 SL 벤피카에서 활약하였던 스웨덴 출신 수비수 빅토르 린델뢰프를 4년 계약에 이적료 3500만 유로(약 440억원)를 지불하여 영입하였다. 그 후, 즐라탄이 떠난 최전방 공격수를 찾던 맨유는 2017년 7월 8일(한국시각)에 에버턴에서 활약한 벨기에 국가대표 공격수 로멜루 루카쿠를 7500만 파운드(약 1115억원) 이적료로 영입하여 즐라탄이 떠난 최전방 스트라이커 자리를 채웠다. 그리고, 2017년 7월 9일(한국시각)에 13년 간 맨유의 간판 공격수로 활약했던 웨인 루니는 친정팀 에버턴과 2년 계약으로 이적하였으며, 2017년 7월 12일(한국시각)에는 선덜랜드에서 임대복귀했던 야누자이를 레알 소시에다드에 5년 계약으로 이적시켰다.

그리고, 2017년 7월 31일(한국시각)에 첼시에서 무리뉴와 함께 리그 우승을 이끈 네마냐 마티치를 4000만 파운드(약 590억 원)의 이적료로 영입하여 중원 보강에 성공하였다.

그 후, 프리 시즌에서 6승 1패를 기록하며 순항했지만, 2017년 8월 9일(한국시각)에 열린 UEFA 슈퍼컵 경기에서 레알 마드리드에게 1-2로 패하여 준우승에 머물렀다.

2017년 8월 14일(한국시각 자정)에 열린 웨스트 햄과의 17-18 시즌 리그 개막전 경기와 스완지 시티와의 리그 2라운드 경기에서 2경기 연속으로 4-0 대승을 거두었으며, 16-17 시즌 이후, 부상으로 재활 중인 즐라탄과 2017년 8월 24일(한국시각)에 1년 복귀 계약을 맺고 재영입하였다.

2017년 9월 13일(한국시각 새벽)에 열린 바젤과의 2017-18 유럽챔피언스리그 A조 1차전 경기에서 3-0 대승을 거둬 챔피언스리그 복귀 신고를 알렸다.

덤으로, 2017년 9월 18일(한국시각 자정)에 있었던 에버턴과의 홈 경기에서 4-0 대승을 거둬 250번째 홈 무실점 경기를 달성하였다.

10월에는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인하여 1승 1무 2패라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2017년 11월 19일(한국시각 새벽)에 있었던 뉴캐슬과의 EPL 12라운드 경기에서 부상으로 결장했던 포그바와 즐라탄의 복귀에 힘입어 4-1 대승을 거두었다.

2017년 11월 26일 자정(한국시각) 영국 맨체스터의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브라이튼과의 2017/2018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13라운드서 영의 결승골에 힘입어 1-0 신승을 거두었다. 이 날 경기로 승리한 맨유는 지난 2016년 9월 맨시티에 1-2로 진 이후로 리그 홈 8연승, 전 대회 39경기 연속 무패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2017년 12월 6일(한국 시간) 영국 맨체스터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2017-18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A조 6차전에서 CSKA모스크바를 2-1로 무너뜨리고, 홈 40경기 무패 기록 달성하는데 성공했으나, 2017년 12월 11일(한국시각 새벽)에 열린 맨체스터 더비 경기에서 1-2로 패하여 홈 무패 기록이 40에서 멈췄다.

우승의 영예[편집]

국내 대회[편집]

리그[편집]

1 우승 (20, 최다 기록): 1907-08, 1910-11, 1951-52, 1955-56, 1956-57 1964-65, 1966-67, 1992-931993-941995-96 1996-971998-991999-20002000-01, 2002-03 2006-072007-082008-092010-112012-13
2 준우승 (15): 1946-47, 1947-48, 1948-49, 1950-51, 1958-59 1963-64, 1967-68, 1979-80, 1987-88, 1991-92 1994-95, 1997-98, 2005-062009-102011-12
1 우승 (2): 1935-36, 1974-75
2 준우승 (4): 1896-97, 1905-06, 1924-25, 1937-38

[편집]

1 우승 (12): 1908-09, 1947-48, 1962-63, 1976-77, 1982-83 1984-85, 1989-90, 1993-94, 1995-96, 1998-99 2003-04, 2015-16
1 준우승 (7): 1956-57, 1957-58, 1975-76, 1978-79, 1994-95 2004-05, 2006-07
1 우승 (5): 1991-92, 2005-06, 2008-09, 2009-10, 2016-17
1 준우승 (4): 1982-83, 1990-91, 1993-94, 2002-03
1 우승 (21, 최다 기록): 1908, 1911, 1952, 1956, 1957 1965*, 1967*, 1977*, 1983, 1990* 1993, 1994, 1996, 1997, 2003 2007, 2008, 2010, 2011, 2013 2016
1 준우승 (9): 1948, 1963, 1985, 1998, 1999 2000, 2001, 2004, 2009

국제 대회[편집]

유럽 대회[편집]

1 우승 (3): 1967-68, 1998-99, 2007-08
1 준우승 (2): 2008-09, 2010-11
1 우승 (1): 2016-17
1 우승 (1): 1991
1 준우승 (3): 1999, 2008, 2017
1 우승 (1): 1990-91

세계 대회[편집]

1 우승 (1): 2008
5th 5위 (1): 2000
1 우승 (1): 1999
1 준우승 (1): 1968

친선 대회[편집]

1 우승 (1): 2014

선수단[편집]

현재 선수 명단[편집]

2017년 9월 3일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