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서울특별시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서울에서 넘어옴)
서울은 여기로 연결됩니다. 다른 뜻에 대해서는 서울 (동음이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서울특별시
서울特別市
특별시
시기 휘장
슬로건
지도
서울특별시의 지도
행정
국가 대한민국
행정 구역25구
청사 소재지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10
단체장오세훈(국민의힘)[1]
지리
면적606 km2
기후냉대 동계 소우 기후 (Dwa)
시간대한국 표준시(UTC+9)
인문
인구9,310,000명(2025년 11월[2]년)
인구 밀도15,412.39명/km2
지역어경기 방언
상징
시목은행나무
시화개나리
시조까치
마스코트해치와 소울 프렌즈
표어동행·매력 특별시 서울
지역 부호
우편번호01000 ~ 08999
지역번호02[3]
ISO 3166-2KR-11
웹사이트http://www.seoul.go.kr/
지도

서울특별시(서울特別市)는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문화·인문·정치·경제 중심지 역할을 하는 도시로, 경기도와 인천광역시까지 아우르는 수도권의 중심지 기능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특별시로 지정된 도시이고 종주 도시(제1의 도시) 기능을 하고 있다.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하였으나 서울의 역사는 백제의 첫 수도인 위례성을 시초로 한다. 삼국시대에 전략적 요충지로서 백제, 고구려, 신라 순으로 번갈아 차지하였으며, 고려 시대에는 왕실의 별궁이 세워진 남경(南京)으로 개칭하였다.

유교의 도성제에 따라 한성에 경복궁과 종묘, 사직, 육조거리와 시전을 세우고 이를 둘러싼 한양도성을 갖추어 수도로서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세도정치 때는 명문가들이 종로에 거주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전란을 거치며 일부가 훼손되었으나 500년 넘게 조선의 수도이자 중심으로 기능하였다.

1896년 대한제국 선포 이래 전차, 교각 등의 근대 기반시설이 건설되면서 변모하기 시작한 한성부는 1910년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경성부(京城府)로 개칭되고, 일제강점기 조선의 수도로서 용산, 영등포 등지로의 영역 확장을 겪었다. 1945년 광복 이후 서울로 개칭되고 특별자유시가 되었으며 이후 1949년,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특별시 지위에 올랐고, 한강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대대적인 경제성장과 강남 개발로 행정구역 확장 등의 도시 정비를 거쳤으며,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 2002년 FIFA 월드컵, 2010 G20 정상 회의 등의 국제행사도 다수 개최하였다.

서울은 중앙에 한강이 흐르고, 북한산, 관악산, 도봉산, 불암산, 인릉산, 청계산, 아차산 등의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의 도시이다. 면적은 605.23 km2로 대한민국 면적의 0.6%이고, 인구는 9,334,828만 명으로 대한민국 인구의 17%를 차지한다.[4] 시청 소재지는 중구이며, 25개의 자치구가 있다. 인구가 가장 많은 구는 송파구[5]이며 가장 인구가 적은 구는 중구[6]이다. 대한민국의 총생산 가운데 절반을 차지하는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으로 2018년 서울의 지역 내 총생산은 422조 원이었다.[7][8]

수도로서의 오랜 역사와 더불어 전통 건축과 명소가 밀집해 있는 도시로서 경복궁을 비롯한 조선의 5대 왕궁이 이곳에 위치해 있으며, 창덕궁, 종묘, 조선왕릉의 총 세 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근현대 건축 역시 수많은 명소가 자리해 있으며 대표적으로 YTN서울타워, 63빌딩, 롯데월드타워,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롯데월드, 코엑스, 파크원 등이 있다. 이와 더불어 오늘날 대한민국의 문화산업을 주도하는 도시로 자리잡고 있다. 서울특별시에는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센터가 이곳에 위치해 있으며, 여의도에는 국회의사당이 위치해 있다.

지명

[편집]

어원

[편집]

'서울'은 본래 한 나라의 수도를 가리키는 고유어 보통명사였으며, 오늘날에는 대한민국의 수도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되었다.[9] 1285년 무렵 편찬된 《삼국유사》는 신라의 국호 가운데 하나인 '서벌(徐伐)'에 "지금 민간에서 '경(京)' 자를 '서벌'이라 새기는 것도 이 까닭이다(今俗訓京字云徐伐 以此故也)"라는 주를 달았다. 국어학자 이기문은 이 기록을 근거로 13세기 말에는 서울을 '셔ᄫᅳᆯ'이라 불렀을 것으로 추정하고, 이 말이 신라의 국호 '서벌'(15세기 한자음으로는 '셔벌')에서 왔다는 설명이 믿을 만하다고 보았다.[10]

신라의 수도 경주가 서라벌(徐羅伐), 서벌, 서나벌(徐那伐), 서야벌 등으로, 백제 말기의 수도 부여가 소부리로 불린 것도 '서울'이 삼국 시대부터 수도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음을 보여 준다는 설명이 있다. 이 설명에 따르면 '서'는 '수리, 솔, 솟'과 통하는 말로 '높다', '신령스럽다'는 뜻을, '울'은 '벌, 부리'가 변한 말로 '벌판', '큰 마을', '큰 도시'라는 뜻을 지닌다.[9] 이기문은 둘째 음절 'ᄫᅳᆯ'을 '고을'의 중세어형 'ᄀᆞᄫᆞᆯ'의 'ᄫᆞᆯ'과 같은 계통의 말로 보아 사람이 모여 사는 고장을 가리킨 것으로 추정했고, 제주 방언에서 서울을 '셔나(西那)'라 했다는 《탐라지》의 기록을 함께 들었다. 다만 첫 음절 '셔'가 옛 '시라·시로(斯羅·斯盧)'에서 변한 말이라는 데까지만 밝히고, 그 뜻은 풀리지 않은 문제로 남겨 두었다.[11]

'서울'은 고유어여서 대응하는 한자가 없으며, 서울특별시는 한자를 섞어 쓸 때도 '서울特別市'로 적는다.[12] 국립국어원은 이 점에서 '서울'이 우리나라 지명이면서도 서양 외래어와 같은 성격을 지닌다고 설명한다.[13]

역사적 명칭

[편집]

기원전 18년 백제를 세운 온조 집단이 도읍으로 삼은 위례성은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일대로 추정된다.[14][9]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왕도가 함락되자 백제는 웅진으로 도읍을 옮겼다.[14] 553년 한강 유역을 차지한 신라는 이곳에 신주(新州)를 두었고, 557년 주의 중심을 북한산으로 옮겨 북한산주(北漢山州)라 했다. 주의 중심은 이후 남천(지금의 이천)과 북한산을 오가다가 618년 한산(漢山)으로 옮겨지면서 한산주가 되었다.[15] 고구려가 다스릴 때 이 지역의 이름은 북한산군(北漢山郡)이었는데, 《삼국사기》 지리지는 북한산군을 '평양(平壤)'이라고도 했다고 적었다.[16][17] 이어 《삼국유사》가 고려 시대의 양주를 '남평양(南平壤)'으로 처음 적었고, 《고려사》 지리지와 《세종실록 지리지》 등도 양주와 한성부를 본래 고구려의 '남평양성(南平壤城)'이라고 기록했다.[18] 《일본서기》에는 551년 백제 성왕이 신라 등과 함께 고구려를 쳐서 한성(漢城)의 땅을 얻고 평양을 토벌했으며, 이듬해 한성과 평양을 포기했다는 기록이 있는데,[19] 이 '평양'은 흔히 고구려의 한강 하류 거점인 남평양으로 해석된다.[20][a] 신라 통일 이후 이 지역은 한주(漢州)를 거쳐 경덕왕 때 한양군(漢陽郡)이 되었으며, 고려 초에 양주(楊州)로 이름이 바뀌었다. 1067년(문종 21년) 양주에 남경(南京)이 처음 설치되었다가 1076년 다시 양주로 돌아갔고, 1099년(숙종 4년) 남경이 다시 설치되었다. 남경유수관은 1308년(충렬왕 34년) 한양부(漢陽府)로 바뀌었다.[24]

조선은 1394년(태조 3년) 음력 10월 25일 개성에서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면서[25] 수도의 이름을 한양부라 했고, 이듬해인 1395년(태조 4년) 음력 6월 6일 한양부를 한성부(漢城府)로 고쳤다.[26][27] 이후 조선 시대 내내 '한양'과 '한성'이 함께 쓰였다.[9] 1910년 국권 피탈 뒤 같은 해 10월 1일 시행된 조선총독부령 제7호에 따라 한성부는 경성부(京城府)로 이름이 바뀌고 경기도의 하부 행정 구역이 되었다.[28]

광복 직후 미군정은 '경성'(일본어 독음 '게이조')을 그대로 쓰다가 1945년 9월 14일부터 '서울'을 쓰기로 했으나, 관청과 시민 사이에서는 한동안 '서울시', '漢城市', '京城府'가 뒤섞여 쓰였다.[29] 1945년 말 경성부 고문회는 '漢城市'라 쓰고 '서울시'라 읽기로 정하고 1946년 3월 군정청에 개칭을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30] 미군정청은 광복 1주년을 맞아 1946년 8월 10일 《서울시 헌장》(Charter of the City of Seoul)을 발표했고,[b] 이를 바탕으로 9월 18일 군정법령 제106호 〈서울특별시의 설치〉를 공포했다. 법령이 발효된 9월 28일부터 경성부는 경기도에서 분리되어 도와 같은 지위의 '서울특별자유시'(Seoul Special Free City)가 되었고, 10월 7일부터는 '경성부'와 '부윤'을 각각 '서울시'와 '시장'으로 정식으로 바꾸어 불렀다.[33][34] 1949년 7월 4일 법률 제32호로 제정되어 8월 15일 시행된 《지방자치법》은 지방자치단체를 도, 서울특별시, 시·읍·면으로 정했고, 이로써 '서울특별시'가 법률상 명칭이 되었다.[35][36][31][c]

1955년 9월 16일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이 땅이름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수도를 뜻하는 보통명사이고 외국인이 발음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수도 이름을 고치자는 담화를 냈다.[38] 최남선은 '한양'을 대안으로 내놓았고 사학자 이병도도 개칭에 찬성했다.[39] 국어학자 최현배와 김윤경은 '큰 벌판'을 뜻하는 고유어 '한벌'을 제안했으며, 대통령의 이름과 호를 딴 '이승만시'와 '우남시(雩南市)'도 거론되었다.[40] 반면 국어학자 이희승은 고유명사를 보통명사처럼 쓰는 일은 어느 나라에나 흔한 언어 관습이라며 개칭에 반대했고,[41] 《동아일보》 등에는 '서울'이 이미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름이라는 반대 의견이 실렸다.[42] 이승만은 1957년 1월 19일 다시 담화를 내 자신의 호를 딴 이름에는 반대하며 '한도'가 적합하다는 뜻을 밝혔으나, 개칭 논의는 이후 별다른 진전 없이 흐지부지되었다.[43]

외국어 표기

[편집]
서울특별시
개정 로마자 표기:Seoul Teukbyeolsi
공식 로마자 표기:Seoul Special City

영어 등 로마자를 쓰는 언어권에서는 'Seoul'로 적는다.[12] 이 철자는 19세기 프랑스 선교사들의 프랑스어식 표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설명되며,[44] 파리 외방전교회의 샤를 달레가 1874년 펴낸 《한국천주교회사》(Histoire de l'Église de Corée)도 조선 태조가 도읍을 정한 곳을 'Han-iang (Séoul)'로 적었다.[45] 1896년 창간된 《독립신문》은 첫 호에 '서울'과 'SEOUL'을 함께 실었다.[46] 한편 1939년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을 제안한 논문은 수도를 'Sŏul'로 적었고,[47] 2000년에 고시된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른 표기는 기존의 'Seoul'과 같다.[44]

일본어에서는 가타카나로 ソウル라고 적으며,[48] 《일본대백과전서》도 '서울'은 '도읍'을 뜻하는 고유어로 한자 표기가 없다고 설명한다.[49] 중국에서는 청나라 때부터 서울을 옛 이름인 '漢城'(한청)으로 불러 왔는데,[13] 이 이름은 실제 발음과 거리가 멀어 혼란을 낳는다는 지적이 있었다.[50][51] 서울특별시는 2004년부터 중국어 표기 개선을 논의해 2005년 1월 19일 이명박 시장의 기자회견에서 '首爾'(간체 首尔, 서우얼)을 새 중국어 표기로 발표했다.[12][52] 중국의 영자 신문 《차이나 데일리》는 새 표기가 'Seoul'과 발음이 비슷하고 '으뜸 도시'라는 뜻을 담고 있어 수도 이름에 알맞다는 서울시의 설명을 전했다.[53] 중국 정부는 이 요청을 빠르게 받아들였고, 2005년 말에는 대만·홍콩·싱가포르 등 중화권 대부분의 언론도 '首爾'을 쓰게 되었다.[54][12] 다만 발표 직후 중국의 일부 언론과 누리꾼 사이에서는 익숙한 이름을 바꾸는 데 따른 혼란을 우려하거나 반감을 드러내는 반응도 있었다.[51][55] 김현진 등은 이 개칭이 표면적으로는 혼란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중국의 지역적 영향력 확대에 대한 한국 측의 경계가 배경에 있었다고 분석했다.[52]

역사

[편집]
서울의 역사

서울 지역에서는 기원전 4000년 무렵부터 한강 유역을 따라 사람이 정착했다.[56] 강동구의 서울 암사동 유적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으로 기원전 4000~3000년 무렵의 신석기 시대 집터 유적으로 추정되며, 1979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57] 백제는 기원전 18년 온조 집단이 오늘날의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세운 나라로,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왕도가 함락될 때까지 이곳에 도읍을 두었다.[14] 신라는 553년 한강 하류 지역을 점령했고, 진흥왕은 북한산에 순수비를 세웠다.[d][58] 고려는 1067년(문종 21년) 이곳에 남경을 처음 두었고, 숙종 때 남경을 다시 설치해 1104년 궁궐을 완성했다.[24]

1392년 건국한 조선은 1394년(태조 3년) 한양으로 도읍을 옮겼고,[9] 이듬해 조선 최초의 정궁인 경복궁을 지었다.[59] 1396년(태조 5)에는 백악산, 낙타산, 목멱산, 인왕산의 네 산 능선을 따라 길이 약 18.6 km의 한양도성을 쌓았다. 서둘러 쌓은 성곽은 1422년(세종 4년) 평지의 토성 구간을 석성으로 바꾸는 등 크게 고쳐 쌓았고, 숙종 때 다시 대대적으로 보수되었다.[60][61] 한성의 인구는 15세기 말 1만 8000호, 10만 명 안팎에서 17세기 20만 명가량으로 늘었다.[9] 1592년 임진왜란 때 서울이 함락되고 경복궁이 불탔다.[9] 그 뒤 1611년부터 1872년까지는 창덕궁이 왕의 거처였고,[56] 경복궁은 1865년(고종 2년)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다시 짓기 시작해 1868년 완성되었다.[59]

1876년 개항 이후 서울에는 우정국(1884)과 배재학당(1885) 같은 여러 근대 기관이 들어섰다.[9] 1897년 10월 12일 고종은 원구단에서 황제로 즉위하고 대한제국을 선포했다.[62] 1899년 5월 한성전기회사가 남대문과 홍릉 사이에 전차를 개통했고,[63] 1900년 7월 경인선의 한강철교가 개통되었다.[64] 1907~1908년에는 도로 확장을 이유로 숭례문 좌우와 평지의 도성 성벽 대부분이 헐렸다.[60] 1910년 국권 피탈 뒤 서울은 경성부로 개편되어 조선총독부 통치의 중심이 되었고,[28][56]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경성부의 관할 구역은 크게 줄었다.[65] 1915년에는 돈의문이 건축 자재로 매각되었고,[60] 경복궁에서 조선물산공진회를 열면서 전각 4,000여 칸이 헐렸으며, 1916년부터는 경복궁 앞을 가로막는 자리에 조선총독부 청사가 지어졌다.[59] 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공원 일대에서 시작된 만세 시위는 전국으로 번졌다.[66] 경성부는 1936년 영등포 등 주변 지역을 편입해 면적이 약 134 km2로 늘었다.[67]

광복 이후 서울은 1946년 경기도에서 분리되어 특별시가 되었고, 1949년 《지방자치법》 시행으로 서울특별시가 되었다.[68][36] 6·25 전쟁 중 1950년 6월 28일 북한군에 점령되었다가 9월 28일 국군과 유엔군이 되찾았다.[69] 1951년 1월 4일 중공군의 공세로 정부가 다시 서울에서 철수했고,[70] 국군은 3월 15일 한강을 건너 서울을 되찾았다.[71] 전쟁으로 도시는 폐허가 되었다.[56] 1962년 서울은 국무총리 직속이 되었고,[9][56] 1963년 1월 1일 경기도의 12개 면 90개 리를 편입하면서[72] 행정 구역 면적이 268.35 km2에서 613.04 km2로 2배 넘게 늘었다.[e][73] 이때 편입된 한강 이남 지역은 1967년부터 개발촉진지구로 지정되어 신시가지로 개발되었고, 1975년 강남구가 신설되었다.[72] 1974년 8월 15일에는 서울역과 청량리역 사이 9.54 km 구간에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었다.[74] 인구는 1988년 1000만 명을 넘어섰다.[75]

서울은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하계 올림픽을 개최했으며,[9] 올림픽을 계기로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국제 업무와 첨단 산업을 유치하려는 노력을 본격화했다.[56] 1995년 6월 27일 지방선거에서 조순이 첫 민선 서울특별시장으로 당선되었다.[76][77] 2003년 7월 청계고가를 철거하면서 시작한 청계천 복원 공사는 2005년 9월 끝나, 10월 1일 5.84 km 구간의 물길이 시민에게 개방되었다.[78] 주민등록 인구는 2016년 5월 말 999만 5784명으로 1988년 이후 처음 1000만 명 아래로 내려갔다.[75]

지리

[편집]
한강과 양화대교 너머로 보이는 북한산의 풍경
2023년 2월에 촬영된 항공사진. 서울이 오른쪽 위에 치우쳐져 위치한다.

위치와 경계

[편집]

서울특별시는 황해에서 약 60 km 떨어진 한강 연안에 자리 잡고 있으며,[56] 경위도로는 동경 126°45'~127°11', 북위 37°25'~37°41' 사이에 있다. 면적은 605.21 km2이다.[79] 시역은 동서로 36.78 km, 남북으로 30.30 km에 걸쳐 있으며, 대한민국 면적의 0.61%를 차지한다.[80] 동쪽은 경기도 남양주시·구리시·하남시, 서쪽은 고양시·김포시·부천시, 남쪽은 성남시·과천시·안양시·광명시, 북쪽은 의정부시·양주시와 맞닿아 있다.[79] 서쪽 끝 일부는 인천광역시 계양구와도 접한다.[81] 한강이 시가지 가운데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질러 흐르며, 시역을 강북과 강남으로 나눈다.[79][80]

지형

[편집]
서울의 주요 산 위치도

서울의 옛 도심은 높이 약 300 m의 낮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의 저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56] 서울분지는 남쪽과 북쪽의 산에서 뻗어 내린 산기슭이 점차 낮아지는 지형을 이룬다.[79] 시역의 서쪽은 인천에서 이어지는 해안 평야의 연장선에 있어 동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진다. 가장 낮은 곳의 해발고도는 약 10 m이며, 인구가 밀집한 지역은 해발 약 15~60 m이다.[82] 조선 초 도읍을 정할 무렵의 도성은 북쪽의 백악산(북악산, 342 m), 남쪽의 목멱산(남산, 262 m), 동쪽의 낙타산(낙산, 111 m), 서쪽의 인왕산(338 m)으로 이루어진 내사산(內四山)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 바깥은 북쪽의 삼각산(북한산), 서쪽의 효경산(孝敬山, 236 m), 남쪽의 관악산(629 m), 동쪽의 용마봉(348 m)으로 이루어진 외사산(外四山)이 다시 둘러싼다.[79]

시역 북쪽의 북한산에는 백운대(백운봉),[f] 인수봉(811 m), 만경봉(799 m), 노적봉(716 m) 등 600 m가 넘는 봉우리가 솟아 있다. 동쪽에는 수락산(638 m), 불암산(500 m),[g] 아차산(287 m) 등이 경기도와 경계를 이루고, 남쪽에는 관악산과 청계산(493 m)이 있다.[79] 북쪽 경계에는 북한산과 함께 도봉산(740 m)이 솟아 있다.[84]

하천

[편집]

서울의 중심에는 한강 하류가 동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있다. 하류이기 때문에 구배는 완만하며 물의 흐름은 느리나, 홍수 때는 상·중류의 유역 지방으로부터 흘러내려오는 물 때문에 수위가 높아진다. 여의도는 상류로부터 운반되어 온 토사가 퇴적된 하중도이다. 한강물은 서울시민의 수돗물(아리수)로도 공급되는데, 과거에는 뚝섬과 선유도 등에도 취수장이 있었으나 현재는 잠실 수중보와 팔당 저수지로부터 물을 끌어들여 공급하고 있다.[85]

한강은 일제강점기까지 별다른 정비가 없었다가, 1960년대 이후 한강을 정비하는 사업이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1968년 밤섬을 폭파한 뒤 여의도를 개발하였고, 1970년부터 1975년까지 잠실 개발계획으로 잠실섬과 부리도의 남쪽 물길(송파강)을 막아 육지로 만들었다. 1982년 시작된 '한강종합개발사업'을 통해 둔치를 조성하고, 강변 양쪽에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를 놓았다. 2006년에는 한강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한강 주변을 다시 재정비하였다.

한강 이외의 주요 하천으로는 불광천, 안양천, 중랑천, 청계천, 탄천, 양재천, 여의천, 홍제천 등이 있다.

서울의 하천 지도

임야

[편집]

서울의 임야 면적은 2006년을 기준으로 157.35 km2으로, 임야의 51.5%는 국공유림이고 49.5%는 사유림이다. 임야의 분포는 산이 많은 노원구에 17.73 km2, 관악구에 17.53 km2, 강남구에 16.11 km2가 있어서 전 임야의 32.6%를 차지하고 있다. 이 임야의 많은 부분이 개발 제한 구역으로 묶여 있어서 임야는 잘 보호되고 있는 편이긴 하지만, 임야 면적은 매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86]

도심

[편집]
서울 도심 (2005년)

서울 도심 주변에는 도심을 관통하는 청계천의 계속된 침식으로 북악산과 남산에서 산기슭이 발달되어 기복이 많은 지형이 되었다. 을지로에 있던 구리개, 조선일보사 앞의 황토현(黃土峴)이란 기복은 가로공사와 도시개발에 따라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으나, 현재도 율곡로·퇴계로·을지로 곳곳에서 기복을 찾아볼 수 있다.[85] 이러한 기복 때문에 이 지역에는 고개 또는 현(峴)이란 지명이 남아 있다. 이러한 지명에는 충무초등학교 부근의 풀무고개 또는 대장고개(治峴), 인현(仁峴)·종현(鍾峴)·진고개(泥峴), 계동(桂洞) 일대에 관상감현(觀象監峴), 가회동 일대에 맹현(孟峴)·홍현(紅峴)·안현(安峴)·송현(松峴)·배고개(梨峴) 등이 있다.[85]

풍수설에 따라 북악산 기슭에는 경복궁·창덕궁·창경궁·종묘, 인왕산 기슭에는 덕수궁을 지었고, 궁궐 사이는 궁인(宮人)·귀족·고관 들의 저택지로 이용하였다. 이 지역의 침식으로 운반된 토사는 청계천 연안에 퇴적되어 평탄한 시가지를 형성하게 하였다. 따라서 도심지에서 가장 평탄한 곳은 청계천 북쪽의 연안으로 동대문에서 세종로 사이의 종로이며, 이곳에서는 지형의 기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85] 삼각지로부터 해발고도 20m의 갈월동을 지나면 지형이 차차 높아져서 서울역 앞에 오면 더욱 높아지기 시작하고, 숭례문 부근은 해발고도가 40m 내외가 된다. 이곳은 분수계(해발 36.6m)가 되어, 동으로는 청계천이 동으로 흘러 중랑천과 합류한다.[85]

지질

[편집]

한반도 내 경기 지괴 내에 위치한 서울은 선캄브리아기의 편마암과 이를 관입한 중생대의 대보 화강암으로 구성되며, 하천을 중심으로 이 모두를 부정합으로 덮는 제4기의 충적층이 분포한다.[87]

선캄브리아기의 암석 중 가장 주된 것은 서울 지질도폭(1982)의 호상흑운모편마암(PCEbngn; Precambrian biotite gneiss)이다.[88] 지형적으로 저지대를 이루면서 강서구 화곡동, 서대문구, 마포구, 용산구, 은평구, 영등포구, 동작구, 강남구, 서초구 등지에 분포한다. 이 암석은 경기편마암복합체의 일부로서, 이 지역 내에서는 가장 오래된 암석으로 기저(基底)를 이루고 있다.[88] 서울 동부지역으로 가면 선캄브리아기의 암석이 조금 더 세분화되어, 논현동 일대에 분포하는 안구상 편마암(PCEagn)이나 강남구, 송파구, 강동구 일대에 흩어져 분포하는 운모편암(PCEms) 등으로 분류된다.[89]

중생대의 화강암인 서울 화강암(Jsgr; Jurassic Seoul granite)은 서울시 북부인 중구, 동대문구, 성북구, 종로구, 노원구, 북한산 지역에 분포한다. 이 화강암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넓게 분포하는 주요 화강암인 대보 화강암의 일부이며, 선캄브리아기의 편마암류를 관입하고 있다.[87][88] 박병권(1972)에 의하면 서울 화강암의 Rb-Sr 절대연령은 160±10 Ma로 중기 쥐라기에 해당한다.[90] 서울 화강암의 최대 압축 강도는 1100~1440 kg/cm2이며 서울 화강암 내에 단층과 절리를 생성시킨 압력은 평균 1200 kg/cm2이다.[91]

서울특별시를 지나는 신갈 단층은 한반도 경기 지괴 내 연천군에서 성남시 분당구 등을 지나 평택시까지 이어지는 연장 130 km의 주향 이동 단층으로 추가령 구조곡의 일부이다.[92][93] 추가령 단층대의 일부이며, 뚝섬 지질도폭(1981)에 의하면 북쪽으로 의정부 지질도폭(2005), 남쪽으로 둔전 지질도폭(1982)으로 이어지는 남-북 주향의 대규모 단층이다.[89]

화강암은 조립질이면서 다른 암석과는 다르게 절리(節理)가 잘 발달하고 풍화작용에 약하며, 도봉산·백운대·인수봉과 같은 봉우리가 기암절벽을 만들어 서울 특유의 절경을 보여 주고 있다. 홍제동·안암동·창신동·장위동 등지의 화강암은 1990년대까지만 하여도 건축재로 쓰이곤 했다.[94] 화강편마암은 견고한 암석이지만 접착성이 적기 때문에 쉽게 붕괴되어 봉우리를 이루지 못하나, 작은 기복을 이룬 노년기 지형을 나타내주고 있다. 특히 동작동 부근의 화강편마암은 판형으로 쉽게 벗겨져 온돌의 구들장으로 쓰였고, 화강편마암이 풍화되어 된 천호동의 점토는 벽돌과 옹기 제조의 원료로서 많이 쓰였다.[94]

기후

[편집]

서울은 냉대 동계 소우 기후[96](쾨펜의 기후 구분 Dwa)[97] 또는 온대 하우 기후(Cwa)에 속하며, 습윤 대륙성 기후로 분류하기도 한다. 기온의 연교차가 큰 대륙성 기후이다. 최근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으로 인해 최한월 평균기온이 영하 3 °C보다 높은 -2.4 °C로 높아져 대한민국 기상청은 온대 하우 기후로 변경했다. 그러나 이는 열섬 현상으로 인한 것으로 외곽 지역은 여전히 -3 °C 미만으로 내려간다는 점과 냉대 기후의 최한월 평균기온 기준을 0 °C 미만으로 간주하는 경우도 많다는 점에서 온대기후와 냉대기후의 중간 정도 되는 기후이다. 여름 기온과 겨울 기온의 연교차가 28.1 °C로 매우 크기 때문에, 겨울은 매우 춥고, 여름은 몹시 무덥다.

최근 30년(1991년~2020년) 기준으로 서울의 연평균 기온은 12.8 °C 이고, 최난월인 8월 평균 기온은 26.1 °C, 최한월인 1월 평균 기온은 -1.9 °C이다. 특히 최한월의 평균 기온은 같은 위도 상의 다른 도시에 비해 낮은 편이다. 시내의 기온 분포는 중구와 같이 가옥이 밀집한 곳과 많은 자동차가 배기가스를 뿜으며 지나는 간선도로, 그리고 도심부의 포장도로가 지나는 지역이 가장 기온이 높고, 한강 연안과 가옥의 밀집도가 낮은 지역은 기온이 낮게 나타나고 있다. 도심의 기온은 여름철의 6, 7, 8월 3개월을 제외하고는 해가 거듭될수록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이 상태로 계속 기온이 높아진다고 가정하면 약 100년 간에 평균기온은 1.8 °C, 일 최저 기온의 연평균치는 3.1 °C씩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시내의 습도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94]

계절 중에서는 대체로 여름이 가장 길고, 그다음이 겨울과 봄 순이며, 가을이 가장 짧다. 봄은 3월 중순부터 시작되는데 월평균 기온이 5 °C 이상으로 올라가고 날씨는 맑고 따뜻해진다. 그러나 제트기류가 서쪽에서 불어올 때 황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여름은 20 °C 이상의 기온이 계속되며 7, 8월에는 30 °C 내외, 심하면 35 °C 이상의 무더운 날씨가 많다. 또한 장마나 집중호우가 계속되어 많은 비가 내리므로 홍수의 피해가 크다. 가을은 하늘이 높고 맑은 날이 계속되며, 기온은 차차 내려가 선선한 날씨가 시작된다. 겨울은 최저 기온이 0 °C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100일 내외, 최저기온이 -10 °C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29.4일로서, 추운 날이 비교적 오래 지속되고 있다. 눈이 내리는 기간은 12.5일, 얼음이 어는 기간은 16.4일이나 강수량은 여름에 비하면 훨씬 적어 건조한 날씨가 많다. 최근 30년(1991년~2020년) 기준으로 연평균 강수량은 약 1,417.9mm이나, 1990년에는 2,355.5mm, 1949년에는 633.7mm가 내릴 정도로 연 강수량의 기복이 심한 편이다. 계절별 강수량은 여름철에 892.1mm, 겨울철에 67.3mm로 여름철에 강수가 크게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한반도는 계절풍 지대에 속하기 때문에 서울은 여름에 남동풍, 겨울에 북서풍이 빈번하게 분다. 도심부에서 도로 위를 부는 도로바람은 남산의 북사면에서 발달한 차가운 공기가 충무로 지하상가 위를 지나 을지로 입구 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퇴계로 2가 부근에서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분다.

역대 최저 기온은 1927년 12월 31일의 -23.1 °C, 역대 최고 기온은 2018년 8월 1일의 39.6 °C이다.

서울기상관측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송월동[98], 해발 85.5m)의 기후 자료
월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연간
역대 최고 기온 °C (°F) 14.4
(57.9)
18.7
(65.7)
25.1
(77.2)
29.8
(85.6)
34.4
(93.9)
37.2
(99.0)
38.4
(101.1)
39.6
(103.3)
35.1
(95.2)
30.1
(86.2)
25.9
(78.6)
17.7
(63.9)
39.6
(103.3)
일평균 최고 기온 °C (°F) 2.1
(35.8)
5.1
(41.2)
11.0
(51.8)
17.9
(64.2)
23.6
(74.5)
27.6
(81.7)
29.0
(84.2)
30.0
(86.0)
26.2
(79.2)
20.2
(68.4)
11.9
(53.4)
4.2
(39.6)
17.4
(63.3)
일일 평균 기온 °C (°F) −2.0
(28.4)
0.7
(33.3)
6.1
(43.0)
12.6
(54.7)
18.2
(64.8)
22.7
(72.9)
25.3
(77.5)
26.1
(79.0)
21.7
(71.1)
15.0
(59.0)
7.5
(45.5)
0.2
(32.4)
12.8
(55.0)
일평균 최저 기온 °C (°F) −5.5
(22.1)
−3.2
(26.2)
1.9
(35.4)
8.0
(46.4)
13.5
(56.3)
18.7
(65.7)
22.3
(72.1)
22.9
(73.2)
17.7
(63.9)
10.6
(51.1)
3.5
(38.3)
−3.4
(25.9)
8.9
(48.0)
역대 최저 기온 °C (°F) −22.5
(−8.5)
−19.6
(−3.3)
−14.1
(6.6)
−4.3
(24.3)
2.4
(36.3)
8.8
(47.8)
12.9
(55.2)
13.5
(56.3)
3.2
(37.8)
−5.1
(22.8)
−11.9
(10.6)
−23.1
(−9.6)
−23.1
(−9.6)
평균 강수량 mm (인치) 16.8
(0.66)
28.2
(1.11)
36.9
(1.45)
72.9
(2.87)
103.6
(4.08)
129.5
(5.10)
414.4
(16.31)
348.2
(13.71)
141.5
(5.57)
52.2
(2.06)
51.1
(2.01)
22.6
(0.89)
1,417.9
(55.82)
평균 강수일수 (≥ 0.1 mm) 6.1 5.8 7.0 8.4 8.6 9.9 16.3 14.7 9.1 6.1 8.8 7.8 108.6
평균 강설일수 7.1 5.1 2.8 0.2 0.0 0.0 0.0 0.0 0.0 0.0 2.3 6.4 23.9
평균 상대 습도 (%) 56.2 54.6 54.6 54.8 59.7 65.7 76.2 73.5 66.4 61.8 60.4 57.8 61.8
평균 월간 일조시간 169.6 170.8 198.2 206.3 223.0 189.1 123.6 156.1 179.7 206.5 157.3 162.9 2,143.1
출처: 기상청 (평년값: 1991년~2020년, 극값: 1907년~현재)[95][99]

대기

[편집]

시내에는 큰 건물과 공장의 굴뚝에서 내뿜는 매연, 자동차의 배기가스 등의 오염물질이 늘어나면서 태양광선이 제대로 땅에 닿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시내에 내리쬐는 일사량은 매년 감소되어 가고 있다. 비행기나 높은 산 위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면 연기와 먼지를 품은 오염대기층인 연진모자가 상공을 덮고 있어 서울 시야를 나쁘게 하고 있다.[94] 2011년 환경부가 7대 도시의 대기 오염물질을 조사한 결과, 전국의 미세먼지 평균농도는 51㎍/m3이고,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는 49㎍/m3로 나타났다. 2013년을 기준으로 하여 서울시는 전국 16개 지방(서울, 부산, 대구, 경기, 제주, 전남 등)에서 8위(7위: 대구 9위: 전북)를 하였고, 광역시나 특별시 중에서는 4위(3위: 대구 5위: 울산)를 하였다.(중위권) 그러나 최근, 수년 동안 서울시에서는 청정연료 확대보급, 경유자동차 저공해화, 도로비산먼지 청소, 공사장 비산먼지 관리 등과 같은 대기질 개선활동을 집중적으로 전개해 오면서 대기질이 좋아지기 시작했으나, 황해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 중국의 수많은 공장에서 뿜어져나오는 매연에 서울의 대기질은 겨울과 봄에 최악을 기록하고 있으며, 미세먼지 농도가 100㎍/m3을 훌쩍 뛰어넘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출처 필요]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 상황과 역대 가장 긴 장마 때문에 서울의 미세먼지는 110일 동안 보통 이하를 기록하기도 하였다.[100]

정치

[편집]

중앙정치

[편집]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입법부·행정부·사법부 등 국가의 통치 기관이 집중되어 있다. 종로구에는 청와대와 정부서울청사를 비롯한 중앙 행정 기관과 헌법재판소 등 국가 중요 기관이 있고, 중구 정동에는 각국의 외교 대사관이 밀집해 있다. 또한 여의도에는 국회가, 서초구에는 대법원을 비롯한 법조 단지가 형성되어 있다.

대한민국 국회에서의 선거구의 경우, 22대 국회의원 선거 기준 48개 선거구로 나뉜다. 주민등록 인구(외국인 제외)에 따라 29만5천 명 미만인 자치구는 1개, 29만5천 명 이상 ~ 59만 명 미만인 자치구는 2개, 59만 명 이상인 자치구는 3개의 선거구를 가진다.

지방정치

[편집]

서울특별시의 행정부 수장은 서울특별시장이며 직선제와 3선 연임제를 채택하고 있다. 현 시장은 2022년에 취임한 국민의힘 소속의 오세훈이다. 서울특별시의 입법부는 서울특별시의회이며 의석수 정원은 112인, 임기는 4년이다. 소선거구제와 더불어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서울특별시장과 서울특별시의회는 서울특별시교육청장과 함께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선출된다.

행정 구역

[편집]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은 2025년 11월 기준으로 25개 자치구와 426개 행정동이 있다. 한강 남쪽에 11개, 한강 북쪽에 14개 자치구가 있다.

2025년 10월 주민등록 인구는 9,313,532명이다.[101] 가장 인구가 많은 구는 송파구, 가장 인구가 적은 구는 중구이다.

이름 한자 세대 인구 면적
종로구 鐘路區 72,409 137,449 23.91
중구 中區 64,120 118,331 9.96
용산구 龍山區 103,214 202,507 21.87
성동구 城東區 133,109 274,424 16.85
광진구 廣津區 171,205 331,786 17.06
동대문구 東大門區 175,850 344,357 14.2
중랑구 中浪區 189,015 377,054 18.5
성북구 城北區 199,197 423,705 24.56
강북구 江北區 142,415 279,632 23.61
도봉구 道峰區 139,131 300,627 20.7
노원구 蘆原區 217,192 485,290 35.44
은평구 恩平區 214,821 456,727 29.69
서대문구 西大門區 146,337 300,843 17.6
마포구 麻浦區 180,519 358,523 23.88
양천구 陽川區 179,859 426,242 17.4
강서구 江西區 273,372 550,248 41.43
구로구 九老區 184,528 384,991 20.12
금천구 衿川區 121,554 223,588 13
영등포구 永登浦區 192,505 371,876 24.57
동작구 銅雀區 187,189 373,084 16.35
관악구 冠岳區 288,753 478,282 29.57
서초구 瑞草區 173,127 413,236 47
강남구 江南區 245,450 556,462 39.51
송파구 松坡區 286,553 645,052 33.88
강동구 江東區 222,374 499,216 24.58
서울특별시 서울特別市 4,503,798 9,313,532 605.25

지도

[편집]

인구

[편집]
연도별 인구
연도인구±% p.a.
19501,021,000—    
19602,361,000+8.74%
19705,312,000+8.45%
19808,244,000+4.49%
199010,518,000+2.47%
20009,879,000−0.62%
20109,796,000−0.08%
20209,963,000+0.17%
source:[102]

고려 멸망 후 조선이 천도(1394년)한 후 조선 태종 때 인구는 약 10만 명이었으며, 이후 1900년대까지 20-30만 명 선을 유지하였다.

일제강점기 이후 서울의 인구는 지방 인구의 도시 집중 현상으로 급격히 증가하여 과밀화 현상을 보였다. 1919년 서울의 인구는 25만 명, 인구밀도는 6,874명/km²였으나, 1925년에는 인구 34만 명, 인구밀도 9,297명/km², 1930년에는 인구 33만 명, 인구밀도 9,824명/km², 1935년에는 인구 40만 명, 인구밀도 11,172명/km²에 달하였다. 이에 따라 1936년 시역을 확장하였으며, 그 결과 인구는 73만 명으로 증가하였으나 인구밀도는 5,430명/km²로 낮아졌다.

1945년 광복 당시 인구는 90만 명, 인구밀도는 6,628명/km²였으나, 해외에서 귀국한 동포와 한반도 북부 출신 인구의 유입으로 1946년에는 인구가 127만 명으로 급증하였고, 인구밀도는 9,309명/km²에 이르렀다. 1948년에는 인구 171만 명, 인구밀도 12,055명/km²였으며, 1949년에는 서울의 면적이 136.05 km²에서 268.35 km²로 확장되어 인구는 142만 명, 인구밀도는 5,284명/km²로 조정되었다.

1951년 한국 전쟁의 여파로 인구는 65만 명, 인구밀도는 2,416명/km²로 급감하였다. 그러나 1953년 휴전과 함께 환도가 이루어지면서 인구가 다시 급증하기 시작하였다. 1955년에는 인구 157만 명, 인구밀도 5,869명/km², 1960년에는 인구 245만 명(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10%), 인구밀도 9,133명/km²에 달하였다. 이어 1970년에는 인구 543만 명(전체 인구의 18%), 인구밀도 9,013명/km², 1980년에는 836만 명, 인구밀도 13,074명/km², 1990년에는 1,061만 명, 인구밀도 15,532명/km²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1970년대 이후 대한민국의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농어촌 지역의 청년층과 생산가능 인구가 대거 수도권으로 이주함에 따라, 지방은 상대적으로 인구 구조의 불균형이 심화되었다. 경제 성장 시기인 1970~80년대에는 서울 및 수도권 공업지대와 신도시 개발 지역이 주요 인구 흡수처로 기능하였다. 그 결과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의 일부 농촌 지역은 이미 1980년대부터 인구 감소세가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서울의 인구는 1992년 1,099만 명, 인구밀도 19,522명/km²로 정점을 기록한 이후 감소세로 전환되었다. 이는 정부의 인구 분산 정책에 따른 것으로, 서울 교외에 분당, 일산, 평촌, 중동, 산본 등 1기 신도시가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운정, 판교, 동탄 등 2기 신도시 개발도 진행되면서 인구 이동이 가속화되었다.

서울의 인구는 감소세를 이어가다가 2003년 1,028만 명, 인구밀도 16,975명/km²을 기록한 뒤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는데, 이는 ‘뉴타운’으로 불린 대규모 재개발 사업으로 인한 인구 유입의 영향이 컸다. 2009년 12월 말 기준으로는 인구 10,464,051명, 세대 수 4,116,660, 인구밀도 17,289명/km²에 달하였다.

서울의 급격한 인구 증가는 1960년대 이후 경제성장에 따른 산업 발전과 고용 증대의 결과였으며, 농촌 인구가 대거 서울로 유입되면서 과밀화 현상이 심화되었다. 이는 자연 증가보다는 사회적 증가가 주요 요인이었다. 또한 서울에는 다수의 교육기관이 밀집해 있어,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서울에서 취업과 정착을 하는 경향이 뚜렷하였다.

그러나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높은 주거비, 특히 전세 가격 상승으로 인해 서울의 인구 순유출 속도는 전국에서 가장 빠른 수준을 보였다. 2016년 5월을 기점으로 서울의 인구는 1,000만 명 아래로 감소했다. 이는 1988년 하계 올림픽 개최 무렵 인구 1,000만 명을 돌파한 이후 28년 만의 변화였다. 2025년 11월에는 930만 명대로 떨어졌으나, 2026년 이후 다시 회복세를 보였다.

이와 같은 인구 유출은 주로 경기도를 비롯한 수도권로의 이동에 의한 것이며, 일부는 세종특별자치시와 제주특별자치도로의 이주로 이어져 역도시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인구와 가구 그래프

[편집]

일제강점기

[편집]
이 글을 보려면 오른쪽 ‘펼치기’ 버튼 클릭
연도인구(명)가구(세대)비고
1915년 241,085 55,367
1920년 250,208 54,614
1925년 336,349 70,192
1930년 355,426 74,909
1935년 404,202 82,822
1940년 935,464 174,336
1945년 901,371 189,530

대한민국 정부 수립

[편집]
이 글을 보려면 오른쪽 ‘펼치기’ 버튼 클릭
연도인구(명)가구(세대)비고
1949년 1,418,025 272,314
1955년 1,574,868 259,660
1960년 2,445,402 446,874

군사 정부 시기

[편집]
이 글을 보려면 오른쪽 ‘펼치기’ 버튼 클릭
연도인구(명)가구(세대)비고
1965년 3,424,385 649,290
1970년 5,433,198 1,096,871
1975년 6,889,502 1,409,577
1980년 8,364,379 1,849,324

신군부 시기

[편집]
이 글을 보려면 오른쪽 ‘펼치기’ 버튼 클릭
연도인구(명)가구(세대)비고
1981년 8,676,037 1,915,104
1982년 8,916,481 2,000,678
1983년 9,204,344 2,116,334
1984년 9,501,413 2,245,598
1985년 9,639,110 2,337,564
1986년 9,798,542 2,428,123
1987년 9,991,089 2,518,128

민주화 이후, 정보 혁명 시대

[편집]
이 글을 보려면 오른쪽 ‘펼치기’ 버튼 클릭
연도인구(명)가구(세대)비고
1988년 10,286,503 2,658,371
1989년 10,576,794 2,816,510
1990년 10,612,577 2,820,292
1991년 10,904,527 3,330,317
1992년 10,969,862 3,383,169
1993년 10,925,464 3,430,528
1994년 10,798,700 3,455,665
1995년 10,595,443 3,448,124
1996년 10,469,852 3,456,575
1997년 10,389,057 3,498,506
1998년 10,321,469 3,458,511
1999년 10,321,446 3,490,616
2000년 10,373,234 3,540,492
2001년 10,331,244 3,570,228
2002년 10,280,523 3,623,929
2003년 10,276,968 3,714,697
2004년 10,287,847 3,780,305
2005년 10,297,004 3,871,024
2006년 10,356,202 3,978,938
2007년 10,421,782 4,046,086
2008년 10,456,034 4,097,562
2009년 10,464,051 4,116,660
2010년 10,575,447 4,224,181
2011년 10,528,774 4,192,752
2012년 10,442,426 4,117,970
2013년 10,388,055 4,182,351
2014년 10,369.593 4,194,176
2015년 10,297,138 4,189,948
2016년 10,204,054 4,189,839
2017년 10,124,579 4,220,082
2018년 10,049,607 4,263,868
2019년 10,010,983 4,327,605
2020년 9,668,465 4,130,000
2023년 7월 청|9,115,260

인구동태

[편집]
이 글을 보려면 오른쪽 ‘펼치기’ 버튼 클릭
연도출생(명)사망(명)혼인(쌍)이혼(쌍)
1970년 111,799 16,222 46,464 2,995
1975년 148,475 23,612 52,695 4,890
1980년 174,364 29,205 56,576 5,103
1985년 157,121 33,581 69,467 8,951
1990년 169,217 37,922 80,236 9,837
1995년 169,053 39,404 82,942 16,532
2000년 131,932 38,815 78,745 25,477
2001년 113,632 37,979 77,376 28,962
2002년 100,928 38,491 72,696 29,351
2003년 100,137 38,491 72,750 32,499
2004년 98,790 37,872 71,553 26,994
2005년 90,468 38,751 71,286 25,300
2006년 92,885 38,117 73,924 24,354
2007년 100,107 38,645 76,399 24,615
2008년 94,736 38,298 71,753 23,319
2009년 89,595 38,790 68,841 23,920
2010년 93,266 40,130 70,466 21,768
2011년 91,526 40,320 71,519 20,617
2012년 93,914 41,514 71,695 20,177
2013년 84,066 42,063 68,819 19,477
2014년 83,711 42,153 64,823 19,477
2015년 83,005 43,053 64,193 18,176
2016년 75,536 43,540 57,643 17,777
2017년 65,389 42,932 53,776 17,083
2018년 58,074 45,219 52,005 16,940
2019년 53,673 43,829 48,261 16,972
2020년 47,445 45,522 44,746 16,282
2021년 45,531 48,798 37,012 14,967
2022년 42,602 55,296 35,752 13,174
2023년 39,456 51,446 36,324 12,397
2024년 41,600 52,700 42,471 12,154
2025년 45,505 52,592 49,359 11,692

경제

[편집]

2014년 서울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327조 6,020억 원이며, 실질성장률은 2.2%이다.[103]

삼성, LG, 현대자동차, SK, 롯데, GS 등 주요 대기업의 본사가 있다. 대한민국 GDP의 22%를 창출하고 있으며, 금융 기관의 50% 이상이 집중되어 있다.

2007년[104]국내총생산
(10억원)
사업체 수
(개소)
은행예금
(10억원)
내국세
(10억원)
의료기관
(개소)
자동차수
(천대)
대학교
(개소)
전국581,5163,131,963512,41982,22644,02913,949180
서울127,175735,258259,35535,43612,3962,69142
집중도(%)21.8723.4850.6143.128.1519.2923.33
  • 삼성 - 전자, 중화학 등을 중점 사업으로 하는 세계적인 기업 (서초구 서초동 1320-10)
  • LG - 1947년 창업한 한국의 전자/화학 분야 기업 (영등포구 여의도동 LG트윈타워)
  • 현대자동차 -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 기업 (서초구 양재동 231)
  • GS - 유통, 정유, 건설 등을 중점으로 하는 기업 (강남구 논현로 508)
  • SK - 에너지, 통신 등을 중심으로 사업을 펼치는 한국 3위의 기업 (종로구 서린동 99번지)
  • 롯데 - 유통, 화학, 식음료 등을 중심 사업으로 활동하는 한국 재계 5위의 기업 (송파구 신천동 29)

공업

[편집]

서울의 공업은 1919년에 영등포에 세워진 방직공장을 시초로 한다. 영등포에는 그 외에도 피혁공장과 철도공작창이 지어졌으며, 1940년대 들어서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일본의 군수물자 조달을 목적으로 영등포와 용산을 중심으로 군수 산업이 발달하였다. 8·15 광복과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잠시 침체 상태에 있었으나, 1962년부터 시작된 국가 주도의 경제 개발로 인해 서울의 공업은 급속도로 발달하였다. 1971년 형성된 구로동 수출산업공단은 섬유·전자기계·고무합성수지제품·금속·광학기기류 등의 생산으로 서울 최대의 산업단지가 되었으며, 인근의 영등포 기계공단과 묶여 경인공업지구를 형성하였다.

1990년대 초까지 용산·영등포·천호동·노원구 등에 공업지구가 형성되어 있었으나, 수도권이 팽창하면서 인천·시흥·안산·부천 등 인근 지역으로 옮겨갔다. 2000년대 들어 첨단산업이 발달하면서 구로동·가산동 지역의 대규모 공단이 디지털산업단지로 탈바꿈하여 현재는 수많은 IT 벤처 기업이 있다.[105]

상업

[편집]

서울의 상업은 4대문 안 서울 도심인 종로·남대문로·충무로·명동·을지로와 청계천 등의 상가와 남대문시장·동대문시장·중부시장 등의 시장과 백화점, 대형 할인점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1960년대 들어 대단위 슈퍼마켓과 연쇄점·지하상가가 시내 요소에 설치되어 새로운 상가를 형성하였다. 전문상가로는 전국에 의류를 공급하는 남대문 의류상가와 동대문 평화시장,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 노량진수산시장, 용산전자상가, 경동시장 등이 있다.[106]

업무 지구

[편집]

교육

[편집]
서울대학교 정문에 있는 조형물

서울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체육대학교 등 국공립 대학교와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서강대학교, 성균관대학교(인문사회캠퍼스), 한양대학교, 중앙대학교, 경희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건국대학교, 동국대학교, 광운대학교, 홍익대학교, 국민대학교, 숭실대학교, 세종대학교 등 사립 대학교들이 소재하고 있다. 대학교 40개교, 교육대학 1개교, 방송통신대학교 1개교, 전문대학 12개교 등이 있다.[107]

서울특별시의 학교 · 학생 · 교직원 현황 (2012년)
교육기관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합계
학교886개교594개교376개교311개교2,206개교
학생87,997명502,000명315,241명344,391명1,262,970명
교직원6,213명29,762명18,442명23,245명79,490명
자료 : 서울교육통계연보[108]

문화

[편집]

서울은 대한민국 문화 활동의 중심지가 되고 있으며 도서관·박물관·출판사·공원과 기타 문화 시설들이 집중되어 있다.

상징

[편집]

서울을 상징하는 꽃은 개나리(1971년 4월 3일 지정), 나무는 은행나무(1971년 4월 3일 지정), 새는 까치(1971년 4월 3일 지정)이다.

관광

[편집]
비짓서울 로고
비짓서울

서울은 최근 K 문화의 인기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어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 서울관광재단에서는 서울 여행을 계획하거나 서울을 여행중인 관광객들을 위해 '비짓서울(VISIT SEOUL)'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 공식 관광 정보 웹사이트인 '비짓서울'은 서울에서 개최되는 각종 행사, 축제, 전시 정보는 물론이고 명소, 맛집, 쇼핑 등 다양한 관광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관광 정보를 발 빠르게 제공하여 관광객들이 서울을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비짓서울'은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간체, 중국어 번체, 러시아어, 말레이어 총 7가지 언어를 제공한다.

문화재, 박물관

[편집]
용산구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

서울에는 132개의 국보, 380개의 보물, 61개소의 사적, 11개의 천연기념물, 32개의 무형문화재, 46개의 중요민속자료 등이 있다. 또한 경복궁 등의 고궁과 각종 공원 등이 있어 시민들과 외국 관광객들에게 좋은 휴식처와 관광 명소가 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등 60여 개의 박물관이 있다.

이름비고(내용)
국립중앙박물관대한민국 최대의 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조선 왕실의 문화재 전시
국립민속박물관민속·생활사 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서울의 도시 역사 박물관
전쟁기념관전쟁사 박물관
덕수궁미술관국립현대미술관(과천 소재)의 서울 분관
서울시립미술관서울시 공공 미술관

도서관

[편집]

서울에는 시립 도서관 23개 소가 있으며, 시립 도서관의 경우 대부분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운영하고 있다. 그 외에도 각 자치구에서 설립한 구립 도서관이 있다. 최근 구립 도서관의 숫자가 늘고 있는 추세이다. 장서(藏書) 100만여 권을 가진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 그외에도 공공 및 사립도서관, 대학도서관 등이 있다.[107]

공연 시설

[편집]

유적지

[편집]
  • 암사동 선사유적지(사적 제267호) - 선사 시대의 주거 유적지이다. 민무늬토기, 반달돌칼, 빗살무늬토기 등 100여 개의 수혈 거주지가 출토되었다.
  • 풍납토성(사적 제11호), 몽촌토성(사적 제297호) - 백제의 하남위례성으로 추정되는 토성 유적이다. 풍납토성은 백제 때의 하남위례성의 북성지로, 몽촌토성은 하남 위례성의 남성지(南城地)로 추정된다.
  • 서울 석촌동 고분군, 서울 방이동 고분군 - 한성 백제 시대의 돌로 만든 봉분군이다.
  • 한양도성 - 조선 태조 때 서울을 수도로 정하면서 쌓기 시작한 성곽이다. 당시 한양을 산을 중심으로 둘러쌌던 성곽이다. 일제강점기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많은 부분이 파손되었으나 현재 많은 부분이 복구되었다.
  •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 - 조선 왕조의 궁궐이다.
  • 종묘 - 조선 시대 왕가의 신위를 모시던 왕실의 사당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사직단 -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다.
  • 성균관 - 조선 시대의 국립 학교로, 유교적 지식을 가진 관료와 유학자를 양성하던 고등 교육 기관이다.
  • 북한산성((사적 제162호) - 수도 한양을 방어하던 성곽이다. 일부는 서울시 밖인 고양시에 위치하여 있으며, 북한산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다.
  • 조선 왕릉 - 선정릉, 헌인릉, 정릉, 의릉이 서울시 내에 위치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연산군묘는 서울 내에 위치해 있지만, 연산군이 폐위되었으므로 능이 아닌 묘로 부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아니다.
  • 동묘 - 촉한의 명장 관우를 모신 사당이다.
  • 독립문 - 대한제국기 자주독립을 위해 세운 문(門)이다.
  • 환구단 -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만든 곳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낸 제단이다.
  • 장충단 - 대한제국 당시 을미사변과 임오군란 통에 변을 당한 이들을 기리던 제단이다.
  • 서대문 형무소 -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서울에 세운 형무소이다. 수많은 독립 투사들과 민주 투사들이 이곳에서 고문과 옥사를 치렀다.

고궁

[편집]
  • 경복궁 - 조선 태조 4년 창건된 조선 왕궁. 세종 때 정궁. 임진왜란 때 불 탔으나 고종 2년(1865년)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에 의해 중건됨.
  • 창덕궁 - 1405년(태종 5) 지어진 조선 왕궁.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 창경궁 명정전 - 조선 왕들이 살았던 궁궐 중 하나이다. 창덕궁과 붙어 있다.
  • 경희궁 흥화문 - 조선 궁궐 중 하나이다. 내부에 서울역사박물관이 있다.
  • 덕수궁(전경) - 조선과 대한제국의 궁궐이다. 광무 연간 동안 대한제국의 정궁이었다.

서울시티투어버스는 광화문을 기점으로 서울의 중심 관광지를 순환하고 있다.

명소

[편집]
  • 광화문 광장
  • 명동 - 서울 도심의 번화가이다.
  • 남대문 시장 - 서울의 대표적 종합 재래 시장이다.
  • 삼청동 - 전통 한옥과 음식점, 카페, 갤러리가 있는 거리이다.
  • 남산골한옥마을 - 한옥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 COEX(컨벤션 센터) - 무역센터와 인접한 종합 전시관이다.
  • 강남역 사거리 - 한강 이남 지역의 최대 번화가이다.
  • 대학로 - 문화 예술의 거리로 음악, 연극 등의 공연 문화가 활발한 곳이다. 마로니에 공원이 있다.
  • 63빌딩 - 여의도에 있는 고층 빌딩으로 전망대, 영화관 등이 설치되어 있다.
  • YTN서울타워 - 남산의 정상 부근에 있으며 서울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YTN이 소유 중이다.
  • 인사동 - 서울의 전통 문화 거리이다. 화랑(갤러리), 전통 상품 상점, 전통 음식점 등으로 유명하다.
  • 이태원 -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거리로 외국의 다양한 요리를 만드는 식당들로 유명하다.
  • 롯데월드 - 잠실에 있는 테마파크이다. 석촌 호수와 닿아 있다.
  • 롯데월드타워 - 롯데월드 옆 롯데월드몰 부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6번째로 높은 555m의 높이를 자랑한다.
  • 롯데월드몰 - 국내 최대 규모의 복합 쇼핑문화센터로서, 롯데월드타워와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명소이다.
  • 디지털미디어시티 - 서울 서북권에 위치한 미디어&엔테테인먼트 관련 업무지구이다. 주요 방송사가 입주할 예정이며, 창의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는 다양한 형태의 건물이 있다. 줄여서 DMC(Digital Media City)로 불리며, 120층이 넘는 부르즈 할리파에 이은 세계 2위의 초고층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 타임스퀘어 - 30만 m2(축구장 40개 넓이)의 국내 최대 복합 쇼핑공간이다. 타임스퀘어 내 CGV영화관은 세계 최대크기의 스크린을 갖춘 영화관이 있다. (영등포구 영중로 15)
  • 북촌 한옥 마을
  • 서촌
  • 정릉(사적 제243호) - 조선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능이다.
  • 동대문디자인플라자 - DDP(Dongdaemun Design Plaza)는 세계 최초의 '디자인-창조산업의 발신지' 이자, 서울의 미래 성장을 견인하는 '창조산업의 전진기지'를 위해 건립된 세계 최대 규모의 3차원 비정형 건물이다. 특히, 옥상에 위치한 LED 꽃밭이 명소로 유명하다.
  • 홍익대학교 인근 - 서울 지역에서 인디 문화의 상징적인 지역이었으며, 특색있는 분위기와 여러 클럽, 공연장 등이 모여있어 많은 젊은이들이 찾는 번화가 중의 하나이다.
  • 세빛섬 - 한강에 있는 인공섬이다.
  • 청계천
  • 청계광장

공원

[편집]
  • 한강 시민 공원 - 한강을 따라 그 유역을 여러 지구로 나누어 공원을 조성하였다.
  • 서울 올림픽 공원 - 1988년 하계 올림픽을 위해 건설되어, 현재는 일반 공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사이클· 역도· 펜싱· 수영· 체조· 테니스 등 6개의 경기장 등의 경기 시설과 소마미술관 등 다양한 문화 시설들이 함께 있다. 올림픽 공원 건설 도중 발굴된 백제 유적지 몽촌토성은 공원 내에 있다.[112]
  • 보라매 공원 - 동작구에 있는 공원으로 청소년을 위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 북서울 꿈의 숲 - 강북구에 있는 대형 공원으로, 옛 드림랜드 자리에 있다.
  • 양재시민의 숲 - 서초구에 있는 시민 공원이다.
  • 어린이 대공원 - 광진구에 있는 어린이 공원으로 놀이동산, 동물원, 식물원, 어린이회관 등이 있다.[113]
  • 여의도 공원 - 여의도 도심 속의 공원이다.
  • 월드컵 공원 - 서울 월드컵 경기장을 중심으로 조성된 공원이다.
  • 서울로 7017 - 도시재생 사업으로 서울역고가도로를 공원으로 재조성하여 2017년 5월 20일에 개장한 공원이다.
  • 서서울 호수공원 - 신월정수장을 리모델링하여 만든 서울 서남권 시민의 쉼터로 2009년 10월 26일 개장했다.( 양천구 신월동 68-3 )
  • 선유도 공원 - 강 가운데 있는, 하중도에 위치한 공원이다. 양화대교를 이용하여 갈 수 있다. 본래 정수장이었던 곳을 보수하여, 물을 주제로하는 공원으로 조성하여 2002년 4월에 개관하였다.
  • 용산가족공원 - 미군부대 부지를 반환받아 만든 공원이다.
  • 뚝섬 서울숲 - 뚝섬 일대에 있는 시민 공원이다.
  • 동대문역사문화공원
  • 마로니에 공원 - 혜화동과 이화동 사이에 위치한 공원이다.
  • 탑골공원 - 사적 제354호로 지정되어 있는 탑골공원은 국내 최초의 도심 내 공원으로 1919년 일제에 항거하는 3·1운동이 일어났던 곳이다.

종교 시설

[편집]

주요 의료 기관

[편집]

축제

[편집]

스포츠

[편집]

서울은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하계 올림픽, 1988년 하계 패럴림픽을 개최하였으며 2002년 FIFA 월드컵의 개막전과 4강전을 비롯한 총 3경기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치러졌다. 서울특별시 송파구에는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하계 올림픽의 개막식, 폐막식이 있었던 서울올림픽주경기장과 이를 기념하는 올림픽공원이 있으며, 마포구에는 월드컵공원이 있다. 노원구에는 종합선수합숙훈련장인 태릉선수촌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프로스포츠팀을 보유한 도시이며 특히 프로스포츠 양대 산맥인 프로축구 K리그와 프로야구 KBO 리그에서 1990년 럭키금성 황소와 LG 트윈스 그리고 2016년 FC 서울과 두산 베어스의 2차례 동반 리그 우승을 달성하였다.[118]

서울의 운동 경기장으로는 잠실에 잠실종합운동장, 목동에 목동운동장, 성산동에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있다.[107]

축구

[편집]
리그명 구단명 창단연도 홈경기장
K리그1FC 서울1983년서울월드컵경기장
K리그2서울 이랜드 FC2014년목동운동장
K4리그서울 중랑 축구단2012년중랑구립잔디운동장
WK리그서울시청 여자 축구단2004년서울월드컵보조경기장

야구

[편집]
리그명 구단명 창단연도 홈경기장
KBO 리그LG 트윈스1982년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두산 베어스
키움 히어로즈2008년고척스카이돔

농구

[편집]
리그명 구단명 창단연도 홈경기장
KBL서울 삼성 썬더스1978년잠실실내체육관
서울 SK 나이츠1997년잠실학생체육관

배구

[편집]
리그명 구단명 창단연도 홈경기장
V-리그 (남)서울 우리카드 우리WON2008년장충체육관
V-리그 (여)서울 GS칼텍스 KIXX1970년

풋살

[편집]
리그명 구단명 창단연도
FK리그성동FS2018년
노원HR FS2009년
서울 은평 FS2012년

스포츠 시설

[편집]

교통

[편집]
동부간선도로

승용차와 대중교통인 지하철, 버스, 택시 등이 주된 시내 교통 수단이다. 주요 환승지로는 1호선 서울역, 영등포역, 용산역,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센트럴시티, 동서울종합버스터미널, 남부터미널, 1,2호선 시청역, 2호선 강남역, 신도림역, 2,4호선 사당역 등이 있다. 2007년 말 기준으로 자동차 등록 대수는 2,933,286대로 수송 분담률은 2006년 기준으로 지하철 34.7%, 버스 27.6%, 택시 6.3%, 자가용이 26.3% 등이다.

1899년부터 운행하던 전차가 1968년에 없어지면서 서울의 대중 교통 수단은 변화를 맞이하였다. 1966년부터는 시가지의 대폭적인 재개발로 건물의 고층화와 함께 도로의 입체화가 진전되었다. 대중 교통 수단의 재배치는 서울 도시 구조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쳐왔다. 대표적인 예로 1기 지하철, 특히 당초 계획과는 달리 거대 순환선으로 변경된 2호선이 서울의 공간에 끼친 영향을 들 수 있다.

도로

[편집]
강변북로의 서강대교에서 바라본 한강 풍경

경부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 용인서울고속도로 등이 남쪽으로 이어져 있으며,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와 경인고속도로는 서쪽에 있는 인천광역시와 연결된다. 시 외곽에는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가 둘러싸고 있다. 도시 내부에는 강변을 따라가는 강변북로, 올림픽대로, 내부순환로, 동부간선도로, 서부간선도로, 남부순환로, 북부간선도로 등의 간선도로가 건설되어 있다.

강변북로[119]는 고양시와 파주시, 올림픽대로는 인천광역시와 부천시, 동부간선도로는 성남시와 의정부시, 서부간선도로는 안양시와 광명시, 북부간선도로는 구리시와 연결된다. 서울시내의 주요 도로로는 테헤란로, 세종대로, 종로, 강남대로, 시흥대로 등이 있다.

대중교통

[편집]
서울 시내버스
서울시티투어버스

서울에서 버스가 처음으로 운행을 하기 시작한 때는 1928년으로, '경성 부영버스'라는 이름으로 10대를 운영했다. 1949년 17개 회사가 서울시로부터 면허를 받고 버스 운영에 뛰어들었다. 이후로 여러 차례의 확장과 개편을 거쳤으며, 2004년 서울특별시 버스 개편으로 버스 준공영제와 환승할인 제도가 도입되었다. 현재 시내버스, 간선버스, 마을버스, 광역버스 등을 포함한 수백개의 버스노선이 시내를 연결하고 있다.

서울에서 택시는 1912년에 처음 운행을 시작하였고, 1919년 최초의 택시회사가 설립되었으며, 1926년에는 미터기가 도입되었다. 8·15 광복 후에도 발전을 거듭하여 1970년 콜택시가 등장하고[120], 1988년에는 콜택시 대체용으로 도입된 중형택시[121], 1992년에는 모범운전수가 운전하고 콜택시를 도입하는 등 서비스 수준을 높인 모범택시가 선을 보였다.[122] 또한 2009년에는 소형택시 부활이 결정된 이후 2011년 12월부터 소형택시 70여대가 운행되고 있다.[123][124] 2015년 10월에는 고급택시가 운행을 시작했다.

철도

[편집]
서울역
서울 지하철 2호선

서울은 한반도 철도의 중심지 지역답게, 서울에서 다른 도시간을 잇는 철도 교통이 골고루 발달되어 있는 지역이다. 지역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역이 나뉘어 있어, 서울역에서는 경부선과 경전선 KTX, 용산역에서는 호남선·전라선·장항선, 청량리역에서는 중앙선·태백선·영동선 강릉선열차가 출발한다. 그 외에도 영등포역 등의 중간역에서 열차를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인천국제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철도를 이용하여 서울역까지 접근할 수 있다. 또한 철도관제센터 또한 서울에 위치해 있어 그곳에서 대한민국 전역의 모든 철도를 총괄 관리 및 명령한다.

1968년 서울전차의 퇴역으로 이를 대신할 대중교통수단 건설이 논의되었고, 1974년 수도권 전철 1호선의 개통으로 본격적인 도시 철도 시대를 열었다. 1기 지하철 사업으로 2호선, 3호선과 4호선이 개통되었고, 그다음 2기 지하철 사업으로 5호선, 6호선, 7호선, 8호선이 새로 건설되어 추가되었다. 이후 9호선이 건설되면서, 현재 한국철도공사 관할 구간을 제외하고 9개 노선이 운행하고 있다.

서울 지하철은 서울의 도심과 부도심을 이어주며, 특히 서울 지하철 2호선의 개통은 서울의 공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서울 지하철 5호선의 경우에는 최초로 한강 아래로 터널을 뚫어 운행을 시작했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을 포함한 일부 노선은 한국철도공사의 수도권 전철과 연계 또는 직결 운행하여 서울 주변의 위성도시들을 연결한다.

항공

[편집]
김포국제공항

동아시아 (일본,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 단거리 국제선과, 대한민국 국내선은 주로 김포국제공항을, 나머지 중장거리 국제선은 인천국제공항을 이용한다. 서울 도심에서 인천국제공항까지는 약 1시간 정도가 소요되며, 인천국제공항철도 또는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접근할 수 있다.

공항철도

[편집]
공항철도 2000호대 전동차 (일반열차, 208편성)
  • 인천국제공항철도(AREX)는 한국의 관문인 인천공항에서 서울도심을 가장 빠르게 연결해 주는 교통수단이며, 인천국제공항 교통센터 지하 1층 승강장에서 서울역행 직통, 일반열차 탑승이 가능하다. 공항철도를 이용하여 명동, 홍대입구, 동대문, DMC 등 주요 관광지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다.
  • 2007년 3월 23일 첫 운행을 시작한 공항철도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두 개의 국제공항(인천국제공항, 김포국제공항)과 도심을 연결하는 철도이다. 2007년 3월 1단계 구간(인천국제공항역(현 인천공항1터미널역)∼김포공항역, 37.6 km)을 개통한 뒤, 2010년 12월 29일 2단계 구간(김포공항역∼서울역, 20.4 km)을 개통했으며 이어 공덕역(2011.11.30)과 청라국제도시역(2014.06.21), 영종역(2016.3.26), 인천공항2터미널역(2018.1.13)을 개통함으로써 인천국제공항철도 건설사업이 마무리됐다. 현재 서울역∼인천공항2터미널역 간 63.8km의 영업거리에 총 14개역이 있으며 서울역에서는 도심공항터미널을 운영하고 있다.
  • 공항철도 열차는 서울역∼인천공항1터미널역을 무정차로 43분에 운행하는 고급형 열차인 직통열차와 모든 역에 정차하는 일반열차(56분 소요)로 이원화 운영되고 있다. 서울역에 위치한 서울역 도심공항터미널에서는 대한항공 등 9개 항송사 이용객들을 대상으로 시내 체크인 및 수하물 탁송을 지원하며,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출국심사 서비스가 무료로 제공된다.
  • 공항철도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역간 거리가 길고 빠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63.8km 구간에 14개역이 위치해 있어 역간 평균거리가 5.3km에 달한다. 수도권 전철의 경우 역간 평균거리 1km내 외임을 감안할 때 공항철도는 모든 열차가 급행열차인 셈이다. 공항철도의 최대 운행 속도는 110 km/h로 역을 출발해 다음 역에 정차할 때까지의 표정속도가 70km로 수도권 전철에 비해 2배 이상 빠르다. 이로 인해 인천 서부권과 서울 도심을 가장 빠르게 연결한다.

수상 교통

[편집]

과거에는 뚝섬과 마포에 포구가 있어 번창하였으나, 육상교통이 발달되면서 자취가 사라졌다. 또한 노량도(서울 시흥)·양화도(서울 인천)·한남도(서울 용인)·송파도(서울 광주)·광나루(서울 광주) 등의 나루터가 있었으나 한강대교가 가설된 후부터 옛날의 나루터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한강 개발 이후가 된 후 관광용으로, 또한 통근용으로 수상 교통의 부활이 이루어졌다.

한강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1986년 10월 26일부터 관광용 한강 유람선 운행을 시작했다. 여의도와 잠실 등 8개 선착장에서 운행하고 있다.[125]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07년 10월 11일부터 한강 수상택시 운행을 시작했다. 여의도와 잠실 등 한강변 18개 승강장에서 운행하고 있으며, 교통수단 뿐만 아니라 관광용으로 이용되고 있었으나 운항정지 중이다.

2025년 9월 18일부터 한강버스가 운행 중이다.

기업

[편집]

방송

[편집]

언론

[편집]

금융

[편집]

그룹

[편집]

유통

[편집]

자동차

[편집]

통신

[편집]

식품

[편집]

건강기능식품

[편집]

IT

[편집]

화학

[편집]

항공

[편집]

공기업

[편집]

자매 도시

[편집]

서울특별시는 2014년 2월 기준 20개국, 24개 해외 자매도시들과 교류를 하고 있다.[126]

체결 연도 국가 도시
1968년  대만 타이베이
1971년  튀르키예 앙카라
1973년  미국 호놀룰루
1976년 샌프란시스코
1977년  브라질 상파울루
1978년  스페인 마드리드
1982년  콜롬비아 보고타
1984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1988년  일본 도쿄도
1991년  러시아 모스크바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프랑스 파리
1992년  멕시코 멕시코시티
1993년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
1996년  베트남 하노이
 폴란드 바르샤바
1997년  이집트 카이로
2000년  이탈리아 로마
2004년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2006년  미국 워싱턴 D.C.
 그리스 아테네
2007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2010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2017년  이란 테헤란

같이 보기

[편집]

내용주

[편집]
  1. ↑ 고구려 남평양의 위치와 존속 시기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린다. 한국 학계에서는 대체로 남평양을 서울 부근에 비정하고, 475년 고구려가 백제의 한성을 함락한 뒤부터 551년 한강 유역을 잃을 때까지 존재한 거점으로 본다. 그러나 황해도 신원군의 장수산성 일대 등 황해도에 두는 견해와 남평양의 실체를 부정하는 견해도 있으며, 북한 학계는 장수산성과 그 아래 아양리·월당리 일대의 도시 유적을 근거로 이곳을 4세기 고구려의 남평양으로 본다.[21] 551년 기사의 평양과 한성을 황해도 재령(신원) 일대에 비정하는 견해도 있다.[19] 이 문제는 《주서》·《북사》 등이 전하는 고구려 삼경(三京), 곧 평양성·국내성·한성 가운데 한성의 위치 문제와도 얽혀 있다. 북한산군을 '평양'·'남평양'이라 부른 기록은 한성을 서울 부근에 두는 근거가 되지만, 황해도 재령을 '한성'·'한홀(漢忽)'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고 재령 일대에서 고구려 도시 유적이 발견되면서 재령설이 힘을 얻었다.[16] 김훈은 고구려가 475년 이후 지금의 광진구·아차산 일대에 북한산군(평양)을 두었다가 5세기 말 문자명왕 때 지금의 종로구·중구 일대로 옮겨 부수도 '남평양'으로 삼았고,[22] 551년 한강 유역을 잃은 뒤 이를 장수산성으로 옮겨 '한성'이라고도 부르며 고구려가 멸망할 때까지 삼경의 하나로 운영했다고 보았다.[23]
  2. ↑ 《서울시 헌장》의 발표일은 흔히 1946년 8월 15일로 알려져 있으며,[9][31] 서울신문(2013)은 8월 14일 미군정청의 특별 발표가 있었다고 적었다.[32] 김제정(2014)은 미군정청이 8월 10일 헌장을 발표했다고 적었다.[30]
  3. ↑ 김제정(2014)은 서울특별시 누리집의 서술을 따라 1949년 11월 4일 지방자치법의 제정·공포로 서울특별시라는 명칭이 되었다고 적었으나,[37]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지방자치법은 1949년 7월 4일 제정되어 8월 15일 시행되었다.[36]
  4. ↑ 북한산 순수비의 건립 시기에 대해서는 555년설과 568년 이후설이 있으며, 568년 말 건립설이 폭넓게 받아들여진다.[58]
  5. ↑ 언론 보도에서는 1963년 확장 뒤의 면적을 597 km2[72] 또는 596 km2[65]로 적기도 한다. 서울연구원 자료는 행정 구역 면적을 613.04 km2로, 같은 해 도시계획 구역 면적은 595.55 km2로 구분해 제시한다.[73]
  6. ↑ 백운대의 높이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울특별시〉는 837 m로,[79] 국립공원공단의 해설 자료는 836.5 m로 적었다.[83]
  7. ↑ 불암산의 높이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울특별시〉는 500 m로,[79] 서울연구원 《지도로 본 서울 2013》은 508 m로 적었다.[84]

각주

[편집]
  1. ↑ 최초로 광역자치단체장 중 5선 시장이다. 다만, 광역자치단체장은 법률상 3선 연임까지 가능해 5선 연임은 아니다.
  2. ↑ “2025년 11월 주민등록 인구”. 《행정안전부》.
  3. ↑ 경기도 과천시·광명시 일원과 고양시 덕양구 일부(옛 고양군 신도읍·화전읍 지역), 하남시 일부(옛 광주군 서부면 일부), 시흥시 일부(과림동 일대), 부천시 일부(옥길동, 역곡동 일부), 안양시 일부(석수동 접경지역), 구리시 일부(아천동 일부)는 지역번호가 02이다.
  4. ↑ 1994년후 부터 인구가 지속적으로 계속 감소했다, 2000년대 중후반, 뉴타운 개발(재개발)로 잠시 동안 인구가 늘기는 했지만 일시적인 현상일뿐, 인구는 다시 감소하기 시작했다.
  5. ↑ 서울의 대표적인 부촌 강남3구 중 하나이다.
  6. ↑ 서울의 원도심으로 도심공동화가 심하게 발생중이다.
  7. ↑ “대한민국 '평균 이상'이 사는 3개 지역…어디?”. 머니투데이. 2019년 12월 23일.
  8. ↑ https://data.seoul.go.kr/dataList/91/S/2/datasetView.do
  9. 1 2 3 4 5 6 7 8 9 10 11 정구복 (1995). “서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10. ↑ 이기문 2008, 147–148쪽.
  11. ↑ 이기문 2008, 148쪽.
  12. 1 2 3 4 “자주 묻는 질문”. 《서울특별시 외국어표기사전》. 서울특별시.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13. 1 2 정희원 (2005년 2월). “‘서울’의 중국어 표기”. 《새국어소식》. 국립국어원.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14. 1 2 3 “백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1995.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15. ↑ 주보돈 (2012). “남천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년 10월 12일에 확인함.
  16. 1 2 “고구려 삼경”.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1995.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17. ↑ 김훈 2022, 16쪽.
  18. ↑ 김훈 2022, 17–19쪽.
  19. 1 2 김훈 2022, 21–22쪽.
  20. ↑ 박성현 (2021). “구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21. ↑ 김훈 2022, 6쪽.
  22. ↑ 김훈 2022, 19–20쪽.
  23. ↑ 김훈 2022, 24–25쪽.
  24. 1 2 정은정 (2021). “남경”.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25. ↑ “한양으로 서울을 옮기다”. 《《태조실록》 6권, 태조 3년 10월 25일 신묘 1번째 기사》. 국사편찬위원회. 2026년 10월 12일에 확인함. 필요 이상의 변수가 사용됨: |웹사이트= 및 |작품= (도움말)
  26. ↑ “한양부를 한성부로 고치다”. 《《태조실록》 7권, 태조 4년 6월 6일 무진 1번째 기사》. 국사편찬위원회. 2026년 10월 12일에 확인함. 필요 이상의 변수가 사용됨: |웹사이트= 및 |작품= (도움말)
  27. ↑ 원영환 (1995). “판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28. 1 2 “일제강점기의 행정체계”. 《국가기록원 주제별 기록 – 조선총독부 청사·치안시설·전매시설》. 국가기록원.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29. ↑ 김제정 2014, 85–86쪽.
  30. 1 2 김제정 2014, 86쪽.
  31. 1 2 조현석 (2011년 4월 19일). “市기록관에서 보관중인 가장 오래된 공문서 아시나요”. 《서울신문》.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32. ↑ 노주석 (2013년 6월 14일).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① 프롤로그-변천사”. 《서울신문》. 20면.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33. ↑ 김제정 2014, 87쪽.
  34. ↑ “광복 1주기를 맞아 제정된 서울시 헌장 공개”. 《내 손안에 서울》. 서울특별시. 2013년 10월 29일.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35. ↑ 김도창 (1995). “지방자치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년 10월 12일에 확인함.
  36. 1 2 3 “지방자치법의 변화”. 《국가기록원 지방자치 이야기》. 국가기록원.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37. ↑ 김제정 2014, 85, 87쪽.
  38. ↑ 김제정 2014, 88쪽.
  39. ↑ 김제정 2014, 89쪽.
  40. ↑ 김제정 2014, 92–93쪽.
  41. ↑ 김제정 2014, 93쪽.
  42. ↑ 김제정 2014, 94쪽.
  43. ↑ 김제정 2014, 98쪽.
  44. 1 2 Victor Mair (2025년 5월 12일). “How to say "Seoul"” (영어). 《Language Log》. University of Pennsylvania. 2026년 10월 12일에 확인함.
  45. ↑ Charles Dallet (1874). 《Histoire de l'Église de Corée》 (프랑스어) 1. Paris: Victor Palmé. xiii쪽. 2026년 10월 12일에 확인함.
  46. ↑ 노주석 (2018년 5월 12일). “[노주석의 서울살이] 서울이 ‘수이’라고?”. 《서울신문》. 22면. 2026년 10월 12일에 확인함.
  47. ↑ G. M. McCune; E. O. Reischauer (1939). “The Romanization of the Korean Language: Based upon Its Phonetic Structure” (PDF) (영어). 《Transactions of the Korea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29: 8. 2026년 10월 12일에 확인함.
  48. ↑ “ソウル” (일본어). 《Web NDL Authorities》. 国立国会図書館. 2026년 10월 12일에 확인함.
  49. ↑ 張保雄. “ソウル” (일본어). 코토뱅크 수록. 《日本大百科全書(ニッポニカ)》. 小学館. 2026년 10월 12일에 확인함.
  50. ↑ Kim, Mauch & Horesh 2012, 5쪽.
  51. 1 2 오일만 (2005년 1월 21일). “[오일만특파원 베이징은 지금] 입방아에 오른 ‘한청→서우얼’”. 《서울신문》. 39면.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52. 1 2 Kim, Mauch & Horesh 2012, 1쪽.
  53. ↑ Cao Desheng (2005년 1월 20일). “'Seoul' morphs into Chinese 'Shouer'” (영어). 《China Daily》. 2017년 6월 1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6년 10월 12일에 확인함.
  54. ↑ Kim, Mauch & Horesh 2012, 1, 11쪽.
  55. ↑ 黄彬华 (2005년 2월 4일). “汉城变“首尔” 何以让人有些费解” (중국어). 싱가포르 《联合早报》 칼럼 전재. 《中国新闻网》. 2026년 10월 12일에 확인함.
  56. 1 2 3 4 5 6 7 8 Chan Lee; Woo-ik Yu. “Seoul” (영어). 《Encyclopædia Britannica》. Encyclopædia Britannica, Inc.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57. ↑ “서울암사동유적”. 《강동문화포털》. 서울특별시 강동구.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58. 1 2 전덕재 (2021). “진흥왕 순수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59. 1 2 3 “궁궐”. 《국가기록원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국가기록원.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60. 1 2 3 “서울 한양도성 (사적)”. 《서울특별시 문화 누리집》. 서울특별시 문화본부 문화재관리과. 2022년 10월 19일.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61. ↑ Kang Ki-heon (2020년 11월 16일). “The Seoul City Wall (KOR)” (영어). 《Korea JoongAng Daily》.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62. ↑ 신효승 (2023년 2월 21일). “[신효승의 역사 속 장소 이야기⑳] 대한제국을 선포하던 날”. 《데일리안》.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63. ↑ 노인화 (1995). “한성전기회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64. ↑ 조명환 (1994년 2월 13일). “다리:중/한강철교/강남·북 연결 최초의 교량(서울6백년만상:11)”. 《서울신문》. 17면.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65. 1 2 전우용 (2023년 11월 13일). “두 배로 넓어졌어도 서울은 조선의 ‘외사산’ 안쪽”. 《한겨레21》.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66. ↑ 홍인기 (2019년 2월 26일). “[3·1운동 100년] 100년 전 촛불혁명… 평범한 민초들이 독립만세 외쳤다”. 《서울신문》.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67. ↑ 민보름 (2023년 11월 12일). “50년 만에 4.5배…급팽창한 서울 역사, ‘메가시티’ 구상 마중물 돼”. 《한경비즈니스》 (한국경제매거진).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68. ↑ 김제정 2014, 86–87쪽.
  69. ↑ “9.28 서울수복”. 《서울기록원》. 서울특별시.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70. ↑ 김양명 (1995). “1·4후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71. ↑ Paik Sun-yup (2010년 4월 11일). “Stalemate at the 38th Parallel: Recapturing Seoul for the final time” (영어). 번역: Brian Lee. 《Korea JoongAng Daily》.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72. 1 2 3 정재정 (2023년 12월 25일). “[정재정의 독사만평] 강남 개발 60년, 서울 재도약의 발판 삼기를”. 《서울신문》. 23면.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73. 1 2 Sun-Wung Kim. “Changes to Seoul’s Administrative Districts and Development of Urban Space” (영어). 저자 소속: 서울연구원. 《Seoul Solution》.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74. ↑ 이연섭 (2024년 8월 13일). “[지지대] ‘1호선 전철’ 개통 50년”. 《경기일보》.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75. 1 2 노승길 (2016년 6월 23일). “서울 인구 1000만명 붕괴…1988년 이후 처음”. 《아주경제》.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76. ↑ 이목희 (1995년 6월 28일). “또 3당 지역할거/시도지사(6·27 선거)”. 《서울신문》. 1면.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77. ↑ 노주석 (2014년 11월 24일).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17>서울특별시장(하)”. 《서울신문》. 18면.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78. ↑ 박지윤 (2016년 10월 1일). “11년 전 오늘, ‘청계천 물 다시 흐르다’…복원 끝 개통”. 《머니투데이》.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79. 1 2 3 4 5 6 7 8 강진철; 김연옥; 박경룡; 손인수; 이재곤; 소재영; 이혜은; 나각순 (1995). “서울특별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80. 1 2 “위치 소개”. 《마이서울플러스》. 서울특별시.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81. ↑ “수도권 행정구역”. 《《지도로 본 서울 2013》 그림 12-3 「수도권 행정구역 2010」》. 서울연구원. 2013.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필요 이상의 변수가 사용됨: |웹사이트= 및 |작품= (도움말)
  82. ↑ “한국 지역별 기후특성(서울·경기도)”. 《기상청 날씨누리》. 기상청.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83. ↑ “환경교육 고지대경관거점해설 – 산성지구(원효봉)” (PDF). 《국립공원공단》. 국립공원공단.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84. 1 2 “지형”. 《《지도로 본 서울 2013》》. 서울연구원. 2013. 2026년 10월 11일에 확인함. 필요 이상의 변수가 사용됨: |웹사이트= 및 |작품= (도움말)
  85. 1 2 3 4 5 《글로벌 세계대백과》〈서울의 지형〉
  86. ↑ 《글로벌 세계대백과》〈서울의 임야〉
  87. 1 2 “MGEO 지질정보시스템 1:5만 지질도”. 한국지질자원연구원.
  88. 1 2 3 “서울 地質圖幅說明書 (서울 지질도폭보고서)”. 한국지질자원연구원. 1982년.
  89. 1 2 “뚝섬 (纛島) 地質圖幅說明書 (뚝섬 지질도폭설명서)”. 한국지질자원연구원. 1981년.
  90. ↑ 박병권 (1972년 9월). “Whole-rock Rubidium-Strontium Age of the Seoul Granite 서울 화강암의 Rb-Sr방법에 의한 암석년대 측정)”. 《대한지질학회》 8 (3): 156-162.
  91. ↑ 소칠섭; 최병렬 (1975년 12월). “Rock Mechanical Analysis of the Granite Joints in Seoul Area 岩石力學的으로 考察한 서울花崗岩의 節理에 關한 硏究)”. 《대한지질학회》 11 (4): 233-239.
  92. ↑ 정동훈; 송윤구; 박창윤; 강일모; 최성자 (2014). “추가령단층대 주요 단층의 백악기 이후 재활동 연대 (Reactivated Timings of Some Major Faults in the Chugaryeong Fault Zone since the Cretaceous Period)”. 《대한자원환경지질학회》 47 (1): 29-38. 신갈단층은 경기육괴 내 연천-포천-의정부-서울-평택에 이르는 추가령 단층의 연장선상의 단층으로, 남북방향의 뚜렷한 선구조로 나타난다
  93. ↑ 권순달; 김성곤; 이성한; 박권규 (2012). “기흥저수지 지역의 지반조사를 통한 신갈단층대 확인 (Identification of the Singal Fault Zone in the Kiheung Reservoir Area by Geotechnical Investigations)”. 《대한자원환경지질학회》 45 (3): 295-306.
  94. 1 2 3 4 《글로벌 세계대백과》〈서울의 자연〉
  95. 1 2 “우리나라 기후평년값(1991~2020) 서울(108)”. 기상청. 2024년 4월 21일에 확인함.
  96. ↑ 크리스티안 디트리히 쇤비제, 김종규 역, 기후학, 시그마프레스, 2006, 314쪽, ISBN 89-5832-203-9
  97. ↑ World Map of the Köppen-Geiger climate classification updated
  98. ↑ 1907년~1913년은 원남동 소재, 1913년~1932년은 낙원동 소재, 1932년부터는 송월동 소재 관측소에서 관측
  99. ↑ “순위값 - 구역별조회 서울(108)”. 기상청. 2024년 4월 21일에 확인함.
  100. ↑ “110일만에 서울-충청 '나쁨'… '초미세먼지 습격'시작되나 : 뉴스 ...”.
  101. ↑ 주민등록 인구통계
  102. ↑ “World Urbanization Prospects”. 《United Nations Population Division》. 2020년 1월 1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0년 2월 20일에 확인함.
  103. ↑ 통계청. “지역내총생산(GRDP)”. 《국가지표체계》. 2016년 7월 8일에 확인함.
  104. ↑ 서울특별시 홈페이지 자료
  105. ↑ 《글로벌 세계대백과》〈서울의 공업〉
  106. ↑ 《글로벌 세계대백과》〈서울의 상업〉
  107. 1 2 3 《글로벌 세계대백과》〈서울의 사회·문화〉
  108. ↑ “서울통계 > 교육 > 학교총괄”. 2016년 3월 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0년 2월 17일에 확인함.
  109. ↑ 홈페이지
  110. ↑ 홈페이지
  111. ↑ 홈페이지
  112. ↑ “홈페이지”. 2016년 10월 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4월 26일에 확인함.
  113. ↑ “홈페이지”. 2014년 12월 1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11월 23일에 확인함.
  114. ↑ “홈페이지”. 2018년 3월 2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4월 26일에 확인함.
  115. ↑ 홈페이지
  116. ↑ “홈페이지”. 2005년 9월 2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4월 26일에 확인함.
  117. ↑ “홈페이지”. 2018년 4월 2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4월 26일에 확인함.
  118. ↑ “2016 프로야구와 프로축구는 모두 ‘서울의 봄’”. 미디어스. 2016년 11월 7일.
  119. ↑ 자유로와 연결
  120. ↑ “콜택시 20日부터 運行”. 동아일보. 1970년 4월 14일.[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121. ↑ “中型택시 운행”. 경향신문. 1988년 4월 15일.[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122. ↑ “모범택시, 오늘 서울에서 첫 선”. MBC 뉴스데스크. 1992년 12월 23일. 2012년 11월 3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9년 12월 27일에 확인함.
  123. ↑ 서울 소형 택시 운행 첫날…시민 반응은? 보관됨 2012-01-06 - 웨이백 머신 KBS, 2011.12.3.
  124. ↑ 일반 택시보다 요금 싼 '소형택시' 퇴출 위기 sbs, 2013.10.3.
  125. ↑ [수도권] 도마에 오른 吳시장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 - 조선일보, 2010년 9월 29일.
  126. ↑ 서울특별시. “자매도시 현황”. 2013년 12월 31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3년 12월 29일에 확인함.

참고 문헌

[편집]

외부 링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