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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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시인사이드
dcinside
Logo dcinside.gif
형태 주식회사
산업 분야 인터넷
창립 1999년 10월
2000년 3월 (㈜디지탈인사이드)
2009년 1월 (㈜디시인사이드)
창립자 김유식
시장 정보 비상장
상장일 1497
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본사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77길 14, ES타워 10층
북경시 조양구 왕징서원 222호 성원국제 D좌 2503
사업 지역 대한민국 대한민국
중화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핵심 인물 김유식 (대표이사)
사업 내용 포털 사이트 운영
제품 갤러리, 갤로그, 디시뉴스
자본금 30억 8200만원
매출액 201억원
종업원 80명
웹사이트 디시인사이드 메인
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디시인사이드(영어: dcinside)는 다양한 특징을 가진 커뮤니티 사이트로, 익명성이 강하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줄여서 디시, 디씨, DC 등으로도 부른다.

역사[편집]

디시인사이드는 1999년 10월 6일, 현재 디시인사이드 대표인 김유식에 의해 개설되었다. 개설 초기의 명칭은 김유식의 Digital Camera Inside였는데,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사이트 개설 초기에는 주로 디지털 카메라 정보 및 카메라 리뷰, 사용자가 찍은 사진을 올릴 수 있는 게시판 등 디지털 카메라에 관한 콘텐츠를 다루었다.[1]

이후 사이트 내에 사진과 함께 게시물을 올릴 수 있는 풍경, 인물, 엽기 등의 각종 갤러리를 개설하였다. 2000년대 초반 사회적인 엽기코드 유행으로 인해 엽기 갤러리가, 네티즌들의 호기심 등에 의해 누드 갤러리가 인기를 끌었다. 이 외에도 스포츠, 학술, 교육, 정치, 음식, 패션과 같은 일반적인 화제를 취급하는 갤러리도 있으며, 각 게임, 학교, 연예인, 텔레비전 드라마 전용의 갤러리 등 세세한 화제를 취급하는 갤러리도 있다. 이에 따라, 디지털 카메라에 대한 담론보다는 각 갤러리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커뮤니티 사이트로 성격이 바뀌었고 그로 인해 다양한 성향을 지닌 사용자들이 사이트에 유입되었다. 2009년 이후부터는 디지털 카메라에 대한 정보 제공을 중단하였다.

2016년 현재, 디시인사이드는 1,800여 개의 갤러리, 하루 순 방문자 수 350만 명, 일일 페이지뷰 7천만에 달하는 대형 커뮤니티로 성장하였다.

문화[편집]

디시인사이드는 현재 대한민국의 인터넷 문화의 성지. 인터넷 이디엄의 근원이자 모태로서 알려져 있다. '실제로 한국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신조어, 은어들이나, 합성소재들, 유머 자료 등은 대부분 디시에서 파생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란 의견이 많은 사람에게 받아들여져왔지만 최근엔 그 수가 크게 줄었고 새롭게 떠오른 페이스북과 아프리카에 입지를 위협받고있다.[2]

민경배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NGO학)는 “어쨌든 한국 네티즌의 새로운 인터넷문화가 디시인사이드라는 공간 내에서 창출되었고, 인터넷의 독특한 언어방식, 패러디, 폐인문화, 놀이를 넘어 탄핵무효운동으로 나간 것처럼, 놀이에서 정치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네티즌의 독특한 문화의 진원지가 되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평가하였다.[3]

햏자 문화[편집]

2000년대 초 디시인사이드에서는 디시 이용자들에게 존경을 받는 몇몇 디시 이용자들을 '햏자'라고 불렀다.

디시 말투, 악플 문화[편집]

초창기의 디시인사이드는 매너있고 예의바른 사이트였으나, 당시 악플러 '씨벌교황'이 게시글을 쓸 때, 수위 높은 욕설을 많이 사용하였고, 이에 대한 대응과 반작용으로 디시 이용자들 사이에서도 욕설과 악플이 생겨났다. 여타 커뮤니티와 다르게 운영진의 개입도 적은 편이고 회원가입없이 글쓰기와 읽기가 용이한 것이 많은 접속자들을 보유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자유로움 탓에 종종 구설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사건들이 발생하여 비판을 받기도 한다. 또한 타 온라인 누리집이 디시인사이드 회원에게 반감을 사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정치성향[편집]

초창기 디시인사이드의 성향은 진보적이었고, 노무현 등 진보 또는 민주당 계열 인사를 지지하는 편이었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 여론이 높았다. 심지어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처하자, 오프라인에서 탄핵 무효 시위를 벌이기까지 하였다. 반대 성향의 이용자도 종종 있었으나, 당시 인터넷 상황이 그러하듯 보수우파 유저는 많지 않았다. 설사 있었더라도 게시판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2004년 디시 정치 세력의 구심점이었던 정치, 사회 갤러리(이하 정사갤)의 진보성향 논객들이 오프라인에서 전여옥 전 의원과의 토론에 패배하고 정사갤에서 떠난 이후 완전히 성향이 바뀌고, 보수 이용자가 대거 유입되게 된다. 하지만 2008년 광우병파동 시위때의 주도적 역할과 4대강 반대운동등의 사건으로 대다수 갤러리는 진보적 성향이 강했다. 하지만 2009년을 기점으로 보수성향의 유저들의 목소리가 커지며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극우 사이트 일베저장소의 등장으로, 디시의 극우 성향의 유저들 다수가 빠져나갔으며 갤러리별로 성향도 각기 다르고 변화도 심해 특정지어 말하기는 어렵다.사실상 현재로서는 좌파면 좌파라고 비하하고 우파면 우파라고 비하하는 행태이다.

비하[편집]

2000년대 후반부터 대부분의 디시인사이드 유저(뿐만 아니라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들은 특정지역을 비하하는 지역드립 성향이 짙어졌고(광주를 홍어로 대구를 통구이 등으로 비하) 2010년 이후최근에는국가민족을 비하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으며 국가와 민족을 비하하는 헬조선 이란 신조어가 만들어지면서 현실속에서의 거대담론으로 성장했다.

디시인사이드에 대한 자부심[편집]

디시인사이드 회원들은 욕설이 비교적 자유로운 사이트 분위기와 엄청난 수의 회원 수에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최근 디시인사이드는 뉴스에 나올만한 큰 사건을 일으키거나 자신들의 유행어가 전국적으로 사용되게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일각에선 사이트가 조금씩 쇠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이와 반대로 디시인사이드 회원들은 오히려 최전성기인 2011년 때보다 본인들이 이용하는 디시인사이드를 자랑하고 있다. 이러한 자부심은 "디부심"(디시인사이드+자부심)으로도 불린다.

갤러리[편집]

디시인사이드에서 운영하는 몇 개의 서비스(갤러리, 갤로비, 갤로그, 디시뉴스, 위키 등) 중 가장 대표적이며 사이트를 움직이는 큰 축이다. 갤러리는 각 분야로 나뉘어 사진과 정보를 다루는 게시판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본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전용되기도 한다.

운영 초기에는 사진이 없으면 게시물이 삭제되었기 때문에 본문 내용과 아무 관련 없는 사진을 올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여기서 등장한 것이 짤방이다. 또한 갤러리라는 명칭도 사진을 올린다는 특성에서 비롯되었다.

널리 알려진 갤러리로는 HIT 갤러리(약칭 힛갤), 코미디 프로그램 갤러리(약칭 코갤), 국내야구 갤러리(약칭 야갤), 합성 갤러리(구 합성-필수요소 갤러리, 약칭 합필갤), 카툰-연재 갤러리(약칭 카연갤), 애니-일본 갤러리(약칭 애갤) 등이 있다.

마이너 갤러리[편집]

2016년 1월 13일에 새로 생긴 기능이며 갤러리 신청 없이 직접 갤러리를 만들 수 있는 기능이다.

디시위키[편집]

디시위키2015년 5월 28일 디시인사이드에서 개설한 미디어위키 기반 위키이며, 6월 1일부터 일반 사용자의 편집이 가능해졌다.[4] 규칙상 비속어나 유언비어를 입력하는것은 금지되어 있으나, 암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주제의 제한은 없으며, 문서의 저작권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4.0에 따라 배포된다. 2016년 5월 25일 기준으로 총 33,784개의 문서가 생성되어 있다.

디시위키는 리그베다 위키의 사유화 사태에 충격을 받은 김유식이 차라리 자신이 위키미디어를 개설해보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어진 위키이다. 그러나, 당초 계획과는 다르게 몇몇의 유용한 문서 외 기타 문서들이 유저들의 저속한 비방목적으로 악용되고 있는 상태다.[출처 필요]

사건·사고 및 논란[편집]

2PM 갤러리 생리혈서 사건[편집]

2009년 11월 30일 2PM갤러리 이용자중 한 명이, 자신의 생리혈로 혈서를 썼다. 내용은 '옥택연 너 없이 살수 없어' 였고, 다른 2PM갤러리 이용자들이 믿어주지 않자, 아예 생리혈이 묻은 팬티를 인증하였고, 이로 인해 큰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이후 이 사건을 모방하는 사건도 일어났다.[5]

2010년 한·일 삼일절 사이버 공격 사건[편집]

캣쏘우 사건[편집]

정치, 사회 갤러리 살인 사건[편집]

2013년 7월 10일, 디시인사이드의 정치, 사회 갤러리(준말 : 정사갤)에서 활동하던 백모씨(30)가 마찬가지로 정사갤에서 활동하던 김모씨(30)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였다. 2012년 초 백모씨가 김모씨를 집착적으로 성희롱 하는 글을 올리자 김모씨가 고소하겠다는 뜻을 표했다. 이에 백모씨는 부산해운대 경찰서 게시판에 자필 사과문을 게시하기도 했다.[6][7]

이 사건에 대해 하승태 동아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정치토론은 단순하게 견해를 주고받기보다는 익명성 때문에 감정적 표현과 함께 견해가 표출된다"라며 "이번 사건도 정치적 견해의 대립에 의한 살인이라기보다 감정문제가 더 큰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8]

같은 날 부산해운대경찰서에서 신문사와의 통화에서 "디시인사이드 살인사건은 5·18과 관련없다"며 "피의자가 경찰 조사과정에서 정치적 갈등때문에 살해했다고 진술한 사실도 없고, 경찰이 브리핑한 사실도 없다"고 밝혔다. 이어 경찰은 "피의자가 광주태생이 맞느냐"는 질문에 대해 "확인해줄수 없다"고 답변했다. "언론에 광주태생이라고 보도되고 있는데 그것은 무엇이냐"고 전하자 "경찰에서 브리핑한 사실이 없는데 기자들이 마음대로 작성한 것"이라고 해명했다.[9]

백씨는 5일간 부산의 한 모텔에 머물며 김씨의 동선을 파악한 후 범행 당일 집을 나서는 김씨를 칼로 찔러 살해하였으며 이후 모텔에 은신하고 있다가 범행 당시 인근 현장에 설치됐던 CCTV 영상을 확인한 경찰에 의해 16일 오후 체포됐다.[10][11]

메이플스토리 갤러리 자살 사건[편집]

2012년 2월 14일 메이플스토리 갤러리와 합성 갤러리(당시 합성-필수요소 갤러리)에서 활동하던 이 모씨(19세, 고정닉 dp28)가 자살했다.[12]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