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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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Logo of the Minjoo Party of Korea.svg
약칭 민주당, 더민주 (공식)
영어명 Democratic Party
대표 추미애
최고위원 김영주(서울·제주)
전해철(인천·경기)
최인호(영남)
김춘진(호남)
심기준(강원·충청)
(이상 권역최고위원)
양향자(여성)
김병관(청년)
송현섭(노인)
(이상 부문최고위원)
원내대표 우상호
창당 2014년 3월 26일
병합한 정당 민주당 (2014년)
선행조직 민주당 (2011년)
새정치연합
이전 당명 새정치민주연합: 2014년 3월 26일 ~ 2015년 12월 28일
중앙 당사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68길 14 (여의도동 신동해빌딩 11층)
정책연구소 민주연구원
오륙도연구소 (더불어민주당 부산광역시당 부설)
학생조직 더불어민주당 전국대학생위원회
청년조직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
당원  (2014년) 2,430,111명
316,836명
(당비납부 비율 13.0%)[1]
이념/정치노선 사회자유주의
정치적 스펙트럼 중도좌파 ~ 중도주의
국제조직 진보동맹
상징색 파랑
국회의원
121 / 300
광역자치단체장
9 / 17
기초자치단체장
78 / 226
광역자치의원
303 / 785
기초자치의원
1,157 / 2,898
웹사이트
더불어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 당시의 로고
대한민국의 시계열적 정당 지도

더불어민주당(더불어民主黨)은 2014년 3월 26일 새정치민주연합(새政治民主聯合)으로 창당되어 2015년 12월 28일 현재의 당명으로 변경된 대한민국사회자유주의 정당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민주당새정치연합의 합당으로 창당되었다. 2014년 3월 16일, 창당 발기인대회를 개최하여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당명을 발표하였으며, 공동창당준비위원장에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원회 중앙운영위원장이 선출되었다.[2][3] 이에 따라 새정치민주연합은 민주당의 126석과 새정치연합의 2석, 발기인 대회에 참여한 무소속 박주선, 강동원 의원을 합하여 총 130석의 원내 2당이 되었다.[4] 통합 방식은 창당준비위원회 단계인 새정치연합과 민주당과 통합을 하고, 당명을 새정치민주연합으로 정했다. 2014년 3월 26일, 새정치민주연합은 김한길안철수를 공동 대표로 하여 창당하였다.[5] 이는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열린우리당을 당대당 합당하였던 과정과 비슷하다.[6]

2015년 12월 28일, 새정치민주연합은 당명 공모전을 연 뒤 당무위원회 의결을 통해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을 최종 변경·확정하였다.[7]

2016년 10월 20일, 원외 민주당을 흡수 합당하였다. 또한, 영어 당명을 Democratic Party로 변경하였고, 민주당을 약칭으로 병용하기로 하였다.

역사[원본 편집]

더불어민주당 출범 이전[원본 편집]

평화민주당 창당에서 정권 교체까지[원본 편집]

대한민국의 민주당계 정당의 역사는 1945년 8월 해방 직후 서울에서 고려민족당, 조선민족당, 한국국민당 등이 창당되고 그해 9월 12일 이 세 정당이 통합되어 한국민주당으로 발족되면서 시작되었다. 1955년 자유당 정권의 사사오입 개헌 때 범야권의 결집으로 확장되었으며, 현재 더불어민주당까지 이어지는 정통 야당의 맥은 통일민주당이라 할 수 있다.[8] 신한민주당 총재 이민우에 반대하던 양김(김영삼, 김대중)이 탈당한 뒤 1987년 4월 통일민주당을 창당하였다. 통일민주당은 당시 전두환의 민주정의당 정권에 항의하는 야당으로서 활동해 왔다.

신한민주당 시절 때부터 사실상 당권을 장악했던 양김이 독자적으로 창당한 이 통일민주당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큰 기여를 했으며, 그 결과 6·29 선언을 통해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냈다.[8] 그러나 김영삼이 이끄는 상도동계와 김대중이 이끄는 동교동계의 마찰이 계속됐고, 결국 대선을 눈앞에 두고 동교동계가 탈당하였다. 이들이 창당한 정당이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실질적인 뿌리가 되는 평화민주당이다.[8]

그러나 여기서 시작된 야권 분열과,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 측의 부정선거로 추정되는 행위 등으로 인해 통일민주당평화민주당은 결국 13대 대선에서 패했으나, 이어 치러진 총선에서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 평화민주당은 김대중 당시 대선후보가 대선에서 3위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총선에서는 원내 2당이자 제1야당으로 떠올라 정부를 견제할 힘을 얻어 5공 청문회 개최 등의 성과를 거두었으나, 다른 야당이던 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민주정의당과 합당(3당 합당)하면서 그 힘을 잃게 되었다(이로 인해 창당된 민주자유당은 개헌선을 초과한 218석을 차지했다).

그러나 일부 통일민주당 의원들은 독자 행보를 내걸고 꼬마민주당을 창당했다. 평화민주당은 이후 신민주연합당으로 개명한 뒤 줄곧 활동해 왔으며, 이후 1992년 꼬마민주당을 흡수한 뒤 민주당을 창당했다. 새로운 민주당은 1992년 총선에서 패했으나 민주자유당의 위기 속에서 나름 선전을 했으며, 이후 같은 해 대선에 김대중을 후보로 내세워 도전했으나 패하여, 야당으로 계속 남게 되었다. 김대중의 은퇴로 김대중은 모든 당권을 내놓았으나, 동교동계의 당권 장악은 계속되었다. 1995년 지방선거에서 선전했고, 이어 정계에 복귀한 김대중을 따라 동교동계 등이 탈당하면서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였다. 새정치국민회의는 1996년 총선에서 부진했으나 1997년 대선에서 자유민주연합과의 연대로 승리하여, 사상 최초의 여야 정권교체를 이끌어냈다. 이로써 헌정 이후 최초이자 1960년 이후 38년만에 민주당계 정당이 집권하였다.

분당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창당까지[원본 편집]

1998년 2월 25일 김대중의 취임으로 '국민의 정부'가 탄생했고, 선거 당시 연대한 자유민주연합은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와 더불어 여당이 되었다. 당시 거대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새정치국민회의자유민주연합을 괴롭혀 왔지만, 오히려 국민들의 반감을 샀고, 1998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하고 만다. 이어 '의원 빼가기' 작전 끝에 새정치국민회의자유민주연합은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내각제 개헌 문제를 두고 여권 분열이 있었고, 여러 스캔들이 터져 민심 이반이 일어났다. 새정치국민회의는 2000년 새천년민주당으로 개편되어 해체되었고, 이어 총선에서 의석수는 늘어났으나 한나라당에 밀려 패했다. 이후 김대중은 리더십을 잃었고, 공동여당 공조 파기까지 일어나면서 정권의 국정 운영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민주당은 2002년 지방선거에서 패했고, 결국 김대중은 탈당하였다(2000년 총선 전 새천년민주당 창당). 그러나 동교동계는 여전히 당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해 대선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국민 경선제가 동교동계의 절대적 권위가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당시 '노풍'의 결과로 노무현의 지지율이 급상승하고 동교동계 후보 한화갑은 낙선한 것이다. 결국, 대선 후보로는 노무현이 선출되었다. 대선 결과, 노무현의 당선으로 새천년민주당은 정권을 연장했으나, 당시 당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동교동계와 노무현 측 간의 관계 악화는 계속되었고, 이 와중에 소위 '친노'라고 불리던 개혁파 당원들이 탈당하였다. 이들은 한나라당 탈당파 일부, 개혁국민정당과 연대한 뒤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한편 노무현은 열린우리당 창당 이후에도 한동안 남아있다가, 2003년 9월 30일 탈당하였다. 이로써 새천년민주당은 야당으로 전락하였고, 여당이 없는 중립내각이 출범하였다(하지만 노무현을 지지하는 열린우리당이 실질적인 여당 역할을 하였다). 이후 2004년 총선 직전 노무현의 소위 '열린우리당 지지 논란 발언'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고, 이에 새천년민주당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과 함께 '선거중립 위반'을 이유로 노무현을 탄핵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국민들의 반감을 샀으며,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차지하여 과반 의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민주당은 역으로 한나라당은 물론 비주류 정당이었던 민주노동당에게조차 밀려 9석짜리 군소정당으로 전락했다. 김종필 자민련 총재의 은퇴까지 이어져 3김 시대는 끝났고, 동교동계도 정치적 실권을 잃게 되었다. 대신 새로 떠오른 열린우리당이 국민들의 기대를 모았다. 열린우리당은 친노무현 세력과 비노무현 세력으로 분류되었는데, 비노 계열의 경우 개혁 성향의 친김근태계 및 친고건계와 실용주의 성향의 친정동영계로 분류되었다.

열린우리당노무현의 입당으로 정식 여당이 되었고, 이어 '4대 개혁 입법'을 추진했으나, 계파 갈등과 야당의 반대 등으로 무산되었다. 보수주의 및 우익 세력들은 노무현을 종북이라고 비난했으며, 진보주의 및 좌익 세력들은 노무현을 친미주의자라고 비난했다. 이 과정에서 민심 이반이 일어났으며, 2005년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하여 과반이 붕괴되었다. 게다가, 미니정당으로 전락한 민주당(2005년 '새천년'을 뺀 민주당으로 개명)이 차츰 힘을 얻었고, 결국 열린우리당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게도 밀리는 참패를 당했다(호남에서도 패했다). 이후 2007년 2월 열린우리당은 계파 분열과 탈당 사태로 소수 정당으로 전락했으며, 8월 합당으로 원내 1당의 위치를 되찾았으나, 역으로 대통합민주신당과 합당하여 해체되었다. 또한 일부는 민주당으로 들어갔다.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정동영은 당시 이반된 민심의 결과로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패배하여 대통합민주신당은 다시 야당으로 되돌아갔고, 이어 2008년 민주당을 흡수해 통합민주당을 창당해 총선에서 활약했으나 참패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미국산 소고기 문제로 촛불시위가 시작되고, 이어 노무현의 투신자살로 인해 한나라당 정권의 지지율이 타격을 입어, 때마다 치러진 보궐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이어 2010년 지방 선거에서 민주당한나라당을 누르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민주당은 2011년 말 민주통합당으로 개편하였다.

2013년 5월 4일 민주당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비주류의 지원을 받은 김한길 의원이 대의원투표, 권리당원투표, 국민여론조사 결과 61.72%의 득표율로 임기 2년의 당 대표에 선출되었다. 2013년 9월 1일에는 영등포당사로 이전한지 10년 만에 다시 여의도로 이전하였다. 민주당은 기존의 노란색과 녹색을 벗어나 파랑을 상징색으로 하는 새로운 PI를 발표하였다.

한편 2011년 재보궐 선거 무렵부터 안철수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유력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물론 2012년 총선에서 활동은 하지 않았고, 대신 대선에 출마하여 화제를 모았으나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 중 돌연 사퇴하였다. 야권의 실질적인 단일 후보가 된 문재인은 최선을 다했으나 패배하였다. 그러나 안철수는 이미 '유력 대권주자'까지 부상했고, 이에 민주통합당은 2013년 보궐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영입을 고려했으나 거부당했다. 이후 '안철수 신당' 창당설이 나돌기 시작했으며, 그해 11월 안철수는 신당 창당을 본격 선언함으로써 '안철수 신당'은 구체화되었다. 당시 '안철수 신당'의 가상 지지율은 민주당의 지지율을 웃돌았고, 일각에서는 민주당을 누르고 제1야당이 될 것이라는 설이 나돌았다. 그러나 '안철수 신당'은 이후 지방선거 후보자 영입의 부진과 신당 내부의 갈등으로 인해 지지율이 점차 하락하며 고전을 거듭했다. 그 결과 2014년 새정치연합민주당과 합당을 선언하였다. 이로써 사실상 야권의 연대가 이루어졌다. 이후 안철수민주당 대표인 김한길은 여러 회의를 거쳐 통합신당 창당 준비를 했고, 3월 25일 새정치연합은 해산되었다. 2014년 3월 26일 민주당(2013년 개명)과 새정치연합이 최종 합당을 선언하였으며, 이로써 새정치민주연합이 출범했다. 또한 창당과정에서 창조한국당 출신 인사들이 대거 합류하였다.

새정치민주연합 출범[원본 편집]

당명 결정 과정[원본 편집]

민주당과 새정치연합, 그리고 무소속 의원 2명이 만나 신설합당된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명 결정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국민 공모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안철수의 새정치연합 측은 '민주'라는 이름을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유는 '도로 민주당'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였다.[9] 반면 민주당 측은 역사적 정통을 담아 '민주'라는 이름이 꼭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으며,[10] 김한길 대표 역시 '민주'를 뺄 경우 호남지역에서 다른 정당이 그 이름을 차용할 것이라며 설득했다.[9] 새정치연합 측은 '새정치미래연합, '새정치희망연합'을 제안했는가 하면 민주당 측은 '새정치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을 제안했다.[9] 국민 공모를 통해 '새정치국민연합'이라는 이름이 1위를 기록했으나, 이는 '유사 당명'이라 하여 탈락했다.[9] 결국 양당 대표의 논의를 통해 결정할 수밖에 없었고, 당명은 끝내 새정치민주연합으로 결정되었다.[10]

대한민국 제6회 지방 선거 국면[원본 편집]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합당했을 때, 둘은 '기초선거 공천폐지'를 약속했으며,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은 '기초선거 공천폐지'를 주장했다. 그러나 구 민주당 계를 위시하여 당내 반발이 일어났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안철수 공동대표가 청와대에 '기초선거 공천폐지' 논의를 위한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으나 실패했다. 결국 당 내 여론조사에 따라 근소한 차이로 공천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선거운동 직전에 세월호 침몰 사고가 터지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를 '정부의 무능', '정부의 책임'이라 규정하며 새누리당에 맞섰고, 결국 전국에서 9명의 광역단체장을 당선시키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선거 막판 새누리당의 '대통령의 눈물' 마케팅으로 인해 부산, 인천, 경기에서 야권후보가 근소하게 패하는 등 전반적으로 압승한 선거라 보기는 어렵게 되었다.

7.30 재보궐 선거 참패와 지도부 총사퇴[원본 편집]

2014년 7월 30일 재보궐 선거는 지방선거 참가로 사퇴한 국회의원들과 재판결과 상실한 국회의원들이 많이 발생하면서 총 15석을 두고 다투는 미니총선의 성격으로 치뤄지게 되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 침몰 사고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선거의 타이틀로 삼고 선거를 진행해 나갔으나, 공천 과정에서의 잡음과 더불어, 광주 광산구 을 선거구의 권은희 공천에 대한 보은 공천 논란으로 겨우 4석만 얻는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전통적인 우세 지역이던 수도권에서는 수원시 정 선거구에서 단 한 곳 만을 건지는 데에 그쳤고, 당의 지역적 기반으로 평가받던 전라남도 지역의 순천·곡성 선거구에서 새누리당에 패배하여 민주화 이후 전라남도 지역 최초로 보수 정당의 정치인이 당선되는 파란을 낳았을 뿐만 아니라, 손학규, 김두관, 정장선 등 새정치민주연합의 중진급으로 평가받던 인사들이 새누리당의 지역 정치 신인들을 상대로 대거 낙선하기도 하였다.

결국 2014년 7월 31일 재보궐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지도부가 총 사퇴를 결의하게 되어서 김한길, 안철수 두 공동대표 체제는 4개월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국민공감혁신위원회 체제[원본 편집]

지도부 총 사퇴로 인한 공백을 메꾸고 2015년 1월 이후에 있을 예정인 지도부 선출 전당대회까지 당을 혁신으로 이끌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다. 2014년 8월 4일 의원총회에서 박영선 원내대표를 만장일치로 비상대책위원장에 추대하였으며, 8월 5일 박영선 위원장은 비상대책위원회 명칭을 국민공감혁신위원회로 확정지었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재편[원본 편집]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이 두 번에 걸친 세월호 특별법 협상 실패로 리더쉽에 손상을 입게 되자 2014년 9월 12일 이상돈 중앙대학교 명예교수와 안경환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를 국민공감혁신위원장으로 내정하였으나 이상돈 명예교수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과 정치혁신위원 등의 전력이 원인이 되어 당 내 반발을 받게 되어 두 교수의 고사로 실패하였다. 이후 당 내 일각에서 박영선 위원장의 위원장직 사퇴와 원내대표직 사퇴를 요구하자 박영선 위원장은 9월 15일 탈당을 시사하고 당무를 거부하였다. 이후 원내지도부의 설득과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특별법 강경발언 등으로 인해 박영선 위원장은 9월 17일 당무에 복귀하는 대신 국민공감혁신위원장직을 사퇴하기로 결정하였다.

9월 18일 박영선 위원장을 대신해 문희상 의원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되어 새로운 비상대책위원회를 이끌게 되었다.

문희상 위원장은 비상대책위원으로 박지원, 정세균, 문재인, 인재근, 박영선 의원을 위촉하여 이른바 계파실세 비대위가 구성되었다. 한편 김한길, 안철수 의원도 위촉했으나 둘 다 책임지고 물러난 지도부였다는 점에서 고사했다.

제1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원본 편집]

새정치민주연합은 2015년 2월 8일 제1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를 개최하고 문재인을 새정치연합의 새로운 대표로 선출하였다.

대의원 현장투표와 권리당원 ARS 투표, 일반국민, 일반당원 여론조사를 합산한 결과, 문재인이 45.30%, 박지원이 41.78%, 이인영이 12.92%를 각각 득표하였다.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 변경[원본 편집]

당명 결정 과정[원본 편집]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명 국민 공모에서 결정된 ‘더불어민주당’, ‘희망민주당’, ‘민주소나무당’, ‘새정치민주당’‘, ’함께민주당‘ 총 5개의 당명 중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당무위원회 투표 결과 "더불어민주당"으로 의결하였고, 2015년 12월 28일 부로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이 바뀌게 되었다.[11] 안철수의 탈당으로 인해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새정치" 를 지움으로서 안철수의 흔적을 지워버린것이라는 평가가 있으며,[12]당명이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바뀐지 1년 6개월 만에 "민주당" 이라는 이름을 되찾았다는 평가가 있었다.[13] 또한, 당명 개정 업무를 총괄한 손혜원 홍보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당명이 "더불어라는 말이 앞에 있어서 국민 민주주의 여러가지와 연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고 새 당명의 장점을 설명하였다.[14] 영문 명칭은 "The Minjoo Party of Korea", 약칭은 '더민주'를 공식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 [15] 다만, 민주당 측은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유사당명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로 결정하였다고 발표하는 등 명칭의 유사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다.[16] 이후 2016년 1월 11일 선관위는 "더민주" 라는 약칭을 사용하여도 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았다.[17] 또한, 더불어민주당은 당 정식 로고 결정 이전 새 당명 정식 로고에 관한 6개의 시안을 정하고, 이에 대하여 국민공모를 당 로고 결정일로 예정 된 2016년 1월 6일 오후 11시 59분까지 실시했다. [18] 이를 통해 결정된 로고의 색상은 시안에서 보았던 태극파랑으로 결정되었고, 더불어민주당 로고 우측에 날리는 깃발은, "자유와 평화, 진리와 정의" 가 만들어 내는 "민주" 의 "ㅁ" 을 상징한다고 밝혔다.[19]

대한민국 20대 총선 국면[원본 편집]

2015년 12월 13일 안철수 의원의 탈당과 비주류 의원들의 친노, 운동권 세력에 대한 패권주의의 비판과 대안 세력을 목적으로 한 대거 탈당을 통해 당내 혼란이 가중되었다. 문재인 대표는 이후 더불어민주당으로의 당명 변경을 필두로 표창원 전 교수의 첫번째 영입 이후 각종 분야 전문가들의 인재 영입을 통한 반전을 꾀했다. 또한, 문재인 대표는 김종인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영입하여 당의 외연을 확장시키고 이후 추가 탈당 사태를 막는 등 당을 안정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20대 총선으로 인해 더불어민주당은 새누리당과 1석 차이로 제1당이 되었다.

제2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원본 편집]

더불어민주당은 2016년 8월 27일 제1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를 개최하고 추미애를 더민주의 새로운 대표로 선출하였다.

대의원 현장투표와 권리당원 ARS 투표, 일반국민, 일반당원 여론조사를 합산한 결과, 추미애가 54.03%, 이종걸이 23.89%, 김상곤이 22.08%를 각각 득표하였다.

주요 선거 기록[원본 편집]

역대 총선 결과[원본 편집]

실시년도 선거 지역구 당선자 현황 비례대표 당선자 현황 국회 정원
당선자 수 당선비율 당선자 수 득표율 당선자 수 당선비율
2016년 20대 110/253
43.48%
13/47
25.5%
123/300
41%

역대 지방선거 결과[원본 편집]

실시년도 선거 광역자치단체장 당선자 현황 기초자치단체장 당선자 현황 광역자치의회의원 당선자 현황 기초자치의회의원 당선자 현황
당선자 수 당선비율 당선자 수 당선비율 당선자 수 당선비율 당선자 수 당선비율
2014년 6회 9/17
52.94%
80/226
35.4%
349/789
44.23%
1157/2898
39.92%
2018년 7회

역대 지도부[원본 편집]

역대 대표[원본 편집]

대수 역대 대표 직함 임기
1 김한길 공동대표 2014년 3월 26일 ~ 2014년 7월 31일
1 안철수 공동대표 2014년 3월 26일 ~ 2014년 7월 31일
(임시)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 2014년 8월 4일 ~ 2014년 9월 27일
(임시)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2014년 9월 28일 ~ 2015년 2월 8일
2 문재인 당대표 2015년 2월 8일 ~ 2016년 1월 27일
(임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2016년 1월 27일 ~ 2016년 8월 27일
3 추미애 당대표 2016년 8월 27일 ~

역대 원내대표[원본 편집]

대수 역대 원내대표 직함 임기
1 전병헌 원내대표 2014년 3월 26일 ~ 2014년 5월 8일
2 박영선 원내대표 2014년 5월 8일 ~ 2014년 10월 2일
(임시) 김영록 권한대행 2014년 10월 2일 ~ 2014년 10월 9일
3 우윤근 원내대표 2014년 10월 9일 ~ 2015년 5월 8일
4 이종걸 원내대표 2015년 5월 8일 ~ 2016년 5월 4일
5 우상호 원내대표 2016년 5월 4일 ~

새정치민주연합 창당준비위원회 지도부[원본 편집]

2014. 3.17 ~ 2014. 3.26
  • 공동 창당준비위원장 : 김한길 (민주당 대표), 안철수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원회 중앙운영위원장)
  • 신당추진단 분과위원장[20]
    • 정무기획분과 : 민병두 (민주당 의원), 송호창 (새정치연합 소통위원장, 무소속 의원)
    • 정강정책분과 : 변재일 (민주당 의원, 민주정책연구원 원장), 윤영관 (정책네트워크 내일 이사장)
    • 당헌당규분과 : 이상민 (민주당 의원), 이계안 (새정치연합 공동위원장)
    • 총무조직분과 : 노웅래 (민주당 사무총장 및 의원), 표철수 (새정치연합 실무집행단장 직무대행)
  • 공동 대변인 : 박광온 (민주당 대변인), 금태섭 (새정치연합 대변인)

1기 지도부[원본 편집]

2014. 3.26 ~ 2014. 7.31

국민공감혁신위원회[원본 편집]

2014. 8. 4 ~ 2014. 9.17

비상대책위원회[원본 편집]

2014. 9.18 ~ 2015. 2.8

2기 지도부[원본 편집]

2015. 2. 8 ~ 2016. 1. 27

비상대책위원회[원본 편집]

2016. 1. 27 ~ 2016. 8. 27

3기 지도부[원본 편집]

2016. 8. 27 ~

역대 전당대회[원본 편집]

새정치민주연합 창당대회[원본 편집]

2014년 3월 26일, 새정치연합 창당대회는 민주당과의 합당을 결의하고 안철수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원회 중앙운영위원장과 김한길 민주당 대표를 공동대표로 선출하였다.

새정치민주연합 제1차 전당대회[원본 편집]

2015년 1월 7일, 새정치연합 지도부 예비경선대회에서 투표를 통해 문재인 상임고문, 박지원민주당 원내대표, 이인영 전 민주당 최고위원, 박주선 전 민주당 최고위원, 조경태 전 최고위원 중 문재인, 이인영, 박지원 후보를 본선 후보로 선출했다.

순위 기호 이름 대의원(45%) 권리당원(30%) 일반당원(10%) 일반국민(15%) 합산 비고
득표율 득표율 득표율 득표율 득표율
1 1 문재인 45.5 39.98 43.29 58.5 45.3 당 대표
2 3 박지원 42.7 45.8 44.4 29.5 41.8
3 2 이인영 12.3 14.3 12.3 12.5 12.9
합계 -

2015년 2월 8일, 새정치연합 전당대회는 대의원 45%, 권리당원 30%, 일반당원 여론조사 10%, 국민 여론조사 15%를 반영한 지도부 경선에 따라 문재인 상임고문을 당대표로 선출하였다.

더불어민주당 제2차 전당대회[원본 편집]

2016년 8월 5일, 더민주 당대표 예비경선대회에서 투표를 통해 추미애 전 최고위원, 이종걸 전 원내대표,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 송영길 전 인천광역시장 중 김상곤, 이종걸, 추미애 후보를 본선 후보로 선출하였다.

순위 기호 이름 대의원(45%) 권리당원(30%) 일반당원(10%) 일반국민(15%) 합산 비고
득표율 득표율 득표율 득표율 득표율
1 3

추미애

51.54 61.66 55.15 45.52 54.03 당 대표
2 2

이종걸

25.24 18.09 25.25 30.59 23.89
3 1

김상곤

23.24 20.25 19.6 23.9 22.08
합계 -

2016년 8월 27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의원 45%, 권리당원 30%, 일반당원 여론조사 10%, 국민 여론조사 15%를 반영한 지도부 경선에 따라 총 54.03%를 얻은 추미애 전 최고위원을 당대표로 선출하였다.

논란[원본 편집]

비주류 세력의 대거 탈당[원본 편집]

2015년 12월 13일 제3세력과 중도세력을 표방한 정당 창당을 선언한 안철수 의원의 탈당을 중심으로 문재인 대표의 퇴진을 요구하던 새정치민주연합 비주류 세력이 대거 탈당했다. 호남향우회, 동교동계 등 호남 주축 세력들의 탈당을 필두로[22][23], 김한길[24], 김영환[25] 의원 등 비주류 인사와, 주승용, 장병완 [26], 권은희 의원 등 호남 의원들이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면서 총선을 앞두고 큰 혼란이 발생했다. 탈당의 이유로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호남의 지지율 하락, 친노 인사들의 패권주의 등을 들었다. 대다수 의원들은 안철수 의원이 주축으로 추진한 국민의당으로 입당하였고, 호남권 세력은 천정배 의원이 이끄는 국민회의, 박주선 의원의 통합신당 등의 정당으로 입당하였다. 조경태 의원은 더민주가 야당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을 이유로 새누리당에 입당하였으며,[27]호남 세력의 주축인 박지원 의원도 통합의 밀알이 되겠다는 이유로 탈당하였다.[28]많은 의원들이 탈당을 선언하면서 당의 혼란이 계속되고 도미노 탈당이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을 많은 전문가들이 했지만 이후 문재인 대표는 김종인 박사가 비대위 체제를 총괄하도록 영입하고, 이철희, 양향자 등 많은 영입 인사의 성공을 통해 당의 안정을 되찾았다는 평가가 있다.[29]

같이 보기[원본 편집]

각주[원본 편집]

  1. 2014년도 정당의 활동개황 및 회계보고
  2. 한정원, '새정치민주연합' 당명 확정…닻 올린 통합신당, SBS, 2014년 3월 16일
  3. 송수경·박경준, 野신당, '산업화+민주화세력' 끌어안기로 통합 첫발, 연합뉴스, 2014년 3월 16일
  4. 임찬종, 박주선-강동원 의원, 통합야당 합류…의석 130석, SBS, 2014년 3월 16일
  5. 박상휘, 발기인 대회 마친 통합신당…창당까지 남은 절차는?, 뉴스1, 2014년 3월 16일
  6. 심원섭, 김-안 ‘제3지대 창당’ 은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이 모델, CNB뉴스, 2014년 3월 3일
  7.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2/28/2015122801209.html
  8. 새전북신문 (2014년 3월 27일). “[사설] 막 내린 60년 민주당”. 2014년 3월 29일에 확인함. 
  9. 구교형 (2014년 3월 16일). “김한길·안철수 심야 담판서 당명 확정”. 《경향신문》. 
  10. 뉴시스 (2014년 3월 16일). “新 당명 새정치민주연합, 새정치국민연합과 막판까지 경합”. 2014년 3월 30일에 확인함. 
  11. http://en.seoul.co.kr/news/newsView.php?id=20151228500311
  12. http://en.seoul.co.kr/news/newsView.php?id=20151228500311
  13. http://news.donga.com/3/all/20151228/75612602/1
  14. http://news.donga.com/3/all/20151228/75612602/1
  15. http://news.joins.com/article/19336350
  16.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6900
  17. http://media.daum.net/politics/clusterview?newsId=20160111214808935&clusterId=1797445
  18. https://docs.google.com/forms/d/1HN_f55losxPYKUn2QY-Ug9aag2DplnhT5PzgAqiZMYM/viewform?c=0&w=1
  19. http://npad.kr/noticeDetail.do?bd_seq=51510&type=m
  20. 박영석, 민주-安 신당추진단 분과위원장 명단, 연합뉴스, 2014년 3월 10일
  21. 문재인 대표가 혁신위원장에 전권을 위임했다. 혁신위원회는 6월 12일 제102차 최고위원회의에서 의결됐다.
  22.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51230_0013808541&cID=10301&pID=10300
  23. http://www.moneyweek.co.kr/news/mwView.php?type=1&no=2015123010208068940&outlink=1
  24.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1071255171&code=910100
  25.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1/08/2016010801517.html
  26.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1/13/2016011301980.html
  27.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60119000204
  28.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26665.html
  29.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81&aid=0002673495

바깥 고리[원본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