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19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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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출생 1942년 6월 5일(1942-06-05) (73세)
일제 강점기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학력 단국대학교 상학 학사
종교 천주교
본관 밀양
배우자 이선자
자녀 슬하 2녀
경력 제6대 문화관광부 장관
제25대 대통령비서실장
김대중 평화센터 이사장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
국회의원 정보
새정치민주연합
법제사법위원회
정보위원회
의원 선수 3
의원 대수 14·18·19
정당 새정치민주연합
지역구 전남 목포시

박지원(朴智元, 1942년 6월 5일 ~ )은 대한민국정치인이다.

학력[편집]

비학위 수료[편집]

명예 박사 학위[편집]

생애[편집]

사업가 시절[편집]

대학 졸업 후 1970년 럭키금성상사에 입사하여 근무하다 미국에 건너가 1972년 11월 주식회사 동서양행 뉴욕지사 지사장에 임명됐다.

이후 사업을 하였다. 장기간 미국 체류 중 사업가로서 성공하고 망명인사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활비를 댄 것으로 알려졌다.

귀국[편집]

1979년 5월 미국 교포 자격으로, 수출유공자로 지정되어 국무총리표창장을 받았다. 1984년 김대중이 설립한 인권문제연구소 등의 후견인이 되었고, 1987년 6월 항쟁 이후 김대중이 사면복권되고 정계에 복귀하자, 미국영주권을 정리하고 귀국하였다.

정치 활동[편집]

정계입문[편집]

1992년 민주당 전국구 공천을 받아 14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1995년 9월 새정치국민회의 당대변인을 거쳐 1996년 15대 총선 에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의 노동운동가 출신 김문수에게 석패해 금배지를 잃었으나, 1997년 국민회의 총재특별보좌역에 선출되었다.

국민의 정부 시절[편집]

국민의 정부 출범 이 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1997년-1998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1998년-1999년) 문화관광부 장관(1999년-2000년) 등을 지냈다.

1999년 6월 4일 장면 총리 서거 33주년 기념일에 추기경 김수환에게 취임인사차 예방하고 김수환 추기경에게 "장면 전총리의 포천묘소를 국립묘지로 이장할 것을 제의하면서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1] 그러나 여건이 좋지 않아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1999년 8월 문화관광부 한국문화산업진흥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2000년대 이후[편집]

2002년 대통령비서실 실장에 취임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대북송금 사건 의혹이 제기되면서2000년 남북 정상 회담 직전 불법대북송금사건을 맡은 송두환 특검팀에 의해 2003년 6월에 구속되었으나, 2004년 11월 대법원에서 당시 주요 혐의로 거론되었던 '현대비자금 150억원 수수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의 파기환송을 함에 따라 2006년 5월 서울고등법원에서 대북 불법송금과 대기업 자금 1억 원 수수에 대한 유죄가 인정돼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그 후 2007년 2월 9일 특별사면조치로 형집행이 면제되었다.[2]

석방 이후 2007년 12월 복권되었다.[3][4][5] 그러나 이때의 복권을 노무현이 정치적 복권을 시켜준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었다.[6]

18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12년 만에 원내에 복귀하게 된다. 2008년 8월 13일, 민주당으로 복당하였다. 이후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비서실 실장[7] 등에 선임되었고,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 등을 지냈다.

2008년 10월 경북교육감 선거 관련, 뇌물수수 의혹을 사실확인하지 않고 보도한 모 방송을 고소한다고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8][9]

2009년 5월에는 섬지역 학생들 3박4일 서울체험 행사를 지원, 주관하기도 했다.[10] 10월 30일 목포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령했다.[11] 11월 일본 도쿄 시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추모식에 참석하였다.[12][13]

2010년 12월에는 한나라당의 2011년 예산안 강행처리 이후 개헌을 반대하였다.[14]

당대표 출마[편집]

2014년 12월 28일, 박지원 의원은 “지금은 특정 계파(친노)의 당으로 전락하느냐, 우리 모두가 주인인 당으로 가느냐의 갈림길”이라며 “강한 야당을 만들어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말하며, 공식적으로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였다. 다음은 그의 출마문이다.

강한 야당, 통합대표로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루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사랑하는 당원동지 여러분, 저는 오늘 국민이 원하는 강한 야당, 당원이 원하는 통합대표로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하기 위해 당대표에 나서고자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총체적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7년간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서민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남북관계도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국민은 내일이 보이지 않는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와 측근의 국정농단으로 집권 2년차에 벌써‘레임덕’에 빠졌습니다. 더 이상 이런 무능한 정부, 무책임한 대통령에게 나라의 미래와 국민의 안위를 맡길 수 없습니다.

1. 국민이 믿고 지지할 수 있는 ‘강한 야당’이 필요합니다!

국민이 기댈 수 있는 야당, 존재만으로 국민에게 힘이 되는 야당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정치가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강한 야당’은 싸움도 잘하고 타협도 잘하는 유능한 야당입니다. 정부여당에 맞서 싸울 때는 치열하게 싸우고, 타협할 때는 감동적인 양보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강한 야당’은 비판과 견제는 물론 정부여당을 견인할 능력을 가진 야당입니다. 경제위기 속에서 서민을 보호하고, 안보위기 속에서 한반도평화를 지키려면 확고한 비전과 정책으로 정부여당을 견인해야 합니다.

2. 강력한 리더십으로 당을 하나로 만들‘통합대표’가 되겠습니다!

내년 2.8전당대회에 당의 명운(命運)이 걸려 있습니다. 당은 지금 특정계파의 당으로 전락하느냐, 우리 모두가 주인인 당으로 가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있습니다.

독점과 분열로 패배할 것인가, 통합과 단결로 승리할 것인가가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저 박지원은 분열과 침체의 늪에 빠진 당을 살리는 ‘통합대표’가 되겠습니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계파독점을 깨고, 탕평인사로 공정하게 당을 운영하겠습니다.

저 박지원은 어떤 계파로부터도 자유롭습니다. 오직 2016년 총선승리와 2017년 대선승리만 생각합니다. 저야말로 탕평인사와 공정한 당 운영을 행동으로 실천할, 유일한 후보라고 확신합니다.

3. 당의 혁신을 넘어 혁명적 변화를 가져오겠습니다. 박지원이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1) 공천혁명으로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확보하겠습니다.

첫째, ‘6개 지역 비례대표 할당제’를 도입하겠습니다.

부산ㆍ대구ㆍ울산ㆍ경남ㆍ경북ㆍ강원 등 6개 시ㆍ도에 비례대표 두 명씩을 우선 배정함으로써, 취약지역에서 당 지지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겠습니다.

둘째, ‘지방의원 국회비례대표 할당제’를 도입하겠습니다.

전국 광역의원과 기초의원 각 한 명씩을 국회의원 비례대표로 발탁해서 당의 생활정치ㆍ민생정책 역량을 대폭 강화하겠습니다.

셋째, ‘청년의무공천제’를 도입하겠습니다.

여성의무공천제처럼, 지방의회선거에서 한 명 이상의 청년을 공천해서 명실상부한 노ㆍ장ㆍ청의 조화를 이루겠습니다.

넷째, 계파갈등의 근원인 공천심사위원회를 폐지하겠습니다.

대신‘후보자 자격심사위원회’의 심사와 당원의 추천을 거쳐 완전국민경선으로 후보를 선출하겠습니다.

다섯째, ‘비례대표 예비후보등록제’를 도입하겠습니다.

당 안팎의 철저한 사전검증을 거쳐 능력과 자질, 당 기여도가 높은 비례대표 후보를 공천하겠습니다.

(2) 당 기능 활성화로 수권정당의 기틀을 만들겠습니다.

첫째, 민주적 당 운영과 지역기반 강화를 위해 시ㆍ도당 지원을 과감하게 확대하겠습니다.

중앙당의 국고보조금과 당비를 시ㆍ도당에 더 많이 배분하겠습니다. 특히 6개 시ㆍ도와 원외지역의 당원연수 및 지역활동을 집중 지원하겠습니다.

둘째, 민생정치ㆍ생활정치 역량을 강화하겠습니다.

민주정책연구원의 시ㆍ도지부를 설치해서 현실적인 지역정책과 공약을 개발하겠습니다.

민생현장을 담당하는 지방의원이 참여하는 생활정치위원회를 대표 직속으로 설치하겠습니다.

셋째, 노동ㆍ여성ㆍ청년ㆍ노인ㆍ장애인 등 부문별 조직을 활성화하고, 농어촌특별위원회를 중앙당 소속 상설위원회로 격상시키겠습니다.

넷째, ‘전당원투표제’를 확대해서 당의 주요정책과 진로를 대의원과 당원이 직접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4. 강력한 리더십과 열정으로 2017년 정권교체의 밑거름이 되겠습니다.

대선주자들이 화려한 꽃을 피울 수 있도록 기꺼이 희생하는 당대표가 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사랑하는 당원동지 여러분,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우리는 패배했습니다. 더 이상의 실패는 용납되지 않습니다. 저는 1997년 정권교체와 2002년 정권재창출에 성공한 ‘승리의 DNA’를 가지고 있습니다. 원내대표로서 강력한 대여투쟁과 정치력으로 정부여당을 압도한 경험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정권을 다시 찾는 일 외에는 어떠한 사심(私心)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당의 대선주자들이 국민의 지지를 얻어 화려하게 꽃피울 수 있도록 제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저는 그동안 일부 보수세력의 온갖 음해와 비난 속에서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왔습니다. 또한 일부 강경진보세력과는 분명하게 선을 긋는 결단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당과 대선주자들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어려운 결정도 피하지 않겠습니다.

정권교체의 그 날까지 오직 당과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년 12월 28일 박 지 원


박지원의 당권 출마 대국민 기자회견 전문[15]

경력[편집]

수상[편집]

  • 1983년 6월 국민훈장 동백장
  • 2002년 6월 청조근정훈장
  • 2005년 11월 진도군민의 상
  • 2009년 11월 국회전문위원 선정 국정감사 우수위원
  • 2009년 11월 국회 상임위(법사위,정보위) 의정활동 각각 1위 의원
  • 2009년 11월 (사)한국지역신문협회 광주전남협의회 선정 풀뿌리 의정대상
  • 2009년 12월 백봉신사상 베스트 10 선정
  • 2010년 11월 NGO 모니터단 선정 국정감사 우수위원
  • 2010년 12월 백봉신사상 베스트 10 선정
  • 2011년 11월 (사)바른사회 밝은시민연합 18대 종합 최우수 국회의원
  • 2011년 11월 (사)한국문화예술유권자총연합회의 18대 최우수 국회의원 모범상
  • 2011년 11월 NGO 모니터단 선정 국정감사 우수위원
  • 2011년 12월 민주통합당 자체 선정 국정감사 최우수 의원

가계[편집]

아버지 박종식[편집]

박종식(朴鍾殖, 1910년 ~ 1948년 ~)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1910년 전라남도 진도군에서 태어났다. 목포상업학교 3학년 당시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최창호, 이재실, 정찬규 등과 함께 목포에서도 동조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면서 독립운동에 나섰다. 1929년 11월 19일 피감금학생 즉시탈환, 총독부 폭압정치 절대반대, 피압박 민족해방 만세 등의 구호의 대형 깃발 3개와 소형 깃발 약 120개, 격문 약 1,500매를 준비하여 정명여학교 앞에 집결하여 시위행진을 전개하다 일경에 체포되었다. 이듬해인 1930년 광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받아 대구복심법원 공소심에서 형이 확정되어 광주형무소에서 복역했다. 1993년 공적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1][2] 정치인 박지원은 그의 아들이다.

논란[편집]

노무현 비판 논란[편집]

2008년 9월 24일 박지원은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좀 해도 해도 너무 한 것 같다"며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에도 유독 호남 사람들의 자존심을 상하는 말을 많이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호남사람들이 노무현이 좋아서 투표했느냐, 이회창을 당선 안 시키려고 했다. 호남당을 벗어나기 위해서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호남민심이 더 나빠져야 된다'는 말을 박근혜 전 대표에게 하면서 연정을 제안하지 않았냐"고 꼬집었다. 또 "사실 민주당을 망친 분은 노무현 전 대통령 아닌가"라고 반문한 뒤 "민주당 정책, 공약, 지지세력으로 당선했는데 분당하지 않았나. 결국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자신이 받았던 지지표를 이번 선거에서 반토막 내서 한나라당에다 정권을 바친 꼴 아닌가"라고 성토했다. 그는 "한나라당 공천이면 무조건 당선되는 영남지역 국회의원들에게 먼저 말해야지 표 찍어주고 지지해준 호남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호남 국회의원들에게 은혜를 원수로 갚는 말"이라고 힐난했다.[16]

"구치소에 있을 때 왼쪽 눈의 시력을 상실했다. 오른쪽 눈도 거의 보이지 않지만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게 되어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북송금 특검법은 국민들의 70·80%가 반대했다. 집권 여당 강금실도 반대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이어 받는다”고 하면서 "김대중 대통령과 차별화 하기 위해 대북송금 특검을 시작했다. 거기서부터 노무현 정부의 불행은 시작되었다."고 평가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와병설에 대해서는 "만약 김정일 위원장이 집권이 어려워지면 북한군부가 중국군부와 결탁하게 될 것이다. 그리면 38선까지 그 영향력이 미칠 것이다."고 했다. 이어 그는 "실제로 김정일 위원장은 미국과 유대관계를 견고히 하면 한반도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 內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가장 친미주의자고 실제로 그렇다."고 했다.[17]

천성관 폭로관련 검찰수사 논란[편집]

2009년 천성관검찰총장 지명자의 인사청문회에서 천 후보자의 낙마에 일조했던 박지원이 7월 17일 "최근 국정원과 검찰에서 나와 내 주변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고 폭로하는 등 실제로 폭로된 자료가 유출된 것과 관련해 검찰이 내사에 나서 논란이 일었다.

검찰의 이 같은 처사는 과거 한나라당 의원들의 폭로사례 등과 비교할 때 형평성을 잃거나 청문회 준비 과정에서 일어난 일을 검찰이 수사하는 것이 적절한지의 의문과 검찰 조직에 흠집을 낸 데 대한 보복성 수사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민주당 등 야권에서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정치 사찰이 부활한 것이 아니냐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민주당 김유정 대변인은 7월 18일 논평을 통해 "불법의혹과 거짓말로 뭉쳐진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의 낙마 후 보이는 검찰의 태도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적반하장"이라며 "천 후보자의 낙마 후 검찰이 박지원 의원 뒷조사를 하는 것은 반민주적인 보복수사"라고 비난했다. 이어 "검찰은 야당 의원의 정당한 의정활동에 대한 사찰을 중단하고 천성관 후보자의 불법 의혹에 대해 수사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방해하는 건 민주주의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조사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18]

단국대 부정 편입 의혹[편집]

2001년 1월 15일한나라당엄호성 의원은 박지원이 단국대에 편입할때 이전 학력을 조선대 상학과로 속여 허위로 성적증명서를 제출하여 불법으로 편입했다고 주장하며 "사실은 1963년 3월광주교육대학에 입학해 1965년 2월에 졸업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지원이 단국대에 제출한 학적정리 청원서에는 "박지원 본인이 광주교대의 졸업증명서를 제출하고 귀 대학의 편입허가를 받았으나 최근 학적부를 조회한 결과 오류를 발견해 광주교대의 졸업증명서를 다시 제출하니 학적을 정리해 주길 바란다."고 적혀 있다.

이에 대해 박지원은 "나는 분명히 광주교대를 졸업하고 성적증명서를 제출하여 입학허가를 받았다. 학적문제를 최근 제3자를 통해 조선대를 다닌 적이 있다는 말을 듣고 확인해 보니 잘못되어 있어 정정신청을 했다."고 해명했다.

박지원은 그러면서 "내가 동창회 고문을 하기 위해 졸업 후 교문을 수억을 들여 해줬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정정신청을 해 대학으로부터 학적정정이 됐다는 확인서를 받았다."고 말했다.

시진핑 발언 왜곡 논란[편집]

2010년 10월 19일 박지원은 당 회의를 통해 "중국 시진핑 부주석이 한국 정부가 왜 일본과 함께 한반도 평화의 훼방꾼 노릇을 하고 있느냐고 지적했다" 며 김대중 전 대통령과 시진핑 부주석의 회담 내용을 공개해 논란을 일으켰다. 청와대는 박지원의 발언은 사실무근이며 국익을 훼손하는 이적 행위라고 비난했다.[19] 하지만 민주당은 당시 배석했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과 최경환 김대중평화센터 공보실장으로부터도 확인된 사항이라며 되받아쳤다.[20] 그러나 3일후 중국정부 마자오쉬 외교부 대변인은 박지원의 시진핑 부주석의 훼방꾼 발언 주장은 확인해 본 결과 사실과 다르다고 공식 부인했다.[21] 이에 청와대와 여당은“박 원내대표가 거짓말을 한 것이 분명히 드러났다. 외교를 악용하고 국익을 훼손하며 국민과 국가를 망신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며 공세를 폈다. 박지원은 "국익을 위해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겠다" 고 한발 물러섰다.[22][23][24] 정세현 전 장관은 이 훼방꾼 발언은 통역사의 실수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였다.[25] 그러나 원희룡이 밝힌 면담록에 따르면 그런 취지의 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했고, 시진핑은 그것에 반응을 보이지 않고 미국의 역할을 강조했다.[26] 며 실컷 고생한 통역을 끌고 들어가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리하여 손학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본질을 외면한 채 특정 표현이 있었으냐 없었느냐에 매달리는 이명박 정부가 밖에 성숙하게 비치겠느냐"라고 박지원의 발언을 방어하였다.[27]

전두환 환영 논란[편집]

1981년 1월, 박지원은 당시 대한민국대통령 전두환미국을 방문할 때 미국 교포로써 박지원한인회장을 중심으로 각 교포단체들이 참가, 환영준비위를 구성한 교포들은 케네디공항과 숙소인 월돌프아스토리아 호텔 부근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환영 행사를 치뤘다.[28] 1985년에도 박지원은 뉴욕평통자문위원회 회장을 맡을 때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환영했다.[29]

2010년 나라사랑실천운동, 자유민주수호연합, 건국이념보급회 등 보수적 시민단체들은 민주당사 앞에서 제5차 '박지원 정계 퇴출 및 북송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1981년 한국방송공사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는 전두환 대통령과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며, 12.12와 5.18은 영웅적인 결단이었다"라고 말했다고 주장했으며, 박지원의 환영위원장 경력을 함께 거론하며 김대중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맡고 민주당의 원내대표를 맡고 있던 것에 대하여 '권력의 딸랑이'라고 비판했다.[30] 박지원 원내대표트위터를 통하여 자신이 12.12와 5.18을 영웅적인 결단이라고 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런 사실 없습니다"라고 말했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저에 대한 비판 비난 음해 사실도 있고 허위도 있지만 대응 않고 제 길을 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31][32]

광주 비하 욕설 논란[편집]

2013년 2월 15일 박지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광주 비하 발언인 광주 개XX들아 술 주면 마시고 실수하고 그러면 죽고. 그러면서도 라는 글을 올렸다. 트위터 사용자들 사이에서 이 글이 논란이 되고 빠르게 확산되자 박지원은 이 글을 삭제하고 다음 날 트위터를 통해 전날 광주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목포에 도착해서 쓴 글이며 부적절한 용어를 써서 트위터를 작성한거 대해 인정을 하고 이에 대해 사과를 했다.[33]

역대 선거 결과[편집]

선거명 직책명 대수 정당 득표율 득표수 결과 당락
제14대 총선 국회의원(전국구) 14대 민주당 29.2% 6,004,578표 전국구 21번 전국구 국회의원 당선
제15대 총선 국회의원(부천시 소사구) 15대 새정치국민회의 37.3% 31,786표 2위 낙선
제18대 총선 국회의원(전남 목포시) 18대 무소속 53.6% 45,415표 1위 목포시 국회의원 당선
제19대 총선 국회의원(전남 목포시) 19대 민주통합당 71.2% 63,705표 1위 목포시 국회의원 당선

주석[편집]

  1. 故 장면 총리 공정한 평가 필요 가톨릭신문 1999년 5월 9일자 [제2150호]
  2. “박지원 `대북송금 특검은 출발부터 잘못`”. 중앙일보. 2007년 2월 9일. 2007년 10월 24일에 확인함. 
  3. donga.com[뉴스]-한화갑씨 사면 - 박지원씨 복권
  4. 한국일보 : 김우중씨 사면·박지원씨 복권
  5. 김우중·박지원씨 등 75명 특별사면·복권 - 세계를 밝히는 신문 - 세계일보
  6. 노 대통령, 박지원 실장에 정치적 복권? - 오마이뉴스
  7. 박지원, 다시 'DJ의 비서실장'으로 컴백 - 프레시안
  8. <국감>박지원의원 “확인 없이 보도한 모 방송 법적책임 묻겠다” :: 네이버 뉴스
  9.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10. http://widenews.net/detail.php?number=1868&thread=22r03r02 [깨진 링크]
  11. 한국일보 : 박지원 의원, 목포대서 명예박사 학위
  12. 도쿄서 DJ 추모행사 민주 지도부 등 참석 - 세상을 보는 눈, 글로벌 미디어 - 세계일보
  13. 도쿄서 오늘 DJ 추모행사 :: 네이버 뉴스
  14. 박지원 "개헌 불가능..논의 가치 없다" 2010-12-10 연합뉴스
  15. [전문박지원 당대표 출마 선언문 "정권 교체 이루겠다"아시아경제 2014년 12월 28일
  16. 박지원 "盧전대통령의 호남 발언 '배은망덕'"
  17. 비즈니스앤 『강인선 Live』민주당 박지원 의원편 방송
  18. 검찰, 박지원 '천성관 폭로' 관련해 관세청 내사
  19. 박지원 '평화훼방꾼' 발언 놓고 진실공방 MBC 2010.10.20
  20. 시진핑 '훼방꾼' 발언, 진실게임 양상 노컷뉴스 2010.10.20
  21. 중국 '훼방꾼 발언' 부인…박지원 "더 언급 않겠다", SBS.
  22. 국제 망신으로 끝난 박지원 원내대표의 거짓말 독립신문 2010-10-22
  23. 박지원의 ‘독배’?… 中‘시진핑 발언’ 공식부인 문화일보 2010-20-22
  24. 中 “시진핑 발언 사실 아냐”…박지원 ‘궁지’ 서울신문 2010-10-22
  25. e뉴스팀 (2010년 10월 22일). “박지원의 ‘훼방꾼’ 발언 논란은 통역사 때문?”. 한겨레. 2010년 10월 27일에 확인함. 
  26. 원희룡, '한반도 평화훼방꾼' 발언논란 박지원에 공박...'박진요'
  27. 김재현 기자 (2010년 10월 22일). “손학규 "특정 표현에 매달리면 안돼". 연합뉴스. 2010년 10월 29일에 확인함. 
  28. “55만재미동포 영접 준비 한창”.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동아일보). 1981년 1월 27일. 
  29. 기사
  30. 황소영 (2010년 11월 3일). ““박지원, '5.18은 전두환의 영웅적 결단'”?”. 뉴데일리. 
  31. 트위터 상 대화
  32. 트위터 상 대화
  33. “박지원의, 광주 비하 트위터 논란에 사과”. 해럴드경제. 2013년 2월 16일. 

바깥 고리[편집]

전 임
신낙균
제6대 문화관광부 장관
1999년 5월 23일 ~ 2000년 9월 19일
후 임
김한길
전 임
전윤철
제26대 대통령비서실장
2002년 4월 15일 ~ 2003년 2월 24일
후 임
문희상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 (1948-2014).svg 전 임
이상열
제18대 국회의원(전남 목포시)
2008년 5월 30일 ~ 2012년 5월 29일
무소속민주당민주통합당
후 임
박지원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 (1948-2014).svg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 (1948-2014).svg 전 임
박지원
제19대 국회의원(전남 목포시)
2012년 5월 30일 ~ 2016년 5월 29일
민주통합당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
후 임
(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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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임
박병석
제3대 민주당 정책위의장
2009년 8월 10일 ~ 2010년 5월 29일
후 임
전병헌
전 임
이강래
제3대 민주당 원내대표
2010년 5월 30일 ~ 2011년 5월 29일
후 임
김진표
전 임
김진표
제2대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2012년 5월 4일 ~ 2012년 12월 21일
후 임
박기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