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19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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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2017년 당시의 박지원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출생 1942년 6월 5일(1942-06-05) (75세)
일제 강점기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거주지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전라남도 목포시 상동
학력 단국대학교 상학 학사
종교 천주교(영세명 : 요셉)
본관 밀양
배우자 이선자
자녀 슬하 2녀
경력 럭키금성상사
동서양행 뉴욕지사장
데일리팻숀스 대표이사
뉴욕한인회 회장
미주지역한인회 총연합회 회장
뉴욕평통자문위원회 회장
한국인권문제연구소 이사장
민주당 통일국제위원회 부위원장
민주당 수석부대변인
민주당 대변인
민주당 당무위원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
새정치국민회의 기획조정실장
새정치국민회의 총재특별보좌역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
제6대 문화관광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 공보수석비서관
대통령 비서실 정책기획 수석비서관
대통령 비서실 정책특별보좌관
제25대 대통령비서실장
김대중 평화센터 이사장 및 비서실장
민주당 정책위의장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회 위원
국민의당 원내대표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국민의당 당대표
법제사법위원회
의원 선수 4선 의원
의원 대수 14·18·19·20
정당 국민의당
지역구 전남 목포시

박지원(朴智元, 1942년 6월 5일 ~ )은 대한민국정치가이다.

학력[편집]

비학위 수료[편집]

명예 박사 학위[편집]

생애[편집]

사업가 시절[편집]

대학 졸업 후 1970년 럭키금성상사에 입사하여 근무하다 미국에 건너가 1972년 11월 주식회사 동서양행 뉴욕지사 지사장에 임명됐다. 이후 사업을 하였고 크게 성공하였다. 이 기간에 정치적 망명 인사였던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의 생활비를 댄 것으로 알려졌다.

귀국[편집]

1979년 5월 미국 교포 자격으로, 수출유공자로 지정되어 국무총리표창장을 받았다. 1984년 김대중이 설립한 인권문제연구소 등의 후견인이 되었고, 1987년 6월 항쟁 이후 김대중이 사면복권되고 정계에 복귀하자, 미국 영주권을 정리하고 귀국하였다.

정치 활동[편집]

정계입문[편집]

1992년 민주당 전국구 공천을 받아 14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1995년 9월 새정치국민회의 당대변인을 거쳐 1996년 15대 총선 에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의 노동운동가 출신 김문수에게 석패해 금배지를 잃었으나, 1997년 국민회의 총재특별보좌역에 선출되었다.

국민의 정부 시절[편집]

국민의 정부 출범 이 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1997년-1998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1998년-1999년) 문화관광부 장관(1999년-2000년) 등을 지냈다.

1999년 6월 4일 장면 총리 서거 33주년 기념일에 추기경 김수환에게 취임인사차 예방하고 김수환 추기경에게 "장면 전 총리의 포천묘소를 국립묘지로 이장할 것을 제의하면서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1] 그러나 여건이 좋지 않아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1999년 8월 문화관광부 한국문화산업진흥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2000년대 이후[편집]

2002년 대통령비서실장에 취임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대북송금 사건 의혹이 제기되면서 2000년 남북 정상 회담 직전 불법대북송금사건을 맡은 송두환 특검팀에 의해 2003년 6월에 구속되었으나, 2004년 11월 대법원에서 당시 주요 혐의로 거론되었던 '현대비자금 150억원 수수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의 파기환송을 함에 따라 2006년 5월 서울고등법원에서 대북 불법송금과 대기업 자금 1억 원 수수에 대한 유죄가 인정돼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그 후 2007년 2월 9일 특별사면조치로 형집행이 면제되었다.[2]

석방 이후 2007년 12월 복권되었다.[3][4][5] 그러나 이때의 복권을 노무현이 정치적 복권을 시켜준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었다.[6]

18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12년 만에 원내에 복귀하게 된다. 2008년 8월 13일, 민주당으로 복당하였다. 이후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비서실 실장[7] 등에 선임되었고,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 등을 지냈다.

2008년 10월 경북교육감 선거 관련, 뇌물수수 의혹을 사실확인하지 않고 보도한 모 방송을 고소한다고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8][9]

박지원 (2010년)

2009년 5월에는 섬지역 학생들 3박4일 서울체험 행사를 지원, 주관하기도 했다.[10] 10월 30일 목포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령했다.[11] 11월 일본 도쿄 시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추모식에 참석하였다.[12][13]

2010년 12월에는 한나라당의 2011년 예산안 강행처리 이후 개헌을 반대하였다.[14]

당대표 출마[편집]

2014년 12월 28일, 박지원 의원은 “지금은 특정 계파(친노)의 당으로 전락하느냐, 우리 모두가 주인인 당으로 가느냐의 갈림길”이라며 “강한 야당을 만들어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말하며, 공식적으로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였다. 다음은 그의 출마문이다.

강한 야당, 통합대표로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루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사랑하는 당원동지 여러분, 저는 오늘 국민이 원하는 강한 야당, 당원이 원하는 통합대표로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하기 위해 당대표에 나서고자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총체적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7년간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서민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남북관계도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국민은 내일이 보이지 않는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와 측근의 국정농단으로 집권 2년차에 벌써‘레임덕’에 빠졌습니다. 더 이상 이런 무능한 정부, 무책임한 대통령에게 나라의 미래와 국민의 안위를 맡길 수 없습니다.

1. 국민이 믿고 지지할 수 있는 ‘강한 야당’이 필요합니다!

국민이 기댈 수 있는 야당, 존재만으로 국민에게 힘이 되는 야당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정치가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강한 야당’은 싸움도 잘하고 타협도 잘하는 유능한 야당입니다. 정부여당에 맞서 싸울 때는 치열하게 싸우고, 타협할 때는 감동적인 양보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강한 야당’은 비판과 견제는 물론 정부여당을 견인할 능력을 가진 야당입니다. 경제위기 속에서 서민을 보호하고, 안보위기 속에서 한반도평화를 지키려면 확고한 비전과 정책으로 정부여당을 견인해야 합니다.

2. 강력한 리더십으로 당을 하나로 만들‘통합대표’가 되겠습니다!

내년 2.8전당대회에 당의 명운(命運)이 걸려 있습니다. 당은 지금 특정계파의 당으로 전락하느냐, 우리 모두가 주인인 당으로 가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있습니다.

독점과 분열로 패배할 것인가, 통합과 단결로 승리할 것인가가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저 박지원은 분열과 침체의 늪에 빠진 당을 살리는 ‘통합대표’가 되겠습니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계파독점을 깨고, 탕평인사로 공정하게 당을 운영하겠습니다.

저 박지원은 어떤 계파로부터도 자유롭습니다. 오직 2016년 총선승리와 2017년 대선승리만 생각합니다. 저야말로 탕평인사와 공정한 당 운영을 행동으로 실천할, 유일한 후보라고 확신합니다.

3. 당의 혁신을 넘어 혁명적 변화를 가져오겠습니다. 박지원이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1) 공천혁명으로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확보하겠습니다.

첫째, ‘6개 지역 비례대표 할당제’를 도입하겠습니다.

부산ㆍ대구ㆍ울산ㆍ경남ㆍ경북ㆍ강원 등 6개 시ㆍ도에 비례대표 두 명씩을 우선 배정함으로써, 취약지역에서 당 지지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겠습니다.

둘째, ‘지방의원 국회비례대표 할당제’를 도입하겠습니다.

전국 광역의원과 기초의원 각 한 명씩을 국회의원 비례대표로 발탁해서 당의 생활정치ㆍ민생정책 역량을 대폭 강화하겠습니다.

셋째, ‘청년의무공천제’를 도입하겠습니다.

여성의무공천제처럼, 지방의회선거에서 한 명 이상의 청년을 공천해서 명실상부한 노ㆍ장ㆍ청의 조화를 이루겠습니다.

넷째, 계파갈등의 근원인 공천심사위원회를 폐지하겠습니다.

대신‘후보자 자격심사위원회’의 심사와 당원의 추천을 거쳐 완전국민경선으로 후보를 선출하겠습니다.

다섯째, ‘비례대표 예비후보등록제’를 도입하겠습니다.

당 안팎의 철저한 사전검증을 거쳐 능력과 자질, 당 기여도가 높은 비례대표 후보를 공천하겠습니다.

(2) 당 기능 활성화로 수권정당의 기틀을 만들겠습니다.

첫째, 민주적 당 운영과 지역기반 강화를 위해 시ㆍ도당 지원을 과감하게 확대하겠습니다.

중앙당의 국고보조금과 당비를 시ㆍ도당에 더 많이 배분하겠습니다. 특히 6개 시ㆍ도와 원외지역의 당원연수 및 지역활동을 집중 지원하겠습니다.

둘째, 민생정치ㆍ생활정치 역량을 강화하겠습니다.

민주정책연구원의 시ㆍ도지부를 설치해서 현실적인 지역정책과 공약을 개발하겠습니다.

민생현장을 담당하는 지방의원이 참여하는 생활정치위원회를 대표 직속으로 설치하겠습니다.

셋째, 노동ㆍ여성ㆍ청년ㆍ노인ㆍ장애인 등 부문별 조직을 활성화하고, 농어촌특별위원회를 중앙당 소속 상설위원회로 격상시키겠습니다.

넷째, ‘전당원투표제’를 확대해서 당의 주요정책과 진로를 대의원과 당원이 직접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4. 강력한 리더십과 열정으로 2017년 정권교체의 밑거름이 되겠습니다.

대선주자들이 화려한 꽃을 피울 수 있도록 기꺼이 희생하는 당대표가 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사랑하는 당원동지 여러분,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우리는 패배했습니다. 더 이상의 실패는 용납되지 않습니다. 저는 1997년 정권교체와 2002년 정권재창출에 성공한 ‘승리의 DNA’를 가지고 있습니다. 원내대표로서 강력한 대여투쟁과 정치력으로 정부여당을 압도한 경험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정권을 다시 찾는 일 외에는 어떠한 사심(私心)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당의 대선주자들이 국민의 지지를 얻어 화려하게 꽃피울 수 있도록 제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저는 그동안 일부 보수세력의 온갖 음해와 비난 속에서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왔습니다. 또한 일부 강경진보세력과는 분명하게 선을 긋는 결단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당과 대선주자들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어려운 결정도 피하지 않겠습니다.

정권교체의 그 날까지 오직 당과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년 12월 28일 박 지 원

— 박지원의 당권 출마 대국민 기자회견 전문[15]

경력[편집]

수상[편집]

  • 1983년 6월 국민훈장 동백장
  • 2002년 6월 청조근정훈장
  • 2005년 11월 진도군민의 상
  • 2009년 11월 국회전문위원 선정 국정감사 우수위원
  • 2009년 11월 국회 상임위(법사위,정보위) 의정활동 각각 1위 의원
  • 2009년 11월 (사)한국지역신문협회 광주전남협의회 선정 풀뿌리 의정대상
  • 2009년 12월 백봉신사상 베스트 10 선정
  • 2010년 11월 NGO 모니터단 선정 국정감사 우수위원
  • 2010년 12월 백봉신사상 베스트 10 선정
  • 2011년 11월 (사)바른사회 밝은시민연합 18대 종합 최우수 국회의원
  • 2011년 11월 (사)한국문화예술유권자총연합회의 18대 최우수 국회의원 모범상
  • 2011년 11월 NGO 모니터단 선정 국정감사 우수위원
  • 2011년 12월 민주통합당 자체 선정 국정감사 최우수 의원

역대 선거 결과[편집]

선거명 직책명 대수 정당 득표율 득표수 결과 당락
제14대 총선 국회의원(전국구) 14대 민주당 29.2% 6,004,578표 전국구 21번 전국구 국회의원 당선
제15대 총선 국회의원(경기 부천시 소사구) 15대 새정치국민회의 37.3% 31,786표 2위 낙선
제18대 총선 국회의원(전남 목포시) 18대 무소속 53.6% 45,415표 1위 목포시 국회의원 당선
제19대 총선 국회의원(전남 목포시) 19대 민주통합당 71.2% 63,705표 1위 목포시 국회의원 당선
제20대 총선 국회의원(전남 목포시) 20대 국민의당 56.38% 58,630표 1위 목포시 국회의원 당선

각주[편집]

  1. 故 장면 총리 공정한 평가 필요 가톨릭신문 1999년 5월 9일자 [제2150호]
  2. “박지원 `대북송금 특검은 출발부터 잘못`”. 중앙일보. 2007년 2월 9일. 2007년 10월 24일에 확인함. 
  3. donga.com[뉴스]-한화갑씨 사면 - 박지원씨 복권
  4. 한국일보 : 김우중씨 사면·박지원씨 복권
  5. 김우중·박지원씨 등 75명 특별사면·복권 - 세계를 밝히는 신문 - 세계일보
  6. 노 대통령, 박지원 실장에 정치적 복권? - 오마이뉴스
  7. 박지원, 다시 'DJ의 비서실장'으로 컴백 - 프레시안
  8. <국감>박지원의원 “확인 없이 보도한 모 방송 법적책임 묻겠다” :: 네이버 뉴스
  9.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10. http://widenews.net/detail.php?number=1868&thread=22r03r02 [깨진 링크]
  11. 한국일보 : 박지원 의원, 목포대서 명예박사 학위
  12. 도쿄서 DJ 추모행사 민주 지도부 등 참석 - 세상을 보는 눈, 글로벌 미디어 - 세계일보
  13. 도쿄서 오늘 DJ 추모행사 :: 네이버 뉴스
  14. 박지원 "개헌 불가능..논의 가치 없다" 2010-12-10 연합뉴스
  15. [전문박지원 당대표 출마 선언문 "정권 교체 이루겠다"아시아경제 2014년 12월 28일

참고 자료[편집]

외부 링크[편집]

전임
신낙균
제6대 문화관광부 장관
1999년 5월 23일 ~ 2000년 9월 19일
후임
김한길
전임
전윤철
제25대 대통령비서실장
2002년 4월 15일 ~ 2003년 2월 24일
후임
문희상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전 임
이상열
제18대 국회의원(전남 목포시)
2008년 5월 30일 ~ 2012년 5월 29일
무소속민주당민주통합당
후 임
박지원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전 임
박지원
제19대 국회의원(전남 목포시)
2012년 5월 30일 ~ 2016년 5월 29일
민주통합당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무소속국민의당
후 임
박지원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전 임
박지원
제20대 국회의원(전남 목포시)
2016년 5월 30일 ~ 2020년 5월 29일
국민의당
후 임
(현직)
Emblem of the National Assembly of Korea.svg
전임
박병석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
2009년 8월 10일 ~ 2010년 5월 29일
후임
전병헌
전임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
2010년 5월 30일 ~ 2011년 5월 29일
후임
김진표
전임
김진표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2012년 5월 4일 ~ 2012년 12월 21일
후임
박기춘
전임
주승용
제2대 국민의당 원내대표
2016년 4월 27일 ~ 2016년 12월 28일
후임
주승용
전임
안철수, 천정배
(공동대표)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2016년 6월 29일 ~ 2016년 12월 4일
후임
김동철
(비상대책위원장)
전임
김동철
(비상대책위원장)
제2대 국민의당 대표
2017년 1월 15일 ~ 2017년 5월 10일
후임
주승용
(대표권한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