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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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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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
상징색 녹색, 붉은색
이념 자유보수주의
보수자유주의
사회보수주의
중도개혁주의
스펙트럼 중도 ~ 중도우파
당직자
대표 김대중, 이기택
역사
창당 1991년 9월 16일
해산 1995년 12월 21일
선행조직 민주당 (1990년)
신민주연합당
후계정당 새정치국민회의
통합민주당
예하 부문
중앙당사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의석
국회의원
(1992년)
97 / 299

민주당(民主黨, Democratic Party)은 평화민주당이 확대개편된 신민주연합당삼당합당에 반대한 통일민주당 잔류파 등의 민주당의 합당으로 1991년 9월 16일 창당되었다.

1995년 9월 5일 김대중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며 상당수 회원이 탈당하여 제2야당으로 추락하였고, 1995년 12월 21일 개혁신당과 함께 통합민주당으로 신설합당되어 소멸하였다.

역사[편집]

창당 이전[편집]

창당 이후[편집]

역대 당수[편집]

대수 역대 대표 직함 임기 비고
1 김대중 공동대표최고위원 1991년 9월 16일 ~ 1992년 12월 18일 대선 패배로 은퇴
1 이기택 공동대표최고위원 1991년 9월 16일 ~ 1993년 3월 11일
2 이기택 대표최고위원 1993년 3월 11일 ~ 1995년 2월 24일
3 이기택 대표최고위원 1995년 2월 24일 ~ 1995년 8월 28일
4 홍영기 공동대표최고위원 1995년 8월 29일 ~ 1995년 12월 14일 통합민주당으로 신설합당
4 박일 공동대표최고위원 1995년 8월 29일 ~ 1995년 12월 14일 통합민주당으로 신설합당

역대 선거 기록[편집]

대통령 선거[편집]

연도 선거 후보자 득표 득표율 결과 당락
1992년 제14대 김대중 8,041,284표
33.82%
2위 낙선[1]

국회의원 선거[편집]

연도 선거 지역구 비례대표 정원
당선자 수 당선비율 당선자 수 득표율 당선자 수 당선비율
1992년 제14대 75/237
31.65%
22/62
29.2%
97/299
32.44%

지방선거[편집]

연도 선거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당선자 수 당선비율 당선자 수 당선비율 당선자 수 당선비율 당선자 수 당선비율
1995년 1회 4/15
26.67%
84/230
36.52%
391/970
40.31%

역대 재보궐선거 결과[편집]

실시년도 선거 국회의원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당선자 수 당선비율 당선자 수 당선비율 당선자 수 당선비율 당선자 수 당선비율 당선자 수 당선비율
1991년 11·30 재보선 0/1 0%
1992년 2·16 재보선 0/1 0%
4·14 재보선 1/1 100.00%
5·13 재보선 1/1 100.00%
6·8 재보선 0/2 0%
6·20 재보선 0/1 0%
7·10 재보선 0/2 0%
9·8 재보선 0/1 0%
9·24 재보선 0/1 0%
10·23 재보선 0/1 0%
1993년 3·12 재보선 0/1 0%
4·9 재보선 0/2 0%
4·23 재보선 0/3 0%
5·4 재보선 0/1 0%
6·11 재보선 1/3 33.3%
7·9 재보선 0/1 0%
8·12 재보선 0/2 0%
8·17 재보선 0/1 0%
9·17 재보선 0/2 0%
9·25 재보선 0/1 0%
10·22 재보선 2/2 100.00%
11·12 재보선 0/3 0%
11·30 재보선 1/1 100.00%
12·3 재보선 0/1 0%
1994년 8·2 재보선 1/3 33.3%

역대 전당대회[편집]

합당수임기구 합동회의[편집]

1991년 9월 16일, 신민주연합당-민주당 합당수임기구 합동회의는 당헌, 정강 및 기본정책을 확정하고 신민당 김대중 총재와 민주당 이기택 총재를 공동대표최고위원으로 하는 지도부를 선출했다.

1992년 5월 민주당 정기 전당대회[편집]

득표순위 이름 득표수 득표율 비고
1 김대중 1,413 60.2% 당선
2 이기택 925 39.6%
총투표수 2,348

1992년 5월 26일, 민주당 전당대회는 김대중 대표를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하고, 김상현 의원 등을 최고위원으로 선출한뒤 정권교체를 결의했다.

1992년 11월 민주당 임시 전당대회[편집]

1992년 11월 7일 민주당은 임시 전당대회 겸 대선승리전진대회를 가졌다.

1993년 3월 11일 민주당 제2차 전당대회[편집]

민주당의 법적 대표였던 김대중 대표가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하자, 민주당은 당 개편을 위해 3월 조기 전당대회를 개최한다.

득표순위 이름 득표수 득표율 비고
1 이기택 2,743 48.3% 결선투표 진출
2 김상현 1,928 35.3% 결선투표 진출
3 정대철 944 17.3%
총투표수 5,462

1차투표 결과 과반득표자가 없어 결선투표로 이어졌고, 결선 투표 진출에 탈락한 정대철 후보는 같은 신민계인 김상현 후보를 지지했다.

득표순위 이름 득표수 득표율 비고
1 이기택 2,896 53% 대표최고위원
2 김상현 2,549 46.7%
총투표수 5,462

결선투표 결과 이기택 대표가 재선되었고, 전당대회는 또 그를 중심으로 할 8명의 최고위원들을 선출했다.

1995년 2월 민주당 임시 전당대회[편집]

1995년 2월 24일 민주당 전당대회는 당헌개정안과 정강정책개정안을 의결하는 한편, 새한국당국민회의와의 통합을 선언하고 이기택 대표를 총재로, 새한국당 이종찬 대표를 상임고문으로, 국민회의 김근태 공동대표를 부총재로 추대했다.

1995년 8월 민주당 임시 전당대회[편집]

새정치국민회의의 창당으로 원내3당으로 밀려나버린 민주당은 1995년 8월 28일 전당대회를 개최해 홍영기 국회부의장과 박일 고문을 공동대표로 하는 임시 지도부를 출범시킨 뒤, 정치개혁시민연합 등 반3김 세력과의 통합수임기구를 구성하기로 결의했다.

제1차 민주당-개혁신당 통합수임기구 합동회의[편집]

1995년 12월 5일 민주당-개혁신당 통합수임기구 합동회의는 양당의 통합을 선언하고 민주당 이기택 고문을 상임고문에, 김원기 고문과 개혁신당 장을병 대표를 공동대표로 선출했다.

역대 정당 당원[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1992년 대선에서 여당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후보에 맞선 민주당의 김대중 후보는 농촌 유권자의 친 여당 성향을 비판하며 유권자의 책임을 지적했다. 이로 인해 그의 발언에 수긍하지 않는 청중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김대중은 "민주당은 13대 국회에서 수세·농지세 감면, 농어가 부채의 상환연기, 농·수·축협 조합장 직선제 도입 등 농민을 위해 일한 유일한 정당"이라면서 "3백64일 야당하다가 선거날에만 여당하는 농촌 유권자들은 이제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30여년간의 군정 기간중 가장 많은 차별과 천대를 받은 계층이 바로 여러분 농민들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뭐가 좋다고 선거때만 되면 여당을 찍고 선거가 끝나면 후회를 하곤 합니까"라고 주장했다. 이미 30년전인 1992년 대선때부터 계급배반투표의 논리가 공식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던 것이다.[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