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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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영어: Far-right; Far-right politics 파 라이트; 파 라이트 폴리틱스[*]) (極右) 또는 급진우파(急進右派)는 극단적으로 우익적인 개인, 단체, 당파 세력을 가리킨다. 반대어는 극좌이다. 보통 국가주의, 국수주의, 권위주의, 다문화 반대, 반평등, 순혈주의, 인종주의, 전체주의, 극단 민족주의의 혼합 형태로 나타나며, 네오나치 또는 파시즘이 대표적인 극우 운동이다.

그러나, 동시에 자유방임경제, 경쟁 사회, 반공동체, 반집단주의적 경향도 극우의 사상적 경향으로 나타난다. 그 예로, 아나키즘에 속하는 아나코-자본주의의 경우, 국가는 최소한의 사회의 도덕유지를 위한 통치력만 행사하고, 민영 기업에게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도 역시 극우 주장에 포함된다고 평가받는다.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정책도 경제 불균형과 빈부격차를 초래하여 사회적 평등을 기존의 민족주의적 극우보다 높은 수준으로 훼손하기 때문에, 과격한 신자유주의 주장도 극우의 한 축으로 평가받는다.[1][2][3]

행동 특징[편집]

극좌와 다르게, 지역주의와 인종, 민족이라는 개념에 차별성을 둔다.

또한, 평등주의민주주의라는 가치개념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다. 파시즘 독재를 겪은 나라에서 극우들은 자신들을 '자유지상주의자' 또는 '자유주의자'라고 묶어 표현하며, 오늘날, 남미를 제외한 전 세계가 신자유주의화 되고, 실업률이 늘어나는 동시에 경쟁 체제가 가속화되면서 극우 지지자들의 비율은 날로 늘고있다.[4]

한편, 파시스트같은 기존의 극우와 다른 극단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내포하는 극우들은 대놓고 인종주의, 민족주의 성향을 내포하지 않고, 자유를 강조하지만, 경제적 자유를 위해 평등을 희생시키고, 약소국을 착취하는 신제국주의와 연관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각국의 극우[편집]

노르웨이에서 극우[편집]

노르웨이는 급진, 강경적인 내셔널리즘파시즘을 통해 극우로 이어져왔다. 대표적으로 국민연합이 유명한데, 비드쿤 크비슬링이 국민연합 소속으로 알려져있고, 1940년 노르웨이가 독일에 점령당할 때 크비슬링 정권을 출범시켰다. 그러나 크비슬링은 반역죄로 처형당했고, 국민연합도 해산된다.

오일 쇼크 이후 세계 경제가 신자유주의 기조를 타던 1970년대1973년에는 아나코-자본주의 성향의 노르웨이 진보당이 출범했다. 당시에는 별도의 민족주의 또는 유럽회의주의 성향을 내포하고있지 않았지만, 1990년대부터 갑작스럽게 네오나치들도 노르웨이 진보당의 대열에 섰다. 1990년대에서 2008년 사이는 당내에서 민족주의, 인종주의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던 시기이며,[5] 2011년 노르웨이 테러사건의 피의자인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는 한 때 노르웨이 진보당 내에서 과격한 인종주의 분파에 들었다는 게 밝혀졌다. 오늘날, 노르웨이 진보당은 약 29석 규모의 제3당으로 급부상했다.

노르웨이의 극우들은 이슬람교 문화가 자국에 유입되는 것에 회의적이며, 노르웨이 루터교 교리와 노르만 인종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특징을 가졌다.

대한민국에서 극우[편집]

한국의 극우는 해방 정국에서 사회주의에 대항하여 처음 등장했는데,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계되어 활동했던 백의사, 이범석민족청년단, 지청천대동청년단 등이 있었다.

1946년 2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치공작대와 염동진백의사3월 1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평양역 앞에서 '3.1 운동 27주년 기념식'을 열었는데, 백의사 청년단원들은 김일성에 대한 폭탄을 던졌다. 집회가 진행되는 도중 연단을 향해 수류탄이 던져졌는데, 집회의 경비를 담당한 소련군 부대장 노비첸코 소위수류탄을 되잡아 던지려다가 그의 손에서 폭발한 것이다. 노비첸코는 이 폭발로 오른팔이 잘려나가고 한쪽 눈을 다치는 중상을 입었지만, 김일성은 무사했다.[6][7][8]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삼일절 행사장에 폭탄을 던진 사람은 남한에서 올라간 열여덟 살 소년 김형집이었다.[6][9][10] 나머지 요원들은 최용건김책의 집에도 습격·폭탄을 던졌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강양욱의 집에 던진 폭탄은 강량욱의 아들과 딸을 죽게 만들었다.[6][9][10] 청년단원 중 한명이 임시정부 내무부장 신익희의 명의로 2월 15일에 발급된 무임승차권[11] 을 분실했고[6][10][12] 이는 북한측에 의해 입수되었다.

이 테러가 임시정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증거를 확보한 북한은 김구와 이승만을 격렬히 비난하였다.[13] 북한은 김구와 이승만을 “봉건 잔재세력과 외국 팟쇼세력과 제국주의 잔재세력과 친일파의 삼위일체”이자, “이완용을 배운 조선매국노”로 규정짓는 강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조선공산당은 김구의 귀국시 그들의 기관지를 통해 '김구를 민족혁명의 지사', '반제에 일생을 바친 고결한 지사'로 예찬했었지만. 이 테러사건 이후 김구는 북한에서 불구대천의 원수로 낙인찍히고 말았다.[13] 이런 연유로 당시 북한의 출판물에서는 그의 이름으로 '개 구자', '김구'(金狗)로 부르며 매도하였다.[14]

1946년 11월 북한에서는 인민위원회 위원 선거가 있었다. 이때 월남했던 반공세력이 일부다시 월북하여 선거방해를 도모하였다.[15] 김일성은 이를 이승만과 김구가 배후에서 조종한 짓이라고 선언했다. 심지어 이들의 방해로 선전대원 몇 명이 사망한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선거가 비민주적이다”, “승려들과 목사들은 선거하지 말라”, “공동후보가 아니라 자유경쟁” 등으로 선거에 비판적이었고, 유권자들에게 선거에서 찬성하면 흑함에 넣으라는 흑함운동을 하기도 하였다.[15] 이들에 대하여 김일성은 인민의 원수이며 반동파들에게 매수되어 그들의 간첩배가 된 세력으로 몰았다. 김일성은 선거기간에 생산기관의 방화, 운수부분에서 충돌사건, 주요 인사의 암살미수사건 등이 반동세력의 반대운동의 일환으로 파악하였고, 나아가서 북한에서 일어난 방화를 이승만과 김구가 파견한 방화단으로 규정하였다.[15]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주로 이승만 정부 또는 자유당 옹호하고 동시에 진보 계열 정치인들을 테러했던 극우 정치 깡패들이 존재했으며, 제1공화국 정부에서는 이들을 방치하고, 동시에 이들의 활동을 독려 및 지원까지 해주기도 하였다.

2000년대 이후를 기준으로 전향 주사파 출신이 주축이 된 신자유주의 극우 운동이라고 일부 분석가들에 의해 평가받는 뉴라이트 운동이 생겨났다.[16] 대한민국의 사회학자 우석훈은 한국의 극우는 반제국주의적 민족주의와는 관계가 없으며, 급진적인 경제적 자유방임주의 우익인 동시에 반민주주의, 반공주의, 군비증축, 지역차별주의, 인종주의 성향을 띠는 네오파시즘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이들은 스스로를 '중도주의자' 또는 '자유주의자'라고 모호하게 칭하는 경향이 있으나, 경제적 자유주의를 주장한다는 것 이외엔 기존 자유주의와 매우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동시에 자유주의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정치학자 차상철은 현재 한국 극우의 여러가지 특징이 분단 체제의 특수성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17] [모호한 표현]에선 이들 대다수가 넷우익에 속하며,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피력하는 동시에[18][19][20][21][22][23][24] 외부 세계에서 자신의 정치 사상이 드러나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하며, 몇몇 분석가들은 이들의 행동을 정치적 성향에 연관이 있다고 분석하지 않고 하나의 정신질환[25]이라 주장한다.[26][27][28][29]

가끔 민족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외국과 비슷한 극우도 있으나, 극소수이며, 극우를 표방하는 단체에서는 대한민국 엄마부대, 대한민국 어버이연합 등이 있다.

이 밖에도 박근혜를 중심으로 한 친박의 등장으로 온건 보수에서 강경 보수로 넘어오는 세력들도 간혹 있다.

2017년 태극기 집회의 영향으로 박사모, 새누리당 주축인 대통령 탄핵무효 국민저항총궐기 운동본부, 대한애국당 주축인 천만인무죄석방본부, 새로운 한국을 위한 국민운동 등 여러 친박/뉴라이트 세력의 단체도 생겨났다.

또한 인터넷에서는 일베저장소가 대표적이며, 과거 디시인사이드의 '일간 베스트'라는 갤러리를 통해 만들어졌고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민들과 당시 야당들이 단식에 들어간 광화문 광장에서 자유대학생연합자유청년연합을 통해 폭식 농성을 벌였다.

이 밖에도 자유총연맹,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박사모 등 뉴라이트, 극우 단체들도 존재한다.

독일에서 극우[편집]

독일1930년대 공황기 당시, 선거로 집권한 최초의 나라이기도 하다. 아돌프 히틀러 정권은 장애인들과 유대인을 말살하는 강력한 인종주의 정책을 썼었고, 동시에 좌익, 아나키스트들을 학살했다.

동독 정권은 과거 반 나치 파르티잔들이 정권을 잡으면서 나치 잔당들을 광범위하게 숙청했다. 서독같은 경우는 1945년 패전 이후 연합군은 극우 이념을 엄금했지만, 일부 나치 동조자가 석방되거나, 처벌을 받지 않았다. 결국, 1947년 냉전이 시작되자 서독에 주둔했던 서방권 연합군들은 '군사작전역사부'라는 기관을 만들어 친나치 성향의 역사왜곡을 주도했다.

1950년대 부터 호황기를 누린 나라들 중 대표적인 서독1950년대 부터 급진적인 다문화 정책을 실행해왔다. 1960년대에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서독의 원조가 매우 심화되던 때로, 외노자들의 등장에 반대하는 인종주의자들이 독일 국가민주당을 창당했다.[30] 1990년에 있던 독일 통일은 대량의 실업자들을 양산해냈고, 급진적인 다문화 정책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그러한 상태를 악화시켰다. 이에 따라 외노자들에 대한 증오를 품은 네오나치가 대거 등장하게 되었으며, 오늘날은 정부의 강력한 통제하에 제도권에 진입을 못하게 하고 있지만, 그 수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31]

러시아에서 극우[편집]

러시아에서 1910년대왕당파 형태로 나타났고, 1990년대에는 네오나치의 형태로 나타났다. 후자의 경우는 현재까지 이어져온다.

소련 정부가 들어선 1921년에서 1989년 까지는 인종차별, 국수주의, 파시즘 찬양을 당국에서 엄격히 제재하여, 극우 정치사상을 따르는 정당이나, 정치인이 없었지만, 1990년에는 정치의 자유가 보장되어서 극우 정당의 설립도 허가되었다. 1991년 소련의 붕괴 이후 러시아 경제는 급속히 피폐해져서, 1992년에는 1인당 명목 GDP가 약 500 달러(소련 시절의 22분의 1 수준)로 낮아졌다. 소련 시절에 보장되었던 여러 사회적 안전망[32]이 사라지고 경제난, 실업난이 심해지다보니, 양극단에 선 정당의 지지도가 높아졌으며, 그 시기에 제일 큰 정치 세력이 바로 극우 정치 세력이다. 현존하는 정당인 러시아 자유민주당은 당명과 관계없이 민족사회주의파시즘을 지지하는 정당이다. 현재 러시아는 의석수 대비로 따질 때 2010년대 기준으로 유럽 국가중에 극우들이 정치권 내에 제일 많이 진입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들은 반공주의, 반민주주의 성향 그리고 인종주의 성향을 가졌지만, 과거의 소련 시절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 이들이 후원하는 러시아 극우 스킨헤드들은 러시아 내에서 활동하는 유색인종들이나 유학생들을 사정없이 폭행하여, 수많은 폭력 사건을 일으켰다.[33][34]

미국에서 극우[편집]

미국의 경우, 2차 대전 시기부터 미국의 2차 대전 참전을 반대하는 소규모 파시스트 집단들이 존재했다. 2차 대전 종전 후 해군 중령 출신인 조지 링컨 록웰은 미국의 다문화 정책과 자유주의에 반대하여, 1959년 미국 나치당을 창당했다. 동시에, 남북전쟁 당시 남부맹방군의 기병대 장교가 설립한 KKK란 극우 단체가 존재하며, 이들은 주로 미국 중부 지방과 남부 지방에서 활동하고 백인인종주의, 개신교 근본주의, 반천주교주의를 주장한다. 그러나, 위와 같이 네오나치만 한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35] 미국 헌법당미국 공화당 내에는 네오파시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들이 상당수 존재하며,[36][37] 동시에 자유당(Libertarian Party)에도 아나코-자본주의 성향의 극우들이 존재한다. 특히, 아나코-자본주의자[38]들은 미국이 전 세계에서 큰 비율을 차지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보수양당제인 미국 정치 현실에서는 극단적인 정치 세력이 정권을 잡을 확률은 매우 낮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다.[39]

미국의 자유주의자사회주의자들은 티파티 운동, 그리고 공화당의 신보수주의의 패권주의와 제국주의 성향을 들어, 이 정치운동 및 이념을 극우 이념이라고 평가한다.

최근 2016년 미국 공화당 유력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무슬림과 멕시코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발언으로 반대자들에게 극우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영국에서의 극우[편집]

영국에서는 1935년파시즘 정당인 영국 파시스트 연합이 창당되었으나, 영국이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면서 1940년 해산되었으며, 영국에서는 극우 파시스트들이 큰 힘을 갖지 못하였다.

한편 마거렛 대처 정부를 극우 정부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마거렛 대처 정부는 급진적인 신자유주의의 추진으로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노동인권을 추락시켰을 뿐만아니라, 인두세를 추진해 서민들을 더 궁핍하게 만들었을 뿐만아니라 기존 우익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칠레의 극우 정권 피노체트, 남아프리카 공화국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옹호하고 아프리카 민족회의를 테러단체라고 발언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영국에 극우들은 파시스트 극우들과 마가렛 대처 노선에 따르는 신자유주의 극우로 크게 나뉜다.

일본에서 극우[편집]

일본에서 극우 운동과 사상은 일본 제국 시절 당시 일본 육군의 파벌이었던 황도파, 통제파와 파시스트였던 기타 잇키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당시 황도파는 반자본주의와 파시즘을 모토로 한 국가주의, 팽창주의를 기반으로 했고, 통제파는 기존 일본식 자본주의 체제와 군주제 체제를 유지하면서 제국주의와 전체주의를 온건적으로 실행해 나가자는 입장이었다.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대가 끝난 이후 극우 사상이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이들의 사상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대부분의 극우 지지자들은 처벌을 면하여 일본 자유당에 입당하였으며, 오늘날에는 그들의 원로적 역할을 했던 정치인들이 극우 운동의 지도자적 위치를 차지하고있다. 현재 일본은 다름없이 극우에 대한 지지도가 상당히 높으며, 해당 단체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좌익 인사들에 대한 폭력을 행사하기 위해 폭력단과 야쿠자와 비슷한 단체를 가진 극우 단체도 존재한다. 정치권 내에서는 일본 유신회라는 50석이 넘는 제3 정당까지 존재한다. 대한민국과는 달리, 이들은 수많은 써클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다 똑같은 극우들로 보기 힘들며, 네오나치, 파시스트, 일본식 제국주의자, 민족아나키즘 등등으로 나뉜다. 넷우익이란 용어도 일본에서 처음 나타난 용어이며, 주로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극우를 지칭한다. 일본의 지식계에서는 넷우익들을 일종의 사회 낙오자로 평가하고있다. 일본 극우들의 공통점은, 반민주주의, 반공주의, 수구주의, 국수주의적이라는 점이 있다.[40]

중국에서 극우[편집]

청나라신해혁명으로 붕괴된 후 중화민국이 건국되면서 공화주의와 극우적 사상이 혼합된 형태를 지향하는 정치운동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장제스중국식 국가주의유교적 도덕주의를 바탕으로 한 파시즘을 지향했었다. 그는 1925년 당의 권좌를 잡은 후 1927년 중국 국민당 내의 중도 좌익을 숙청하여 당의 성격을 우익 성향으로 바꿨다. 국공 내전 시기에 국민당 내 극우들은 청방삼합회와 같은 조직폭력배를 고용하여, 점령지 내의 좌파 농민, 노동운동가들을 탄압했다.[41]

국공 내전에서 중국 공산당이 대륙을 장악하게 된 후, 극우 세력들은 타이완으로 피신하여, 타이완 원주민들과 한인의 차별 정책을 지지했다. 장제스가 사망하였던 1975년까지 이른바 '전시민주체제'라는 반독재체제를 유지하여 일인일파 독재체제를 완고히 다졌었다. 이후, 중화민국 내 극우는 대륙수복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반대파들을 공산주의로 몰아 학살했으나, 장제스가 죽고, 국제적으로 중화민국이 아닌 중화인민공화국하나의 중국으로 보도록 국제적인 인식이 바뀌고, 장징궈가 총통이 되고 민주화된 이후엔 사실상 대륙수복이 불가능하기에, 일부 온건우파들은 중화인민공화국에 협력하는 친중노선으로 바뀌었다. 오늘날의 중화민국 내 극우는 민주진보당의 타이완 독립, 분리주의 노선에 반대하며, 동시에 장제스식 대륙 수복, 국수주의, 보수주의, 국가주의 성향 등 과거의 정책을 지지하는 형태로 나타나며, 정치 활동 면에서는 직접 행동을 강조하고 있다.[42]

폴란드에서 극우[편집]

1930년대 얀 모스도로프와 그를 따르는 청년계가 국민당을 탈당하여 국민급진기지를 창당하였다. 그러나 국민급진기지는 폴란드 정부에 의해 해산되었고, 일부 세력들은 팔랑가ABC로 활동하게 된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여러 친폴란드 레지스탕스 기구에 소속되었고, 독일군과 싸우게 된다. 한편 모스도로프는 국민당에 복당하였고, 국민군사기구 창설을 지원하다 1943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학살로 사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국민급진기지는 힘을 잃었고, 1947년 폴란드는 국민당을 강제로 정치 활동 금지, 해산을 하게 된다. 1989년 폴란드 인민공화국이 붕괴되었고, 이후 수많은 우익 단체들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를 계기로 1993년 국민급진기지가 부활하였고, 정치계에도 뛰어들고 있다. 2015년에는 파벨 쿠키즈쿠키즈15를 창당함에 따라, 쿠키즈15는 2015년 의회 선거에서 29석을 흭득하였다. 현재의 극우 정당은 국민운동, 쿠키즈15, 폴란드 가족연합 등이 있다.

프랑스에서 극우[편집]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초중반까지의 공산주의, 사회주의자들 간의 정치 경쟁에서 패배하여 와해되었으나, 히틀러에 의해 프랑스가 점령된 후 비시 프랑스 정부가 들어설 때 일부 프랑스 극우들은 나치 정부에 협력했다.

오늘날에는 국민전선이라는 극우 정당이 존재한다. 이들은 하원의원 의석수를 2석이나 얻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프랑스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며, 1950년대 경제 호황기에 힘입어 급진적으로 다문화 정책을 수용한 유럽 국가들에게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들은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을 극우로 부르지 않고, 민족주의자나 자유주의자로 돌려서 표현한다. 그러나 이들이 표방하는 이념은 파시즘에 가깝다. 주로, 프랑스에 유입되는 이슬람 문화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며, 국수주의, 유럽회의주의, 기독교 근본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43]

이탈리아에서 극우[편집]

이탈리아에서는 베니토 무솔리니이탈리아 사회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활동했었다. 1914년 10월 5일 안젤로 올리비에로 올리베티국제 파시스트행동을 창당하였고, 무솔리니는 같은 해 11월 자발적 파시스트 혁명행동을 창당하게 되었다. 이들은 1914년 12월 11일 파시스트 혁명행동이라는 통합정당으로 창당하였고, 1919년 파시스트 혁명행동이 이탈리아 전투 파스키로 확대되었다. 1921년 11월 9일 국가 파시스트당이 창당되면서 파시스트 운동이 시작되었다. 1922년 검은셔츠단을 이끌고 로마 진군을 통해 왕당파, 입헌군주제로 집권했던 이탈리아 왕국은 곧 파시스트 정권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 후 무솔리니는 1943년 정부 붕괴까지 21년간 독재 체제를 이루었다. 무솔리니 집권 기간 동안의 국가 원수의 칭호는 두체라고도 하며, 총통, 수령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독일, 일본과 함께 추축국을 결성하였고, 1943년 연합군이 시칠리아에 상륙하자 이탈리아는 패배하였고, 독일군의 무솔리니 구출과 이탈리아 왕국의 연합국 전환 등 여러 변화를 거쳐 두 나라로 쪼개졌다 (이탈리아 사회공화국). 한편 정부의 상태는 피에트로 바돌리오의 반파시스트 정부로 바뀌었고, 1945년 독일이 패망하면서 이탈리아 사회공화국은 붕괴되었다. 무솔리니는 스페인으로 망명하기 위해 스위스로 망명을 하자 파르티잔에게 체포되었고, 그는 총살로 사망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이탈리아를 포함한 모든 나라에서 파시즘 진영은 완전히 사라졌으나, 신파시즘 운동이 일어났고, 반자본주의 가치가 사라지면서 사회주의자들을 증오하였고, 자유경쟁·권위주의적인 성향을 지향한다. 이는 네오파시즘이라 불리며, 현재까지도 일어나고 있는 사상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 파시스트당의 후계정당인 이탈리아 사회운동1972년 총선에서 56석을 얻어 네 번째로 큰 정당이기도 했으나, 1995년 1월 27일에 해산되었고, 네오파시즘 색채가 사라지고 국민보수주의, 보수주의적인 성향을 띄는 국민동맹이 출범하게 된다. 급진적인 계파는 삼색기의 불꽃이라는 정당이 만들어지게 된다. 최근에는 북부 이탈리아의 주권쟁취와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북부동맹이 창당하기도 하였다. 정치적 뿐만 아니라 1960년대에서는 극우 성향의 단체들과 붉은 여단을 포함한 극좌 성향의 단체들이 테러리즘을 일으켰던 것이 납탄 시대였고, 이 사회혼란기는 1980년대 쯤에 되어서야 완전히 사라졌다.

급진우파[편집]

가끔, 인종주의파시즘 경향을 멀리하는 아나코-자본주의자들 또는 신자유주의자들은 급진우파와 극우를 분리해서 써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극우의 경우, 파시즘, 민족사회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맞지만, 급진우파는 신자유주의를 포함한 반공 자유지상주의를 표현하는 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급진우파는 극우의 속성에 속하므로, 사실상 같은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44]

사상[편집]

극우 정당 및 단체[편집]

극우 정당들은 일반적으로 인정되지만 명확한 기준은 없으며, 당사자들은 극우라는 말을 부정한다.

현존하는 극우 정당 및 단체[편집]

과거에 존재했던 역사적인 극우 정당 및 단체[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Mudde, Cas, 《The ideology of the extreme right》(Manchester University Press 2002) 참조
  2. 김동춘, 『한국의 우익, 한국의 '자유주의자': 상처받은 자유주의』(2001년, 나남출판사) - 학술논문
  3. L. I. Krimerman & L. Perry, 《State Socialism and Anarchism: How Far they Agree and Wherein they Differ: In Patterns of Anarchy》(Garden City NY: Anchor Books/Doubleday) PP. 61 ~ 69 참조
  4. 극우의 특징
  5. 노르웨이 진보당의 역사
  6. 강준만의 한국현대사산책:1940년대편 1권(인물과사상사, 2006) 230
  7.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II:기원과 원인(박명림, 나남, 1996) 157~158
  8. 북한 50년사:우리가 떠안아야 할 반쪽의 우리 역사(김학준, 동아출판사, 1995) 110
  9.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II:기원과 원인(박명림, 나남, 1996) 157
  10. 북한 50년사:우리가 떠안아야 할 반쪽의 우리 역사(김학준, 동아출판사, 1995) 107
  11. 승차편의 공여에 관한 의뢰장과 임정 신임장
  12.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II:기원과 원인(박명림, 나남, 1996) 158
  13. 강준만의 한국현대사산책:1940년대편 1권(인물과사상사, 2006) 231
  14. 김삼웅, 《백범평전》 (시대의 창, 2004) 531페이지
  15. 한국민족운동사연구회, 《한국민족운동과 민족문제》(국학자료원, 1999) 466페이지
  16. Cas mudde의 《The ideology of the extreme right》와 김기협의 《뉴라이트 비판》 참조
  17. 차상철, 『미국의 냉전정책과 한국: 분단체제와 극우반공이데올로기의 정치경제학』(1992년, 역사비평사) 참조 - 학술논문
  18. 한국 극우1
  19. 우석훈, 『한국 극우파 단상: 극우가 넘쳐나는 오늘 한국』(2005년, 월간 말) 참조 - 학술논문
  20. 한국 극우2
  21. 한국 극우3
  22. 한국 극우4
  23. 한국 극우5
  24. “한국 극우6”. 2013년 12월 1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3년 12월 12일에 확인함. 
  25. 한국 극우와 정신질환
  26. [1]
  27. 대한민국의 극우 특징1
  28. 대한민국 극우의 특징2
  29. 한국 극우 특징3
  30. 《Die nationalsozialistische Ideologie der NPD》 참조
  31. 독일 극우
  32. 소련 시절에 보장되었던 무상의료, 무상주거, 무상교육, 식량 배급제, 노동권은 소련이 붕괴된 후인 19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러시아 사회에서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33. Gitelman, Sakwa 의 《Developments in Russian Politics》 참조
  34. 러시아 내 스킨헤드 정보1
  35. 미국 극우 참조
  36. 이들은 군비증축, 패권주의, 야경국가론 등을 주장하며, 사회적으로는 권위주의,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를 동시에 주장한다.
  37. Hayden, Jay G. (09-09-1956), "Chances Slim 'Far-Rightist' Ticket Would Be Important", Seattle Daily Times – via NewsBank (subscription required): 109
  38. 급진적인 아나코 자본주의자들은 국가를 폐지하고, 민간 기업이 정부를 대신하는 체제로 만들자고 주장하며, 보통 이들은 세금제도 폐지와 금융 규제, 산업 규제 등을 폐지하자고 주장한다
  39. “미국 자유당의 아나코-자본주의 성향 참조”. 2015년 5월 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5년 5월 5일에 확인함. 
  40. 《Japanese Political History Since the Meiji Renovation 1868-2000》 참조
  41.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참조.
  42. 《대만 어디에 있는가》참조
  43. 국민전선 정보
  44. 《An Irish history of civilization, Volume 2》
  45. 사회/문화적
  46. 옛날에는 극우 정당이었다.
  47. 팔랑헤주의를 상징하는 민족 가톨릭주의 정당인 가톨릭 국민운동당에 속하였다.
  48. Manyin, Mark E. (2010), 《U.S.-South Korea Relations》,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26쪽 
  49. 이후 국민보수당으로 바뀌었다가 1997년 6월 21일 조국과 자유를 위해와 통합
  50. 2012년에 부활
  51. 극좌도 사실상 포함된다
  52. 중도좌파도 사실상 포함된다
  53. 나치 독일오스트리아 병합으로 인하여 활동 금지 및 해산
  54. 우익 섹터의 창당으로 합병
  55. 정당의 경우 2014년 5월 22일 우익 섹터에 합병
  56. 1934년 4월 14일 창당한 파시즘 정당이었으나, 파시즘의 색채가 강해 1934년 7월 금지된 정당이다. 그러나 급진국민캠프는 1935년 창당한 팔랑헤 정당 급진국민캠프 팔랑가급진국민캠프 ABC를 창당하였지만 1939년 금지되었다. 그러나 1993년 이 정당이 다시 부활하여 권위주의적 성향을 띄고 있다. 2012년 폴란드 정부가 급진국민캠프를 공식적으로 승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