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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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편집]

기년[편집]

사건[편집]

  • 8월 5일(음력 7월 17일) - 태조(太祖)가 송경(松京) 수창궁(壽昌宮)에서 공양왕으로부터 선위(禪位) 받는 형식으로 왕위에 오름으로써 조선왕조가 개국하였다.[1]
  • 음력 10월 19일 - 일본 축주 태수(筑州太守) 장충가(藏忠佳)가 승려 장주(藏主)·종순(宗順) 등을 보내어 사로잡혀 갔던 조선의 인민들을 돌려보내고 또 수호(修好)하기를 청하였다. [2]
  • 12월 1일(음력 11월 17일) - 인재의 천거 등 시무책을 정함.
  • 음력 11월 29일 - 예문관 학사(藝文館學士) 한상질(韓尙質)을 명나라 남경에 보내, 조선(朝鮮)과 화령(和寧) 중에서 국호(國號)를 고치기를 청하게 하였다. [3]
  • 음력 11월 - 조선이 승려 각추(覺鎚)를 무로마치 막부에 보내, 왜구의 금압(禁壓)과 피로인(被虜人)의 귀환을 요구함과 동시에 수호(修好)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대해 아시카가 요시미쓰는 답사(答使)를 보내 피로인 100명을 송환하면서 조선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4][5][6]

탄생[편집]

사망[편집]

각주[편집]

  1. 태조실록 (1413) 1권, 태조 1년 7월 17일 병신 1번째기사; 《조선왕조실록》〈조선왕조실록/태조실록/1년〉7월 17일, 태조가 수창궁(壽昌宮)에서 즉위하였다.
  2. 태조실록 (1413) 2권, 태조 1년 10월 19일 정묘 2번째기사
  3. 태조실록 (1413) 2권, 태조 1년 11월 29일 병오 1번째기사
  4. 하우봉 2010 155쪽. "태조 이성계는 즉위한 직후 室町幕府에 승려 覺鎚를 보내 왜구의 금압과 피로인의 쇄환을 요구함과 동시에 修好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대해 막부의 3대장군 足利義滿은 答使를 보내 피로인 100명을 송환하면서 조선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5. 손승철, 박찬기 2008 115쪽. "1392.11 승려 각추 왜구금압요청 『善隣國宝紀』"
  6. 《선린국보기(善隣国宝記)》

참고 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