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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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기원(檀君紀元) 또는 단기(檀紀)는 한민족의 역사가 시작되는 시점인 단군고조선 건국 연대를 기준으로 하는 상징적인 기년이다. 그레고리력을 기준으로 기원전 2333년이 단기 1년으로, 서기 2015년은 단기 4348년이 된다. (단군 기원 = 서력 기원 + 2333년)단기는 전설에 따른 것으로 사실인지는 아직 확인되진 않았다. 전근대 한민족의 조상들이 자신들의 역사가 중국과 대등하게 오랜 전통을 가졌음을 나타내는 자긍심의 표현인 것으로 평가되며, 현대에도 한민족의 상징적·신화적인 기년으로 인정되고 있다.[1]

역사[편집]

단군과 단군기원의 연대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이다. 일연은 이 책에서 “단군왕검요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불렀다.”라고 하였다. 또한 그곳에 주석을 달아 “요임금 즉위 원년은 무진년이니 즉위 50년은 정사년이지 경인년이 아니다.”라고 주석을 달았다. 이에 따르면 단군기원인 정사년은 (기원전 2284년)이다.[2]

이승휴(李承休)가 지은 《제왕운기》 동국군왕개국연대(東國君王開國年代)에는 제석천(帝釋天, 옥황상제)의 손자 단군이 제고(帝高)와 같은 무진년에 즉위하여 은(殷)나라 무정(武丁) 8년 을미에 아사달산에 들어가 신(神)이 되었는데, 그 동안 나라를 다스린 기간이 1,028년이라 했으며, 그 뒤 164년이 되는 주(周)나라의 호왕(虎王, 武王) 원년 기묘에 기자(箕子)가 조선으로 도망 와서 나라를 세웠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이승휴의 연대 기록은 당시의 전근대 역사학의 기준으로도 오류가 있는데, 주나라 무왕 원년으로 전근대 역사학에서 공인되어 있던 기묘년(기원전 1122년)을 중심으로 계산하면 《제왕운기》에서 단군이 즉위한 해는 기원전 2313년이 되며 이 해는 무진년이 아니다. 대체로 학계에서는 1,028년을 1,048년의 오기로 보며, 이렇게 보정하면 무진년(기원전 2333년)이 된다.

한편 단군기원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언급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사》 열전 '백문보(白文寶, 1303~1374)'조(條)로, 공민왕에게 글을 올려 단군기원을 언급한 부분이 있다.

하늘의 기수(氣數)는 순환하여 700년이 한 소원(小元)이 되고, 3,600년이 쌓이면 한 대주원(大周元)이 되니, 이것이 황제(皇帝)와 왕패(王覇)의 치난흥쇠(治難興衰)의 기회가 됩니다. 우리 동방은 단군부터 지금(1362년)까지 이미 3,600년이므로 주년(周年)의 기회가 됩니다.

여기서 백문보가 언급한 단군기원도 역시 현재의 단기(기원전 2333년)와 연대가 다르다.

단기인 기원전 2333년을 확정적으로 서술한 것은 조선 세종서거정이 만든 《동국통감》이 최초이다.

이가 단군(檀君)이며 국호(國號)는 조선(朝鮮)이었는데, 바로 당요(唐堯) 무진년(戊辰年: 기원전 2333년)이었다.

《동국통감》에서 단기를 요임금 25년 무진년으로 서술한 것은 명나라의 건국과 조선의 건국을 염두에 둔 것이라 평가된다. 요임금은 중국의 신화적인 제왕으로 연대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아 다양한 즉위년이 비정되어 있다. 그 가운데 갑진년(기원전 2357년)을 즉위년으로 하는 요임금 25년 무진년이 선택된 것은 명나라의 건국(1368년)과 조선의 건국(1392년)과의 기간이 동일하게 3725년 차이이기 때문이다. 이는 조선의 역사와 중국의 역사가 같은 주기로 변화하고 전개되어 왔다는 근거로 인식되었으며, 유교적 명분에 의해 중국과의 관계가 천명에 따른 것이라는 의도와 함께, 조선 역시 중국과 대등하게 오랜 역사를 가졌다는 자주적인 의식의 표현이라 평가된다.

단기폐지 논란[편집]

단기연호 병용은 1948년 9월 12일 국회 133명의 재석의원 중 106명의 찬성을 얻어 '연호에 관한 법률'을 의결하고 이어 단군기원(檀君紀元)을 연호로 하는 '법률 제4호'로 공포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5.16 군사정부가 1961년 12월 2일부 법률 제775호 '연호에 관한 법률'에서 "대한민국의 연호는 서력기원으로 한다"고 해 단군기원이 폐지되고 서력기원이 채택됐다.

하지만 국회의원 일부에서 단기연호를 병용하자고 나서고 있다. 이들은 서기를 포기하고 단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많이 쓰고 있는 서기와 함께 우리의 주체성을 함께 살리는 단기를 병용하자는 것이고 분단된 남북의 동질성 회복과 민족 통일을 위해서도 개천절의 의미는 다시금 조명돼야 하며 단기 연호 병용은 반드시 부활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법제처2012년 7월 8일 "대한민국의 공용연호는 서기이며 단기를 함께 쓸 경우 불기(佛紀), 공기(孔紀)도 문제되므로 혼란이 커질 것"이라며 단기연호를 공용연호로 쓸 수 없음을 발표한 바 있다. [3]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이은경, 〈국사 교과서의 단군기원 서술에 대한 일고찰〉, 인하대학교 , 2002년
  2. 박은봉 (2007-11-24).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초판 1쇄판). 서울: 책과함께. 285~286쪽쪽. ISBN 978-89-91221-31-4. 
  3. “정치권, 개천절맞아 "홍익인간 정신 받들어 대선승리". 아시아경제. 2012-10-03. 2013-01-25에 확인함.  이름 목록에서 |이름1=이(가) 있지만 |성1=이(가) 없음 (도움말)

바깥 고리[편집]

  • 단군기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