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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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Berlin
Berlin Montage 4.jpg
Flag of Berlin.svg Coat of arms of Berlin.svg
시기 휘장
베를린 (독일)
베를린
베를린의 위치
좌표 북위 52° 31′ 7″ 동경 13° 24′ 29″ / 북위 52.51861° 동경 13.40806° / 52.51861; 13.40806좌표: 북위 52° 31′ 7″ 동경 13° 24′ 29″ / 북위 52.51861° 동경 13.40806° / 52.51861; 13.40806
행정
나라 독일 독일
인구
인구 3,562,166 명 (2014년)
인구밀도 4,000 명/km2
지리
면적 891.85 km2
해발 34 m
기타
시간대 중부유럽 표준시
우편번호 10115 ~ 14199
지역번호 030

베를린(독일어: Berlin IPA[bɛɐˈliːn] 듣기 )은 독일의 수도이다. 2014년 12월 현재 인구 3,562,166명으로, 독일 내 단일 규모로는 최대의 도시이다. 독일 북동부 슈프레 강하펠 강 연안에 있다. 도시 전체가 브란덴부르크 주에 둘러싸여 있으며 베를린 자체도 연방주이다. 한자로 음차해서 백림(중국어: 柏林, 병음: bó lín, 보린[*])이라고도 한다.

역사[편집]

제국의회 건물
베를린의 행정구역 지도
베벨 광장아름다운 버디베어: 평화와 자유의 베를린의 상징
Berlin bear figure
Berlin Ampelmann

초기 역사[편집]

약 1,500년 전에는 현재의 베를린 지역에 다양한 슬라브 민족들이 살고 있었다. 독일인 정착자들이 1100년대에 이 지역을 차지하기 시작하였다. 베를린은 이때까지만 해도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았고, 슈프레 강의 북동쪽 둑에서 자라나기 시작하였다. 같은 시기에 슈프레 강의 섬에서 쾰른(Coelln)이라는 마을이 형성되었다. 두 마을은 통상의 중심지였다. 1307년에는 베를린과 쾰른이 그들의 공동 방어를 위한 연합을 설립하였고, 공통의 시청사를 지었다. 15세기에 베를린은 브란덴부르크 주의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15세기 후반에는 호엔촐레른 왕가가 베를린을 그들의 관저로 만들었다. 30년 전쟁 중에는 큰 피해를 입었고, 인구가 6,000명으로 줄어들었다.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편집]

베를린은 호헨촐레른 왕가의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아래 다시 번영하였다. 그는 브란덴부르크를 1640년부터 1688년까지 통치하였고, 산업을 촉진시키고 건설에 후원하였다. 그의 통치아래, 슈프레 강과 오데르 강 사이에 운하를 건설하였다. 1701년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아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1세가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로 삼았다. 1710년에는 베를린, 쾰른과 3개의 이웃 집단들이 통합하여 하나의 베를린을 이루었다. 1700년대에 베를린은 작은 읍에서 번영하는 통상과 제조업의 중심지로 증대하였다. 예술과 과학이 번창하였고, 산업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1806년부터 1808년까지 나폴레옹 1세에 의해 점령당하였고, 그가 떠나자 독일의 강국이 된 프로이센의 수도로 번영하였다. 그 후 1871년 독일 제국의 수도가 되고 제2차 세계 대전 때까지 독일의 수도였다. 도시의 인구는 1871년에 826,000명에서 1910년에 2,076,200명으로 늘어났다.

불안한 시대[편집]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말에 독일 제국이 무너졌고, 베를린은 새 바이마르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전쟁 기간 동안에 파업, 폭동, 또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하여 도시는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베를린은 계속 자라났고, 1920년에는 7개의 도시들, 59개의 마을, 27개의 소유지가 베를린에 합쳐졌다. 1930년대에는 전 세계로 번져간 경제 대공황에 의하여 타격을 받아, 후에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정권이 세워지는 원인이 되었다.

분단[편집]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분단되면서 베를린도 동베를린서베를린으로 분단되었다. 서베를린의 주권은 서독에 있었지만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에 완전히 둘러싸인 월경지가 되었다. 동베를린은 동독의 수도가 되었고, 서베를린은 서독일의 수도가 되지않고 뮌헨이 서독일의 '임시 수도'가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연합국 4개국이 베를린을 차지하여, 그들의 점령지를 4개로 나누었다.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려는 동베를린 시민들이 늘자, 이를 막기 위해서 독일민주공화국 정부는 1961년에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경계에 베를린 장벽을 세웠는데 냉전의 상징이 되었다. 빌리 브란트는 바로 이 때 서베를린의 시장직을 역임했다.

통일 이후 독일의 수도[편집]

1989년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은 해체되고, 1990년 독일이 전격적으로 통일되면서 베를린은 연방 주 지위를 얻었다. 도시이자 독일의 연방주인 곳은 함부르크브레멘 뿐이다. 통일 이전부터 동서독 모두의 수도였기에 별다른 이견없이 1991년에 수도로 확정되었다. 현재 시장은 미하엘 뮐러(2014 ~ )이다.

주민[편집]

본고장 독일인 이외에 인구의 15%는 외국인이다. 이들은 베를린에 근로자로 들어왔는데, 그중의 절반은 터키인들이다. 베를린은 이스탄불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터키인들의 도시로 알려졌다. 또한 그리스, 이탈리아, 전 유고슬라비아, 폴란드, 러시아인들과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온 이민들도 살고 있다. 베를린 시민의 25%는 개신교루터교 신자이고, 10%는 로마 가톨릭교회이다. 또한 유대교와 외국인 이민들에 의한 이슬람, 정교회도 존재한다.

문화[편집]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세계에서 유명한 오케스트라 단들 중의 하나이다. 또한 독일 오페라의 중심지이며, 베를린 국제 영화제로도 유명하다.

경제[편집]

베를린의 노동자들은 금융, 보건, 부동산, 소매, 교통 등의 서비스업에 고용되어있다. 베를린의 제조업은 독일이 통일된 이래, 쇠퇴하였다. 그러나 기계, 전기 제품, 화학 공업이 발달하였고, 식품 공업도 도시의 중요한 산업이다.

스포츠[편집]

분데스리가에서 활동하고 있는 헤르타 BSC 베를린이 있으며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자매 도시[편집]

베를린은 세계 각국의 여러 도시와 자매결연을 맺어왔다. 과거 동베를린의 파트너 도시들은 1990년 재통일 당시에 관계를 청산했다. 냉전 시절에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은 각기 자신들이 속한 블록의 도시들과 자매결연 관계를 맺었는데, 동베를린은 주로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도시들과 자매결연을 맺었다.

교통[편집]

도시교통을 위하여 지어진 철도로는 비교적 빠르고 지상구간이 많은 철도인 S반과 주로 지하로 지어진 U반, 노면전차 등이 있다. 대한민국으로 가는 항공편은 없으므로 프랑크푸르트암마인뮌헨에서 내려 열차를 이용하거나, 프라하 등지에서 환승해야 한다.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