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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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종로구청
종로구청
종로구의 위치
종로구의 위치
현황
국가 대한민국
면적 23.91 km²
세대 73,091 가구 (2017.6.30.)
총인구 154,408 명 (2017.6.30.)
행정동 17개
법정동 87개
구청장 김영종(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정세균(무소속, 종로구)
구청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봉로 43
홈페이지 종로구청
상징
구목 은행나무
구화 철쭉꽃
구조 까치

종로구(鐘路區)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의 중북부에 있는 자치구이다. 종로구는 1394년 조선 왕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한 후 중구와 함께 서울특별시의 원도심을 이루었고, 현재도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교육, 문화의 중심지 구실을 하고 있다.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을 일컫는 내사산을 연결한 한양도성남산을 빼면 모두 종로구 지역이다. 조선시대의 수도인 한양은 도성 안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이로 인해 자연히 성 안과 성 밖을 잇는 문들도 생겼다. 한양도성은 전체 둘레 약 18.7 km 구간 요소마다 네 개의 대문을 만들었는데 유교의 5상(常)인 ‘인의예지신(仁義禮知信)’에 따라 동쪽에 흥인지문, 서쪽에 돈의문, 남쪽에 숭례문, 북쪽에 숙정문을 두었다. 그 가운데에는 보신각을 두어 도읍지의 이상과 정치 이념을 나타냈다. 또한 대문과 대문 사이 요충지에 소문을 두어 관문으로 쓰게 했는데 바로 혜화문, 광희문, 소의문, 창의문이다. 1975년에 333,970명을 기록한 뒤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역사[편집]

1940년 전후 종로3가쪽에서 본 2가 모습.

지명[편집]

종로라는 이름은 지금의 종로1가에 도성문을 여닫는 시각을 일러주는 큰 종을 매달았던 종루에서 비롯한다. 아침의 ‘파루’와 저녁의 ‘인정’을 말하는데, 종루가 있다고 해서 운종가라도 불렀으며, 1943년 4월 1일 구제도를 실시할 때 ‘종루가 있는 거리’라는 뜻으로 종로구라 이름 붙였다.

연혁[편집]

  • 1394년 한양으로 천도하여 이듬해 6월 6일에는 한양을 한성부로 고쳤으며 9월 종묘, 사직, 궁궐을 완성하였다.
  • 1396년에는 백악산, 낙산, 목멱산, 인왕산을 잇는 약 18km의 도성을 쌓았으며 한성부의 행정구역을 5부 52 방(동부 12방, 남부 11방, 서부 11 방, 북부 10방, 중부 8방)으로 하였다.
  • 1910년 10월 1일 : 한성부를 경성부로 개칭.
  • 1911년 4월 1일 : 경성부의 행정조직을 도성을 기준으로 성안은 5부 36방, 성밖은 8면으로 하는 5부 8면제를 시행하면서 지금의 종로구는 중부8방과 동부 2방이 해당되었다.[1]
  • 1914년 4월 1일 : 5부의 행정 구역을 넓혀 8면 가운데 도성 근처 지역을 5부로 편입하였는데, 그 가운데 지금의 종로구에 해당하는 일부 지역이 동부에 편입되었다.[2]
  • 1943년 6월 10일 : 경기도 경성부 종로구를 설치하였다.[3]
  • 1946년 10월 1일 : 기존의 ~정(町)의 행정구역을 ~동(洞)으로 일괄 변경했다.[4]
  • 1947년 6월 : 동회제를 실시하였다.[5]
  • 1950년 : 경무대동회→경무동회 개칭
  • 1955년 4월 18일 : 행정동제 실시로 36개 행정동을 설치했다.[6]
  • 1970년 5월 18일 : 이름이 같지 않은 법정동과 동사무소 이름을 일치시키고 관내 행정동은 36개에서 25개로 통합조정했다.
  • 1975년 10월 1일 : 서대문구 중 평창동 등과 동대문구 중 창신동 등을 종로구로 편입했다.[7]
  • 1977년 9월 1일 : 누상동, 종로1가동, 종로5,6가동, 동숭동이 폐지되어 22개동이 되었다.[8]
  • 1980년 7월 1일 : 종로3가+종로4,5,6가→종로3,4가동, 5,6가동(충신동 합속).[9] (21행정동)
  • 1980년 : 명륜3가동 관할 와룡동 1번지→종로1,2가동 관할 와룡동 합속
  • 1998년 12월 1일 : 세종로동을 사직동에, 종로1·2가동과 종로3·4가동을 종로1·2·3·4가동으로 합동하였다.[10] (19행정동)
  • 2008년 : 사직동 관할 세종로 일부→종로1,2,3,4가동 합속
  • 2008년 11월 1일 : 청운동과 효자동을 청운효자동으로 합동하였다.[11] (18행정동)
  • 2012년 8월 1일 : 명륜3가동과 혜화동을 혜화동으로 합동하고 종로1,2,3,4동 관할 와룡동 일부를 이에 합속.[12] (17행정동)

지리[편집]

종로구의 지리 형세는 예부터 명당으로 주목했다. 인왕산·백악산·낙산으로 이어지는 높고 낮은 산과 언덕이 천연 담장을 이루고 있고, 남쪽에는 큰 개천이 울타리 구실을 하며, 그 안에 황토마루·솔고개·배고개·붉은재·박석고개·마두산 등 작은 둔덕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판판한 분지를 이루고 있었다.[13]

정치[편집]

종로구는 예로부터 정치 1번지라고 불렸는데 경복궁, 창덕궁 등의 궁궐들과 청와대, 정부중앙청사, 주한미국대사관, 서울지방경찰청 등이 있고 부촌들도 있으며 대학가도 위치해 있고, 빈민층도 있어서 정치적으로 표가 많이 갈려오는 편이었다. 정치1번지의 위상으로써 여야의 정치거물들이 많이 출마하는 지역이기도 했다. 현재 국회의원은 정세균이고 현재 종로구청장은 김영종인데, 과거에는 민주당의 전신 정당들이 앞서기도 했었다. 그러나 유신정권부터 이명박 정권까지 새누리당의 전신 정당들이 당선되어 왔지만, 현재는 혜화동의 영향으로 다시 더불어민주당이 우세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다만 평창동, 사직동, 삼청동 등은 부촌영향으로 여당이 아직 우세한 지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문재인 후보가 종로구 전역에서 승리했다. 여야간 표차가 얼마나지 않는 지역 중 하나이다.

국회의원 선거[편집]

대통령 선거[편집]

대통령 선거에서는 1952년, 제2대 대통령 선거와 1956년의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연속으로 자유당의 이승만 후보가 상대후보를 누르고 1위를 했다. 하지만 1960년, 4.19혁명 이후에는 상당히 달라지는데 주로 민주당계가 과반수를 넘어서 1위를 한다. 1963년,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정당의 윤보선 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후보를 누르고 1위를 했다. 하지만 1967년, 제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경제개발 등의 영향으로 민중당의 윤보선 후보는 여전히 1위이지만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대통령이 표차를 올리며 크게 선전한다. 하지만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다시 신민당의 김대중 후보가 큰 표차로 1위를 하였다. 이후 유신정권과 5공화국 체제가 지속되면서 대통령 선거를 간선으로 뽑으며 상황은 조금씩 변화되어갔다. 민주화 이후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평화민주당의 김대중 후보가 1위를 하지만,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후보와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후보의 표차를 합치면 보수후보들이 총 합쳐서 65% 넘는 득표율을 올렸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 같은 현상은 이어져서 민주당의 김대중 후보가 종로구에서 1위를 하지만 집권여당인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후보와 통일국민당의 정주영 후보, 신정치개혁당 박찬종 후보의 득표율을 합치면 59~60%가량의 득표율을 보수진영이 가져갔고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역시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가 1위를 하지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의 표차를 합치면 역시 여전히 종로구에서 보수진영이 과반수를 넘었다. 하지만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종로구에서 큰 표차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1위를 하는데,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표를 합치면 민주진보진영이 종로구에서 10% 이상의 격차로 크게 승리한다. 하지만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상대로 표차를 크게 벌려 종로구에서 보수진영이 승리했고, 무소속 이회창 후보의 표차를 합치면 더욱 큰 표차로 보수진영이 승리했다. 하지만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다시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가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에게 3% 차이로 과반수 이상을 가져가며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평창동, 삼청동, 사직동의 영향으로 박근혜 후보 역시 표차를 좁히며 크게 선전했다. 접전 구도 양상이 쭈욱 이어졌으나,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상대로 큰 격차로 압승을 거두었으며, 평창동과 삼청동, 사직동에서도 크게 이겼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표를 합치면 민주진보진영은 득표율 65%를 넘겼을 정도로 과거와 달리 압승을 거두었다.

지방 선거[편집]

지방선거의 경우 1995년 1회 지방선거는 서울시장 후보는 민주당조순을 압도적으로 지지했으며, 종로구청장은 민주당의 정흥진 후보가 당선되었다. 1998년 2회 지방선거는 서울시장은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였던 고건이 당선되는데, 종로구의 경우 고건 후보의 득표율이 높았다. 종로구청장은 새정치국민회의 정흥진 현 종로구청장이 계속 당선되었다. 하지만 2002년 3회 지방선거에서는 서울시장 후보중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고 종로구청장은 한나라당 김충용 후보가 당선되었다. 2006년 4회 지방선거에서는 계속해서 서울시장의 경우는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가 종로구에서 지지를 받았으며, 또한 종로구청장은 김충용 현 구청장이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2010년 5회 지방선거에서 다시 판세가 뒤집어지는데 종로구청장의 자리에서 한나라당 정창희 후보를 누르고 민주당의 김영종 후보가 당선된다. 그러나 서울시장은 오세훈 현 서울시장이 표차에 약간 뒤지기는 했지만, 자유선진당 지상욱 후보와의 표차를 더하면 보수성향 정당 후보들이 앞섰다. 하지만 2011년 재보궐선거에서 야당 성향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되며 야당이 다시 우세를 보이고, 2014년 6회 지방선거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박원순 현 서울시장이 재선에 성공할 때, 종로구 역시 압도적인 표차로 새누리당정몽준 후보를 앞섰다. 종로구청장도 김영종 현 구청장이 재선에 성공한다.

행정 구역[편집]

종로구의 행정 구역은 87개의 법정동을 관리하는 17개의 행정동으로 구성한다. 종로구의 면적은 23.91㎢이며, 인구는 2015년 6월 30일을 기준으로 72,882세대, 155,695명이다.[14]

행정구역도
행정동 한자 면적 (㎢) 세대 인구 (명)
청운효자동 淸雲孝子洞 2.57 6,023 15,449
사직동 社稷洞 1.23 4,574 10,477
삼청동 三淸洞 1.49 1,558 3,485
부암동 付岩洞 2.27 4,566 11,478
평창동 平倉洞 8.87 7,395 19,816
무악동 毋岳洞 0.36 3,220 8,598
교남동 橋南洞 0.35 4,091 8,342
가회동 嘉會洞 0.54 2,408 5,520
종로1.2.3.4가동 鍾路1.2.3.4街洞 2.36 5,276 8,984
종로5.6가동 鍾路5.6街洞 0.60 3,185 6,438
이화동 梨花洞 0.78 4,520 9,521
혜화동 惠化洞 1.11 9,246 18,303
창신제1동 昌信第1洞 0.31 3,500 8,307
창신제2동 昌信第2洞 0.26 4,937 12,120
창신제3동 昌信第3洞 0.23 3,087 9,311
숭인제1동 崇仁第1洞 0.23 3,256 7,406
숭인제2동 崇仁第2洞 0.35 4,817 9,593
종로구 鍾路區 23.91 72,882 155,595

교육[편집]

대학과 종로구[편집]

1395년 조선 태조 4년, 도읍지 한양에는 한성부 동부 숭교방[15] 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새롭게 성균관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성균관을 착공하여 태조 7년(1398) 7월에 준공하게 되었는데 성균관에는 문묘, 명륜당을 비롯하여 동서재, 정록소, 양현고, 식당 등의 건물이 있었다. 조선 초기의 성균관 직제는 고려의 제도를 그대로 답습하여 대사성 1인, 좨주[16] 1인, 악정[17] 2인, 직강 1인, 전부[18] 1인, 박사 2인, 직학[19] 2인, 학유[20] 4인 등 도합 22인의 교수직을 두었다.

그 후 1401년 태종 원년 7월의 관제 개혁 때, 직명 일부를 개정하여 좨주는 사성(司成)으로, 악정은 사예(司藝)로, 전부는 주부 등으로 바꾸었는데, 성균관 관원은 성균관 유생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 가운데 일부는 사부학당 교수, 훈도를 겸하여 사학생도들도 가르쳤고, 또 종학박사를 겸하여 종친을 교육하는 일도 맡았다. 성균관의 직제는 세조 12년(1466) 1월의 관제 경정(官制更定) 때 축소되어 ≪경국대전≫에 따르면, 성균관의 장인 지성균관사는 대제학이 예겸하고, 그 아래 동지사 2인은 겸관이었으며, 대사성 1인, 사성 2인, 사예 3인, 직강 4인, 전적 13인, 박사 3인, 학정 3인, 학유 3인, 학록 3인 등 38인의 관원으로 문묘의 석전제와 유생의 교육을 맡았다.

한편 성균관 유생의 정원은 생원, 진사 1백 인, 기재 1백 인 도합 2백 인이었으며, 당시 이들의 경비는 양현고와 성균관에 주어진 전지 및 이를 경작하는 노비로 충당되었다. 성균관은 이렇듯 구한말 갑오경장(1894) 때까지 조선의 최고 교육기관이었는데 1910년 8월 국권피탈로 대한제국의 국권을 일제가 빼앗자 1920년 6월 100여 명의 독립운동가들이 재단법인 《조선교육회》를 발기하고 '조선민립대학설립운동'을 전개하여 종합대학의 설립을 추진하였다.

이에 일제가 한국인의 고등교육기관을 막을 목적으로 1924년 일본 정부가 서울(당시 경성부) 연건동에 종합대학으로 《경성제국대학》을 세웠다. 후에 경성제국대학이 서울과 그 근교 9개 전문학교를 하나로 합쳐 하나의 종합대학교로 설립한다는 내용의 1946년 7월 13일에 발표된 국립 서울대학교 설치 방침으로 촉발한 '국립 서울대학교 설치안(국대안) 파동을 겪게 되면서 1946년 8월 22일을 설립일로 하여 국립 서울대학교로 다시 탄생하였다.

서울 종로구에 있었던 낙원동 교사 모습(1908년 11월 2일 준공, 일명 서북회관)

또한 예부터 이 지역에 향교 가 있어 ‘교동’으로 불렸던 종로구는 1908년 서북 출신의 박은식, 이갑, 이동휘, 안창호 등이 서북학회를 만들고 모금을 통한 회관 건립을 계획, 착수하여 33명의 공동 소유로 낙원동 282번지에 건물을 지었다.

당초 서북학회는 일제의 강압책으로 국권회복운동이 어려워짐에 따라 관서지방(평안남북도·황해도)의 서우학회(西友學會)와 관북지방(함경남북도)의 한북흥학회(漢北興學會)가 통합해 1908년 1월 조직한 애국계몽운동 단체로, 국권을 회복하고 인권을 신장하여 입헌공화국을 수립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당시 서우학회박은식(朴殷植)·김병희(金秉熹)·신석하(申錫廈)·장응량(張應亮)·김윤옥(金允玉)·김병일(金秉一)·김달하(金達河)·김석환(金錫桓)·김명준(金明濬)·곽윤기(郭允基)·김기주(金基柱)·김유탁(金有鐸) 등이 발기하였다.

한북흥학회는 오상규(吳相奎), 이준(李儁), 유진호(兪鎭浩), 설태희(薛泰熙), 이동휘(李東輝), 이종호(李鍾浩), 강용구(康瑢九), 윤익선(尹益善), 이재성(李載聖), 태명식(太明軾), 주우(朱瑀), 김주병(金炳), 양효건(楊孝健), 강윤희(姜玧熙), 정진홍(鄭鎭弘) 등이 설립하였다.

조직은 서우학회와 한북흥학회를 토대로 서울에 총사무소를 두고, 31개 지역에 지회를 설치하는 한편 69개 지역에 학교를 두었다. 평안남북도·함경남북도·황해도의 신흥시민층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회원은 2,500여 명이었다.

서북학회의 건물은 청나라 기술자를 불러들여 지었고 당시에는 보기 드문 현대식 건축물이어서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33명의 이름으로 지어진 것이 색다르다.[21] 공사기간을 거쳐 1908년 11월 2일에 준공되었다.

낙원동 교사는 3층 양옥이었는데 3층이라지만 1층은 반지하다. 연건평 395평였으니 1886년 서울 중구 정동에 건평 200평 규모의 한식 기와집에서 시작된 초창기 이화학당보다는 훨씬 컸다. 여기서 단국대건국대(설립인가 순)가 태동하고 국민대는 설립 기성회의 임시 사무실로 썼다.

이보다 예로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서북협성학교도 한 때 이 건물에서 배우고 가르쳤는데 '종로 낙원동 교사'로 불리면서 서울대학교가 있었던 혜화동 대학로(마로니에 공원)와 더불어 대학가에서 꽤 알려졌던 곳이다. 유서 깊은 '종로 낙원동 교사'로 신흥 사학의 산실이었기 때문이었다.[21]

이후 '종로 낙원동 교사'였던 서북회관은 이후 백화점의 박흥식이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운영하다 민중병원을 운영하던 함경남도 단천 출신의 건국대 설립자 유석창에게 건물의 소유가 넘어갔다. 이후 1977년 건물은 도시계획으로 철거·해체, 1985년 건국대학교 교정안으로 이전·복원되어 현재 군자동 건국대내의 상허기념관으로 활용하면서 등록문화재 제53호 '서북학회회관(西北學會會館)'으로 등록되어 있다.

참고로 대학 50년사[22] 를 보면 대학설립의 비사를 어느 정도 살펴볼 수 있는데 해방후 새롭게 정립한 '민족정기'로 1946년 8월 22일서울대학교의 '개교일'로 잡아 지금까지 기념해 오고 있듯이 설립 인가서를 기준으로 2년제 전문대학 형식이던 이화여자전문대가 신청일자가 1946년 6월 24일로 기록된 제1호 인가서를, 연희전문대1946년 7월 31일부로 기록된 제2호 인가서를 미군정청 학무국으로부터 받았고 보성전문대는 신청일자가 1946년 8월 5일부로 기록된 제3호 인가서를 받아 8월 15일, 고려대학교라는 종합대학 승격의 법률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역시 전문대학의 형태로 운영되던 종로구 혜화동혜화전문학교(惠化專門學敎)가 1946년 9월 20일, 동국대로 설립인가를 받았고 종로구 명륜동명륜전문학교(明倫專門學敎)는 1946년 9월 25일, 성균관대로 설립인가를 받았는데, 종로구 낙원동단국대1947년 11월 1일광복 최초 4년제 대학으로 정식 설립인가를 받았다. 1948년에는 숙명여대, 중앙대, 한양대, 국민대, 1949년에는 건국대, 홍익대가 설립인가를 받았으며 1949년에 가인가를 받았던 경희대1952년에 정식 설립인가를 받았고 일제때 평양에 있다가 폐교되었던 숭실대1954년 4월 15일, 당시 문교부로부터 정식 설립인가를 받았다.(한국대학신문광복이후 정규대학 설립인가 현황(1946년~1954년) 참조)[22][23][24]

교육기관[편집]

  
  
  
  
  • 대학원대학교
  
  
  • 특수학교
  

구청[편집]

종로구청
국가 대한민국
설치년도 1943년 6월 10일
단체장 김영종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봉로 43
상급기관 서울특별시청
관할구역 서울특별시 종로구 일원
웹사이트 종로구청 홈페이지
Pictogram infobox palace.png
종로구청
鍾路區廳
설립일 1943년 6월 10일

종로구청(鍾路區廳)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의 행정을 총괄하는 지방행정기관으로 종로구청장은 지방정무직공무원으로, 종로구 부구청장(3급)은 지방부이사관으로 임명한다.[25][26][27][28]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봉로 43에 자리하고 있다.

역대 구청장[편집]

  • 34대 : 김영종 (2014년 7월 1일 ~ 현재, 민선 6기)
  • 33대 : 김영종 (2010년 7월 1일 ~ 2014년 6월 30일, 민선 5기)
  • 32대 : 김충용 (2006년 7월 1일 ~ 2010년 6월 30일, 민선 4기)
  • 31대 : 김충용 (2002년 7월 1일 ~ 2006년 6월 30일, 민선 3기)
  • 30대 : 정흥진 (1998년 7월 1일 ~ 2002년 6월 30일, 민선 2기)
  • 29대 : 정흥진 (1995년 7월 1일 ~ 1998년 6월 30일, 민선 1기)
  • 28대 : 전장하 (1995년 5월 19일 ~ 1995년 6월 30일)
  • 27대 : 박형석 (1994년 12월 7일 ~ 1995년 5월 12일)
  • 26대 : 윤두영 (1993년 12월 30일 ~ 1994년 12월 6일)
  • 25대 : 김동훈 (1993년 3월 18일 ~ 1993년 12월 29일)
  • 24대 : 김진욱 (1991년 7월 25일 ~ 1993년 3월 17일)
  • 23대 : 배문환 (1986년 1월 14일 ~ 1991년 7월 24일)
  • 22대 : 변의정 (1984년 1월 14일 ~ 1986년 1월 13일)
  • 21대 : 김제량 (1982년 9월 10일 ~ 1984년 1월 13일)
  • 20대 : 김영섭 (1981년 9월 11일 ~ 1982년 9월 9일)
  • 19대 : 도재용 (1980년 7월 28일 ~ 1981년 9월 10일)
  • 18대 : 김영만 (1979년 6월 22일 ~ 1980년 7월 27일)

주요 기관[편집]

언론사[편집]

관공서[편집]

관광[편집]

광화문 광장과 광화문, 청와대

교통[편집]

도시 철도[편집]

(동대문구) ← 동묘앞역 - 동대문역 - 종로5가역 - 종로3가역 - 종각역 → (중구)
(서대문구) ← 경복궁역 - 안국역 - 종로3가역 → (중구)
(성북구) ← 혜화역 - 동대문역 → (중구)
(서대문구) ← 서대문역 - 광화문역 - 종로3가역 → (중구)
(중구) ← 동묘앞역 - 창신역 → (성북구)

자매 결연[편집]

참조 문헌[편집]

  • 『서울육백년사』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81년)
  • 『한국개항기도시사회경제사연구』(손정목 저, 일지사, 1982년)

각주[편집]

  1. 조선총독부령 제31호
  2. 조선총독부령 제111호, 1913년 12월 29일 공포
  3. 조선총독부령 제163호 (1943년 6월 9일)
  4. 서울시헌장 제1조
  5. 서울시령 제2호
  6. 서울특별시 조례 제66호 (1955년 4월 18일 공포)
  7. 대통령령 제7816호 구의증설및관할구역변경에관한규정 (1975년 9월 23일)
  8. 서울특별시 조례 제1181호 (1977년 8월 29일 공포)
  9. 시조례 제1413호
  10. 구조례 제383호 동사무소설치조례
  11. 구조례 제740호 동주민센터명칭과소재지및관할구역에관한조례 (2008년 9월 19일)
  12. 구조례 제945호 동주민센터명칭과소재지및관할구역에관한조례 (2012년 7월 20일)
  13. 최완기. 《한양: 그곳에서 살고 싶다?》 초판. 서울: (주)교학사. 81쪽. 
  14. 《제28회 2013 종로통계연보》. 종로구청. 2013. 44쪽, 54쪽.
  15. 崇敎坊, 명륜동 부근
  16. 祭酒
  17. 樂正
  18. 典簿
  19. 直學
  20. 學諭
  21. “(17) 유서 깊은 낙원동 교사 - 신흥 사학의 산실”. 한국대학신문. 2000년 7월 31일. 2009년 2월 25일에 확인함. 
  22. “미 군정기 대학 설립 봇물”. 한국대학신문. 2004년 1월 15일. 2010년 3월 1일에 확인함. 
  23. "1953년 戰禍 속 졸업생에게" 김창숙 선생 친필 훈사 발견”. 조선일보. 2011년 6월 25일. 2011년 6월 25일에 확인함. 
  24. “成大 창립자 김창숙 선생의 1953년 졸업훈사 공개”. 동아일보. 2011년 6월 25일. 2011년 6월 25일에 확인함. 
  25. 종로구 부구청장 김창식 전 서울시 식품안전추진단장 부임《서울문화투데이》2010년 1월 26일 박솔빈 기자
  26. '구청의 어머니' 서울시 자치구 부구청장 누구?《아시아경제》2013년 5월 4일 박종일 기자
  27. `지방선거 출마' 사직 공직자 명단《연합뉴스》2010년 3월 5일
  28. 종로구청, '행복한 우리동네 찾아가는 건강특강' 강좌 개최《헬스조선》2012년 6월 19일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