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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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표: 북위 37° 33′ 29.7″ 동경 127° 0′ 0.7″ / 북위 37.558250° 동경 127.000194° / 37.558250; 127.000194

동국대학교
Dongguk University
Dongguk University.png
표어 섭심, 신실, 자애, 도세
개교 1906년
종류 사립
총장 한태식(보광스님)
부총장 기획부총장 : 신재호, 교무부총장 : 양영진, 대외부총장 : 오원배
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위치 서울캠퍼스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1길 30
경주캠퍼스
경상북도 경주시 동대로 123
바이오메디캠퍼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동국로 32
LA캠퍼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규모 본교(서울·일산) 11 단과대학, 1 대학원
학생 수 학부: 본교(서울·일산) 14,010 (2012)
상징 흰코끼리
교색 주황      
학교법인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종교 조계종
웹 사이트 동국대학교 홈페이지

동국대학교(東國大學校, Dongguk University)는 4년제 사립 대학교로, 국운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여 있던 1906년 불교계 선각자들이 교육구국(敎育救國)의 목표를 갖고 불교인재를 길러내고자 설립한 명진학교에서 시작되었다. 약칭은 부산광역시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동대(東大)이다.

대한제국 시기 황실의 안녕을 기원하고 전국의 사찰을 총괄하기 위해 창건되었던 원흥사(元興寺)가 1904년 사사관리서의 폐지에 따라 기능을 잃자, 1906년 불교연구회(佛敎硏究會)가 주체가 되어 설립한 '명진학교'(明進學校)로 개교하였다. 1910년 불교사범학교, 1914년 불교고등학교, 1915년 중앙학림(中央學林)으로 개칭하였으며, 1922년 3·1 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교되었다. 1922년 전국의 불교사찰에서 재산을 출자하여 재단법인 조선불교 중앙교무원을 설립하고, 1928년 불교전수학교로 다시 개교하여 1930년 중앙불교전문학교로 승격됐다.[1]

1940년 혜화(惠化)전문학교로 개칭하였다가 1946년 동국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였고, 1953년에 종합대학으로 승격돼 현재의 동국대학교가 됨과 동시에 대학원이 설치되었다. 또 1978년 경주시에 분교를 설치하였다. 1982년 문리과 대학을 문과대학과 이과대학으로 개편하여 문이과의 균형잡힌 분과 학문 체제를 구축하였다.[1]

1983년 경주 한방병원을 개원하였으며, 1991년 의과대학부속 경주병원을 개원하였다. 2005년 일산 동국대병원 및 한방병원을 개원하였다. 현재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성남시 분당구, 경상북도 경주시 등에 양한방 대학부속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동국대학교서울특별시 중구 필동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식사동에 위치하며,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東國大學校 慶州分校, Dongguk University at Gyeongju)는 경상북도 경주시 석장동에, 동국대학교 로스엔젤레스캠퍼스(Dongguk University Los Angeles)는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위치해있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에 위치한 동국대학교 만해마을캠퍼스교육원에서는 매년 세계적 권위의 만해대상 수상이 이루어지는 만해축전이 개최되며, 국내외 문인들의 창작촌 등으로 운영되고 있다.

역사[편집]

동국대학교 학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명진관

1906년 ~ 1953년[편집]

동국대학교는 1906년 불교교육만을 전담하는 명진학교로 개교하여 1910년에는 불교사범학교, 1914년에는 불교고등학교, 1915년에는 불교중앙학림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1922년 3·1 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교되었다. 그 뒤 1924년에 전국 사찰에서 601,425을 기부하여 조선불교 중앙교무원을 설립하였다.[1] 1930년에 '중앙불교전문학교'로 운영하다가 1940년에는 혜화전문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1944년 5월 30일 일제의 전시동원령 따라서 다시 한 번 강제로 폐교를 당하였다.[2] 1945년 10월 27일 다시 혜화전문학교를 열었으며, 1946년 9월 20일에는 동국대학으로 승격됐다.

동국대학교가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된 이유로는 다음과 같은 얘기가 전해진다. 1946년 9월 20일 혜화전문학교가 동국대학으로 승격될 때 교명으로 제시된 안 중에는 '고려', '동국', '조선'이 들어 있었다.[3] 최종 결정 과정에서 논란이 많았지만, 광복 전부터 국문과에서 교편을 잡으며 명강의로 인기가 높았던 무애 양주동 교수의 의견이 반영되어 ‘햇빛 밝은 동쪽의 아침 나라’라는 뜻을 담은 ‘동국’으로 교명이 채택되었다는 얘기가 있다.[3]

한국 전쟁 기간인 1951년에는 1·4 후퇴로 인해 지금의 부산광역시 중구 신창동에서 피란 학교를 열었고, 1953년 9월에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1]

1954년 ~ 1980년[편집]

동국대학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3대 사학으로, 1970년대 후반까지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4] 1956년 3월에 학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명진관을 착공하였으며, 그 해 12월 30일 공사를 마쳤다. 1965년에는 은석국민학교를 인수하였으며, 이어 1966년에는 흥국중・고등학교를 인수해 1967년에 동국중・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꾸었고, 금산중・상업고등학교와 명성여자중・고등학교를 인수하였다. 또한 1967년에는 행정대학원을 새로 만들었다.[1] 1978년에는 경주에 분교를 설립하였고, 1979년 개교해 교세를 확장하였다.

한편 동국대학교는 대한민국민주화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60년 4·19 혁명에 참여하였고, 그 과정에서 경찰이 발포하여 노희두 법학과 3학년 학생이 사망하기도 하였다.[5] 1960년 11월 25일4·19 혁명 당시 산화한 학생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동우탑을 설치하였다.[1] 1965년에는 한일기본조약의 체결에 반대하며 6·3 항쟁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1965년 4월 13일에 김중배 농학과 2학년 학생이 경찰의 곤봉에 맞아 두개골 골절로 사망하였다.[6]

1981년 ~ 2000년[편집]

1970년대 중반 시작된 학내분규 및 종단분쟁이 1980년대까지 이어졌고, 혁신보다는 전통적인 가치에만 몰두하는 사이에 성장이 더뎌져[4] 교세가 다소 위축되었다. 1991년에는 재정난 타개를 위하여 채권자들을 상대로 학교채를 발행하였으나, 저조한 판매 실적으로 인하여 1995년 발행을 중단하였다.[7]

1983년 한의과대학부속 경주한방병원을 개원하였으며, 1988년에 포항기독병원을 인수하여 포항병원을 개원하였고 동국대학교 의료원을 개설하였다. 1989년에는 동국한방병원을 개원하여 의료 및 한방 계열에서 발전을 이룩하였다. 또한 교육부BK21 인문사회분야 사업에서 불교학과의 불교문화사상사 교육·연구단이 선정되었고, 핵심분야에서 전자공학과, 화학과, 토목환경공학과, 화학공학과, 연극영화학과 사업팀이 선정되기도 하였다.[1]

2001년 ~ 현재[편집]

2005년에는 일산 동국대병원과 한방병원의 개원식을 가졌다. 2006년에 개교 100주년 기념식을 개최하였으며, 서정주 시인이 서거 전 미리 써 모교에 헌정한 '동국백주년 기념축시'를 공개했다. 또한 경영전문대학원 설립 인가를 받아 2007년 경영전문대학원을 개원하였다.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년 연속으로 교육과학기술부 대학교육역량 강화사업 지원 대학에 선정되었다.[8] 2008년에는 동국대학교 동문이자 의정부시 영석고등학교의 재단 학교법인 영석학원 이사장 안채란 여사가 학교법인 영석학원을 동국대학교에 기부했고, 2011년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영석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교세가 다소 위축되었으나, 무관심이나 패배 의식에 젖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아래 2011년 ‘제2 건학’ 운동이 동문을 중심으로 생겨나면서 총동창회, 모교, 재단, 종단이라는 4개의 수레바퀴, 즉 4륜동진(四輪同進)의 길에 나서 옛 명성을 되찾는 데 힘을 모으자는 다짐을 밝혔다.

2010년 2월 27일에는 키자니아 서울 내 '마술학교'와 '연기학교', '극장' 체험관을 개장하였다. 2010년 5월 28일 약 1,500억원의 자금으로 경기대학교의 인수를 노렸지만,[9] 6월 7일 경기대학교 임시이사회가 인수의향서를 부결시켜 인수가 무산됐다.[10] 2012년 7월 25일에는 4년간의 준비과정 끝에 경영학 학부 및 대학원의 모든 과정에 국제경영대학발전협의회으로부터 경영교육 국제인증을 받았다.[11] 2016년 4월 8일 대학 특성화의 일환으로 기존에 사회과학대학에 있었던 경찰행정학과가 단과대인 경찰사법대학으로 확대 개편되면서 경찰행정학과가 경찰행정학부로 개편됐다.[12] 이어 7월 5일에 전국 대학의 경찰학 관련학과 교수들의 모임인 경찰학 교육협의회를 세우고 경찰학과 범죄학 등의 발전을 논의하기로 했다.[13]

교육[편집]

교육 목적[편집]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안의 모습

동국대학교는 학술의 이론과 응용방법을 연구교수하여 불교를 비롯한 한국의 문화세계화를 노력해 민족과 인류 사회의 이상 실현에 기여할 지도적 인재의 양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14] 2006년 5월 8일 열린 개교 100주년 기념식에서는 교육 인프라의 확충 등에 힘써서 교육과 연구 양면에서 모범이 되는 대학, 세계가 인정하는 특색있는 대학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밝혔다.[15]

2014년에는 인문 계열자연 계열의 구분을 넘어선 통섭 교육을 목표로 기존의 교양교육원을 다르마칼리지(Dharma College)로 확대해 출범시켜서 인간 문화 이해능력의 향상과 다전공 지식 융합형 인재 양성에 기여하고자 했다.[16] 또한 2016년 신입생부터 소프트웨어 강좌 수강을 의무화해서 융합교육을 통한 인재 성장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융복합 인재 양성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17]

교육 제도[편집]

동국대학교의 정규 학사 과정은 교양교육과정과 전공교육과정, 일반선택과정으로 나누어져 있다.[18] 졸업을 위해서는 교양교육과정의 '대학생활탐구'와 '자아성찰', '21세기 시민', '글쓰기', '세계 명작 세미나', '리더십', '지역 연구' 영역을 이수해야 한다.[19] 또한 특성화교과목으로 박영석 학사의 산악 탐험 과정과 의의를 재조명하는 '산악인 박영석의 탐험과 도전'과 진로취업 교과목, 창업 교과목, 현장실습 교과목, 사회봉사 교과목 등을 제공하고 있다.[19]

또한 기존의 전공 외에, 기존 전공으로는 포괄하기 어려운 통합교과과정을 2개 이상의 학과가 연계하여 운영하는 연계전공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19] 석사과정 입학정원의 30% 범위 안에서 5학기 이상 등록하고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학사과정의 학생을 대상으로 5년제 학사·석사 연계과정도 제공하고 있다.[19]

캠퍼스 구성[편집]

동국대학교 서울캠퍼스[편집]

동국대학교는 2013년 기준으로 12개 대학원(일반대학원, 영상대학원, 경영전문대학원, 불교대학원, 행정대학원, 경찰사법대학원, 교육대학원, 언론정보대학원, 문화예술대학원, 국제정보대학원, 법무대학원, 약학대학원), 11개 단과대학(불교대학, 문과대학, 이과대학, 법과대학, 사회과학대학, 경영대학, 바이오시스템대학, 공과대학, 사범대학, 예술대학, 약학대학) 1개 전공(연계전공)으로 구성되어있다.

교내 시설[편집]

정각원
동국대학교 정각원

정각원은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이었다. 1910년 일본 제국경희궁을 철폐하고 일본인 자제들을 위한 학교인 경성중학교를 설립했을 때까지 남아 있었으며, 1926년 조계사의 본전으로 쓰기 위해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정각원 천정에는 광해군 때 만들어진 국내 유일의 일곱 발가락을 가진 검은 빛깔의 암수 흑쌍룡인 칠조룡 있는데,[20] 숫자 '7'은 불교에서 성스럽다고 여겨지고, 은 권력과 길상의 의미와 동시에 마귀를 물리치는 의미가 있으며, 흑색은 통합과 강직함, 고귀함의 뜻을 지니고 있어 칠조룡은 광해군의 독립 자주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21] 또한 정각원의 단청은 임금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문양들이 의장적인 특성을 보이고 있다.[20] 정각원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돼 있다.

조동종 조계사로 쓰이던 정각원은 1962년 11월 20일부터 동국대의 사원이자 불교 교육 기관인 필동 학림관 대학선원으로 쓰이기 시작했다.[20] 2010년 11월 11일에는 국내외 종교지도자 150여명이 참가한 세계종교지도자회의가 열렸으며,[22]2011년 11월 1일에는 안나푸르나 산을 오르다가 실종된 동국대 체육교육과 학사 박영석 원정대장의 분향소를 마련했으며,[23] 12월 5일에는 49재를 치렀다.[24] 2014년 11월 3일에는 네덜란드의 국가원수로서는 최초로 대한민국을 방문한 네덜란드 국왕 빌럼알렉산더르왕비 막시마가 정각원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하고 타종 장면을 유심히 살펴보기도 했다.[25] 네덜란드 대사관의 요청으로 개최된 이 세미나에는 거스 히딩크 감독 등도 참석했다.[26]

중앙도서관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1906년 5월 명진학교 설립과 함께 도서실을 설치했으며, 1946년 9월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혜화전문학교가 동국대학으로 승격되면서 도서실의 명칭도 도서관으로 바뀌었고, 1953년 중앙도서관으로 개칭하며 시설을 확장했다.[27] 도서관을 신축하기 이전에는 만해관에 있었으나, 2003년 1월 13일 새로 지은 현재의 중앙도서관으로 옮겼다.[28] 2016년 3월을 기준으로 총 214만여 권의 장서를 소장해 국내 대학도서관 가운데 8위를 기록했으며, 학생 1인당 장서수에서는 80권, 총예산 대비 도서 구입에 사용하는 비율은 0.9%를 기록했다.[29]

국보 제212호수능엄경 언해》와 보물 제523-2호석보상절[30] 23·24권을 포함한 보물 7종 등의 불교 자료와 불교학을 중심으로 한 한국학 자료 10만여 권을 소장하고 있으며, 서정주 시인의 유족이 기증한 1만 여점의 유품을 모아놓은 미당문고가 있다.[28] 1999년 10월에는 일본 불교사학자 다무라 엔초 규슈 대학 교수가 불교학 관련 개인 장서를 중앙도서관에 기증했고,[31] 2003년 1월 16일에는 일본인 동양사학자인 시마다 겐지교토 대학 교수의 유족들이 4천여 권의 고서와 2만여 권의 동양서, 500여 권의 서양서, 6천여 권의 정기간행물 등 총 3만여 권의 동·서양서 등을 중앙도서관에 기증하기도 했다.[32] 2013년 9월 25일에는 중국 찰합이학회로부터 중화대장경 티베트 판을 기증받아 국내에서 유일하게 중화대장경 완성본을 소장하게 됐으며,[33] 2014년 5월 7일에는 영문학자인 이창배 전 동국대 영어영문학과 교수의 유족들이 영문학 서적 3천여 권을 기증하기도 했다.[34]

2016년 3월 10일에는 교육부가 이끄는 학부교육 선진화 선도대학 지원사업(ACE)의 일환으로 첨단 교육시설을 만들고자 중앙도서관 안에 창의학습 공간 IF 존(Information Forest Zone)을 만들어 최신식의 교육 기반을 다지고자 했다.[35]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편집]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는 2013년 기준으로 6개 대학원(일반대학원, 교육대학원, 의학전문대학원, 불교문화대학원, 사회과학대학원, 경영대학원), 9개 단과대학(불교문화대학, 인문과학대학, 과학기술대학, 에너지환경대학, 사회대학, 경영관광대학, 사범교육대학, 한의과대학, 의과대학), 1개 학부(자유전공학부)로 구성되어 있다.

동국대학교 로스엔젤레스캠퍼스[편집]

동국대학교 로스엔젤레스캠퍼스(DULA)의 전신은 1979년 김창기 박사가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침술과 동양 의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기 위해 세운 미국 로얄 대학교(Royal University of America)이다.[36] 1997년 1월 미국 로얄 대학교는 동국대학교와 제휴를 체결했고, 동국 로얄 대학교(DRU)로 이름을 바꾸었다.[36] 이런 형태의 결합은 당시 세계 최초였으며, 대한민국의 어느 대학교도 해외에 대학을 둔 적이 없었다.[37] 2009년 3월 5일 학교법인 동국대학교의 산하 학교이던 동국 로얄 대학교를 동국대학교 로스엔젤레스캠퍼스(DULA)로 개정하며 동국대학교의 캠퍼스로 편입됐다. 명칭은 처음의 동국 로얄 대학교에서 현재의 동국대학교 로스엔젤레스캠퍼스(DULA)로 바뀌었다.

개설 학과[편집]

학부 과정[편집]

바이오메디캠퍼스는 동국대학교의 소유인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동국로 27 (식사동 814)번지 동국대학교 일산병원 인근 16만 5천m²부지 중 2만m²의 공간을 활용해 조성된 의과대학·한의과대학·약학대학·바이오시스템대학 중심의 바이오 분야 특성화 캠퍼스이다. 이 캠퍼스는 2020년까지 2단계에 걸쳐 조성된다.

1단계 사업인 의과대학 및 한의과대학 강의동은 270억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8층(1만1673㎡)규모로 2010년 12월에 완공 되었다. 의료연구단지 2단계 사업은 2011년 1월부터 2020년 12월까지이다.

대학원 과정[편집]

국제 교류[편집]

동국대학교는 2012년 11월 기준으로 미국 UCLA, 일본 가쿠슈인 대학, 중국 베이징 대학 등 40개 나라의 160개 대학과 교류 협정을 맺고 있다. 매년 500여 명이 해외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1,800여 명의 외국인 학생이 동국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38] 또한 미국 뉴욕 주립 대학교 스토니브룩, 노던 주립 대학교, 중국 둥베이 사범대학 등과 복수 학위 제도를 하고 있으며, 동국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은 미국 텍사스 대학교 댈러스와 MBA 복수학위제도를 제공한다.

주요 교류 대학으로는 다음 대학들이 있다.

교내 운동부[편집]

동국대학교는 야구부와 축구부, 농구부, 골프부를 운영하고 있다.

야구부[편집]

동국대학교 야구부는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에서 총 4번의 우승(2006년, 2013년, 2014년, 2016년)과 2번의 준우승(2000년, 2011년)을 차지했으며, KBO 총재기 전국대학야구대회에서 3번의 우승(2011년, 2012년, 2014년)과 1번의 준우승(2015년)을 차지했고,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에서 2번의 우승(1986년, 2008년)과 1번의 준우승(1997년), 전국체육대회 야구종목에서 2번의 우승(2013년, 2014년)을 차지했다.

축구부[편집]

축구부는 동국대 운동부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운동부으로, 1930년대 중앙불교전문학교 때부터 '불교청년축구팀'이라는 이름으로 출전했다.[39] 대학축구선수권대회에서 4번의 우승(1949년, 1956년, 1970년, 2000년)과 1번의 준우승(2004년)을 했고, 전국대학축구대회에서 1번의 준우승(2008년), 전국대학축구선수권대회에서 1번의 준우승(2009년), 전국추계대학 축구연맹전에서 2번의 우승(2010년, 2011년)을 차지했다.[39]

농구부[편집]

농구부는 1970년부터 정식 운동부로 출전하기 시작했으며, 1972년 전국체육대회 농구종목에서 우승을 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39] 이외에도 전국추계대학 농구연맹전에서 우승(1985년)을 차지하고, 농구대잔치에서 준우승(2007년), MBC배 대학농구대회에서 준우승(2009년)을 차지하기도 했다.[39]

교내 언론[편집]

동대신문과 동국대학원신문, The Dongguk Post

동국대학교의 교내 언론사로는 교육방송국과 동대신문사, 영자신문사와 대학원신문사가 있다.

교육방송[편집]

교육방송국은 1959년 9월 1일부터 방송을 시작했으며, 1964년 3월 5일부터 유선방송을 실시했다.[40] 약 30여 명 안팎의 국원들이 활동을 하고 있으며, 제작부와 보도부, 아나운서부, 기술부 등으로 나누어 운영하고 있다.[40]

동대신문[편집]

《동대신문》은 동대신문사에서 발행하는 교내 신문으로, 1950년 4월 15일에 창간됐다.[40] 한국전쟁 기간 동안에는 부산신창동 피란 학교에서 발간했으며, 4·19 혁명6월 항쟁 기간 동안에도 발간했다.[40] 2009년 8월 24일부터 대판에서 베를리너판으로 판형을 바꾸어 발행하고 있다.[40]

The Dongguk Post[편집]

《The Dongguk Post》(동국포스트)는 동국대에서 발행하는 유일한 영어 미디어로, 학교 안팎의 취재현장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영어 기사를 써 외국인 유학생 뿐만 아니라 한국인 학생들에게도 기사를 제공하고 있다.[40]

동국대학원신문[편집]

《동국대학원신문》은 대학원신문사에서 발행하는 교내 신문으로, 1988년 민주화의 결실로 창간됐다.[40]

위상[편집]

동국대학교는 1946년 동국대학으로 승격된 뒤로 대한민국의 사회 전반에 걸쳐 많은 졸업생들을 배출시켰다. 특히 1962년 경찰대학보다도 먼저 세워진 경찰행정학과의 졸업생들은 여러 지역의 경찰 총수 자리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찰청장을 포함한 간부 자리에도 포진해 있으며 각 대학의 경찰 관련 학과에서도 교수로 활약하고 있다.[2] 또한 통일에 대비해 남북 교류협력 실무 인력을 육성하고 남북관계의 분석 능력을 보유한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1994년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북한학과를 설립하기도 했다.[41] 2012년에는 경영대학이 국내에서는 10번째로 국제경영대학발전협의회로부터 경영교육 국제인증을 받았다.[11]

경제계에는 2011년 조사에 따르면, 매출액 기준으로 상위 100대 기업에서 일하는 임원 가운데 64명이 동국대학교 출신으로 대한민국의 대학교 중에서 15번째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42]

동국대학교는 2014년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11위를 기록하였다.[43] 또한 2015년 QS 세계 대학 순위에서 선정하는 아시아 대학 순위에서 77위를 기록하였다.[44] 국제화 부문의 경우 2012년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전국 대학 3위, 조선일보·QS 아시아 대학 평가에서 아시아 17위ㆍ국내 3위를 기록했다.[45]

동문[편집]

동국대학교는 전신인 명진학교의 1회 졸업생인 만해 한용운을 비롯해 100여년이 넘는 역사에 걸쳐 사회 각계각층에 동문들을 배출시켰다.

동국대학교 연극학부의 경우 1960년 2월 대한민국 최초로 세워져 이덕화임예진, 이경규, 최민식, 한석규, 김혜수, 채시라, 전지현 등을 배출해 냈다. 이들 가운데 강석우, 김수로, 소유진, 이경규, 이효정, 임예진, 채정안,[46] 서현,[47] 이정재,[48] 류시원[49] 등은 장학금을 기부하기도 했으며, 고현정[50], 이덕화[51] 등은 교수로 임용돼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또한 소녀시대 윤아, 에이핑크 손나은 등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거나 현재 재학중인 현직 연예인들도 많다.

동국대학교는 정·관계에도 많은 인사들을 배출시켰다. 2012년 실시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김태원, 홍영표, 최재성 의원 등 학부 출신 6명과 대학원 출신 9명이 당선됐다.[2] 이 뿐만 아니라 6선 국회의원 최형우, 4선 국회의원 김동영 3선 국회의원 김영구, 2선 국회의원 권노갑, 전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 이정현 등도 동국대학교 출신이다.[2] 경제계에는 정상영 KCC 창업자, 민병덕 국민은행장, 신준호 푸르밀 회장 등의 동문이 퍼져 있다. 경찰청장을 포함한 경찰 현장과 학계에는 동국대 출신들이 널리 퍼져 있으며, 동국대는 최기문, 이택순, 강희락, 이성한 등 동국대 출신의 경찰청장들을 교수로 초빙하기도 했다.[52]

한편 동국대학교 졸업생들은 문학계에도 포진해 있다. 소설가인 황석영조정래, 시인 신경림, 문정희 등이 동국대학교 출신이다. 체육계에서는 야구인 김성한, 한대화, 송진우 박한이, 산악인 박영석 등이 있다.

비판 및 논란[편집]

동국대학교[편집]

입학금 고액 논란[편집]

2013년 4월, 교육부가 '대학알리미'를 통해 공개한 2013년 대학교 신입생 입학금 자료에 따르면 동국대 서울캠퍼스는 입학금으로 102만4000원을 받아 대한민국의 대학교 중 3위를 기록했다.[53]

학문구조개편 추진과정 중 논란[편집]

2011년 동국대학교는 학문구조개편위원회를 통해 대학 경쟁력 강화를 위한 11개 학과 통폐합 방안을 추진하였다.[54] 학생들은 학생 동의 없는 학과통폐합을 전면 반대하며 총장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55] 학교 측은 점거 농성을 주도한 3명에 퇴학 처분을, 그 외에는 유기정학과 사회봉사의 징계를 했다.[56][57]

2015 총장 선거 학내 분규 사태의 전말[편집]

2014년 12월, 동국대학교 차기 총장후보를 최종 결정하는 총장추천위원회에서 김희옥 당시 총장, 불교학부 교수 보광스님, 조의연 영어영문학부 교수가 최종후보로 이사회에 추천되었다.

총장 후보자 선출의 과정에서 당시 수면아래 놓여있던 여러 의혹들이 불거지는 상황이 발생하였는데 당시 김희옥 총장은 아들의 경기대학교 교수 특혜채용 외압, 교육부 장관의 인가를 받지 않은 유학 프로그램 운영으로 인한 고등교육법 위반, 재임 중 수백억대에 이르는 KCC 수의 계약등 여러 의혹의 당사자로서 대외적인 조명과 함께 해명을 요구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언론사 보도에 따르면 2014년 초, 경기대학교 법학과 교수 임용과정에서 김희옥 前 총장의 아들을 채용하기 위해 당초 전형과정에 없던 경기대학교 재단 이사장의 개별 면접과정이 추가되었고, 이로 인해 당초 2순위 후보자와 1순위 후보자가 뒤바뀌는 결과가 초래되고 말았다. 김희옥 前 총장 아들 임용 직후, 당시 다른 임용 후보자였던 정모씨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교수 임용 무효 소송을 제기 하였고, 법원이 절차과정에 대한 문제제기를 받아들이면서 교수 임용 무효를 판결하였다.[58]

수백억대에 이르는 KCC 수의 계약 의혹 역시 김희옥 총장의 해명이 요구되었다. KCC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김 前 총장 재임 기간이던 지난 2013년 3월 ~ 2014년 3월 까지 KCC가 동국대에서 따낸 공사는 모두 3개이며, 기본도급액 375억에 이르는 규모였다. 동국대 홈페이지에는 각종 입찰에 대한 공고가 기록되어있다. 하지만 위3개의 공사는 교육부의 사학기관재무회계규칙 제35조에 따르는 경쟁입찰을 통하지 않고, 동국대와 KCC 간의 협약을 통해서만 체결되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59]

김희옥 총장은 퇴임 후인 2015년 10월 8일, KCC 계열 자동차용 유리 제조업체인 코리아오토글라스의 사외이사로 영입되었다.[60]

고등교육법을 위반한 혐의로 법적 조치된 1+3 유학프로그램 운영 역시 경찰의 조사가 진행되었던 부분이다.[61] 고등교육법 위반 혐의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서 3개월만에 자진사퇴한 송광용 前 서울교육대학교 총장, 이명박 정부 당시에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을 지낸 박범훈중앙대학교 총장과 박철 前 한국외국어대학교 총장등이 김희옥 前 총장과 함께 조사 불법 프로그램 운영으로 수사의 대상에 오른 전현직 교육자들이다. 1+3 유학 프로그램은 교육부 장관의 인가를 받지 않은 채 4년 재학 중 일정 기간을 외국대학에서 수업을 받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프로그램은 1학년 때 국내 대학에서 교양 및 영어 수업을 받고 2학년부터 외국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고 홍보됐으나, 실상은 외국대학 측이 입학을 허가하지 않으면 학생들이 갈 곳 없는 신세가 되는 등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서초경찰서의 수사에 따르면 전국 17개 대학이 운영한 1+3 유학 프로그램에는 2010부터 2013년의 기간동안 5133명의 학생들의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낸 등록금의 총액은 모두 732억원에 달했고, 이중 절반인 356억원이 '브로커' 역할을 하는 유학원이 가져갔다. 송광용 前 수석도 서울교대 총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비슷한 프로그램을 운영한 혐의로 지난 6월 9일 서초경찰서에서 소환조사를 받았으며, 9월 16일 검찰에 송치됐다.

얼마지나지않아 김희옥 총장이 종단 인사들과의 회동 익일 후보직에서 사퇴했고, 3일 후 또 다른 후보인 조의연 교수가 김희옥의 후보 사퇴에 강하게 반발하며 후보직을 사퇴했다. 자진사퇴한 두명의 후보는 현재 실각하였지만 지난 10여년간 학교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했던 영담스님과 밀접한 관계이다.

영담스님은 지난 10여년간 동국대학교 법인 이사회를 장악, 학내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이다. 스님은 조계종국회라고 할 수 있는 중앙종회에서 야당대표를 맡아왔다.

중앙종회는 입법기구이며 불교계의 행정수반은 총무원장 이다. 중앙종회 내부에서는 국내정치처럼 '여권'과 '야권'이 형성되어있는데, 총리에 해당하는 총무원장을 배출한 계파가 여권, 그렇지 못한 계파가 야권이 되는 형식이다. 2005년 11월, 법장 총무원장의 타계로 총무원장 선거가 치러졌는데, '무량회' '무차회' '화엄회'가 연합하여 세운 연립정권의 수반이 32대 총무원장이었던 지관 스님이고, 그 반대편에는 '보림회' '금강회'가 연합하여 야권을 형성하였다. 불교계에는 중앙종회를 제외한 주요영역이 있는데 바로 '동국대 이사회'이다. 동국대 이사회는 대대로 여권 무량회의 전신인 일승회, 그 전신인 직지사단이 주도하였지만 이사장을 맡고 있던 녹원 스님이 재단비리를 책임지고 물러나면서 반대편에 있던 '보림+금강회'에서 이사회를 탈환하여 야권의 대표주자였던 영담, 영배 스님 이사회를 점유하게되었다. 2005년, 총 11명의 이사중 6석을 야권 '보림+금강회'가, 5석을 여권 '무량+화엄회'가 구성하게 되었고, 2006년, 영담스님의 적극적인 후원아래 영배스님이 동국대 이사장에 오르게 되었다.[62]

그러던 2007년, 신정아 학력위조사건이 터졌다. 신정아씨는 영담, 영배 스님의 이사회 장악시기인 2005년 9월, 전공인 미술학과가 속해있는 예술대학도 아닌 교양교육원 교수로 임용되었다. 임용될 당시부터 학력위조논란에 관해 말이 끊이지않았지만, 홍기삼 총장과 영담, 영배스님을 비롯한 동국대 수뇌부는 학력위조논란을 빚은 신정아를 무리하게 교수로 채용하였다.[63] 또한 영담, 영배스님은 신정아 가짜 학위 의혹을 이사회에서 처음 제기한 장윤스님을 동국대 이사직에서 해임시키고[64] 신씨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며 학내구성원들의 학력검증요구를 묵살하는 등 학력위조논란 초기에 신정아를 적극적으로 비호했다.[65] 이를 두고 신정아가 당시 참여정부의 실세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과 내연관계에 있었기 때문에,[66] 영담스님이 적극적으로 그녀를 옹호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67]

지난 2009년 제 33대 총무원장 선거에서 자승스님과 영담스님은 여야연대를 시도하였고 그 결과 자승스님이 총무원장에 당선되었다. 총무원장 선거 이전부터 동국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영담스님은, 자승스님과의 연정을 통해 확고부동한 동국대 이사회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영담스님은 대학개혁을 명분으로 2007년 16대 총장에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과 동문인 오영교 (참여정부 행정자치부 장관), 2011년 17대 총장에 김희옥 헌법재판관 (참여정부 법무부 차관)을 외부영입하기에 이르렀다. 공교롭게도 영담스님이 영입한 두 명의 전임 총장 모두 참여정부 고위관료 출신들인데 주목할 만한 점은 영담스님이 지난 2006년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신정아 사건의 중심에 서있었다는 사실이다. 영담스님이 참여정부 실세가 연루된 권력형 비리의 중심에 있었다는 점에서,스님에 의해 연거푸 영입된 두 명의 총장 역시 참여정부 고위관료 출신이라는 대목은 당시 영담스님과 정권핵심부와의 결탁가능성에서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영담스님은 2005년 이후 10여년 동안 동국대 이사직을 계속해서 역임했고 재직 당시 여러 비리의혹에 휩싸였는데, 신정아 사건/ 필동병원 매입과정 비자금 조성의혹/ 횡령 의혹/ 부설병원 의약품 납품비리/ 교직원 채용비리/ [68] 본인의 고등학교 학력위조 논란등이 바로 그것이다. 동국대는 지난 2004년 중앙대로부터 필동병원 건물을 274억 원에 매입하였는데, 당시 매입과정에서 동국대가 이사회의 승인 없이 시가보다 높은 가격에 매입하였던 것이다. 또한 동국대는 통상적으로 계약금을 10%(27억원)을 지급하는 것과 달리 중앙대학교 측에 130억 원을 전달하였다. 이 과정에서 영담스님이 이사회를 장악하면서 학교행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증언들이 확인된 상태이다.[69] 또한 영담스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허위로 학력을 위조해왔다. 동국대 학적부에는 영담 스님이 1974년 한영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74년~1978년 동국대 승가학과를 다닌 것으로 기재돼 있었지만, 한영고 졸업 사실이 허위로 밝혀짐에 따라 동국대는 영담스님의 석박사 학위를 모두 취소하였다.[70]

2013년 11월, 자승스님과 영담스님의 대리전 양상이라고 할 수 있는 제 34대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에서 자승스님이 재임에 성공하면서 영담스님은 실각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14년 11월, 동국대학교 제 18대 총장 선거에 김희옥 당시 총장, 불교학부 교수 보광스님, 조의연 영어영문학부 교수가 출마하게 된 것이다. 김희옥 당시 총장은 위에서 서술했듯이 영담스님 계열의 후보이며, 조의연 교수는 영담스님이 영입했던 16대 오영교 총장 재임시절 핵심보직인 경영관리실장을 맡았다는 점에서 범영담스님 계열의 후보로 평가되어왔다.

영담스님의 정치적 실각 상황과 맞물려 두 명의 영담스님계열의 후보들이 자진사퇴하였고 불교학부 교수 보광스님만이 유일한 후보로서 차기 총장 선출이 유력시되었다. 하지만 당시 법인 이사를 맡고 있던 영담스님이 자신과 정치적 대척점에 있는 자승스님을 지지했던 보광스님의 논문표절의혹을 거론하면서 총장 선출이 연기되기 시작하였다.

총장 선출이 계속 미뤄지는 가운데, 2015년 1월 12일 김희옥 총장의 연임을 지지하는 동문모임인 동국대 살리기 비상대책위원회(이하 김희옥 측 비대위)가 보광스님의 논문 가운데 해외 발표 5편, 국내 발표 16편 등 모두 21편에서 자체조사결과 표절 의혹이 발견됐다고 밝혔으며, [71] 보광스님은 표절 의혹이 생긴 논문의 게재를 철회하면서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했으나,[72] 이어 2월 4일에는 김희옥 측 비대위가 보광스님의 박사논문 「신라정토사상에 관한 연구」도 역시 자체조사결과 표절이라고 주장하며 의혹을 제기했다.[73] 동국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2월 6일 표절 의혹이 불거진 논문 28편 가운데 최종적으로 18편이 표절이라고 밝혔지만 당시 연구윤리위원회의 구성원 대다수가 김희옥 전 총장의 측근들로 이루어져있어 결과의 객관성 자체가 애초에 확보될 수 없었다. 연구윤리위의 구성원들은 김희옥 총장 재임 당시, 학술부총장겸 대학원장을 지낸 박정극 위원장, 정각원장 법타스님, 공영대 학사지원본부장, 김삼동 연구진흥본부장, 최응렬 대외협력본부장등을 비롯한 주요 보직교수들로 이루어져있었다. 해당 소속 교수들은 2014년 12월, 김희옥 총장의 연임을 지지하는 교무위원 성명에 동참하였고, 결국 위원회 구성부터가 공정하지 않았다.[74]

연구윤리위의 활동은 절차면에서도 불공정의 물의를 빚었다. 2015년 1월20일, 연구윤리위 1차 회의는 당사자의 소명을 듣고 절차에 따라 조사의 착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안건이었는데, 안건이 채택되면 조사위원회 구성-예비심사-조사결과심의-통보-본심사-조사결과심의-통보-재심사-조사결과심의-종결통보 순으로 활동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런데 이날 박정극 연구윤리위 위원장과 공영대 학사지원본부장은 동조하는 다수위원들의 지지를 확신하고 예비심사를 생략한 채 본조사로 넘어가는 것으로 결정하려 한 것이다. 소수의 위원이 절차의 하자에 대한 이의를 제기했고, 여타 위원들의 동의를 얻고나서야 비로소 예비조사 과정에 착수할 수 있었다.

또한 연구윤리위의 박정극 위원장은 피조사자의 재심 청구제도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조사를 마무리지으며 본인의 자필건의서를 통해 당시 이사장 정련스님에 논문 표절로 인한 징계를 건의하여 논란이 되었다.[75]

김희옥 측 비대위는 2월 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동국대 이사회를 상대로 보광스님의 '총장선임 결의와 임용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다. 4월 20일에는 동국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보광스님 총장 선임을 반대하며 단식 투쟁에 들어갔고, 총장 선거 원천 재실시를 요구하는 일부 학생들도 임의단체를 통해 조직적으로 규합하였다. 그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미래를 여는 동국추진위원회(이하 미동추)> 등이고, 당시 대학원 총학생회장이자 미동추의 설립자인 최장훈 학생은 만해광장에 있는 조명탑에 올라가 총장 선거 재실시를 요구하는 고공농성을 벌이기도 하였다.

2015년 2월, 보광 총장 선임을 반대해오던 동문대표 두 명의 과거 비리전력이 언론을 통해 드러나게 되었다. 김희옥 총장의 연임을 지지했던 동국대 살리기 비상대책위원회의 이운영(농학66) 대표는 신용보증기금 서울 영동지점장 재직 당시 불법대출 사건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으며,[76]영담스님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김영국(불교81) 연경불교정책연구소장은 과거 변호사법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 수감돼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77]

2015년 5월 2일 동국대 이사회는 제 290회 이사회를 열어 보광스님을 총장에 선임했다. 이에 동국대 교수협의회는 조계종의 선거 개입과 논문 표절 의혹을 받는 보광 후보를 총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면서 총장 선임 결정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동국대 이사회는 2015년 6월 30일, 제292회 이사회를 열어 보광스님을 대상으로 하는 교원징계의결요구에 관한 안건을 기각했다. 이사회는 교무부총장의 건의서를 토대로 이같은 결정을 내렸는데, 건의서에는 징계시효가 지난 점과 본조사를 생략한 절차적 하자의 문제가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 2015년 5월 29일 동국대 이사회는 이사장 직무대행을 주장하며 불법으로 법인사무처를 점거했던 영담스님을 이사직에서 해임하였다. 총장 퇴진운동단체인 <미래를 여는 동국 추진위원회>는 성명 발표에서 "구성원의 의견을 이야기했던 유일한 이사가 사라졌다" 며 영담스님을 옹호했다.[78] ​ 보광 총장은 첫 출근일인 5월 4일에 미동추의 실질적 대표 최장훈 대학원총학생회장의 고공농성장을 찾아 조명탑에서 내려와서 대화하자고 말했다. 최장훈 회장은 6월 4일 오후 7시 농성을 시작한 지 45일 만에 조명탑에서 내려왔다.

2015년 9월 17일, 15년만에 동국대학교에서 학생총회가 성립, 동국대 학생들이 참여하여 제 1의제인 보광,일면스님 퇴진과 제2의제인 교육의제 안건, 그리고 학칙 개정의제가 통과되었던 것으로 알려져왔다.

하지만 지금껏 성사된 것으로 알려져왔던 학생총회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총회 개최를 위해 1만 3천여 재학생 명부를 수령해간 2015년 47대 총학생회가 총회가 끝난뒤에 명부를 반납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9.17 학생총회의 성사여부자체를 확인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져버린 것이다. 총학생회 측은 학생총회 당시 재학생 1만 2500여명 가운데 2000여명이 참석해 의결 정족수 7분의 1을 넘겼다고 주장했지만 재학생 명부를 확인할 수 없어 현재로썬 이를 입증할 방법이 없어져 버린 상황이다.

당시 총학생회는 명부 수령당시 개인정보 유출문제에 대한 책임, 총회 성사 이후 명부반납 등에 대해서 사전에 확인하고 이에 대해 서명까지 하였으나, 학교측이 명부반납을 요구한 지난 3월에서야 김건중 전 부총학생회장이 자신이 직접 집에서 손으로 찣어 폐기했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개인정보 목적 외 이용·제공 시 제한내용 또는 요청사항’에 ‘위탁종료 시 제공받은 일체 자료를 반납하거나 안전한 방법으로 파기하고 그 증빙을 대학에 공문서로 제출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지만 명부임의폐기 당사자인 김건중 전 부총학생회장은 증빙할 수 있는 자료를 학교 측에 제출하지 않았다.

동국대학교 대나무숲에서는 학생총회가 실제 성사된 것이라면 재학생 명부를 반납하여 총회 성사를 대내외적으로 입증시켜야 마땅하건만, 되려 그 입증자료를 임의로 폐기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납득될 수 없다는 주장이 다수 제기되었다. 이러한 의견들에 대해서 김건중 부총이 직접 댓글로 '조만간 명부를 대신할 명시적 자료를 공개하겠다' 라고 답하였지만 후속조치에 대해서는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당시 9.17 학생총회에서 최대 8학기 였던 학생회 간부 자격기준을 완화하는 개정안이 다뤄졌고, 학생회 간부 자격기준 완화 개정안을 직접 발의했던 안드레(당시 10학기 재학) 당시 사회과학대 학생회장은 개정안이 통과됨에 따라 총학생회장 선거 출마해 당선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학생총회 애초 목적이 안드레 총학생회장의 당선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당시 학생총회에서는 재학생들의 권익과 직결되는 학과 구조조정 반대, 학생준칙 폐기, 수강제도 개선 등의 사안이 의결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재학생 명부 무단임의폐기라는 당시 지도부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인해 수많은 학우들의 실질적 권익실현 요구가 실증성을 상실하게 되었다.[79]

10월 15일에는 학생총회 참석명부를 무단으로 폐기한 김건중 부총학생회장이 학생총회 의결안건의 조속한 이행을 촉구하는 무기한 단식 투쟁에 들어갔고, 11월 10일에는 교수협의회장 한만수 교수와 비상대책위원 김준 교수도 단식 투쟁에 나섰으며 11월 16일에는 교직원인 김윤길 대외담당관, 11월 30일에는 이사인 미산스님, 12월 1일에는 정환민 총동창회 사무총장까지 단식 투쟁에 함께했다.[80] 김건중 부총학생회장은 50일째가 되던 12월 3일 오전 10시 몸상태가 나빠져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81] 12월 3일 오후 동국대 이사회는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이사회를 새로 구성한 뒤 이사장을 포함한 모든 임원이 전원 사퇴하겠다고 밝혔다.[82] 보광 총장은 이사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2016년 3월 4일 일면 이사 등과 함께 이사직에서 사퇴했다.[83]

2016년 4월 29일 대학교 총학생회가 명진관에 건 총장 반대 현수막

일단락된 것처럼 보였던 분규는 2016년 초에 다시 시작됐다. 2월 동국대 측은 총장 비판에 앞장섰던 한만수 교수를 직위해제하기로 결정했으며, 교직원들에게 언어폭력을 행사했던 최장훈 전 대학원 총학생회장[84]을 고소했고, 안드레 대학교 총학생회장과 대학원 총학생회장 신정욱 등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85] 한만수 교수는 3월 15일 교원 징계위원회에서 해임 처분을 받았고, 이에 한만수 교수 측과 동료 교수들은 부당한 보복 징계라며 학교 측을 규탄했다.[86] 3월 28일 학생들은 학교 측의 학생 고소와 총학생회의 정당성 시비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었고, 보광 총장에게 학생들의 입장을 담은 문건을 제출하려고 했으나, 총장이 자리에 없다는 이유로 제출하지 못했고 즉석에서 성토대회를 열어 학교를 규탄했다.[87] 그러던 가운데 자동차를 타고 학교를 나가려던 보광 총장을 발견해 학생들이 자동차를 막았고, 자동차에서 나와 학생들과 대화할 것을 요청했으나 이에 응하지 않았다.[87] 90여 분의 대치 끝에 보광 총장은 3미터 거리의 안드레 회장과 전화로 3월 29일 오후 5시에 면담하기를 약하였고 그 과정에서 일부 학생이 차량 트렁크에 올라가 고성으로 윽박지르는 등의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보광 총장은 3월 29일 오후 2시 조계종 총무원 행사에 참여한 뒤 건강 문제 등을 이유로 학생 공개면담에 나오지 않았다.[87] 4월 1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성명서를 통해 학교 측에 교수와 학생들에 대한 탄압을 멈추고 대화할 것을 촉구했다.[88] 4월 8일 오후 3시로 미루어졌던 학생 공개면담은 세부적인 진행 방식에서 합의를 보지 못해 사실상 불발됐고, 학생 대표자들은 면담 파기와 항의 방문 취지로 오후 4시 30분에 보광 총장과 만나 면담을 가졌다.[89]

2016년 4월 학내에서 학생총회 다음가는 의사결정기구인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가 개최되었다.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작년 학생총회의 실증성이 상실된 상황에서 전학대회는 학생사회의 현재 기조를 반영하였는데, 전학대회에서는 총장 선출과정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하고 이를 보다 민주적인 구조로 바꾸어나갈 것을 결의하였다. 미동추 학생들이 주장해오던 총장 퇴진 안건은 공식적으로 부결되었다.[90]

한 달 후인 2016년 5월, 총학생회와 각 단과대 학생회장을 비롯한 주요 학생 간부들로 구성된 총학생회 운영위원회에서 학내민주화와 학생참여확대를 위해 학교와의 논의 테이블을 적극적으로 구성하기로 결정하였다.[91]

2016년 6월, 현 총장의 논문 표절 의혹을 비판하며 총장 퇴진 운동을 이끌어온 한만수 교수에 대한 논문 자기표절의혹이 불거졌다.[92] 언론 매체에 따르면 한만수 교수는 1987년 발표한 논문과 1994년 발표한 논문이 매우 유사한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교수의 표절 의혹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대자보가 학내 곳곳에 붙여졌고, 6월 24일 한만수 교수 스스로 자신에 논문들에 대해서 일부 중복성이 있다고 시인하였다.[93]

5월 10일에는 동국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와 교단자정센터, 영담스님의 최측근 김영국 연경불교정책연구소장이 보광 총장이 일본 붓쿄 대학에 낸 박사논문이 표절이라고 주장해 추가적인 논문 표절 의혹을 냈고, 이에 학교 측은 해명자료를 내 당시에는 연구자의 업적을 검증하는 기준과 연구자의 윤리규정 등이 세워져 있지 않았으며, 인용 표시가 빠진 부분이 있지만 표절 주장은 정치적인 의도를 가진 행위라고 반박했다.[94] 5월 17일에 학교 본관 앞에서 이어진 기자회견에서도 대학교·대학원 총학생회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등은 보광 총장을 향한 비판을 이어갔으며, 학교 측은 논문의 표절 의혹을 제기한 보고서 자체가 허술하고 보고서를 폭로하는 행위가 마녀사냥식이라고 맞서는 등 날선 공방을 계속했다.[95] 5월 19일 안드레 총학생회장과 신정욱 대학원 총학생회장은 붓쿄 대학을 찾아 보광 총장을 학위논문 표절 혐의로 고발한다는 공문을 전달했으며, 도서관을 찾아 박사논문 원본의 열람을 요청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원본이 없어 원본을 볼 수 없었다.[96]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편집]

취업률 허위공시에 따른 2013년 정부지정제한 대학 선정[편집]

동국대 경주캠퍼스는 2012년 취업률을 허위로 공시하였고, 이런 행위가 교과부 감사, 실사에서 적발됨에 따라 2013년 정부지원 제한대학에 선정되었다.[97] 이에 따라 경주캠퍼스 김영종 총장 및 기획처장 등 보직교수들은 이에 책임 지고 물러나게 되었다.[98][99]

갤러리[편집]

동국대학교[편집]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편집]

부설기관[편집]

박물관[편집]

동국대학교 박물관은 1963년 9월 1일 개관하였다. 동국학원의 설립목적에 따라 불교 관계의 고고 및 미술자료를 수집·보관·전시하며 불교미술을 조사·발굴·연구하고 이를 학계에 알림과 동시에 학생들의 교육에 활용하고자 설립되었다.

소장유물의 내용은 불교 관계의 조각·회화·공예·건축·금석문 등으로 구분되는데 각 분야에서 손꼽히는 중요한 작품들이 망라되어 있다. 불교조각은 종류별, 시대별로 다양한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또한 자체적으로 전문학술지인 〈불교미술〉을 발간하고 있다.

동국미디어센터[편집]

교육원[편집]

연구기관[편집]

부속병원[편집]

산하교육기관[편집]

고등학교[편집]

중학교[편집]

  •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여자중학교
  •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금산중학교
  •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홍제중학교

초등학교[편집]

유치원[편집]

  • 동국대학교 부속 유치원

출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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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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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고리[편집]

동국대학교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동국대학교 동국대학교 로스엔젤레스캠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