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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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대학교
Yeoju Institute of Technology
종류 사립
설립 1993년
총장 윤준호
학교법인 동신교육재단
학생 수 약 6,000명
국가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위치 경기도 여주시
세종로 338 (교동 산6-16)
웹사이트 http://www.yit.ac.kr
여주대학교 정문

여주대학교(驪州大學校,Yeoju Institute of Technology)는 대한민국전문대학이다.

1992년 12월 학교법인 동신학원이 여주공업전문대학으로 설립한 전문대학이다. 1994년 여주전문대학으로, 1998년 여주대학으로, 2012년 여주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했다. 5만 5594평의 교지에 12개의 건물동, 90개의 강의실이 있으며 총 50,369명의 졸업생이 배출됐다.

부속기관으로 전자도서관, 한국어학교, 창업보육센터, 인터넷방송국, 세종생활관이 있고 부설연구소로 도자기연구소, 정보통신연구소, 건설기술연구소, 전자회로시스템설계연구소가 있다. 용마응원단, 소리틀 등의 동아리가 활동 중이며 매년 5월과 10월에 용마체전과 용마축제가 열린다.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 커뮤니티 칼리지, 일본의 오사카[大阪]산업대학 등 13개국 83개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학술교류, 교수·학생의 교환과 언어연수, 본교졸업생의 편입학 등의 교류를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경희대학교와 교류협정을 맺었다. 1993년에 설립된 도서관에는 2010년 기준 약 9만 4천여권의 단행본, 100여종의 정기간행물, 6,231여점의 비도서자료를 비치하고 있으며, 830석의 열람석이 있다. 특별근로장학금 외 15종의 교내장학금과 세종문화재단장학금 외 13종의 교외장학금이 있다. 1997년 교육부로부터 자동차과 특수목적 사업 대학에, 1998년 교육부로부터 종합 우수대학과 정원자율화 우수대학에, 도자기공예과가 우수특성학과에 선정되었고, 산·학·연 공동기술개발 컨소시엄대학으로 지정되었으며 1999년 삼성SDS와 정보화 시범대학 협정을 체결했다.

연혁[편집]

  • 2015년 : 교육부 대학구조개혁평가 결과 D등급[1]
  • 2017년 : 교육부 대학구조개혁평가 2차년도 이행점검 결과 재정지원제한 완전 해제[2]

설치학과[편집]

공업계열 인문사회계열 예·체능계열 자연과학계열
  • 건축과
  • 전기과
  • 전자과
  • 컴퓨터정보과
  • 토목과
  • 인터넷정보과
  • 자동차과
  • 정보통신과
  • 생태도시계획과
  • 군사학부
  • 비즈니스경영과
  • 세무회계정보과
  • 보육과
  • 사회복지과
  • 게임기획비즈니스과
  • 관광일본어과
  • 관광중국어과
  • 광고홍보과
  • 비즈니스영어과
  • 호텔관광과
  • 사회체육과
  • 사진영상과
  • 실용음악과
  • 패션디자인과
  • 스포츠건강관리과
  • 방송제작연예과
  • 간호학과
  • 치위생과
  • 물리치료과
  • 안경광학과
  • 작업치료과
  • 푸드코디네이션과
  • 보건의료행정과
  • 뷰티디자인과


설립 초기[편집]

여주대학은 1991년 1월 20일 전문대학설립계획 승인을 받아 1993년 3월, ‘여주공업전문대학’이라는 교명으로 개교하였다. 실용성과 과학기술을 지향했던 설립자의 교육철학에 따라 전기과, 전자과, 건축과, 산업디자인과, 공업경영과, 사무자동학과, 도자기공예과 등 7개 학과를 개설하였으며 640명이 입학하였다. 개교 당시 교수의 수는 17명으로 캠퍼스에는 제1공학관, 제2공학관, 학생회관, 본관, 부대시설 등 5개동의 건물이 있었다. 주요 행정 조직으로는 학장, 부학장, 기획관리실이 있었고, 하부 기관은 실무행정 부서와 학과, 제위원회로 구성되었다. 실무행정 부서로는 교무과, 학생과, 서무과가 있었으며, 학교 행정을 지원하는 제위원회는 교무위원회, 기획위원회, 학술연구위원회, 인사위원회, 실습관리위원회, 도서관운영위원회, 장학위원회, 학생생활지도위원회, 정화추진위원회, 징계위원회 등 10개로 구성돼 있었다. 1993년 개교 원년에 편성된 교육과정의 특징은 국제화, 전산화의 시대적 추세에 따라 전체 학과가 영어회화와 컴퓨터교육을 4학기 내내 실시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학과별로 현장실무 능력을 충분히 소화해 낼 수 있는 실질적이고 전문화된 실습 위주의 교육과정을 편성한 것도 중요한 특징이다.


여주전문대학[편집]

개교와 함께 대학의 양적팽창을 추진한 결과, 1993년 9월 16일 정원 조정 및 학과 증설이 이루어졌다. 더불어 교명변경을 추진하여 1994년 ‘여주전문대학’으로 이름을 바꾸고 11개 학과, 920명의 신입생을 모집하였다. 당시 신설된 학과는 토목과, 여성교양과, 세무회계과, 실무영어과 등이다. 이와 함께 학교살림이 확대되면서 조직개편이 이루어졌다. 대학의 시설을 관리하는 관리과가 새로 구성되었고 도서관, 신문방송국, 학생생활연구소, 상담실, 전자계산소, 산업기술연구소 등 6개 부속기관이 신설되었다. 또한, 학술연구위원회와 정화추진위원회가 없어지고 전산소운영위원회, 교육과정심의위원회, 예결산자문위원회, 출판부운영위원회 등 4개 위원회가 신설되었다. 1995년도에는 3개 학과를 추가로 승인 받아 전자계산과, 자동차과, 사회체육과를 신설하고 총 14개 학과 1,200명의 신입생을 모집하였다. 사회체육과의 개설과 더불어 600여 평의 대규모 체육관이 건립되어 캠퍼스의 경관이 바뀌었다. 2,5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용마체육관은 당시 학교의 랜드마크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교내의 주요 행사는 물론 지역사회의 다양한 행사를 수용하면서 지역 상생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였다. 개교 3년차인 1996년에는 입시 지원자 1만 2,511명이 몰리면서 경쟁률이 10대 1에 가까운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대학의 위상과 지명도가 확고하게 상승한 것이다. 입학정원은 1,570명으로 200명이 증원되었으며 간호과(3년제주간 80명), 치위생과(3년제 주간 40명) 등 보건계열이 포함되었다.


설립자 여암 정동성 박사[편집]

1999년 2월 24일 설립자인 여암 정동성 박사가 제3대 학장으로 취임. 취임사에서 정동성 박사는 “20세기를 마무리하고 21세기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제2의 개교라는 마음으로 일하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밝히면서 연구중심 대학, 평생교육 대학, 사회봉사 대학으로 만들겠다는 구체적 비전을 제시하였다. 이후 대내적으로 대학 발전의 기틀을 다지는 동시에 대외적으로는 한국전문대학법인협의회 회장, 한국사학법인연합회 회장 등의 활발한 대외활동을 통해 우리나라 교육 발전에 기여하였다. 뿐만 아니라,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학문 연구에 매진하여 1998년에는 ‘스포츠와 정치’를 출간하였고, 이를 일본어뿐만 아니라 1999년에는 영문판까지 번역·발간하였으며, 1999년 5월 15일에는 경희대학교로부터 명예교육학박사를 취득하였다. 재단법인 세종문화재단과 학교법인 동신교육재단을 설립하고 우리대학을 개교 7년 만에, 우리나라 대학사에서 유례가 없는 최단 시일 내 최우수대학으로 발전시킨 여암 정동성 박사는 항상 여주대학교가 ‘한국의 MIT’로 자부할 만한 최고의 대학이 되도록 하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욕과 열정 속에 대학의 발전을 위해 노심초사하였다. 그런 그는 1999년 8월 5일 오전 11시 30분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숙환으로 향년 60세의 일기로 영면하였다.


21세기의 여주대학교[편집]

제4대 전신순 학장의 취임식은 1999년 9월 11일 오전 11시에 봉사관 콘서트홀에서 거행되었다. 전신순 학장은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학교법인 동신교육재단 설립 이사와 이사장, 재단법인 세종문화재단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2000년 10월 7일 우리대학과 국회도서관이 학술정보에 대한 상호교류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국회도서관의 300만여 건의 서지데이터와 1,600만여 쪽에 이르는 원문 정보를 전송받게 되었다. 같은 해 11월 13일에는 경북과학대학교와 우수 전문인력 양성과 상호 발전을 위한 학술교류 협정을 체결하였고, 11월 15일에는 여주대학 자동차과와 (주)현대·기아자동차 간에 자동차 교육에 필요한 정보와 인적 물적 자원의 상호 교류를 통해 우수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산학협동 조인식 및 현판식이 열렸다. 나아가 국제교류를 통한 자매결연도 이어져, 캐나다 British Columbia Institute of Technology와 호주의 New Castle 대학과의 협정이 체결되었다. 이후 2013년 12월 30일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부설 고등직업교육평가인증원으로부터 ‘교육역량강화사업 지원 대학’으로 선정되었고 2013년에 진행된 대학기관평가인증에서도 양호한 결과를 얻었다. 현재 여주대학교는 윤준호 총장의 주도 아래 특성화와 NCS 교육 시스템 적용에 힘쓰는 한편 대학의 미션과 비전을 수립하여 개교 30주년까지 향후 10년간 이루고자 하는 발전 계획을 수립함으로써, ‘스무 살 청년기’를 넘어 ‘서른 살 성인기’에 이르기 위한 중장기 발전의 튼튼한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사건·사고[편집]

여주대 사학 비리 사건.등록금을 무분별하게 사용한 사건[편집]

2011년 6월 29일 여주대에 따르면 한 방송사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공개된 이 대학의 2006~2010년 사이 법인카드 사용내역 2만5천여건(30여억원)을 보면 커피전문점, 일식집, 한정식 식당에서 카드가 쓰여졌다. 수원의 한 일식집에서는 57차례에 걸쳐 2천500여만원을, 화성의 한정식 식당에서는 한달 평균 5~6차례씩 모두 120여차례에 걸쳐 1천600여만원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트랜스젠더바, 룸살롱, 마사지업소까지 드나든 것으로 확인돼 법인카드 관리가 허술하게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3] 전체 사용 내역을 업종별로 분류하면 한식 8,713건 사용금액은 10억 7천여 만 원, 서양 음식은 1,930건 사용금액 1억여 원, 일식집은 829건 1억 6천여만 원을 사용해 음식에 가장 많은 지출을 보였다. 그 다음으로 마트는 1,648건 사용금액 4억 2천여만 원, 숙박은 163건 사용금액 1억 8천여만 원이었다. 그 밖에 주유소, 주점, 약국, 상품권 구입, 노래방 등이 있었다.[4]

지역별로는 대학이 위치한 지역이 11,609건으로 카드 사용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은 서울이 7,248건으로 전체 사용 중 28%를 차지했다. 그중 강남구는 2,237건에 달했다. 현행 사립학교법에는 재단회계와 대학회계가 분리돼 재단법인 관계자는 교비를 사용할 수 없다. 그런데 여주대학 정 모 전(前) 이사장의 주소지 주변의 마트, 약국, 커피전문점, 식당 등에서 상당한 액수의 카드가 쓰였다. 심지어 마트에서는 기저귀까지 구입한 내역이 드러났다. 또한 여주대학에서는 일부학과의 학생들이 필수 학기제를 명분으로 뉴질랜드에 잇는 한 사립대학으로 2개월 간 연수를 가야 하는 시스템이 있음을 공개했다. 하지만 이 사립대학 또한 홍 모 여주대학 재단 이사가 설립한 학교였다. 또한 학생들이 연수를 위해 내는 비싼 등록금의 일부가 홍모 이사의 개인계자로 송금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이에 대해 여주대학 측에서는 "그건 우리학교가 알 바 아니다"며 사태를 외면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여주대학의 등록금 이용실태와 등록금 인상 원인에 대해 명쾌한 대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여주대학의 일부 학과는 다른 사립대학교보다도 높은 수준인 매년 1000만원의 등록금을 받아오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비리가 공개되자 여주대학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재학생 및 네티즌의 비난의 글이 쇄도했고 특히 '난 지금도 등록금 내려고 아르바이트 하고 왔다'는 안타까운 사연이 눈길을 끌었다. [5] 여주대학은 이전에 수 차례 사학비리 혐의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6]

동문[편집]

각주[편집]

  1. 대학구조개혁평가 결과…교육부, 재정 지원 제한 "장학금까지 영향?" , 중앙일보, 2015년 9월 1일 작성.
  2. 이홍하 설립 4개大 모두 최하위…재정지원 전면 제한, 한국대학신문, 2017년 9월 4일 작성.
  3. 이우성 (2011년 6월 29일). “여주대학 법인카드 무분별한 사용으로 비난”. 연합뉴스. 
  4. PD수첩 (2011년 6월 28일). “등록금이 비싼 이유- 어느 사립대학의 법인카드 실태 보고”. PD수첩. 
  5. 한경닷컴 뉴스팀 (2011년 6월 29일). “ PD수첩, 등록금 무분별하게 사용한 여주대학 실태 고발”. 한국경제. 
  6. 김행수 (2011년 7월 1일). “헉! 세상에 이런 일이... 두 학교가 "똑같다". ohmynews.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