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전라도 지역에 4년제 기독교 대학의 설립을 추진해 오던 미국 남장로교회 세계선교부 한국선교회는 1954년5월 6일 전주에서 열린 연차대회에서 대학 설립 연구 위원회를 구성하여 대전에 대학을 건립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이사회장이었던 린튼(영어: William A. Linton, 한국 한자: 印敦 인돈)이 대전에 세워질 이 학교에 대한 업무를 담당하여 추진하였다.[1][2]
1972년10월에는 문교부로부터 대학교육 개선을 위한 실험대학으로 선정되었으며, 이에 따라 신입생 계열별 모집, 이수학점 140점으로 인하, 부전공제 실시 등의 정책을 시행하였다. 숭실대학과의 통합 말기에는 입학정원이 4,017명에 이르렀으나, 대전직할시 및 충청도 지역 주민들과 대학 구성원들은 독자적인 대학운영을 요구하였다. 1979년10.26 사태를 계기로 학생회가 부활하면서 캠퍼스 분리 운동이 벌어졌으며,[4] 결국 1980년4월 이사회는 숭실대학교와의 분리를 선언하였다. 1982년11월, "학교법인 대전기독학원"을 설립하였고, 1982년12월 교명을 "한남대학"으로 변경하였다. 1985년11월 종합대학교로 승격 인가되면서 교명을 "한남대학교"로 변경하였다. 총장에는 이원설 박사가 취임하였다.[1]
오정동 선교사촌은 교내에서는 인돈학술원(Linton Academy)이라 불리는 곳이며, 경상대학 뒤편에 자리잡고 있다.[5] 이곳은 1955년에서 1958년까지 선교사들이 기거했던 곳으로, 대전광역시에서는 1955년에 지어진 맨 뒤편의 세 채를 문화재자료 제 44호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세 채 중 가운데의 것은 인돈학술원으로 실제로 활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