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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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장로회(大韓-敎長老會)는 대한민국에서 칼뱅주의 개혁 신학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따르고 대의 민주주의 교회정치와 당회, 노회, 대회, 총회로 이어지는 계층적 질서에 따라 교회를 운영하는 개신교 교단들의 통칭이다. 일제 강점기 말에 해산되었던 장로교 총회가 1947년 재건된 이래 신학적인 입장의 차이 등 다양한 이유로 분파된 장로교 교파들이 과거 총회를 계승했다고 서로 주장하며 동일한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역사[편집]

장로교 소속 선교사들이 선교를 시작한 1884년 이래, 한국의 장로교회는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를 결성하면서부터 독립된 교회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일제 강점기에 신사 참배 문제로 조선총독부와 마찰을 보이다가, 제27차 총회(1938년)에서 공식적으로 신사참배를 가결하면서 변질되기 시작하였고, 1943년에는 일본기독교조선장로교단으로 일본 장로교 산하로 통합되며 해산한 이후, 1945년에는 일본기독교조선교단이라는 통합 기독교 교단에 흡수되었다.

1945년 일제 패망 후 장로교회 재건에 대한 논의가 지속된 이래, 남북 분단의 상황에서 남측의 장로교 교인들만으로 1947년 총회를 다시 시작하였고, 1949년에 대한예수교장로회로 명칭을 변경했다.

1952년 고려신학교를 중심으로 한 신사참배 저항 목회자들이 총회에서 제명당한 것을 계기로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이 출범하였고,[1] 1957년에는 성서비평학을 받아들이는 진보적 장로교 계열이 한국기독교장로회조선신학교(한신대학교)를 조직하여 분열해 나갔다. 1959년 세계 교회 협의회 가입을 둘러싼 의견 대립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으로 갈라졌다. 이후 1961년 박병훈 목사를 주축으로 한 대한예수교장로회(호헌)가 분리하고 1974년 제24회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총회에서 신자간에 일반 법원에서의 고소가 가능하다고 가결한데서 빚어진 교리의 신학적인 변질과 교회행정 문제에 항의한 것이 문제가 되어 고신측 총회에서 분리되어 나온 반고소 고려파가 대한예수교장로회(고려)총회를 세워 나간 뒤로 대한민국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교단은 170여 개[2] 에 이른다. 2000년대 이후, <스코틀랜드 장로교 전통>의 역사적 계승을 선언한 한국예수교장로회가 새로이 2012년 1월에 출범했다. 이러한 장로교회의 분열상에 대해 복음주의 신학자 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는 그 자신이 장로교 성직자임에도 한국장로교의 분열은 자기에게 집중하는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과 독선에 따른 일이며,이제라도 한국장로교회는 교제와 협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3] 그러나 장로교회의 이념은 성경 '진리'와 개혁주의 교리안에서 하나가 되어야만을 강조한다.

장로교 교단별 교세[편집]

참고자료[편집]

  • 김수진 (2005년 9월 20일). 《총회를 섬겨온 일꾼들》.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ISBN 8939806433.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이 교단은 1960년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과 결합하였으나 신학적인 견해 차이 및 신학교 통폐합에 대한 의견 대립으로 1963년 환원하였다.
  2. 이중에는 개신교계에서 이단으로 판정되어 소속 교단에서 제명된 교회가 자체적으로 만든 비성경적인 장로교단도 포함된다.
  3. 뉴스 앤 조이 2006년 03월 31일자,김명혁 목사, “화해, 균형, 조화를 추구하며"
  4. http://www.newsmission.com/news/news_view.asp?seq=68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