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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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改新敎) 또는 프로테스탄트(Protestantism)는 16세기 부패한 로마 가톨릭교회종교 개혁의 원리인[1] 오직 성경, 오직 은혜, 그리고 오직 믿음으로 개혁하기 위하여 루터츠빙글리 그리고 칼빈과 같은 종교개혁가들에 의해서 시작된 기독교 교회를 말한다. 독일에서는 복음주의 교회(독일어: Evangelische Kirche)라고도 부른다. 기독교에서, 어디까지가 개신교의 범주에 속하는지에 대한 정의는 분명하지 않지만, 대개 종교 개혁 1세대 종파들로부터 현재까지 분파된 종파를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프로테스탄트 시작과 어원[편집]

개신교는 초기에 로마 가톨릭교회의 타락에 루터와 같은 개혁가들이 성경말씀을 가지고 초대교회의 순수한 ‘믿음과 복음으로 되돌아가자는 운동에서 시작되었으므로, 흔히 ‘복음주의자들 (독일어: Evangelikale)’ 이라 불렸고, 유럽에서는 현재까지 이 용어가 개신교의 의미로도 사용되지만, 영어권에서는 ‘복음주의자’보다는 ‘항의자, 반항자’라는 뜻의 ‘프로테스탄트(영어: Protestant)’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고, ‘개신교’라는 표현은 Reform에서 따와 한자어로 번역한 말이다.

개신교(Protestantism)라는 말이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곳이 독일의 슈파이어(Speye)이다. 마르틴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Reformation)이 1517년에 시작되었다. 1529년 증오심을 가진 가톨릭 실세들과 독일 제국의 일부 군주들이 슈파이어에 모여 제국 의회를 열고 교회의 분리를 주장하는 루터주의자들의 활동 일체를 금지하는 결정을 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샤를르5세(카를로스5세) 치하에서였다. 슈파이어 의회(Diet of Speyer)의 명목상 목적은 터키의 수상한 움직임에 대처하는 방안을 강구키 위해 모인 회의였지만, 실제로는 루터의 종교개혁을 지지하거나 추종자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었다.[2]

프로테스탄트의 탄생은 종교개혁가들을 핍박하려고 햇지만 그들이 칼 5세에게 카톨릭파들의 주장이 비성경적인 것이라고 항의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김현배에 따르면 제국 의회는 더 이상 루터의 종교개혁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공포하면서, 명령을 어기는 자들에게는 황제의 처벌이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또한 루터를 이단으로 정죄한 1521년 5월 ‘보름스 칙령’을 강행하였다. 이렇게 해서 종교개혁이 더 이상 확산되지 못하도록 압박하였다. 이에 루터의 추종자들은 다수의 가톨릭파에 의해 결정된 제2차 슈파이어 제국의회 결의사항을 반대하였다. 루터 지지파 제후들 역시 침묵할 수 없었다. 그들은 종교개혁 진영 전체가 말살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고 판단했으며,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권위에 복종할 수 없음을 선언하였다. 그들은 루터파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용했던 1526년 의회 결정을 유지하라고 촉구했다. 그리고 그들은 1529년 4월 25일, 교회와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 칼 5세의 종교정책에 공식적으로 항의하는 문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일치단결해서 제2차 슈파이어 제국의회 결정에 대해 황제에게 강력히 ‘항의’했다. 황제와 로마 가톨릭 지도자들에게 항거했으나 이들의 항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렇게 항의한 사람들은 “Protestant”(항의하는 자)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이것이 개신교의 이름이 되었다. 당시 항의서에는 작센의 선제후 요하네스, 헤센의 영주 필립, 브란덴부르크-안스바하의 게오르크, 뤼네부르크의 에른스트, 안할트의 볼프강 등 5명의 군주들과 독일 14개 제국 도시들의 대표들이 서명했다. 루터의 개혁운동을 지지했던 복음주의자들이다. 14개 도시는 스트라스부르크, 뉘른베르크, 울름, 콘스탄츠, 린다우, 켐프텐, 뇌르들링엔, 하일브론, 이스니, 생 갈렌, 로이틀링엔, 바이센부르크, 빈추하임, 멤밍엔 등이다. [3] 대한민국에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개신교’의 의미로 생각하고 사용하나, ‘기독교(基督敎)’라는 표현은 '크리스트교'를 한자로 번역한 말이기 때문에 개신교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로마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등과 함께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모든 종교들을 일컫는 말이다. 즉, 모든 ‘기독교’는 곧 ‘개신교’라 말할 수 없지만, '개신교'는 모두 '기독교'라는 것이다. 또 '가톨릭'도 모두 '기독교'라 할 수 있다.

개요[편집]

교의[편집]

개신교의 주요 교리는 예수님의 사랑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상 땅 끝까지 자손 대대까지 이르러 그 정신을 전파하는 데에 있다. 기본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말씀에 충실하며 올바른 진리와 믿음으로 섬기면서 그러나 우선적으로는 보다 하나님을 향한 진실된 사랑을 실천하며 형제 자매 이웃들을 돌아보는 것이 그 핵심이다.

개신교 교회들[편집]

종교 개혁 운동[편집]

종교 개혁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개신교 교파로는 마르틴 루터의 사상을 따르는 루터교를 비롯한 장로교, 감리교, 메노나이트, 재세례파, 후터라이트, 아미시파, 성공회 등이 있다. 근대 영국에서는 성공회종교개혁예복사용 등의 제도에 집중된 성공회의 종교개혁(즉, 초기 영국 성공회가톨릭적인 면)에 반대하며, 오직 성서만의 권위를 인정하는 청교도들의 종교개혁 운동[4] 이 등장했으며, 이들 청교도 운동에서 회중교회침례교회가 발전했다.

에큐메니컬과 신복음주의[편집]

에큐메니컬[편집]

기독교가 교단 간의 분열과 갈등으로 선교에 지장이 있음을 경험으로 느낀 진보적인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세계 교회 협의회(WCC)가 출범하였는데. 여기에는 개신교회, 정교회가 회원교단으로 참여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로마 가톨릭교회는 참관인들을 파송하고 있다. 에큐메니컬 운동에서는 비 본질적인 교의보다는 본질적인 복음과 제자도의 실천을 강조하며[5],성찬예배 전례인 리마전례(Lima Liturgy),세계교회에서 사용하는 개정공동성서정과(RCL)에 근거한 교회력으로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이룸으로써 기독교단들의 분열과 대립을 극복하고자 한다. 한국에서는 가톨릭, 대한성공회, 기독교 대한 감리회, 기독교 대한 복음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한국 기독교 장로회, 구세군 대한본영, 기독교 하나님의 성회, 정교회 한국 대교구가 회원교단 및 협력교단인 한국 기독교 교회협의회에서 에큐메니컬 운동을 실천한다.

신복음주의[편집]

신복음주의 운동은 흔히 복음주의 운동으로 불리며 19세기 유럽의 진보적 신학에 대립하는 보수주의 운동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을 진정한 개신교회의 복음을 전하는 의미에서 "복음주의자"이라로 자칭하여서 개신교회의 종교개혁 사상을 따른 전통적 "복음주의"와 구분하기 위해 "신복음주의"라고 부른다. 신복음주의는 반지성주의, 기독교 근본주의의 문제를 안게 되는 보수적 기독교계의 움직임에 견제하는 흐름이 되었다. 개신교계의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한 입장이 전혀 달랐던 신복음주의[6] 계열 교회들과 교인들의 연합체인 세계복음주의연맹(WEA)가 결성되고 1974년 로잔 회의에서 신복음주의적 그리스도인의 사회선교를 강조하는 로잔 언약이 선포되었으며 양 기구 간의 협력이 가속화되는 등 가시적인 거룩한 일치의 결과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어 의견차가 있음에도 교회 일치를 향한 발걸음은 계속되고 있다.

개신교 교파[편집]

1517년에 일어난 루터의 종교 개혁 운동에 따라 기존의 로마 중심의 교황제도를 왜곡된 교회제도로 보는 교회와 새로운 교회들이 교파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세계 기독교 백과에 따르면 2001년 현재 238개 국가에 33,000개 이상의 개신교 교파가 있으며, 매년 270~300개의 교파가 새롭게 생겨나고 있다.[7] 주요 개신교 교파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주요 개신교 교파의 분화도

루터교[편집]

16세기 종교개혁 운동으로 가장 먼저 성립된 루터교는 성서이외에는 다른 어떠한 권위도 두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오직 성서만으로, 오직 믿음만으로, 오직 은혜만으로(Sola Scriptura, Sola Fide, Sola Gracia)’라는 세 가지 원리는 루터교를 떠받고 있는 기둥이다. 루터교에서는 평신도들이 단상에 올라와 설교를 하거나 성만찬(Holy Communion,성체와 보혈을 나누는 잔치)을 성직자들과 함께 베풀기도 한다. 성만찬을 제외한 전례가 로마 가톨릭의 미사전례와 유사하며, 종교 개혁 시대에 분리된 루터교는 비슷한 시기에 분리된 장로교와 더불어 다섯 솔라 정신을 공유한다. 루터교의 세계적 교인 수는 약 7천만 명이다. 현재의 루터교는 초기의 분리주의와 달리 독일에서는 에큐메니컬 운동에 앞장서는 대표 종파로 알려지고 있으며, 특히 가톨릭교회와 공동으로 많은 연합사업을 펼쳐 나가고 있다.

장로교[편집]

장로교회의 시작은 장 칼뱅이 스위스에서 종교 개혁을 일으켰던 개혁교회 시대로 올라가며, 이는 지역에 따라 나뉘어졌다. 장로교회는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John Knox)에 의해 확립되었다. 선거에 의해 선출된 장로목사를 보필하는 장로제에서 그 이름이 연유한다. 신학적으로는 종교 개혁 시대에 체계화 된 개혁주의를 표방한다. 다섯 솔라를 핵심 교리로 인정한다. 대한민국에서는 600만 이상의 신자들이 포함되어 있어, 개신교 신자들 중 가장 많은 수가 이 교파에 속해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대한예수교장로회(호헌), 한국기독교장로회 등으로 나뉘어 있다.

개혁교회[편집]

개혁교회의 시작은 장 칼뱅이 스위스에서 종교 개혁을 일으켰던 개혁교회 시대로 올라가며, 지역에 따라 그레이트브리튼 섬에서 발전된 장로교와 달리 유럽 대륙(주로 네덜란드)에 발전하였다. 개혁교회에서는 신앙고백의 문서로 하나되는 세 고백서도르트신조벨직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사용한다. 장로교와 같이 칼뱅주의에 연원을 두고 있으므로 둘의 차이는 거의 유사하다. 장로교와의 차이는 설교나 가르침에서 교리를 강조하고 신앙고백 문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예배에 있어 개혁주의 모범을 따르는 점과 [8] 개혁주의 교회론에 따라 '진정한 교회’에 대해 순수한 복음의 선포, 성례의 합당한 시행, 죄를 처벌하는 권징 등 3가지와 '선포된 말씀’인 설교와 ‘세례와 성찬’이라는 성례가 있어야 한다 보는 점이다.[9]

성공회[편집]

성공회(聖公會, 영어: Anglican Church 또는 Episcopal Church)는 전 세계 160여 개국, 38개의 독립적이고 자치적인 지역 교회(관구)로 이루어진 교파이며, 전 세계적으로 신자는 약 7000만 명이다. 종교개혁 전통에 따라 개혁하는 보편적 교회(Reforming Catholic Church)라는 정체성과 《성공회 기도서》에 근거한 전례를 갖고 있다. 성서, 이성, 전통에 근거한 그리스도 신앙을 추구하며, 의회민주주의 전통에 따라 교구의회에서 선출된 주교의 치리를 받는 주교제 교회이다. 한국성공회 관구에는 대한성공회가 있다. 대한성공회는 선교 초기부터 한국 문화의 토양 깊이 뿌리를 내린 교회가 되고자 토착화에 힘썼다. 그래서 한국 건축 양식인 한옥으로 지은 성공회 성당들이 지금도 강화 (강화성당), 진천 (진천성당), 청주 (수동성당) 등에 남아 있다. 비슷한 시기에 전래된 장로교, 감리교 등과는 달리 적극적인 전도보다는 학교와 병원을 지어 운영하는 사회선교로 기독교 신앙을 실천하는 것에 무게를 두었다. 간혹 영국 국교회로도 알려지고 있으나, 잉글랜드 성공회만이 해당된다.

침례교[편집]

침례교(浸禮敎,baptist)는 개신교의 한 교파이다. 침례교는 예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한 후, 신약성경에 근거하여 물에 완전히 잠기는 침례를 주장하기 때문에 침례교회라는 교단 명칭을 갖게 되었다. 침례교는 (영아가 아닌 즉, 모태신앙 부정) 신앙인의 침례와 믿음만으로 이뤄지는 구원을 비롯해 성경을 신앙과 실천의 유일한 원칙으로 삼고 있으며, 자립적인 지역 교회를 그 특징으로 갖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침례교가 교리가 없이 무조건 자유롭다라고는 할 수 없으며 침례교 자체적으로 신앙고백서가 존재하고 대부분 완화된 칼빈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침례교는 일반적으로 복음주의 노선을 지향하며, 직제는 목사집사가 있다. 역사신학자들에 따르면 1609년 암스테르담에서 영국인 분리주의자 존 스미스목사로 한 침례교회가 최초의 침례교회라고 한다. 신약성경에 근거해 스미스는 영아의 침례나 세례를 거부했고, 신앙에 대한 구체적인 고백이 있는 이들에 대해서만 침례를 주었다. 이러한 자유교회운동은 영국으로 퍼져, 칼빈주의를 기초로 하는 특수침례교인(Particular Baptists)들과, 알미니안주의를 기초로 하는 일반침례교인(General Baptists)들이 생겨났는데, 영국침례교는 일반적으로 칼빈주의를 기초로 하는 개혁파 혹은 특수침례교(Particular Baptists)적 성향이 두드러졌다. 1639년 로저 윌리엄스는 미국에 최초로 침례교회를 설립하였고, 미국의 자유정신은 침례교회의 자유정신과 유사한 점이 있었고, 침례교회가 성장하는 기초가 되었다. 특히 1700년대 중반의 대각성 시대 이후 미국의 침례교회는 감리교회와 더불어 증가하기 시작했다. 2000년을 기준으로 세계의 침례교인 수는 약 1억 5천만 명으로, 특히 미국의 개신교에서 교세가 가장 큰 교파는 세계 최대의 개신교단인 남침례회(Southern Baptist)이다.

감리교[편집]

감리교회(영어: Methodist Chruch)는 18세기 영국의 성직자인 존 웨슬리(영어: Rev. John Wesley)의 복음주의 운동, 사회선교, 전도활동으로 등장한 개신교 교파이다. 전 세계적으로 약 8천5백만명[10]이 넘는 신자가 있으며, 성경을 중심으로 한 이성, 전통, 체험을 기독교의 근간으로 이해하는 복음주의적이며 경건한 신학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신학적으로는 웨슬리의 사상을 중심으로 초기 교회 전통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으며, 교회구조적으로도 공교회(보편교회)의 제도인 감독제 교회를 구성하였다. 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방회의 감리사, 대규모 구역인 연회에 감독이 있는 교회구조를 가졌다. 감독은 연회의 성직자를 안수하고, 연회를 인도해 주요 의사결정을 내린다. 현재의 전 세계적으로 폭넓은 신학적 토양을 제공하였으며, 특히 영미에서 개인구원과 사회구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폭넓은 신학적 역량으로 다양한 개신교 교파가 감리교 영향 하에 설립되었다. 성결교, 순복음교회, 구세군교회 등이 감리교의 신학적 영향을 받았다. 대한민국에서는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있으며, 1930년부터 사회신경을 선언하는 등 복음의 사회적 실천을 강조한다.

성결운동[편집]

성결교는 19세기미국 감리교에서 존 웨슬리의 완전주의적 입장을 강조하며 형성된 교파로서, 20세기초 미국에서 활발하게 전개되던 성결 운동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중생, 성결, 신유, 재림 이 4가지를 4중 복음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그 중 성결을 가장 강조한다. 성결교 신학의 배경에는 우선 개신교를 바탕으로 두고 있기에 개신교의 복음주의와 그 당시 시대적으로 19세기에 있었던 성결 운동, 그리고 웨슬리의 신학적 배경이 되었던 알마니안주의를 들을 수 있다. 한국의 성결교 전파는1901년 미국인 카우만이 일본에 설립한 동양선교회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1907년에 한국에 대한 선교가 본격화되면서 독립 교파가 되었다. 1962년에 이념의 차이로 인하여 다시 기독교대한성결교회예수교대한성결교회로 분리되었다.

재림교회[편집]

미국 뉴욕 주에 사는 침례교도 윌리엄 밀러는 구약성경의 다니엘서와 신약성경의 요한계시록을 중심으로 성경의 예언을 연구한 결과, 그리스도가 1844년에 재림한다고 주장하였으나, 예고되었던 기한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없었다. 이에 신도들이 다시 모여 성경의 예언을 연구하여, 윌리엄 밀러의 시한부종말론이 잘못된 성경해석임을 깨달았다. 여러 교파에 소속된 개신교 목사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이 한데 모여 성경의 정통적 교리라고 판단되는 교리들을 연구한 결과 안식일, 예언의 은사, 성소기별 등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특유의 교리 외에 여러 보편적인 개신교 교리들을 확정하여 새 교파를 탄생시켰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라는 명칭은 1860년에 정해졌으며, 교단 조직은 1863년에 공식 출범하였다 한국에는 1904년 여름 필드(F. W. Field) 목사가 내한하여 71명에게 침례를 베풀었으며, 이후 평안남도 용강, 강서 지역에 네곳의 교회가 설립되었다.

오순절운동[편집]

한국에서 대표적인 오순절파로는 하나님의 성회(The Assembly of God)가 있다. 20세기 초 미국에서 일어난 오순절 운동은 성결운동에 참여한 교인들이 성령세례의 체험과 방언 현상을 경험하게 되는데, 성령세례에 반드시 방언이 동반되어야 함을 강조함으로 성결운동에서 독립하여 오순절 교단을 만들게 되었다. 성령세례와 방언과 함께 성경의 절대 무오성, 믿음을 통한 병고침 등 종교적 체험과 선교를 강조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유명하다.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에 속한 대부분의 교회 이름에 ‘순복음교회’를 사용하고 있어서 통상 순복음교회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조용기 목사의 동생인 조용목 목사(은혜와 진리교회)가 따로 만든 예수교대한하나님의성회도 있다. 2007년 이 교단들의 통합이 추진되었으나 특별법을 문제로 무산되어 현재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여의도순복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통합)로 나뉘게 되었다. 현재 세계 하나님의성회 총회장은 조지 우드(George Wood)이며 전세계 6800만 신도를 가지고 있다.

구세군[편집]

세계 하나님의 성회 총회장은 조지 우드(George Wood)이며 현재 전세계 6800만 신도를 가지고 있다.구세군(救世軍, 영어: The Salvation Army)은 1865년 영국의 감리교 목사인 윌리엄 부스와 그의 아내인 캐서린 부스가 창시한 개신교의 한 교파이다. 성직자를 사관, 신학교를 사관학교, 교인을 병사 또는 군우라고 부르는 등 군대식의 조직을 가진 특색있는 기독교이다. 기독교인은 이웃들에게 빵과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윌리엄 부스의 사상에 따라 구세군에서는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와 사회적 약자를 섬기는 사회봉사 모두 실천하고 있다.

회중교회[편집]

회중교회(영어: Congregational church)또는 조합 교회는 회중주의적 교회 운영을 실천하는 개신교 교회이다. 회중 교회에서는 각 회중이 독립적이며 자율적으로 자신의 모임을 운영하며, 많은 회중 교회는 자신들이 회중 교회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한다. 또 버마 선교사로 유명한 아도니람 저드슨은 회중교회 전통에서 자랐으나 인도 선교사인 윌리엄 캐리의 영향으로 개혁파 침례교 신자가 되었다.

미국 회중교회는 이후 그리스도인 교회(the Christian Churches)와 1929년 연합하여 그리스도인 회중 교회 (Congregational Christian Churches)를 설립하기까지 미국 최대 개신교 교단으로 존속 하였으며 미국의 문화, 사회 그리고 정치의 기초를 만들었고, 이들을 통하여 현재의 미국이 세워지게 되었다. 새로운 국가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이들은 교육에도 깊은 관심을 두었으며 하버드 대학교(Harvard), 예일 대학교(Yale), 윌리엄스 대학(Williams College)등 미국 내 유수대학들이 이들에 의해 설립 되었다. 이들은 특별히 뉴잉글랜드(New England)지역에서 교회를 확장 하였으며 1957년 복음주의 개혁교회 (Evangelical and Reformed Church)와 연합하여 오늘의 미국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United Church of Christ)를 설립하게 되었다.

재침례파[편집]

재침례파(Anabaptist, 그리스어: Αναβαπτιστές)[11] 는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근원적 개혁을 따른 개신교 종파를 가리킨다. 그 사상을 이어받고 있는 현대의 교파들로는 아미시파, 후터라이트, 메노나이트 등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120여만 명의 교인들이 있으며, 대한민국에도 재침례파 교회가 한 곳 있다.[12] 이 문서에서 재침례파라 함은 주로 16세기 근원적 종교개혁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유아세례뿐만 아니라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받은 세례도 무효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다시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여기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유아 세례를 반대하는 교파들은 침례교도 역시 마찬가지이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무효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대다수 기독교 교파에서는 침례가 죄의 용서[13]구원[14] 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사람이 일생 한 번만 받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재침례파는 이에 반대한 것이다.

재침례파의 역사는 그 사상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옹호하는 사람들에 의해 왜곡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근원이 일원이냐 다원이냐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다. 소수이기는 하나 재침례파야 말로 초대교회의 사도적 전통을 계승하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역적으로 구분하면 '스위스 형제단' (Grebel, Manz), 네덜란드 및 프리시안 재침례파 (Menno Simons, Dirk Philips), 그리고 남부 독일 재침례파 (Hübmaier, Marpeck)로 구분할 수 있다.

역사학자와 사회학자들은 더 나아가 급진적 재침례파와 평화주의 재침례파로 나눈다. 급진적 재침례파는 "새 예루살렘"을 땅 위에 건설하기 위해 폭력 동원을 인정했다. 급진적 재침례파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 뮌스터 반란이다. 그에 반해 신약성서에 근거한 비폭력주의를 주장하는 평화주의자들은 메노나이트(Mennonites)의 기원이 된다. 다시 말해, 원래 메노나이트의 기원은 네덜란드 로마 가톨릭교회 신부인 메노 시몬스(Menno Simons)가 두 부류의 전통적인 재침례파인 평화적인 오비파(Obbenites)와 급진적인 호프만파(Melchio Hoffman)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라 자부하는 자가 영적인 무기는 내려두고 세속적인 것을 취하는 것에 하나님의 말씀이 부합하겠는가?"라고 반문하며 평화주의자인 오비파 쪽으로 가입한 것이 계기가 되었고, 이후에 그곳의 지도자가 되었는데, 그의 추종자들을 그의 이름을 따서 메노나이트라 부르게 되었다.[15] 메노는 신약성서의 가르침에 따라, 폭력에 반대하는 비폭력주의를 주장하였다.[16] 한 번 받은 세례(특히 유아 세례)를 무효라고 주장하는 교리로 로마 가톨릭교회와 개신교 여러 교단에게 이단으로 취급되어 1600년까지 무려 1만여 명의 순교자들이 생겼으며, 1930년에는 나치의 탄압을 피해 후터라이트(재침례파의 일파)공동체인 부르더호프 공동체가 영국으로 건너가기도 했다. 현재는“재침례파가 21세기 개신교가 갈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17] 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퀘이커[편집]

퀘이커(Quaker)는 17세기에 등장한 개신교의 한 갈래이다. 친우회(형제들의 단체, Society of Friends)란 뜻을 가지며, 퀘이커라는 이름은 ‘주님 앞에서 떤다’는 조지 폭스의 말에서 유래했다. 1650년대영국조지 폭스(George Fox)가 제창한 명상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창시자 조지 폭스는 19세에 집을 나와 4년 간의 구도여행을 통해 펜들 힐(Pendle Hill)이라는 에서 환상을 보며 그리스도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한다. 퀘이커는 영국 정부에 의해 탄압받았으나, 퀘이커 신도 윌리엄 펜이 불하받은 북아메리카 식민지 영토에 도시(現 미국 펜실베이니아)를 세움으로써 종교적 자유를 허용받았다. 국내의 유명한 퀘이커 교도로는 씨알정신으로 유명한 씨알 함석헌 선생이 있다.

세계 개신교 성도 수[편집]

개신교 신자 수 통계

전 세계 개신교 신자 수는 약 8억 명 정도이다.[18]

  • 오순절교회 : 2억8천만 명[19]
  • 성공회 : 8천5백만 명[20]
  • 침례교회 : 7천5백만 명~1억 5백만 명[21]
  • 루터교회 : 6천5백만 명~9천만 명[22]
  • 감리교회 : 8천만 명[23]
  • 개혁주의 교회 : 5천5백만 명~8천만 명[24]
    • 칼뱅주의
    • 장로교회
      • 장로교회(미국) : 180만 명
      • 장로교회 (한국): 500만 명
    • 회중주의교회
      • 그리스도 연합 교회 : 120만 명
  • 재림교회 : 3천만 명
  • 재세례파 : 350만 명
    • 메노나이트, 아미시, 퀘이커 등.
  • 비교파 복음주의 : 4천만 명
  • 복고주의 개신교 : 2천만 명

나라별 개신교[편집]

한국[편집]

1866년 제너럴셔먼호 사건 이후, 여러 차례 외국 선교사들이 선교를 시도했지만 직접적인 선교는 불가능했다. 따라서 만주 지역에 있는 한국인을 중심으로 전도가 이루어졌다. 조선의 개신교는 1879년 이응찬(李應贊), 서상륜(徐相崙, 1848년~1926년) 등이 중국 만주에서 세례를 받은 다음 신앙 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시작되었다.[출처 필요] 조선의 개신교는 신앙 공동체 형성 직후부터 성서 번역에 착수하여 1882년 함경도 방언으로 된 <예수성교 누가복음젼셔>를 출판했다. 따라서 한국의 개신교 전래는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부터 시작되었다. 1883년 이수정이 일본에서 야스가와 목사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그는 한글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해 1885년에는 〈마가의 전복음셔언해〉을 출판해 냈다. 성서를 한글로 옮긴 실천은 일본에서 체류하고 있던 서구 개신교 선교사들이 한국에서의 선교를 준비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25] 이수정은 미국에 한국에 선교사를 보낼 것을 요청하였다.

1885년 4월 5일 같은 날 장로교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와 미국 북감리교아펜젤러 목사가 한국에 들어오게 된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광혜원을 설립하였고, 아펜젤러 목사는 배재학당(現 배재고등학교, 배재대학교)를 설립하였다. 그 밖에 침례교캐나다맬콤 팬윅에 의해 전래되었으며,재림교회(또는 안식일교회,안식교회)는 1904년 이응현, 손흥조가 하와이로 이민 도중 일본 고베에서 신앙을 받아들이고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들어왔다. 1905년 구세군교회도 구세군 사관 허가두 중령에 의해 들어왔다. 한국의 자생 개신교단으로 1935년에 설립된 기독교대한복음교회가 있다. 한국에서는 개신교와 기독교가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지만,기독교는 그리스도교를 뜻하므로 개신교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평양 대부흥[편집]

평양 대부흥1907년평양에서 있었던 큰 교회 성장을 일컫는 말이다. 개신교의 세력이 강했던 조선 북쪽 지역의 개신교 신자, 선교사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공개적 고백한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길선주 장로를 비롯, 신자들과 선교사들은 횡령 및 교우들에 대한 교만한 태도 등을 고백하고, 이를 돌려주는 절차 등을 밟았다. 이후로 개신교인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이 일어났다.[26]

일제 강점기의 신사참배[편집]

1930년대 군국주의가 기승을 부린 일본 제국에서는 한국의 교단들을 통폐합하고 일본과 조선의 소위 미션스쿨과 개신교 교회들에 대해 신사참배를 강요한다. 이때 조선 개신교는 크게 세 가지 반응을 보였다: 적극 참여파 / 무관심한 소극파 / 적극 반대파. 주기철,최상림처럼 하나님 앞에서 우상숭배를 할 수 없다는 종교적 이유에서 신사참배에 반대한 사람들과, 양주삼처럼 신사참배는 종교 행위가 아니라면서 찬성하는 부류로 나뉘었다. 당시 대다수의 장로교, 감리교는 이에 찬성하여 신사참배에 동참하였다. 하지만, 해방 이후 친일활동을 한 개신교 목사들이 교회에서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총회장이나 노회장 등의 교단지도자를 역임했기 때문에, 교회사학자들은 친일파 청산을 한국 개신교가 사실상 하지 못했다고 비평한다. 이로 인해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고신(고려)파가 분리되었다.[27] 그러나 최근들어 민족적 신사참배에 대한 교회적이고 민족적인 회개운동이 전개 되어, 장로교회에서 주기철 목사를 복권시키는등의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광복 이후의 개신교[편집]

광복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개신교가 크게 성장하였다. 미국에서 발간되는《크리스천 월드(Christian World)》가 1993년에 발표한 세계 대형 교회의 순위를 보면, 세계 10대 대형 교회 안에 한국 교회가 1위와 2위를 포함하여 5개가 포함되어 있으며, 20위 안에는 10개, 그리고 발표된 50위 안에는 23개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28] 개신교가 한국에 들어온 것이 1885년, 진정한 개신교 선교의 시작 시점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대한민국의 개신교는 불과 50여 년 정도 만에 세계 선교의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속도의 성장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 인구의 약 18.3% 정도가 개신교 신자이다.[29] 하지만 성직자 수급 불균형 문제, 대형교회의 목사 장로등의 지나친 정치참여, 중대형교회들의 교인 독점, 교회의 상업화, 십일조 문제, 세금 문제, 타 종교 배척, 지나치게 자의적인 성경해석으로 인한 수많은 분파 설립 등이 문제화 되고 있다. 2007년 현재 대한민국은 지난 10년간 개신교 신도 수가 1.6% 감소하였다.[30][31][32]

인도네시아[편집]

일본[편집]

유럽의 교회[편집]

2010년 현재, 유럽의 평균 개신교 출석교인은 3% 정도이고 신복음주의자는 1%도 안되는 나라가 22개국이다, 프랑스는 60년 전에는 전체 인구의 96%가 로마 가톨릭교회 미사에 참석했으나 지금은 6%만이 미사에 참석하며 개신교는 전체 인구의 0.6%만이 예배에 참석한다.[33]

함께 보기[편집]

참고 자료[편집]

  1. Oxford Dictionary, "Protestant"
  2. ‘프로테스탄트’의 탄생
  3. 김현배 , 루터와 츠빙글리의 성만찬 논쟁
  4. 《이야기교회사》/이성덕 지음/살림
  5. 《이야기 교회사》/이성덕 지음/살림
  6. 에큐메니컬 운동을 반대하는 보수적 입장의 개신교인의 모임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진정한 개신교 전통이라 주장하여 자신들을 '복음주의'로 칭함, 전통적 개신교 전체를 의미하는 복음주의와 구분하기 위해 신복음주의로 구분함. 복음주의는 유럽에서는 개신교 전반을 이르는 의미이나 영어권인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주로 신복음주의 사상 중 온건사상을 의미한다. 급진적 신복음자들은 주로 근본주의자로 지칭되나 이들은 자신들을 항상 '복음주의'라고 자칭한다.
  7. World Christian Encyclopedia (2nd edition). David Barrett, George Kurian and Todd Johns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1
  8. 새길개혁교회
  9. 개혁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10. 세계감리교협의회 [1]
  11. ανα(/아나/, again) + βαπτιζω(/밥티조/, baptize) = re-baptizers
  12. 한겨레 2005년 11월 16일자, 자생적인 재침례파 교회인 춘천 예수촌 교회 기사.
  13.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회개하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받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 2:38
  14. 믿고 세례(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겠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단죄를 받을 것이다.

     
  15. Justo L. Gonzalez, A history of Christian, Vol. III, Abingdon Press, 1975, p.86
  16. 유재덕 지음. 《《5시간만에 읽는 쉽고 재미있는 교회사》》. 작은행복. 
  17. 2003년 4월 10일자 "평화교회 재세례파(재침례파)는‥"
  18. https://www.cia.gov/library/publications/the-world-factbook/geos/xx.html
  19. http://www.pewforum.org/2011/12/19/global-christianity-traditions/#protestant
  20. http://www.anglicancommunion.org/structures/member-churches.aspx
  21. http://www.pewforum.org/2011/12/19/global-christianity-traditions/#protestant
  22. http://www.pewforum.org/2011/12/19/global-christianity-traditions/#protestant
  23. 세계감리교협의회 [2]
  24. http://wcrc.ch/our-story/
  25. 대한성서공회
  26. 김동민 (2006년 1월 12일). “100년 전 그 날 평양에선… 교인들의 회개가 줄을 이어”. 조선일보. 2008년 2월 6일에 확인함. 
  27. 일본 개신교회사/김수진 지음/홍성사
  28. 〈조선일보〉1993년 2월 8일자, 23면 참조.
  29. Religion in South Korea#Statistics on religion by population 통계 표의 ‘Protestant’ 수치 참조
  30. 정천기. 한국 개신교 쇠퇴기 들어섰나?. 연합뉴스. 2007년 9월 10일.
  31. 이상규. 한국교회의 상황. 국민일보. 2012년 8월 12일.
  32. 공병설. "한국교회, 파시즘 요소 청산하지 않으면 생사 위기". 연합뉴스. 2013년 7월 8일.
  33. 최종상. 선교지가 된 유럽, 평균 개신교 출석교인은 3%. 2010년 3월 4일.

외부 링크[편집]

일반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