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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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Calvin - best likeness.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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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인물

장 칼뱅,
존 낙스, 존 오웬
조지 휘트필드, 찰스 스펄전
아서 핑크, 존 그레섬 메이천, 찰스 핫지
아브라함 카이퍼, 게할더스 보스
마틴 로이드 존스, 조나단 에드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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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의 유명한 조각가 다니엘 레클레로(Daniel Lecleroq)가 만든 장 칼뱅 동상, 장신대학교
에딘버그 대학교에 있는 존 헛치슨(John Hutchison)의 작품인 존 녹스 동상

장로교(Presbyterianism)는 16세기 종교개혁 운동으로 형성된 유럽의 칼뱅주의적 개혁파 가운데 스코틀랜드종교개혁 기간 동안 존 녹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칼뱅주의 성격의 개신교 교파다. 존 녹스칼뱅의 제자로 스코틀랜드로 건너와 칼뱅의 종교개혁 사상을 전파하였다. 장로교는 칼뱅의 신학적 전통을 따른다는 점에서 다른 개혁파 교회와 신학에서 거의 같다. 그러나 교회의 치리 구조에서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당회(치리회)가 교회를 다스리되, 개별 교회 만으로 완전한 교회 조직이라고 하지 않고 상회(上會)로서의 노회를 두고, 더 넓은 치리회로서 대회 또는 총회를 두는 계층적 교회 질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개혁교회와 구별된다.[1] 대한민국에서는 넓은 의미에서는 개혁파(Reformed)와 같은 의미로 또는 한 부분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개혁파 교회는 성공회, 루터교, 재침례파(아나 뱁티스트)와 더불어 16세기 종교개혁 시기에 형성되었고, 장로교회는 스코틀랜드를 중심으로 보존되어 오다가, 20세기 초에 주로 미국 남장로교와 북장로교의 선교 과정을 거쳐 한국(당시 조선)에 전파되었다.

특징[편집]

교의[편집]

한국의 가장 큰 종파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에서는 신학적으로 개혁주의를 따르며 신구약성경을 신앙과 본분에 대하여 정확 무오한 유일의 법칙으로 본다.[2]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등에서는 다른 견해를 가지기도 한다.

한국 전래 및 역사[편집]

  • 1866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장로교 선교사 로버트 저메인 토머스가 제너럴 셔먼 호를 타고 평양에 입국했다가 순교함.(한국 개신교 순교자 1호)
  • 본격적으로, 한국에는 미국 장로교회의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목사 등의 선교활동으로 1885년에 들어왔다.
  • 1912년 9월 첫 장로교 총회
  • 1952년 9월 장로교의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투옥당했던 사람들이 대한예수교장로회 고려파로 분립하였다.
  • 1953년 성서비평학 수용문제로 보수적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예장)와 진보적인 한국기독교장로회 (기장)로 분열되었다.
  • 1960년 2월 대한예수교장로회세계교회협의회 가입에 찬성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과 반대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으로 갈라졌으며,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이 합동측에 참여하였다. 분열에는 신학적인 문제와 함께 출신지역과 관련이 있었는데, 합동측은 평안남도와 황해도 출신이 많았고, 통합측은 평안북도 출신이 많았다.
  • 1974년 제24회 고신측 총회에서 신자간에 일반 법원에서의 고소가 가능하다고 가결한데서 빚어진 교리의 신학적인 변질과 교회행정 문제에 항의한 것이 교단 분리의 원인이 되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에서 분리되어 나온 반고소 고려파 교단은 후에 대한예수교장로회 (고려)총회가 되었다.
  • 2002년 문화체육관광부와 기타 국가기관에 등록된 개신교 170개 교단 중 장로교가 명칭에 들어 있는 교단은 118개이다.[3]
  • 한국 장로교는 역사적으로 미국 장로교와 호주 장로교의 선교를 통하여 시작되었으나 신학적 전통은 미국 중심이다. 그러나 해방후, 새로이 분립 결성된 고려파는 화란 개혁주의를 표방한다. 이후 <스코틀랜드 장로교 전통>의 역사적 계승을 선언한 한국예수교장로회2012년에 출범했다.
  • 한국 장로교는 1981년 결성된 한국장로교총연합회2009요한 칼빈 탄생 500주년 기념사업회가 7월 10일 장로교회의 날을 제정하여 기념대회를 열었다. 이후, 2012 장로교 총회 100주년 기념대회가 일부 대형교단 중심으로 개최되었다. 특히 한국교회에 보혁간 가장 논쟁이 되었던 세계교회협의회 제10차 부산총회가 2013년 10월 부산벡스코에서 찬반 가운데 열려 한국교회가 다시한번 <복음의 진정성>에 대한 자성의 계기가 되었다.

논란[편집]

미국장로교가 제221차 총회에서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결의를 한 것과 관련,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성경의 말씀을 더욱 굳게 지키고, 믿음의 삶으로 성도들을 이끌어야 할 미국 최대 장로교단이 오히려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고 이에 반하는 결의를 한 것에 대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으며, 한기총은 '동성결혼 인정' 결의를 즉각 철회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힌 바 있다.[4]

이단과 분파 시비[편집]

한겨레 신문은 "장로교는 예수교장로교 통합과 합동 그리고 기독교장로교로 분파됐다. 예장의 분파는 무려 200여개에 이른다. 이런 분파 속에서 목회자나 신학자들은 소속 교단이나 교파에 매우 민감하다. 교단별로 서로 인정하지 않아 이단시비 속에서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고 지적했다.[5]

정체성 혼란 문제[편집]

장로교회의 가장 큰 특징은 상술한 것처럼 개별교회를 완전한 교회로 보지 않고 노회에 속한 교구(parish)로 보고, 목사도 노회 소속이며, 노회의 치리권을 중시하는 직제를 가진다는 것이다. 개별 교회가 타락하는 것을 막고 공교회성을 유지하기 위해 종교개혁 시대부터 유지해온 시스템이다. 그러나 한국에 형성된 장로교회들은 대형교회 위주로 재편되고 작은 교회는 각자도생의 길을 걸으면서 개교회 중심이 되었고, 노회는 장로보다는 목사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결국 당회와 노회는 사실상 치리권을 잃어버리는 현실이 오래 계속되고 있으며(교인들이 범죄할 경우 치리를 하면 다른 교회로 옮겨버리고 심지어 목회자들도 해당 노회에서 징계를 먹으면 타 노회나 교파로 옮겨버리거나 노회를 탈퇴하는 등), 이로 인하여 장로교회라는 본연의 정체성을 갖고 있느냐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노회 소속 목회자의 범죄 사실이 발견되어도 노회가 이를 치리하지 않거나 혹은 못하는 일 등이 교계 뿐만 아니라 일반 언론에도 오르내리는 최근의 현실들은 이를 반증한다.[6]

각주[편집]

  1. 장로교회의 탄생 배경과 직제를 설명하는 국내 책으로는 황희상 저 ≪특강 종교개혁사 - 웨스트민스터 총회 편≫(흑곰북스, 2016)이 있다.
  2. 예장 합동측 장로교 교회법
  3. “종교법인법제정추진시민연대:해방60년, 하나에서 200여개로 분열한 한국 장로교의 역사”. 2011년 11월 1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5월 28일에 확인함. 
  4. "한기총, 미국장로교의 동성결혼 인정 결의 즉각 철회 촉구" 기독교한국신문 2014년 6월 24일자 발행
  5. "가톨릭 루터교 장로교 성공회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차이를 아세요?" 한겨레 신문 2004년 5월 19일자 발행
  6. https://www.nocutnews.co.kr/news/4544580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