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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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 혐의의 궁극적 본질적 복음(福音, 고대 그리스어: εὐαγγέλιον 유앙겔리온[*], 라틴어: evangelium 에우앙겔리움[*])이란 천국이다. 그러므로 천국과 관련된 모든 것이 광의의 복음이 된다. 처음 에덴동산에서의 천국을 잃은 인류에게 십자가는 복음의 기초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에게 가져다 준 구원에 관한 '좋은 소식'은 하느님의 나라의 재도래이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부활로 인해 하느님과 인류 사이의 관계 회복이 시작된다. 그러므로 신자들의 삶은 천국시민으로서의 삶이다. 그 삶의 헌장인 그리스도의 교훈 및 그리스도의 법 그리고 그 삶의 보증자인 그리스도의 성령의 강림이나 그 삶의 완성 및 심판으로써의 예수의 재림에 대한 예고를 포함한다. 좋은 소식의 구체적인 내용은 사복음서에서 전하는 예수의 일생에 대한 기술, 그리고 신약성서의 서신에 대한 신학적 해석에서 비롯된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후 죽음에서 부활한 사건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사역으로 인하여 찾아오는 하느님과 인류 사이의 화해가 기초적인 교훈이다. 기독교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좋은 소식을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구약성서 전체에 걸쳐 예언되었던 것으로 설명한다. 이는 창세기 인간의 타락부터 전해진다는데 이를 원시복음이라고 한다. 창세기 3장 15절은 최초로 복음의 약속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타락한 이후, 즉시 하느님은 아담과 하와와 뱀에게 벌주시는 종말론적 심판의 광경을 보이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심판의 선언 속에 하느님은 긍휼을 잊지 않으셨다. 여인의 후손을 통한 구원 약속을 주셨기 때문이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마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3:15) 여기서 구원에 관한 중요한 진리를 발견한다.[1] 십자가는 구속 즉 회복이니 십자가의 도가 구원의 길이다. 즉 십자가로 관계 회복이 시작되고 그리스도가 전해준 전인적인 영육의 범주를 다 포함하는 완전한 율법을 성령의 도움을 받아 지킴으로 시민권을 누리게 된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와 성경 즉 그리스도 예수의 가르친바 그리스도의 천국 율법이다.

신약성서[편집]

로마 시민들에게 기쁜 소식은 평화의 왕 로마 황제와 로마왕국 자체였다. 곧 '로마의 황제와 그 행적 그리고 그 법과 이방 무법한 왕국에의 승리 및 정복'이 복음이었다. 당시의 로마 민중들에게 복음은 곧 로마의 정복과 확장, 즉 로마 왕국의 통치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 증거로 AD 9년 Priene 비문의 Augustus 황제에 대한 기록이다. 이것이 교회에서 하느님과 천국으로 치환된다. 로마에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이미 구약 성경에서 기쁜 소식이란 하느님의 나라 및 그 통치인바 메시아 즉 그리스도는 그 나라의 왕이시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 교회는 그 나라의 정복 현장이다. 구약성경에 예언된 대로 성육신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가 십자가와 부활 및 그 가르침으로 문을 여신 하느님 나라의 선포와 확장, 즉 하느님 나라 및 그 통치를 기쁜 소식'이라는 의미로 로마 기독교도들에게 차용되면서 현재와 같은 복음의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구약시대의 히브리어에서 당대의 압제자였던 로마 제국의 문화어였던 헬라어로 번역된다. 십자가는 천국시민권을 얻는 문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및 그 법은 천국시민권의 헌장이다. 그 법을 어기는 것은 그 통치를 반역하는 것이요 그 결과는 죄와 사망의 지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말씀(엡 1:13, 벧전1:25, 히4:2,6)이다. 예수는 '복음'이라는 용어를 선지서의 예언의 완성이라는 의미로 쓰고 있다. 그는 가난한 이들에게 신성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전달자였으며(누가 4:14-19, 7:22, 마태 11:5), 그가 선포한 기쁜 소식은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복음이었다(마태 1:14-15, 4:23, 9:35, 24:14).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하느님 나라를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사명자들이다. 하느님을 떠나 마귀의 통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영적 절대절망에 처해 있는 있는 이방인들에게 있어 ‘복음’의 시작은 메시아로서의 예수가 그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통하여 인간을 위해 성취한 신성한 구원의 기쁜 소식이었다(사도 5:42, 14:6 · 20, 15:20). ‘복음’의 이러한 사용은 특히 바울로의 저술에 많이 나타나는데, 그는 ‘복음’이라는 명사를 60여 차례(로마 1:1, 9:15-16), ‘복음화 하다’라는 동사를 20여 차례나 사용하고 있다. 그는 그의 메시지를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불렀는데(로마 1:1, 15:16, 2고린 11:7) 그 이유는 그의 복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그리스도의 복음’이며(로마 15:19, 1고린 9:12, 2고린 2:12, 9:13) 예수 그리스도 및 그의 구원사업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나의 복음’이라는 말도 썼는데 이는 바울로의 구원의 복음이 근본적으로 다른 사도들의 복음과 다름을 나타내기 위함이 아니라(갈라 1:6-9) 그가 복음을 하나님과 그의 아들 그리스도로부터 받았기 때문이며(갈라 1:11-12, 1고린 15:3) 예수는 그를 뛰어난 ‘복음의 교역자’로 만들었기 때문이다(골로 1:23).

사도들이 선포한 복음은 주로 구원의 신비에 관한 것이기에 사도들이 알고 있는 예수의 지상생활과 그의 가르침은 복음의 핵심부를 차지하고 있다(사도 10:34-43). 이는 마르코의 복음서 첫 귀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시작’에 사용된 ‘복음’의 의미이며 ‘기쁜 소식’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이 있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신약성서에 씌어진 ‘복음’이란 용어는 '기록된 복음'의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2세기에 이 용어를 책의 명칭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으나(Justin, Apol. 1:66, Dial 10:2) 초대 교회는 항상 오직 하나의 복음이 있을 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하였으며, 신약성서에도 ‘복음’을 복수로 쓰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4복음서는 한 복음을 4가지 관점에서 쓴 데 지나지 않는 것이며 <마태오의 복음서>, <마르코의 복음서> 등으로 이들 복음서의 자기 다른 성격만을 구별해주고 있다.

전례 중에서[편집]

성찬 의식 전에 복음서에서 발췌한 인용 귀절을 봉독하거나 노래하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교 의식 전례의 일부를 차지하며 이러한 의식의 중요성은 복음서에도 기록되어 있다. 13세기에는 로마식 미사에서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리기 위해 미사 끝에 소위 '최후의 복음(Last Gospel)'이라고 하는 요한복음 1:1-14을 읽는 관습이 있었으며, 후에 4복음서에서 발췌해 낸 다른 인용 귀절들이 '최후의 복음'으로서 요한복음 1:1-14을 대체하게 되었다.

복음의 실현[편집]

복음은 죄로 타락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첫 사람(아담, 이브)을 창조하셨던 상태로 다시 되돌아가는 길을 알려주시는 기쁜 소식으로 삶에서의 실제 구현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요1:12)', '포도나무인 예수님에 접붙힘을 받아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요15:4)' 이 땅에 살면서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으로(롬6:18)'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천국의 삶(눅11:20)'을 사는 것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교회에 출석하여 말씀과 기도로 복음의 능력을 몸소 체험하며 각종 중독(술, 담배, 마약, 음란, 질병 등등)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사례를 무수히 접할 수 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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