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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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방주> (1846). 미국의 민속 화가 에드우드 힉스 작.

노아의 방주(영어: Noah's Ark; 히브리어: תיבת נח; 고전히브리어:Teyvat Noaḥ, -方舟)는 히브리 경전 또는 구약성경에 기록된 내용으로,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에서 전승되는 기록 속에 등장하는 직육면체에 문이 옆에 있고, 뚜껑이 위에 달린 물에 뜨는 구조물이다. 구약성경 또는 히브리 경전의 모세오경 중의 창세기에 실려있으며, 노아와 관련된 일련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기 때문에 노아의 방주로 통칭된다. 주로 기독교 전승의 이해가 널리 알려져 있으나, 히브리 경전을 수용하는 종교들인 유대교, 이슬람교, 만다야교에서는 독자적인 본문 이해와 전승의 이해를 지닌다. 따라서 종교와 전승에 따라서는 받아들이는 해석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

내용과 관련 사항[편집]

내용[편집]

노아의 방주는 히브리 정경 또는 구약성경 중 첫째 책인 창세기의 기록인 "노아의 홍수 이야기"(창세기 6:5~9:29)에 나오는 방주를 칭하는 명칭이다. 기록된 방주는 선박도 아니며 특정한 이름도 없다. 인류 창조 이후 인류의 선조들이 나날이 포악해지므로 하나님홍수를 내려서 인류를 멸망시키려 하였다. 다만 의로운 사람, 즉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 사람인 노아와 그 가족만이 심판에서 면하게 되었다.

노아는 하나의 명령에 따라 배를 만들고 가족과 정결한 짐승 암수 일곱 마리씩, 부정한 짐승 암수 한 마리씩(혹은 두 마리씩, 창세기에는 2개의 내용을 병행으로 기록하였음), 그리고 새 암수 일곱 마리씩을 싣고 밀어닥친 홍수를 피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타락한 생활에 빠져 있어 하나님이 홍수로 심판하려 할 때 홀로 바르게 살던 노아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로 홍수가 올 것을 미리 알게 된다. 그는 길이 300 규빗[1], 너비 50 규빗, 높이 30 규빗, 상 ·중 ·하 3층으로 된 방주를 만들어 8명의 가족과, 한 쌍씩의 여러 동물을 데리고 이 방주에 탄다. 대홍수를 만나 모든 생물(물고기 제외)이 전멸하고 말았지만, 이 방주에 탔던 노아의 가족과 동물들은 살아 남았다고 한다. 창세기 6장 14~16절에 보면 길이 300규빗(약 135m), 폭 50 규빗(약 22.5m), 높이 30 규빗(약 13.5m)인 이 배는 지붕과 문을 달고 배 안은 3층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선체(船體)는 직육면체의 형태로 고페르나무(잣나무)로 건조하였고, 방수를 위해 안쪽에는 역청[2]을 칠하여 굳혔다고 기록하고 있다.

관련 사항[편집]

중동의 서사시와 설화[편집]

중동 지역의 고전 서사시인 길가메쉬 서사시에서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와 비슷한 홍수가 등장한다. 홍수의 기간으로 상정된 기간은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하며, 방주의 형태나 특정 인물에 대한 선택등 비슷한 부분이 상당히 많다. 이 이외에도 아트라하시스 서사시(기원전 1600년경)에서 창세기 홍수 장면과 매우 유사하다. 수메르 판본에서도 비슷한 홍수 설화가 등장한다. 라스 시므로 문헌(기원전 1400년경)에서도 길가메쉬 서사시보다 더 오래된 홍수 설화가 나타난다. 이들 설화도 전환점의 시기로 홍수를 묘사하였으며,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중동 지역에서 히브리 경전의 기록시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세계의 홍수설화[편집]

세계 각지역의 설화 중에는 노아의 홍수 설화와 유사한 홍수 설화들이 있으며,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에도 홍수와 관련된 설화들이 등장하며, 홍수 역시 심판이나 죄의 결과로 활용된다.

종교별 이해[편집]

기독교[편집]

방주와 관련된 인물인 창세기의 노아(נח)는 히브리어로 안식, 평안이라는 뜻이다. 흔히 노아의 방주와 관련하여 신앙적인 상식으로 노아는 신앙의 모범, 대홍수는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한다고 여긴다. 초대교회 이래 기독교 예술 소재로 활용된다. 신학자들에 따르면, 길가메쉬 서사시와 성경의 창세기, 즉 홍수와 주인공을 비롯한 많은 설정들이 일치하나, 구약성경의 기록은 다른 설화와 차별적으로 갈등과 싸움을 통한 권력이 중심이 아니라 물을 통한 심판과 정의에 대해 다룬다.[3] 방주는 이 심판과 정의의 언약 과정을 이해하는 매개로 이해한다.

기독교계의 신학적 의미[편집]

현대 주류 기독교계인 개신교, 천주교, 정교회의 구약성서신학의 정론에서는 창세기의 1-11장까지 이른 구약성경의 세계관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창세기 전반부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설화형태의 신학적 사건의 기록이다. 노아와 그 방주는 하나님의 구원의 과정과 사회악에 대한 기독교적 관접의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하며, 방주는 단순한 선박이 아니라 죄로 가득 찬 세상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따르는 이들을 보호하는 하나님의 활동에 대한 히브리 정경 시대의 신학적 이해로 봐야 한다.[4] 주류 신학과 반대로, 축자영감설을 따른 근본주의는 과거 전통 성서신학계에서 고고학과 성경 연구 초기 시기의 연구를 바탕으로 현재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받아들여 노아의 방주를 축자영감설에 따라 과학적 사건으로 주장하며, 근대 과학적 증명 방법을 고대 문헌인 성경에 대입하여 결론을 증명하고 한다.[5]

노아의 방주 해석은 성경의 해석방법을 따라, 다양하게 이루어지며, 대부분의 기독교(개신교 대부분과 천주교, 정교회 포함)에서는 노아의 방주는 신학적이고 기독교적인 진리의 의미로 받아들이며, 창조적 실험을 바탕으로 하는 과학적 진리로진밝혖졌고 체험을 묘사한 종교적 진리 진술로 가치를 지닌다. 따라서 신학적, 신앙적으로 노아의 방주 자체의 의미는 기독교 믿음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성서신학적 해석[편집]

주류 구약성서신학의 입장에서 노아의 방주 사건은 홍수를 세계사적 위대한 전환점으로 보고, 방주만이 아니라 방주를 만드는 과정의 제사, 방주에 오르는 과정, 홍수, 정착의 감사 제사의 과정 중의 중요한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 인간의 활동과 그 구원의 매개로 본다.[6]

방주로 번역하는 단어인 테바(תֵּבָה)는 선박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며, 출애굽기 아기 모세를 강에서 살린 상자 바구니(테바)와 같은 단어로 물에서 사람이 들어가서 살아남을 수 있는 직육면체 상자를 의미한다.[7] 성경 본문에서 방주 건조 기록은 매우 제한적이고, 간략하게 기술되었다. 방주는 모세를 살린 상자처럼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길을 따르는 이들을 살리는 도구이며 매개로 이해한다.

방주의 크기는 길이는 300 규빗[8], 너비는 50규빗, 높이는 30규빗으로 거대한 선박보다 크다. 구약성경의 오경에서 성막과 방주만이 정확한 크기가 나오는 구조물이다. 그리고 이동을 목적으로 하는 구조물이다. 성막의 길이 100규빗, 너비 50규빗, 높이 10규빗에 비교하여 방주는 길이와 높이가 3배씩 큰 구조물이며, 3층으로 이뤄졌다는 기록에 따라서 방주는 성막의 9배 크기의 이동하는 직육면체의 구조물이다. 방주의 크기로 방주가 성막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지니는 구조물이며 출애굽기의 성막과 처한 상황 이해도 이 맥락에서 접근 가능하다. [9]

방주는 노아의 순종이 새로운 세계 질서와 창조질서의 회복을 의미하며, 방주에 들어가는 것을 창세기에서는 축제를 알리는 어조로 동물들이 승선할 때 이름을 호명하는 승선의 기쁨을 알린다.[10] 노아와 하나님의 언약의 특병한 관계에 중요한 구조물이다. 하나님이 명령하였고, 노아는 그 명령을 따라 방주를 건조하였다. 이 과정에서 노아와 하나님의 언약은 이뤄진다. 따라서 방주는 하나님이 주는 명령을 따른 노아가 따라 구원을 얻고, 보증 받는 과정의 중심에 있다. 하나님과 인간의 구원과 언약 관계를 형성하고 이해하는 과정이다. [11]

근본주의적 해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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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회에서는, 현대의 의식과 성경 연구 및 분석 방법이 없었으므로 성경을 신학적 진술 서적이 아닌 역사 서적으로 인지하였고, 노아의 방주를 역사상의 기록으로 보았다. 이는 근본주의적 성향의 제칠일안식교에서 비롯된 의사 과학의 한 종류인 유사지질학홍수지질학에 영향을 주었으며,[12] 과거[언제?] 근본주의 신학 교회에서는 이러한 해석을 받아들여 역사와 사회적인 모든 부분에 성경을 과학 교과서로 채택할 것을 촉구했다. 이러한 홍수지질학을 주장했던 유사지질학자들은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가 어딘가에 그 흔적이 남아 있을것이라고 주장하며 노아의 방주를 찾기 위한 노력을 했으나 실패하였다.[13] 이들은 같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신화와 길가메쉬 서사시등의 신화를 들어서 이를 근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근본주의적 시각은 성서신학의 연구가 진행되며 기각되었다. 홍수지질학유사과학으로서만 주장된다. 이러한 근본주의적 해석은 현대 성서신학 연구와 성경 해석에 포함되지 않으나, 미국의 남침례교로 대표되는 일부 극보수주의 계열에서는 아직도 이를 수용한다.

이슬람교[편집]

노아의 선지자적인 면을 나타내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한다. 이슬람교에서는 노아를 예수마호메트 더불어 선지자중 한명으로 본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유대교[편집]

유대교에서는 일반적으로 노아의 홍수에 대한 해석은 거의 기독교와 같다. 다만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점에 조금더 초점을 맞춘다고 한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고대의 1규빗은 팔꿈치에서 가운데 손가락끝까지의 길이로 약 45~46cm를 가리킴
  2. 중동 지역 자연산 유전(油田)에서 흘러나오는 아스팔트와 비슷한 성분
  3.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8385
  4. 고든 웬함. 《창세기 상 - 세계성경주석 1》. 박영호 옮김. 서울: 솔로몬, 2006.
  5. 미국창조과학연구소. 《창조과학백과》. 정병갑 옮김. 서울: 생명의말씀사, 2016.
  6. 윌터 브루거만. 《창세기 - 현대성서주석1》. 강성열 옮김. 서울: 한국장로교 출판사, 2000.
  7. 고든 웬함. 《창세기 상 - 세계성경주석 1》. 박영호 옮김. 서울: 솔로몬, 2006.
  8. 규빗은 대략 남성의 팔꿈치에서 손끝까지인 약 50cm로 시대별로, 목적별로 그 기준이 조금씩 다르다.
  9. 천사무엘.《성서주석 창세기》.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1.
  10. 고든 웬함. 《창세기 상 - 세계성경주석 1》. 박영호 옮김. 서울: 솔로몬, 2006.
  11. 《관주해설 성경전서: 개정개역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2004.
  12. 로널드 L. 넘버스 (2016). 〈7〉. 《창조론자들》. 새물결플러스. ISBN 9791186409558. 
  13. 로널드 L. 넘버스 (2016). 《창조론자들》. 새물결플러스. 339쪽. ISBN 9791186409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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