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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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방주(영어: Noah's Ark; 히브리어: תיבת נח; 고전히브리어:Teyvat Noaḥ, -方舟)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에서 전승되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배이다. 모세오경 중의 창세기에 실려있으며, 노아와 관련된 일련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기 때문에 노아의 방주로 통칭된다. 주로 기독교의 전승이 널리 알려져 있으나, 그 외의 아브라함 계통 종교들인 유대교, 이슬람교, 만다야교 등에서도 모두 각자의 전승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종교와 전승에 따라서는 전해지는 내용이나 받아들이는 해석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

정의 및 해석[편집]

기독교[편집]

노아의 방주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창세기> 6:5~9:29)에 나오는 의 이름이다. 인류의 선조들이 나날이 포악해지므로 하나님홍수를 내려서 인류를 멸망시켜 버리려 하였다. 다만 의로운 사람 노아 일가(一家)만이 이 심판을 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창세기〉 6장 14~16절에 보면 길이 300규빗 (약 135m), 폭 50 규빗 (약 22.5m), 높이 30 규빗 (약 13.5m)인 이 배는 지붕과 문을 달고 배 안은 3층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선체(船體)는 측백나무로 되고 안쪽에는 아스팔트를 칠하여 굳혔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배를 만들고 가족과 정결한 짐승 암수 일곱 마리씩, 부정한 짐승 암수 한 마리씩(혹은 두 마리씩; 사본에 따라 다름), 그리고 새 암수 일곱 마리씩을 싣고 밀어닥친 홍수를 피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타락한 생활에 빠져 있어 하나님이 홍수로 심판하려 할 때 홀로 바르게 살던 노아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로 홍수가 올 것을 미리 알게 된다. 그는 길이 300 큐빗, 너비 50 큐빗, 높이 30 큐빗(고대의 1큐빗은 팔꿈치에서 가운데 손가락끝까지의 길이로 약 45~46cm를 가리킴), 상 ·중 ·하 3층으로 된 방주를 만들어 8명의 가족과, 한 쌍씩의 여러 동물을 데리고 이 방주에 탄다. 대홍수를 만나 모든 생물(물고기 제외)이 전멸하고 말았지만, 이 방주에 탔던 노아의 가족과 동물들은 살아 남았다고 한다.

노아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휴식’이라는 뜻인데, 노아는 신앙의 모범, 방주는 신자의 단체인 교회, 대홍수는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며, 초대교회 이래 기독교 예술의 소재로 많이 다루어지고 있다.

길가메쉬 서사시[편집]

길가메쉬 서사시에서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와 비슷한 홍수가 등장한다. 자세한 내용은 관련 항목을 참조.

신학적 의미[편집]

역사학과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 전통 신학계에서는 근본주의적 시각을 받아들여 노아의 방주를 역사적 사실로 기술하려 했으며, 이러한 관점은 아직도 과학과 역사학에 어두운 보수적 근본주의계열의 개신교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역사학과 과학의 발달로 인해, 노아의 방주의 실존에 대한 의문이 제기가 되고, 세계적 홍수가 존재할 수 없음이 밝혀짐에 따라 현대 신학계에서는 비록 노아의 홍수가 과학적으로 실존하지는 않았지만 그 자체의 의미는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며, 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러므로 과학과는 상관없이 신학적으로 노아의 방주 자체의 의미는 중요하게 해석된다고 한다[1][2]

근본주의적 해석[편집]

역사학과 과학의 발달이 더뎠던 고대사회에서는, 성경의 역사책으로서의 권위가 높았기에 노아의 방주를 역사적인 존재로서 다루고 있었다. 이는 제칠일안식교에서 비롯된 유사지질학홍수지질학과 같은 것에 영향을 주었으며, 과거 신학에서는 이러한 근본주의적 해석을 받아들여 역사와 사회적인 모든 부분에 있어 성경을 교과서로 채택할 것을 촉구했다. 이러한 홍수지질학을 주장했던 유사지질학자들은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가 어딘가에 그 흔적이 남아 있을것이라고 주장하며 노아의 방주를 찾기 위한 노력을 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같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신화인 이슬람교 경전이나 길가메쉬 서사시등의 신화를 들어서 이를 근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 근본주의적 시각은 과거에는 상당히 힘을 얻었으나, 역사학과 과학의 발달에 따라 힘을 잃게 되었고, 홍수지질학유사과학으로서 남게 되었다.

현대적 해석[편집]

노아의 홍수에 대한 존재론적 논쟁은 무의미하며[3], 아브라함계 종교의 형성 이전부터 고대 근동 지역에 흔하게 전해져 오던 홍수 설화에 빗대어 불의한 이들에 대해 신이 내리는 재앙과 의로운 자들의 생존으로 다시 시작되는 역사를 설명하기 위한 아브라함계 종교의 이야기 방식으로 보는 해석 또한 존재한다.[4]

(6,9-7,6) 큰 강들이 일정한 기간을 두고 넘쳐흐르는 데서 영감을 받은 홍수 이야기는 옛 중동 문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이야기다. 성경 저자들은 그런 홍수 이야기를 이용하여, 홍수로 말미암아 인류가 원초적인 혼돈으로 돌아가고 만다는 상징적인 뜻을 표현하려고 했다(창세 1,6-30을 6,17 및 7,18-24와 비교하라). 그러나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홍수는 무엇인가? 이 홍수는 사람과 국가의 이기주의와 교만이 낳는 재앙과 같은 사건들, 자연 및 인간세계를 혼돈으로 몰아넣는 지독한 형태의 사건들을 가리킨다. 이 본문에서는 또한 정의로운 사람들을 감싸 지켜 준다. 정의로운 사람들은 그런 재앙을 가려낼 줄 알고 살아남아서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태도를 취할 줄 안다. 역사가 계속되는 것은 정의로운 사람들을 통해서다.

(7,6-24) 이 본문은 되풀이되는 내용이다. 왜냐하면 홍수에 관한 서로 다른 시대들의 두 전승을 뒤섞어놓고 있기때문이다. 이 대목을 창세 1,1-10과 비교해 보면, 홍수가 원초적인 혼돈으로 돌아감을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류가 자기 자신 안에 있는 하느님의 형상을 깨뜨릴 때, 그 결과는 창조된 세계 전체를 허무는 것이 된다. 하느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영광을 찾는 자들,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면서 자기 출세만 찾는 자들이 역사 속에 전쟁, 굶주림, 질병 등과 같은 숱한 재앙을 불러들여 무수한 사람들을 죽게 만든다. 홍수는 그런 역사상의 커다란 재앙들 속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심판을 가리킨다. 그런 재앙들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과 계획을 따르지 않고 자기네 뜻과 계획을 따르면서 제멋대로 놀아날 때 들이닥칠 비극적인 운명을 보여 준다. 올곧게 살면서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사람들이야말로 다른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21세기 성경해설, 국제가톨릭성서공회

메소포타미아 홍수설화와 기독교의 홍수설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메소포타미아의 신들은 인간을 노예로서 만들어 자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신전을 지어 찬양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간을 만들었으나 그 수가 너무 많아 신들이 잠을 못잘 정도가 되자 한 쌍의 남녀만 남겨놓고 쓸어버린 것이고, 반면 기독교의 경우는 신이 인간의 죄악에 대해 벌을 내렸으나 유일하게 의로운 이만을 살려주었다는 것이 다르다. 즉,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인간은 신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노예로서 만들어낸 존재이나, 의 경우는 신이 인간을 노예로서가 아니라 "신의 형상을 본따" 만든 존재라는 큰 차이점이 존재한다.[3]

How should modern readers interpret the creation-flood story in Gn 2–11? The stories are neither history nor myth. “Myth” is an unsuitable term, for it has several different meanings and connotes untruth in popular English. “History” is equally misleading, for it suggests that the events actually took place. The best term is creation-flood story. Ancient Near Eastern thinkers did not have our methods of exploring serious questions. Instead, they used narratives for issues that we would call philosophical and theological. They added and subtracted narrative details and varied the plot as they sought meaning in the ancient stories. Their stories reveal a privileged time, when divine decisions were made that determined the future of the human race. The origin of something was thought to explain its present meaning, e.g., how God acts with justice and generosity, why human beings are rebellious, the nature of sexual attraction and marriage, why there are many peoples and languages. Though the stories may initially strike us as primitive and naive, they are in fact told with skill, compression, and subtlety. They provide profound answers to perennial questions about God and human beings.

Introduction for Genesis, USCCB

레플리카 및 모형[편집]

노아의 방주의 현실성 부족과 제대로 된 설계도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재현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조형물로서의 가치를 지닌 레플리카가 만들어져 노르웨이 오슬로에 전시되어 있었으며, 안타깝게도 오슬로 항구에 전시되어있던 모형은 다른 배와의 충돌로 큰 소실을 입었다.[5]

각주[편집]

  1. “바이오 로고스,홍수는 과학이 아니다”. 
  2. “바이오로고스, 홍수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3. United States Conference of Catholic Bishops. “Genesis-introduction”. 
  4. 21세기성경해설 구약편, 국제가톨릭성서공회
  5. “Replica of Noah’s Ark Is Damaged in Oslo Harbor Collision”. New York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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