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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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創世記, 히브리어: סֵפֶר בְּרֵאשִׁית 세페르 베레쉬트, 그리스어: Γένεσις 게네시스[*], 영어: Book of Genesis)는 천지 창조와 아담과 하와의 에덴 동산 추방, 노아의 방주와 홍수, 바벨 탑 그리고 유대민족 탄생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타나크의 율법서 토라의 첫 번째 권이며, 구약으로는 모세오경 첫 번째 권에 해당한다.

명칭[편집]

타나크에서는 이 책을 율법서 토라의 첫 번째 책으로 놓고 있다. 원본은 소실되어 없으며, 현재 여러 필사본들이 남아있어, 이를 기반으로 많은 언어의 번역본이 만들어졌다. 이 책은 이 세상을 창조하는 과정으로 시작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로 이주하는 시기까지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창세기의 히브리어 이름인 '브레시트'(בראשית)는 히브리어로 쓰여진 이 책의 첫 번째 단어에 해당하며, 이 단어가 그대로 이 책의 이름으로 불렸다. 이 단어는 ‘처음에, 시작으로, 우선’ 등의 의미를 갖는다.[1] 이 책을 포함하는 모세오경의 5권은 전부 각각의 처음 단어를 따서 히브리어 이름이 정해졌다.

저자[편집]

창세기는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적 관념들과 성립에 대한 역사적 가정들과 근본적인 이야기들을 제시해주며, 이스라엘의 역사, 법, 관습에 대한 소개글의 역할을 담당한다. 창세기는 모세오경의 하나로 분류되지만, 본문 자체에는 창세기를 지은 저자에 대한 언급이 없다. 성경학의 학자들은 모세오경을 모세의 저작이 아니라 종교 지도자 등 불명의 저자들이 그전부터 내려오던 이스라엘 민족과 종교에 관한 서로 상이한 문헌들과 견해들을 그들의 신학에 따라 묶어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작업에는 적어도 4가지의 다른 전승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창세기는 기원전 440여 년경에 하나의 책으로 묶어진 것으로 추산된다.

내용[편집]

창세기는 크게 우주와 인류의 창조와 이스라엘 민족의 태동이라는 두 가지 내용이 주요 내용이다.

신이 세상과 첫 인간인 아담하와를 창조하는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이후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며, 그들의 두 아들 카인아벨의 이야기가 언급된다. 그 다음으로 바벨탑의 건축을 둘러싼 여러가지 이야기들과, 바빌로니아 홍수신화와 비슷한 이야기인 홍수의 이야기가 나온다.[2]

창세기의 중반은 신이 갈대아 지방의 우르(Ur)라는 곳에 살던 아브라함을 불러내어, 그와 그의 아내 사라를 우르 지방에서 현재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지역인 가나안 땅으로 불러내는 이야기를 언급한다. 아브라함의 신에 대한 순종과, 그에 대해 신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인해 세상이 축복을 받을 것임을 약속하는 내용은 중반의 중요한 이야기이다. 이어서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 그의 손자인 에서야곱(또는 이스라엘)과 그의 가족들의 이야기가 서술되며, 마지막은 야곱의 자손들인 이스라엘 민족이, 파라오의 호의를 입어 이집트로 이주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1장[편집]

우리는 창세기 1장이 물질계를 존재하게 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이 본문을 대하지 않는다면, 본문의 문맥 자체는 우리로 하여금 현저하게 물질적인 용어를 생각하도록 만들지 않을 것이다. 맨 처음 시기에 하나님은 우주를 존재하게 하셨다. 질서 있는 체계를 세우시고 그 체계 안에서 만물에 각자의 역할을 부여하심으로써 말이다. 이 제안을 따른다면, 본문은 물질의 기원에 대해 설명하기 보다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주를 세우셨다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이런 기능이야말로 존재 개념을 규정한다. 고대인들은 물질 자체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1-3일(창 1:3-13)[편집]

첫째 날: 시간(시간의 배열)[편집]

물질보다는 기능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은 첫째 날의 결론에서 쉽게 드러난다.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하나님이 붙이신 그 이름들은 첫째 날에 창조된 것들이 사물이 아니며, 심지어 현상도 아니고 기간임을 의미한다. “낮”과 “밤”이라는 이름은 시간의 길이를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빛[의 기간]과 어둠[의 기간]을 나누셨다.”(4절) “하나님은 빛[의 기간]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둠[의 기간]을 ‘밤’이라 칭하셨다.”(5절)

창조 이야기가 시작될 때는 어둠 밖에 없었고(2절), 따라서 어둠의 기간도 없었다. 그러나 3절에 의하면 빛이라는 하나의 사물이 아니라 어둠을 중단시킬 빛의 기간을 창조하셨다.

낮과 밤의 교대에 주목한다면, 시간이 창조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첫째 날에 하나님은 우리의 세계와 우리의 존재에 질서를 부여하는 기능 중 첫 번째인 시간을 창조하셨다. 

둘째 날: 우주 지리학과 “궁창”(공간의 배열1)[편집]

우주 지리학의 보편적 영역을 다루지 않고, 도리어 한 가지 측면, 즉 위에 있는 우주적 물들을 아래에 있는 우주적 물들로부터 나누는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라키아”(넓은 하늘, 궁창, 하늘과 땅 사이의 공간)의 배치에 초점을 맞춘다. 

셋째 날: 지구 지리학(공간의 배열2)[편집]

셋째 날은 나누는 행위보다는 모으는 행위로 시작하지만, 마른 땅이 나타나게 하려고 물들을 모으는 일이 먼저 이루어진다. 셋째 날도 공간과 관련되어 있지만 우주적 공간보다는 지상 공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기서 창조는 물질을 만들어내는 활동이 아니라, 다양한 기능의 확립에 관련된 활동을 뜻한다. 셋째 날에 하나님은 비옥함과 풍요와 초목과 농업 등의 기초를 창조하셨다. 요컨대 그분은 땅을 식량의 근원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을 준비하셨다. 

* 말씀에 의한 창조[편집]

기능 존재론의 시각에서 이해한다면, 창조는 하나님께서 물질계에 속한 것들을 말씀으로 존재하게 한다는 개념을 수반하기보다는, 명령을 통해 다양한 기능을 확립하고 그것들을 배정하는 행동을 가리킨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을 말씀으로 법령을 공포하시는 분으로 묘사한다. 법령을 공포함으로써 우주의 다양한 기능을 확립하고(그것들의 운명을 선포함으로써) 기능 주체들을 적절한 영역에 위치시킨다. 

* 보시기에 좋았더라[편집]

우주에 질서를 가져다준 창조 행동에 대해 할 수 있는 최상의 표현이었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창 2:18). 이 문맥에서 ‘좋지 않다’는 것은 장인의 기술이나 도덕적 순결함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기능 수행과 관련되어 있다.  

4-6일(창 1:14-31)[편집]

4-6일의 창조 이야기가 기능 지향성을 유지하기는 해도, 이제는 기능 주체들을 각각 적절한 책임 영역에 세우고, 각각의 개별 영역 안에서 각자에게 일정한 역할을 부여하는 것과 관련된다. 

넷째 날[편집]

모든 천체가 “궁창”(라키아) 안에 자리한다. 만약 창세기 1장의 창조가 물질적인 강조점보다는 기능적인 강조점에 의미를 둔다면, 넷째 날에 가서야 태양이 창조되는데 어떻게 첫째 날에 빛이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오랜 질문에 답을 얻을 수 있다. (시간과 같은) 기능들에 먼저 자리가 주어졌다. 그런 기능들은 시간 안에 거주하면서 인류를 위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천체와 같은) 단순한 기능 주체들이 위임 명령을 받기 전에 먼저 소개된다.

빛들이 수행하는 기능은 분리하고 달력에 쓰이는 기간이나 특정 시기를 타나내며, 빛을 비추고 다스리는 것 등이 있다. 이 모든 개념은 인간 중심적 시각으로부터 의미가 주어진 것들이며, 첫째 날에 확립된 시간과 관련되어 있다. 

다섯째 날[편집]

살아 있는 피조물이 둘째 날에 확립된 영역에 배치된다. 새들이 “궁창”(라키아)의 표면을 가로질러 날며, 물고기는 아래의 물에서 헤엄친다. 위의 물에는 거주하는 대상이 전혀 없다.

창 1:22에서 주어지는 복은 운명 선포의 일부이며, 이 피조물들의 기능을 추가로 묘사한다. 그 기능이란, 그들이 땅 위에서 번성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여섯째 날[편집]

육상동물은 셋째 날에 생겨난 마른 땅에 거하는 피조물로 묘사된다.

인간

창세기 1장은 역할 지향적이다. 우주 안에서 인간의 위치와 그들에게 수행하도록 배정된 기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인간은 창세기 1장 이야기에서 중심을 차지하며(모든 기능이 인간을 향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통치자로 기능함으로써 우주에서도 중심을 차지한다. 여자는 남자의 동반자이고 둘 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으며 공동으로 통치 능력을 행사한다. 이 통치권의 범위 안에서 그들에게 운명을 선포하도록 허용하신다. 이를테면 동물의 이름을 지어주는 일이 그렇다. 인간은 우주 안에서 통치자의 위치를 부여받으며, 우주의 모든 기능은 인간을 위해 체계화되었다. 

일곱째 날(창 2:1-3)[편집]

고대 세계에서는 신전과 우주가 긴밀한 상호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신전의 건축이 우주적 용어로 묘사되었고 따라서 신전이 우주적 기능을 한다고 여겼으며, 신전이 우주의 축소판 모델로 이해되었고 우주 관련 상징 체계로 가득 차 있었다.

이와 관련해 특히 주목할 본문은 이사야 66:1인데, 이 본문은 우주 크기의 성전에 대해, 성전과 안식의 관계에 대해, 창조와 성전 사이의 관계에 대해 언급한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사 66:1-2) 

성전봉헌식의 정점은 하나님이 준비된 자신의 거처로 들어가신 후 그곳에서 안식을 취하시면서, 자신의 성전-보좌에서 우주 통치를 시작하시는 때다. 이전의 행위는 단지 이 장엄한 대단원을 준비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신성한 공간의 창설과 그것에 상응하는 의례적인 기능을 핵심 요소로 하는 성전 봉헌식과 마찬가지로, 창조 이야기의 핵심에는 우주의 구성 요소들이 제자리에 놓인 주요 목적을 자세히 이야기할 뿐 아니라 제자리에 맞는 적절한 기능 주체들을 공식적으로 임명함으로써 우주가 제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했음을 밝히는 내러티브가 있다. 이 내러티브에서 우주 전체는 인간을 위해 기능하도록 고안된 성전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 우주적 성전 안에서 안식을 취하실 때, 이는 그분의 임재에 힘입어 “(기능적) 현존으로 여겨지게 된다”(이는 고대인들의 사유에서 말하는 진정한 현존을 가리킨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성취하고 즐기시는 안식은 그가 질서를 세우신(창조하신) 우주를 통치하기 위해 개입할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그의 우주 통치를 용이하게 해준다.

사실상 우리는 창세기 1장을 고대 근동의 신전 건축이라는 맥락에서 읽음으로써, 히브리어 성서나 기독교 성서 전체의 정경적인 흐름이 한층 분명하게 보인다고 주장할 수 있다. 예컨대 레벤슨은 히브리어 성서에 있는 다음과 같은 수미쌍관에 주목한다. 

“히브리어 성서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하늘과 땅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고(창 1:1) 하늘의 하나님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대하 36:23)라는 명령으로 끝난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24권의 책은 창조(성전)에서 출발하여 성전(창조)을 향해 나아간다.“ 

  기능   기능 주체들(역할)
첫째 날 빛, 어둠 넷째 날 해, 달, 별
둘째 날 궁창(궁창 위의 물, 궁창 아래의 물) 다섯째 날 새, 어류
셋째 날 땅, 바다, 풀 등 여섯째 날 땅의 생물, 인간
일곱째 날
(성전에서) 안식하심

   

창세기 해석을 위한 이러한 견해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창세기 이야기가 물질 기원보다는 기능 기원에 속하며 신전 이데올로기가 창세기 우주론의 기초를 형성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데 있다. 이런 결론은 지구의 나이, 창세기와 과학의 관계, 진화와 지적 설계와 관련된 성서 본문의 해석, 공적 과학 교육의 형성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는 우리 시대의 공적 논의와 논쟁에 대해 중요한 파급 효과를 낳는다.[3]

 

각주[편집]

  1. Crosswalk - Devotionals, Christian Music, Family, Christian News, Forums & more
  2. 《이야기세계사》/김경묵 외 공저/청아출판사
  3. 존 H. 월튼 (2017년). 《창세기 1장과 고대 근동 우주론》. 새물결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