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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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그림

창조론(創造論, Creationism) 또는 창조설인간, 삶, 지구, 우주의 개입에 의한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의미한다. 이 '개입'은 완전한 무에서의 창조일 수도 있고, 이전에 있던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일 수도 있다. 과거에는 신본주의 사회의 종교성에 의해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졌으나, 인본주의 철학이 등장하면서 도전받기 시작하여 현대에는 진화론이나 빅뱅 이론을 위시한 천체물리학, 기타 자연의 기원에 대한 관점이 있는 과학 등과 모순되어 과학이론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에 따라 적어도 좁은 의미의 창조론(이하)을 논의할 때는 '창조론'이 아닌 '창조설'로 표기함이 옳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많은 종교에서 창조에 관한 설명은 해당 종교의 핵심적인 교리에 속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때 중요한 부분은 과학 이론과 대립되는 부분이 아닌 신학적, 철학적 부분인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이 문서에서는 전자를 '좁은 의미의 창조론'으로 따로 묶어서 다룬다.

좁은 의미의 창조론[편집]

기독교유대교창세기 경전과 이슬람교꾸란에서는 세상의 기원에 대해 묘사하면서 유일신이 세상을 창조하였다고 적고 있다. 이를 과학 이론인 생명체의 진화론과 대립되는 관점에서 창조론(좁은 의미의 창조론)이라고 부르는데, 과학자들은 엄밀하게는 과학 이론과 종교적 믿음이라는 전혀 다른 가치 체계를 같은 위치에 놓고 비교한다는 점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창조론자들은 창세기 등 주로 《성경》의 기록을 바탕으로 창조론 또한 증거가 있으며 과학적으로 입증 가능한 이론으로 본다.

생명의 창조론을 과학으로 증명하려는 노력 역시 기독교계와 이슬람교계 등 아브라함계 종교권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이를 창조과학이라고 부른다. 또한 다른 형태의 창조과학으로서 지적설계 운동도 대두되고 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에 대해 정해진 결론을 위해 증거를 취사 선택한다며 인정하지 않고 있다. 또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창조론을 학교 정규 교과 과정에 반영하는 문제가 재판으로 비화하기도 했다. 늦은 2005년 키츠밀러 소송 사건에서는 지적 설계론의 완패였다. 존 E. 존스 3세는 판결문에서 "지적 설계론은 과학이 아니며, 나아가 지적 설계론은 창조론, 따라서 그 종교적인 조상들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했다.

젊은 지구 창조론[편집]

젊은 지구 창조론(young earth creationism)이라고 하는 성경 창세기를 기본으로 한 이론은 창세기의 기록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지구의 나이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6,000~10,000년이고 최초의 6일 동안 모든 창조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이 이론은 일반적으로 근본주의 계열의 기독교 내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창조과학 운동이라고 불리는 시도도 상당 부분 이 젊은 지구 창조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이론은 진화론(생물학)은 물론 물리학, 천문학, 화학, 지질학 등 대부분의 현대 과학계에서는 부족한 증거 및 가능성 등 과학성의 부재로 인정하지 않는다.

진화론에 대한 반론[편집]

아래의 주장은 진화론에 대한 창조론자들의 반론이다.

  • 현재 살고있는 생물이 비슷하다는 것은 진화의 증거가 되지 않는다.
  • 진화의 중간 단계인 '연결고리' 화석이 매우 적다.
  • 두 가지 동물 종류의 특징을 갖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중간단계의 생물은 아니다. 동물의 종류는 최근에 와서 살아있는 동물들을 분류한 것이기 때문에 그 분류에 들기 애매하다고 해서 진화의 중간단계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시조새 등의 중간단계라고 주장하는 동물은 멸종된 동물일 수도 있으므로 진화의 중간단계라고 볼 수 없다. 시조새 화석은 조작되었다.

오랜 지구 창조론과 유신진화론[편집]

한편으로는 생명의 진화와 우주의 생성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받아들이지만 그 이면에 신의 개입이 존재한다고 믿는 경우도 있으며, 성서에 적혀 있는 내용은 과학적 진실이 아니며 성경의 창조는 비유와 은유이기 때문에 단지 신앙의 차원에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다양한 창조론은, 과학적인 연구 결과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의 문제뿐 아니라, 창조가 기록된 창세기 1-3장의 기록을 어떻게 신학적으로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창세기의 해석 방법으로 문자적 해석을 취할 경우는 젊은 지구 창조론과 같은 근본주의적 해석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복음주의 신학자들도 창세기 1장의 6일 동안의 창조를 문자적이 아닌 문학적 상징적 언어로 해석하는 골격 해석(framework interpretation) 등 다양한 신학적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오랜 지구 창조론[편집]

오랜 지구 창조론(old earth creationism)은 과학적으로 밝혀진 지구와 우주의 나이를 인정하고 긴 시간에 걸쳐서 개개의 생명체들이 창조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창세기의 창조가 문자적인 6일에 이루어져 있다고 해석하지 않고, 날-연대 이론(day-age theory)등의 설명과 같이 오랜 시간이 걸려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한다. 또는 간격론(gap theory)으로 제시된 것과 같이 창조는 6일간에 이루어졌지만 그 전에 긴 시간이 존재했던 것으로 설명하여 과학적으로 밝혀진 지구의 나이와의 갈등을 해소하기도 한다. 이 이론은 과학계의 많은 이론들을 수용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장점이 있다. 하지만, 창세기의 해석에 있어서 문자적 해석과 상징적 해석을 함께 사용한다는 것에서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또한 역시 진화론의 과학적인 가치를 인정하지 않기에 과학계와의 갈등은 여전히 안고 있다.

유신진화론[편집]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은 과학적으로 밝혀진 지구와 생명의 역사를 대부분 수용하고, 이 모든 과정이 신의 섭리에 의한 창조의 과정이라고 해석하는 이론이다. 과학과의 갈등 요소가 없고, 신학적으로도 충실한 해석이기에, 기존 창조론의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고, 많은 기독교 계통 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창조론 진화론 논쟁에 있어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유신진화론을 기독교 창조론이 아닌 진화론의 한 형태로 간주한다. 이는 과학적 진화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유신진화론의 사상적 뿌리는 일부 교부들의 6기간적 견해, 아리우스주의에 뿌리를 둔 유니테리언, 범신론적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관을 수용한 스콜라 철학퀴비에의 다중격변설, 근세의 자연발생설과 세속인본주의 및 벨하우젠의 문서가설, 베르그송의 생의 철학 등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영향을 받아 19세기말부터 기독교는 물론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내부로 유신론적 진화 사상은 급속히 확산되었다.

유신진화론의 공통된 주장은 다음과 같이 종합할 수 있다.

  1. 신이 창조의 주체이나 진화를 통하여 만물을 만들었다. 따라서 지금도 신이 만든 자연법칙에 따라 창조는 계속되고 있다. 신는 창조사역에 개별적으로 관여하지 않으며, 모든 자연계의 작용은 자연법칙에 따라 일어난다.
  2. 최초의 인류가 탄생하기 전(Pre-Adamic Age) 긴 지질연대가 있었다. 그 지질시대에 살았던 생물들이 그 해당되는 지층 속에 묻히면서 무기질과 치환된 것이 오늘날의 화석이다.
  3. 신이 한 유인원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현생인류를 만들었다.
  4. 창세기는 창조에 대한 과학적 기록이 아닌 문학의 장르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반대자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수용을 거부한다.

  1. 성경을 상징적이거나 상황적으로 해석한다.
  2. 특수계시(성경)보다 자연계시(자연법칙)를 더 중시한다.
  3. 과학과 성경을 분리하는 이분법적 해석(Compartmentalism)에 근거하고 있다.

기독교적 창조론[편집]

성경적 특징[편집]

일반적으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창조론은 성경해석에 의해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1]

  1. 무로부터(ex nihilo)의 창조 : 신의 창조는 이미 존재해 있던 어떤 물질들을 사용하여 창조한 것이 아니다. 바울은 신을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롬 4:17)'라 하였으며, 고후 4:6에는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는 구절이 있다.
  2. 전포괄적 본질성 : 세계의 어느 한 부분이 창조된 후 나머지 것들이 다른 것에서 기원하도록 한 것이 아니며, 모든 실체가 본질적으로 신의 창조를 통해 존재하게 된 것이다. 이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의 '천지'를 '존재하는 모든 것'으로 해석한 결과이다.
  3. 사역 : 창조는 삼위일체 신, 즉 성부, 성자, 성령의 사역이다. 구약성경에서 이 특징은 삼위일체의 개념이 분명하지 않을 때이므로 잘 드러나지 않으나, 신약성경에서는 보다 명확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예로 고전 8:6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라는 구절이 있다. 성령의 활동은 모호한데, 창 1:2, 욥 26:13 등의 구절을 성령 활동의 근거로 해석할 수 있다.
  4. 창조의 자발성 : 창조는 오직 신의 자발적 의지에 의해 선하고 충분한 이유로 이루어진 것이며, 애초에 신에게 세계의 창조는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창조의 목적은 신의 영광이며, 창조된 세계는 신의 뜻을 수행하여 신을 영화롭게 한다.

신학적 의미[편집]

기독교적인 창조론은 기독교 신학에서 다음과 같은 신학적 의미를 갖는다.[2]

  1. 다원론의 거부 : 신 이외의 모든 존재자는 신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된 것이므로, 신 이외의 어떤 다른 궁극적 원리가 되는 실체가 존재한다는 주장은 거부된다.
  2. 신이 이룬 창조의 독특성 : 신의 창조는 인간의 창조와는 다른 독특성을 가진다. 인간의 물적 창조 행위는 어떤 재료를 변형시킴으로 이루어지며, 이는 재료의 한계 하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또한 인간이 어떤 개념을 창조할 때도 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작성 및 표현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신의 창조는 신 외의 어떤 것에 의해서도 제한받지 않는 것이며, 이에 주어진 유일한 한계는 신의 본성 및 신의 선택뿐이다. '창조'라는 단어는 '무에서 유로'의 개념이며, 인간은 단지 '조합' 혹은 '생산'만이 가능하다.
  3. 본질적 악의 거부 : 선한 신에 의해 창조된 어떤 것도 본질적으로 악하지 않다. 창조 기사에서는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언급이 반복되며(창 1:10, 12, 18, 21, 25) 창조 후에는 신이 창조물을 보고 '심히 좋았더라(창 1:31)'라는 언급을 한다. 즉, 창조된 처음의 피조 세계 안에는 악한 것이 없었으며 모두 선한 것들뿐이었다.
  4. 인간의 책임 : 물질 세계가 본질적으로 악한 것이 아니므로, 인간은 물질 세계의 악한 영역을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악한 행동을 정당화할 수 없다. 인간의 죄는 자유를 누리는 가운데 발생한 것이며, 이는 온전히 죄를 짓는 이의 책임이다.
  5. 성육신의 가능성 : 성자가 성육신을 통해 지상에 나타났다는 것은 물질 세계가 본질적으로 악하지 않다는 근거가 된다.
  6. 금욕주의의 거부 : 금욕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육체적 본성이 어느 정도 악해야 한다. 그러나 물질 세계에 속하는 육체는 본질적으로 악한 것이 아니므로, 금욕주의는 정당화할 수 없다. 구원과 영성은 물질적인 영역을 회피하지 않고 그런 것을 거룩하게 함으로써 발견되는 것이다.
  7. 유출적 일원론의 거부 : 기독교적 창조는 무로부터의 창조이므로, 물질 세계는 신의 본성에서 유출된 것, 즉 신의 실체에서 분리된 신의 일부가 아니다. 피조물은 신의 실체와 확실히 구분되며 신에 의존적이고 유한한 것이다. 어떤 피조물이나 피조물들의 연합도 신과 동등하게 될 수 없다. 이러한 특성은 피조물의 본질적인 한계가 되며, 우상숭배를 배격할 근거가 된다.

계속되는 논란[편집]

과학자들은 “고대 원문 몇 줄(성경 속 창조론)을 가지고 과학적 과정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왔고 기독교계 학자들은 “과학자들조차 진화 과정의 시작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반박해왔다.

한편 1859년 다윈이 주장한 진화론은 ‘자연선택’에 따라 환경에 적응한 개체가 자연적으로 선택돼 살아남고 그 형질이 후대에 유전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다윈은 “지구에 사는 수많은 종(種)이 공동조상들로부터의 거듭된 분화의 결과물”이라고 언급했으며, 이것을 인간의 조상은 원숭이라는 뜻으로 해석한 사회 각층의 분노를 야기하기도 했다. 특히 기독교계 학자들은 인간에 대한 모독과 신성에 대한 도전이라고 분노를 표출했다.

2014년 1월, 최근들어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과 조지워싱턴대학 등 합동 연구팀은 대륙에 사는 도마뱀 5종(種)과 대서양과 태평양, 캐리비안과 지중해 연안의 섬에 사는 도마뱀을 비교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조사결과 섬에 사는 개체는 더욱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친화력’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섬의 포식자는 ‘환경에 길들여진’ 순한 도마뱀에 더욱 가까이 접근할 수 있으며, 섬의 도마뱀이 포식자를 인식하고 이로부터 도망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육지의 도마뱀보다 짧다는 것을 연구팀은 발견했는데 이는 육지보다 섬의 포식자 개체수가 적기 때문으로 ‘자연선택’에 따라 도마뱀이 도망치거나 숨는 행위에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게끔 진화됐기 때문이라는 다윈의 이론과도 맞는것이기도 하여 생물진화론의 창시자인 찰스 다윈의 이론이 155년 만에 미국 연구팀에 의해 사실로 입증됐다는 주장이다. [3]

이슬람교적 창조론[편집]

창조의 대상[편집]

이슬람교에서는 꾸란에 의거하여 모든 존재의 근원을 알라, 즉 신으로 본다. 꾸란에 따르면, 신은 인간과 우주를 창조(khalq)했으며 인간들에게 다른 피조물을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신은 천사(43:19), (55:15 - 진은 연기 없는 로 창조), 하늘(14:19), 태양, (41:37), 천둥(13:3), 나무, 과일, 곡식과 향기로운 (55:10~12), 수중 생물(24:45) 등의 창조주이다.[4]

이론적 쟁점[편집]

이슬람교 신학에서 다루는 창조론에서 생기는 이론적 쟁점은 다양하다. 예를 들어, 꾸란에서 '알라'를 배타적인 창조주로 취급하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수라 13:16의 다음과 같은 구절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알라와 다른 '샤리크'(동반자, 우상)에게도 창조의 능력이 있다는 듯한 언급이 있다. 일반적으로 꾸란에서 창조의 능력은 알라(유일신)에게만 귀속되나 이 구절만이 예외이다.[4]

일러가로되 천지의 주님이 누구이뇨 일러가로되 하나님이라 일러가로되 스스로를 위하여 유용함도 해악도 없는 그분 아닌 다른 것을 보호자로 택하였느뇨 일러가로되 장님과 보는 자가 같을 수 있으며 암흑과 빛이 같을 수 있느뇨 또한 그들은 그들이 만든 우상을 그분이 창조한 것처럼 숭배하여 창조된 것이 그들에게 혼돈됨인가 일러가로되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였으며 그분은 홀로 전능하심이라 - 사우디 국왕역 《성 꾸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 수라 13:16.

이는 아래의 번역에서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볼드체)

말하라. 하늘들과 땅의 주님은 누구인가? 말하라. 알라 말하라. 왜 너희들이 그 분(알라)이 아닌 (다른) 보호자를 취했니? 그들 자신에게 유익과 해로움도 주지 못한다. 말하라. 시각 장애자가 시각 정상인과 동등하냐? 또는 깜깜한 어둠이 빛과 동등하니? 또는 그들이 알라의 슈라카(동반자들, 샤리크의 복수)를 만들어 알라가 창조한 것과 유사한 것을 슈라카가 창조한 것이 알라의 것과 구별이 안 된다는 말인가? 말하라. 알라는 만물의 창조주이다. 그 분은 한 분이시다. - 공일주, 《꾸란의 이해》,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10, 122쪽에서 재인용.

그러나 이는 정통 교리를 따르는 한 심각한 쟁점이 되지는 않는다. 신 자체의 존재론, 또 이에 의거해 신이 이룬 창조의 특성과 꾸란의 존재를 어떻게 신학적으로 설명할 것이냐가 보다 중요한 쟁점이 되는데, 이에 대해 어떠한 의견을 개진하느냐에 따라 신학의 학파가 무으타질라파, 아슈아리파, 마투리디파 등으로 다양하게 갈리게 되었다.

힌두교적 창조론[편집]

리그 베다의 근거[편집]

힌두교 문헌에서는 여러 가지 창조에 대한 언급이 발견된다. 이는 주로 《리그 베다》에서 볼 수 있는데,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러한 베다의 언급을 근거로 힌두교의 육파 철학이 세계의 창조 문제를 논한다.[5]

  1. 초기 리그 베다 문헌에서는 건조(建造) 또는 출산을 본뜬 원시적인 우주의 창조설을 담고 있지만 명확한 창조신의 이름은 드러나지 않는다.
  2. 후기 문헌에서는 보다 분명한 언급이 보인다. 10:8에서는 우주의 창조신을 '비슈바카르마'라 언급하며 이 신은 천지를 창조할 때 집을 짓듯이 양팔로 부채질하여 접합시켰다고 한다.
  3. 반면 '브리하스파티'(기도의 주인)를 창조신으로 하는 찬가(10:72)에서는 브리하스파티가 대장장이처럼 만물을 단조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찬가에서 '유(有)는 무(無)에서 생기지 않는다.'라는 언급이 있는데, 이 구절은 이후 철학적으로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여기의 '무'는 비존재라기보다는 혼돈 상태를 가리킨다.
  4. 태초에 가없이 넓은 물이 있고 이 안에서 '히라니아 가르바'(황금의 태아)가 잉태되어 창조신이 태어났다는 설이 있다.(10:21) 여기서는 창조신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는다. '프라자파티'(조물주)가 거론되지만, 이는 후대에 덧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5. 리그 베다의 내용 중 가장 추상적인 창조론은 우주 개벽의 찬가(10:129)에서 전개된다. 이 찬가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태초에 무(無)도 없고 유(有)도 없었다. 공계(空界)도 없었으며 그를 뒤덮는 하늘도 없었다…' 이 찬가는 우주의 발생 원인을 중성(中性)의 근본 원리인 절대의 유일자에게로 돌린다.
  1. 10:90의 '푸루샤 숙타'(원시 찬가)는 범신론적이다. 원시의 인간 '푸루샤(Purusha)'는 천 개의 머리, 천 개의 , 천 개의 을 가졌으며 신들이 푸루샤를 희생시켜 제사를 지냈을 때 거기서 , , 산양, 등이 태어났고, 푸루샤의 마음에서는 달이, 눈에서는 태양이, 입에서 인드라아그니가, 숨결에서 바람이, 배꼽에서 공계(空界), 머리에서 천계(天界), 양 발에서 대지, 귀에서 방위(方位)가 생겼다고 한다. 이러한 찬가는 거인 해체 신화의 한 예이다.

창조의 철학적 해명[편집]

조로아스터교적 창조론[편집]

창조의 묘사[편집]

조로아스터교에서의 창조 과정 묘사는 기독교 및 이슬람교와 유사하게 전개된다. 천지와 그 사이에 있는 만물은 6단계로 365일에 걸쳐 창조되었다고 하는데, 선신(善神) 아후라 마즈다와 악신(惡神) 아흐리만의 대립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면, 선신이 땅 위에 인간들의 16개 국가를 창조하자 악신은 그에 대항하는 것을 만들었다고 한다. 선신이 최초로 좋은 나라 '하르야나 와에자프'(동 이란)를 만들자 악신은 겨울을, 다른 나라 '니사야'를 만들자 불신(不信)의 죄를, '할라와이티'를 만들자 죽은 자를 묻는 죄를, '카쿠라'를 만들자 죽은 자를 태우는 죄를, 일곱 강(江)의 지방을 만들자 월경(月經)과 혹서(酷暑)를 창조하였다. 선신이 인간들을 위한 나라를 만들 때마다 악신은 방해물을 만들어 그 나라의 번영을 방해하는 자로 묘사되는 것이다.[6]

이론적 쟁점[편집]

자이나교의 비창조론[편집]

과학계의 입장[편집]

진화론을 지지하는 과학자들이 다양한 근거를 들어 창조론을 반박하고 있다. 창조론에 대한 전제 자체를 가정해달라고 하는 창조론자들도 있으나 그들은 입증책임을 하지 않는 논리적 오류를 펼치고 있다.

주석[편집]

  1. 밀라드 J. 에릭슨, 나용화·황규일 역, 《조직신학 개론》, 기독교문서선교회, 2007, 204~208쪽.
  2. 같은 책, 209~212쪽.
  3. “다윈의 ‘진화론’ 155년만에 입증”(美연구) 송혜민 기자, 서울신문(2014.01.13) 기사내용 참조
  4. 공일주, 《꾸란의 이해: 정통 이슬람과 민속 이슬람》,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10, 121~122쪽.
  5. 요시다 아츠히코 외, 하선미 역, 《세계의 신화 전설》, 혜원, 2010, 163~165쪽.
  6. 같은 책, 213~214쪽.

참고 문헌[편집]

  • 밀라드 J. 에릭슨, 나용화·황규일 역, 《조직신학 개론》, 기독교문서선교회, 2007
  • 공일주, 《꾸란의 이해: 정통 이슬람과 민속 이슬람》,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10
  • 요시다 아츠히코 외, 하선미 역, 《세계의 신화 전설》, 혜원, 2010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