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철학
종교철학은 종교의 발현 양상과 이론적 내용을 탐구하는 철학적 학문 분야다. 종교철학은 종교적 진술의 합리성, 종교의 본질과 형태, 인간 삶에서의 실제적 의미에 대한 질문에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답하고자 한다. 또한 종교 비판이나, 종교 언어의 형태에 대한 언어철학적 분석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종교철학은 순전히 경험적인 학문인 종교학 그리고 특정 종교의 신념을 기술하고 설명하고 체계화하는 신학과는 구별된다.
종교 개념의 문제
[편집]종교 개념[1]의 정의는 본질주의적 접근과 기능주의적 접근이라는 두 가지 다른 시도로 접근된다. 본질주의적 접근은 종교의 공통적인 본질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반면, 기능주의적 접근은 개인과 인간 공동체의 삶에서 종교의 기능에 대해 묻는다.
키케로
[편집]키케로(Cicero; 기원전 106–43년)는 종교(religio)의 어원을 relegere("다시 살피다/읽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했다.
[...] qui autem omnia quae ad cultum deorum pertinerent diligenter retractarent et tamquam relegerent, [i] sunt dicti religiosi ex relegando.
—Cicero, De natura deorum, II,72 (W. Ax 78.)
그러나 신들에 대한 예배에 속하는 그 모든 것들을 부지런히 되새기고 마치 다시 읽는(relegere) 것과 같은 사람들은, [...] 다시 읽다(relegere)로부터 종교적인 자(religiosi)라고 불렸다.
어원을 통해 볼 수 있듯이, 키케로에게 종교는 신들에게 행해야 할 일들을 세심하게 준수하는 것을 의미하지, 신과의 내면적 결속을 의미하지 않는다.[2] 여기서 숭배와 의례의 의무는 조심성과 근면함으로 정의된다.[3] 징조 해석을 무시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종교 소홀(religio neglecta)를 의미할 수 있다. 동시에 이러한 모든 진술은 공익(국가와 공동체)과 관련된 사건들과 연관되어 있다.[4]
종교는 다음 개념들과 긴밀히 연결된다:[5]
- 경건(pietas): 신들에 대한 올바른 태도, 더 근본적인 덕.
- 거룩함(sanctitas): 신들을 올바르게 섬기는 지식.
- 신들에 대한 예배(cultus deorum).
그러나 이들 사이에 엄격한 위계나 체계적 정의는 없으며, 상황에 따라 서로 교환되거나 병렬적으로 사용된다.[6] 특징적으로 경건은 보다 근본적이고 윤리적인 덕이며, 종교는 구체적 행위와 규범 준수에 더 가깝다.
그에게 종교 문제는 종교 자체가 아니라 신들의 본질 이해에서 출발한다. 신들이 인간에게 관여하지 않는다면 종교, 경건, 거룩함 모두 무의미해진다.[7] 최종적으로 종교는 신을 섬김(deos colere)이라는 표현으로 가장 잘 요약된다.[8]
락탄티우스
[편집]락탄티우스(Lactantius; 240–320년)는 종교는 religare("다시 묶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했다.
Hac [...] condicione gignimur ut generanti nos Deo iusta et debita obsequia praebeamus, hunc solum nouerimus, hunc sequamur. Hoc uinculo pietatis obstricti Deo et religati sumus: unde ipsa religio nomen accepit, non, ut Cicero interpretatus est, a relegendo.
—Lactantius, Institutiones divinae IV 28,2f. (SC 377, 232,6–11).
락탄티우스에게 종교는 최고의 경건(summa pietas)이며, 경건함의 띠(vinculo pietatis)에서 기원했다. 여기서 경건은 하느님을 부모로서 인지하고(dei parentis agnitio) 아는 것(dei notio)을 포함한다.[9] 종교는 외적이고 신체적인 예배뿐 아니라, 내적인 정신적 태도와 언어적 고백과 하느님에게 순종하고 그를 섬기는 모든 삶의 태도를 포괄한다.[10] 그는 참된(vera) 종교와 거짓된(falsa) 종교를 구분하고, 기독교가 이방인들에게 전달된 거룩한 종교(religio sancta)임을 강조했다.[11]
체버리의 허버트
[편집]체버리의 에드워드 허버트(E. Herbert of Cherbury; 1583–1648년)는 그의 철학적 저서 De Veritate에서 확실한 진리의 토대를 찾으려 했다. 그는 진리를 탐구할 때 신앙보다 이성을 우선시할 수는 없지만, 출발점으로서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지식(notitiae illae communes)으로 하느님이 부여한 자연적 본능(instinctus naturalis)과 능력(facultates)이 내재되어 있다고 보았고, 그것들이 인간을 영원한 행복(Beatitudo aeterna)과 최고선(summun bonum), 곧 하느님에게 향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인간은 자연적 이성만으로도 하느님과 진리에 어느 정도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허버트는 진리를 여러 층위로 구분했는데, "진리는 존재한다"(Est veritas)—그리고 veritas quaedam harum veritatum—는 근본적인 전제를 세운 뒤, 지성적 진리(veritas intellectus), 현상적 진리(veritas apparentiae), 개념적 진리(veritas conceptus)로 세분화하고, 이 셋을 복합적이지 않은 진리(veritates incomplexae)로 특징지었다. 여기서 출발해 진리적 지성(intellectus veritas)을 거쳐 복합적 진실(veritas complexa)로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능력은 대상과 부합하게 되며, 진리는 모든 건강한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지식으로 이해된다.
특히 중요한 것은 보편적 합의(consensus universalis)이다. 허버트는 이것을 진리의 최고 기준으로 제시하고, 동시에 자연적 본능과 신적 섭리의 표현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 핵심은 보편적 합의가 이성에 근거한다는 점이다. 하느님은 모든 시대의 인간에게 공통 개념(notiones communes)을 부여했으며, 여기에는 신에 대한 인식과 덕 개념이 포함된다.
허버트는 법, 종교, 철학이 단순히 전통적 기록이나 외적 권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적 이성과 능력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는 계시 중심의 전통적 신학을 비판했다. 또한 그는 민족과 종교, 철학 안에는 일정한 진리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종교와 정치/시민 법률 사이에도 근본적 합의가 존재하고, 아무리 야만적으로 보이는 종교라도 완전히 거짓만 담고 있지는 않다고 주장했다.
허버트는 종교와 계시를 명확히 구분했다. 계시를 담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자동으로 참된 종교가 되는 것이 아니고, 종교는 어디까지나 이성의 영역 아래 속하여 계시의 비판적 기준으로 있다.
허버트는 종교의 핵심 내용을 다섯 가지 공통 개념—보편적 조항(Articuli catholici)—으로 정리했다:
- 최고신이 존재한다.
- 그 신은 숭배되어야 한다.
- 참된 신 숭배의 핵심은 의식보다 덕과 경건이다.
- 죄에는 회개와 속죄가 필요하다.
- 사후에는 보상과 처벌이 존재한다.
첫 번째 조항에서 신은 영원하고 선하며 전능하고 자유로운 존재며, 만물의 원인이자 목적이다. 다신교는 이러한 신적 속성들이 분리화되거나 의인화된 결과일 뿐이며, 본질적으로는 하나의 최고신만 존재한다. 두 번째 조항에서 모든 민족이 어떤 방식으로든 최고신 숭배를 실천해 왔다고 본다. 외적 형식은 다양할 수 있지만, 참된 종교의 기준은 외적 의식이 아니라 인간 안의 종교적 능력(faculties ad religionem)과 공통적 이성(communis notitia)이다. 세 번째 조항에서 종교의 본질은 의례가 아니라 윤리에서 발견된다. 경건과 덕이야말로 신 숭배의 핵심이며, 여기서 희망, 믿음, 사랑, 기쁨이 자라나 인간을 영원한 행복으로 이끈다. 네 번째 조항에서 참된 죄 용서는 외적 의식 자체가 아니라 진정한 회개와 신에 대한 믿음에 있다. 다섯 번째 조항에서 모든 종교, 법, 철학, 양심은 인간 행위에 대해 사후 보상과 처벌이 따른다는 것이다.
비록 출판본에서는 다음 표현을 삭제했지만, 그는 자연종교(religio naturalis)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는 모든 종교가 자동으로 참된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모든 양심과 종교 안에는 자연 혹은 은총을 통한 구원의 가능성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궁극적 기준은 반드시 이성에 부합하는 보편 종교가 된다.
허버트의 종교 개념은 근본적으로 비역사적이었다. 그는 특정 역사적 계시 사건이나 교회 전통보다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언제나 동일하게 존재하는 보편적 종교를 강조하고, 참된 종교는 인간 이성과 공통 개념 안에 언제나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에게 신앙과 이성은 엄격히 구별된다. 이성은 인간 자신의 검증과 통찰에 근거한 확실한 진리를 제공하지만, 신앙은 타인의 권위와 증언에 의존한다. 따라서 역사, 전통, 계시는 본질적으로 확실한 지식이 아니라 그럴듯한 것(verisimile)의 영역에 속한다. 과거 사건은 역사적 증언을 통해 상당한 개연성을 가질 수 있어도, 서술자의 권위에 대한 신뢰일 뿐이다. 미래에 관한 내용은 더욱 불확실하며 단지 가능한 것(possibile)에 머문다. 따라서 계시나 역사적 종교 전통은 결코 공통 이성과 다섯 가지 보편적 조항 위에 서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고 그가 성경이나 기적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며, 신앙의 영역에서는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진리의 최종 기준은 언제나 올바른 이성(recta ratio)이 된다.
독일 신신학과 초기 신학적 합리주의
[편집]요한 프리드리히 빌헬름 예루살렘(J. F. W. Jerusalem; 1709–1789년)은 영국 체류 중 이신론과 반(反)이신론 문헌의 영향을 받았으며, 종교의 기원 및 발전 조건을 묻는 역사적 고찰에 관심이 있었다. 그의 핵심 개념은 단순성(Simplizität)으로, 전통적 교회 언어와 삼위일체론 및 그리스도론의 미묘한 교리적 구분이 오히려 사람들을 신앙에서 멀어지게 한다고 보았다. 또한 교리의 체계화는 기독교에 본질적이라기보다 역사적으로 지나간 과도기라고 보았고, 기독교의 본질은 교리 전통의 해체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그 이념을 드러내는 데 있다고 이해했다.
빌헬름 아브라함 텔러(W. A. Teller; 1734–1804년)는 이신론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이성과 성경적 기독교의 조화를 추구한 계몽주의 신학자였다. 그는 평범한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진리를 전하려 했고, Wörterbuch des Neuen Testaments와 후기 저서 Die Religion der Vollkommnern에서 기독교를 신앙적 기독교, 이성적 기독교, 순수 기독교의 세 단계로 구분하고, 평신도의 자유로운 성찰과 자기 판단, 그리고 교회와 국가의 결합 비판을 통해 기독교의 내적 완성을 주장했다.
요한 하인리히 티프트룽크(J. H. Tieftrunk; 1760–1837년)는 미성숙한 종교를 부조리한 것으로 보았고, 모든 종교적 관념의 궁극적 원천은 사유라고 보아 자연종교보다 이성의 종교(Vernunftreligion)라는 표현을 선호했다. 또한 텔러와 크루그의 기독교의 완전성(Perfektibilität des Christentums) 사유를 칸트적 틀 안에서 받아들였으나, 더 나아가 이성이 전통과 권위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급진화되었다. 그 결과 종교는 역사적/법적 요소에서 끊임없이 벗어나는 비판적 의식일 때만 정당하며, 종교의 완성은 권위와 실정에서의 해방에 있다고 보았다. 그의 종교에 대한 이성 개념은 계시에 대한 규범이 아니라 그에 대립하는 원리로까지 나아갔다.
요한 요아힘 슈팔딩(J. J. Spalding; 1714–1804년)은 볼프 학파의 스콜라적 합리주의와 샤프츠베리적 영국 감성철학을 결합해 종교 이해를 전개했으며, 샤프츠베리와 장 르 클레르를 통해 이신론적 종교개혁 사상도 받아들였다. 그는 기독교를 외적 권위로 주입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기 성찰과 자유로운 검토를 통해 이해해야 한다고 보았고, 1748년의 Betrachtung über die Bestimmung des Menschen은 그런 입장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는 초기의 프로그램적 저작이었다. 이 책에서 종교는 인간의 자기성찰에서 나오며, 궁극적으로는 영생이 인간 존재의 최종 의미임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이끈다고 보았다. 그의 핵심은 독자가 스스로 진리를 발견하도록 돕는 데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영혼 불멸을 단순히 증명하려 하지 않았고, 대신 인간의 자연적 행복 추구에서 출발해 이를 다섯 단계—육체적 쾌락, 지적 만족, 옳은 일을 행하는 기쁨, 우주적 일체감, 영원에 대한 희망—로 점차 상승시키며 설명했다. 각 단계의 전환은 외부 권위의 강요가 아니라, 현재 관점의 한계를 스스로 깨닫는 자기 성찰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이런 방식에서 그는 교회의 역할을 진리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그 진리로 인도하는 영적 조산사로 이해했다.
같이 보기
[편집]문헌
[편집]개론/입문
- Martin Hailer: Religionsphilosophie, Göttingen/Bristol CT 2014.
- Michael Weinrich: Religion und Religionskritik. Ein Arbeitsbuch, Göttingen/Bristol CT 2011.
단행본
- Ulrich Barth: Religion in der Moderne, Tübingen 2003.
- Ulrich Barth: Aufgeklärter Protestantismus, Tübingen 2004.
- Ernst Feil: Religio, Bd. 1. Die Geschichte eines neuzeitlichen Grundbegriffs vom Frühchristentum bis zur Reformation, FKDG 36, Göttingen 1986; Bd. 2. Die Geschichte eines neuzeitlichen Grundbegriffs zwischen Reformation und Rationalismus (ca. 1540–1620), FKDG 70, Göttingen 1997; Bd. 3. Die Geschichte eines neuzeitlichen Grundbegriffs im 17. und frühen 18. Jahrhundert, FKDG 79, Göttingen 2001; Bd. 4. Die Geschichte eines neuzeitlichen Grundbegriffs im 18. und frühen 19. Jahrhundert, FKDG 91, Göttingen/Bristol CT 2007.
- Gunther Wenz: Religion, StST 1, Göttingen 2005.
각주
[편집]- ↑ religio의 개념사에 대해서는 E. Feil 1986ff.(아래 "문헌"을 보라)을 참고하라.
- ↑ E. Feil 1986, 42.
- ↑ E. Feil 1986, 41.
- ↑ E. Feil 1986, 46.
- ↑ Robert Muth: Vom Wesen römischer ‚Religio‘, in: Aufstieg und Niedergang der römischen Welt. Geschichte und Kultur Roms in Spiegel der neueren Forschung, II, hg. v. Hildegard Temporini/Wolfgang Haase, Bd. 16/1, Berlin 1978, 290–354, 338ff.
- ↑ E. Feil 1986, 43f.
- ↑ E. Feil 1986, 39–49.
- ↑ E. Feil 1986, 47.
- ↑ E. Feil 1986, 62
- ↑ E. Feil 1986, 61f.
- ↑ E. Feil 1986, 62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