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아 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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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아(stoa)란 원래 전방을 기둥으로, 후방을 벽으로 둘러싼 고대 그리스 여러 도시에 있어서의 일종의 공공건축(公共建築)을 의미한다. 이 학파의 창시자 제논아테네의 한 '주랑(柱廊)'(스토아)에서 강의를 한 데서 연유하여 이 말이 학파 전체를 나타내는 명칭으로 쓰이게 되었다.

역사[편집]

키티온의 제논.

이 학파는 통상 역사적으로 3기로 구분되어 기원전 3세기를 '고(古) 스토아' 시기(제논, 클레안테스, 크리시포스), 기원전 2~1세기를 '중기스토아' 시기(파나이티오스, 포세이도니오스), 기원후 1~2세기를 '후기 스토아' 시기(세네카,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라고 부른다.

지리적으로 고찰한 경우 고스토아는 아테네를 중심으로 전개하고, 중기 이후는 주로 로마로 활동무대를 옮기고 있다. 또 파나이티오스를 제외하고 이 학파에는 순수한 그리스인이 없고, 대부분 소아시아의 신흥무역도시 출신의 셈계(系)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더욱이 그들의 출신계층과 직업도 상인의 자제·고학생·노예·황제와 같이 잡다했다.

사상[편집]

스토아는 하나의 핵을 중심으로 형성·계승되어 고정화된 사상체계는 아니다. 사람에 따라 시대에 따라 그 사상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고 내용은 다양성을 갖고 있다. 스토아파 사람들은 학문을 우주의 구성·생성을 주된 대상으로 하는 '자연학'과 '논리학'·'윤리학'의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이러한 3개 부문은 각각 독립하고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논리학을 매개로 하여 상호 관련되어 자연학에서 윤리학에 이르는 독특한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다. 다만 사람과 시대에 따라 초첨의 추이는 엿보여 고스토아에서 후기로 넘어감에 따라 윤리학에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스토아 사상은 윤리학 면에서는 주로 키니코스 학파의 계보를 좇고, 자연학에서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는 갖가지 요소가 혼재하며 절충되어 있어 선행하는 특정 학파와 관련짓는 것은 타당치 못하다. 다만 이 학파의 사람들에게서 지배적인 현상은 외적 권위나 세속적인 것을 거부하고 금욕과 극기의 태도를 갖고자 하는 것인데, 실천적 경향과 유물론적 일원론은 각각 키니코스 학파와 헤라클레이토스의 영향을 받은 흔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살던 시대가 이전과 같이 좁은 특정의 폴리스(도시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한 동·서 양세계에 걸친 지배권의 확립이나 로마 제국의 성립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생활 공간이 확대된 시대이며, 또한 정치적으로도 과도기이던 사실에 기인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시대에 개인은 생존 근거를 추상적인 공론이나 정치적·사회적 현실 중에서가 아니라 자기의 의지라든가 감각을 통해 얻어지는 사실 중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된다.

스토아의 근본 특징은 이 세계(우주)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물체이며, 어떤 불과 같이 미세한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는 자연학에 있다. 신 조차도 예외는 될 수 없이 인간이나 그것을 둘러싸는 자연과 마찬가지로 물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만물은 이 근원적부터의 생성과 그 곳으로의 환귀의 과정을 반복하도록 결정지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은 물체로서의 신이 마치 봉밀이 벌집 속으로 번져나가듯이 우주 만물을 관철하여 순환하는 것이 섭리이며, 인간의 측면에서 말하면 운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스토아에게는 우주 만물은 동질이며 상호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 한발 나아가 신·자연·운명·섭리는 동의어로 되어 있다. 다만 작용을 하는 것과 작용을 받는 것과의 상위가 있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인간의 인식작용의 원천도 감각(물체로부터의 자극과 그것에 대한 반응)에서 구해지고 있다.

스토아의 사람들은 종종 "인간은 우주라는 큰 도시의 시민(코스모폴리티스)이다"라고 주장하는데 이 발상도 이상과 같은 관점과 관련이 있다. 이런 견해를 취하는 한 스토아의 입장은 유물론적 일원론 결정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유물론은 근원적 물체가 '프네우마'라고 표현되는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어딘가 포착될 수 없는 것으로, 유물론과 표리 관계에 있는 유심론으로 전체계를 전환시켜 버릴 가능성을 갖고 있다. 사실 스토아는 후기로 접어들면서 그런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스토아의 유물론적 일원론은 앞서 본 신과 세계와의 관계에서 알 수 있듯이 일종의 범신론과 표리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스토아의 사상은 전체로 볼 것 같으면 이러한 모순된 면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표면상의 주장 내지 학파가 창설된 당시의 주장과 상반되는 사실이 점차 강조되어 온 경우가 있다. 가령 윤리학 면에서 우주를 지배하는 필연성 중에서 "인간이 여하히 자유를 획득하여 사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필연과 자유와의 관계가 문제이다. 스토아의 사람들은 "일관하여 산다" "자연에 순종하며 산다"라는 것을 목표로 하여 강조한다. 이는 본시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을 통찰함으로써 인간의 유덕한 생활에 의해 유익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선택하면서, 우주의 커다란 흐름에 순응하여 조화있게 살고자 하는 주체적·적극적 태도를 의미했다. 논리학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우주법칙의 인식수단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후기가 되면서 자기의 권능내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하여 후자를 선악과는 무관한 것으로 무시 내지 체념하는 태도를 취하려 한다. 스토아의 사람들은 종종 아파테이아(어떤 것에도 마음의 동요를 받지 않는 것)라는 것을 강조하는데, 이것도 후기로 옮아감에 따라 소극적 의미로 강조되었다.

영향[편집]

스토아의 사상은 고대말기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철학·종교·문학 분야에서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가령 플로티노스는 플라톤을 스토아의 관점에서 해석함으로써 이른바 '신플라톤주의'의 기초를 확립하였고,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나 오리게네스도 그리스도교를 신학으로 체계화하는 데 있어서 스토아의 입장을 원용하고 있다. 자연사상의 성립이나 브루노·스피노자의 사상 등 근세에 있어서도 신과 자연을 동일시하려는 스토아의 관점이 커다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 후기 스토아의 윤리사상은 몽테뉴등의 모랄리스트들에게 일종의 처세훈으로 애독되었다. 현대에 있어서는 논리학 분야에서 말과 말의 관계가 아니라, 명제 상호의 관련을 문제 삼으려는 스토아의 논리학이 재평가되고 있다.

참고 문헌[편집]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