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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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철학(大陸哲學, 영어: Continental philosophy, 독일어: Kontinentalphilosophie)은 오늘날의 용법에 따르면, 유럽 대륙을 중심으로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형성된 철학의 전통으로,[1] 동 시기에 영미권을 중심으로 형성된 분석 철학에 대립되는 분류이다.

이러한 용어는 20세기 중반에 영어권 철학자들부터 사용한 것으로, 그들은 이 용어가 분석 철학에 속하지 않은 전통과 사상가들을 언급하는 데 유용하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대륙철학은 다음의 학파나 주의를 포함한다: 독일 관념론, 현상학, 실존주의 (성립 이전의 키르케고르, 니체 등 포함), 해석학, 구조주의, 후기 구조주의, 해체주의, 페미니즘 철학, 정신분석학, 프랑크푸르트 학파비판 이론, 헤겔철학, 현대 마르크스주의 등이다.[2][3]

대륙 철학이라는 개념의 외연[편집]

대륙 철학이라는 용어는 매우 모호하게 다음의 철학을 포함한다.

  • 훗설, 모리스 메를로퐁티, 셸러,미셸 앙리의 현상학
  • 마르틴 하이데거의 기초존재론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살아있는 이성철학 또는 인간 삶의 형이상학
  • 프리드리히 니체와 미셸 푸코의 계보학적 비판
  • 정신분석
  • 실존주의
  • 분석적 마르크스주의를 제외한 마르크스주의
  •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나 미셸 푸코로부터 영향받은 인문학에서의 구조주의
  • 한스게오르크 가다머나 폴 리쾨르의 해석학
  • 자크 데리다의 해체
  •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 이론

분석 철학과의 차이[편집]

상술하였듯 대륙 철학이라는 용어는 20세기 중반부터 영미권 철학자들이 새로운 분석철학의 흐름에 참여하지 않는 사상들을 통틀어 일컬을 때 빈번히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20세기부터 분석 철학이 대두하면서 서양철학 내에서 현재와 같은 특징들은 이미 성립하고 있었는데, 분석철학의 선구자 중 한 명인 버트런드 러셀은 1945년 저서 《서양철학사》에서 형식적 추론에 근거하는지의 여부 등 몇가지 특징을 들어 영국의 분석철학과 대륙의 여타 철학 간의 주요한 차이점들을 제시하려 한 바 있다.[4]

철학자 마이클 로젠(Michael E. Rosen)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 대립점을 지적하며 이러한 분류를 설명하였다.[5]

  1. 대륙 철학에서는 자연 과학이 세계를 이해하는 적절한 또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연구 기초를 과학적 방법에 두는 분석철학과 대립한다.
  2. 대륙 철학자들은 대체로 철학이 사회적, 시공간적 배경, 언어, 문화, 역사 등의 문맥과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분석 철학이 보통 이러한 배경과 무관한 주제를 탐구하려 하는 것과 대조된다.
  3. 많은 대륙 철학자들은 인간 주체 또한 이러한 조건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여기며, 따라서 자신들의 철학을 인간적, 윤리적, 정치적 움직임에 연관시키는 경향이 있다. 마르크스가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철학자들은 다양하게 세계를 '분석'하려고만 해왔으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서술한 바와 같이 이러한 경향성은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잘 드러나며, 실존주의탈구조주의 등에 있어서도 핵심적인 특징이다.
  4. 메타철학의 측면에서 자연과학적 탐구와 철학의 관련성에 대한 관점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 대륙철학자들은 근현대에 자연과학이 대상영역을 확장하면서 철학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이며, 이러한 움직임에 대항하여 철학의 방법론이나 원칙을 재정의해야 한다고 보기도 한다. 이러한 대륙철학 측의 철학에 대한 관점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철학이 과학에 우선한다는 전통적 시각의 부흥(독일 관념주의, 현상학), 철학이 기본적으로 과학이 아닌 사회·문화적인 요소와 연관되어 있다는 관점(해석학, 비판 이론, 구조주의), 철학이 그러한 일관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허무주의, 실존주의) 등이다.

솔로몬(Robert C. Solomon)은 대륙철학의 근본적 관점을 18세기 칸트철학에서 찾는다. 그에 따르면 대륙철학은 지식, 경험, 실재가 논리 실증적 탐구보다는 철학적 반성에 의해 얻어진다는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다.[6]

한편 분석철학과 대륙철학의 구분은 일종의 가족유사성에 따른 것으로서 엄밀히 정의된 개념이 아니므로 판단이 모호하다는 비판이 있다. 글렌디닝(S. Glendinning)은 대륙철학이라는 용어는 본래 분석철학자들에 의해 경멸적으로 사용되던 표현에 불과했다고 지적한다.[3]

역사[편집]

일반적으로 현대적인 의미의 근현대 대륙 철학은 독일 관념주의와 함께 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1780년대부터 이마누엘 칸트의 철학적 탐구에서 발생하기 시작한 독일 관념주의는 피히테, 셸링, 후기 헤겔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낭만주의계몽사상의 혁명적 정치에 영향을 받아 발전했다. 초기 대륙철학의 또다른 핵심은 에드문트 후설 등에 의해 기초가 놓아진 현상학으로, 이는 논리를 탐구하는 분석철학과도 접점이 있는 것이다.

대륙철학과 분석철학 간에 차이가 두드러지기 시작한 대표적 사례로 1930년경의 루돌프 카르납마르틴 하이데거 간의 논쟁을 들 수 있다.[7] 카르납은 하이데거의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강연을 듣고 이에 대해 논리적 구문을 무시하고 무의미한 가짜 진술을 만들어낸다고 비판하였으며, 더 나아가 1932년 논문에서는 논리적으로 무의미한 형이상학적 논의들을 철학에서 배제할 것을 주장하였다. 메르키오르(J. G. Merquior)는 앙리 베르그송이 과학을 경계하고 직감의 지위를 높이려 한 데서 이미 두 조류의 대립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8]

2차 대전 이후의 대륙 철학은 특히 프랑스 철학계에서 발전하였다. 프랑스에서는 배타적이던 제3공화국 이후 처음으로 독일 철학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며 마르크스와 헤겔의 저작이 대학들에서 적극적으로 탐구되기 시작했고, 실존주의를 제창한 장 폴 사르트르에 의해 현상학이 소개되기도 했다. 새롭게 등장한 대륙 철학의 조류는 구조주의탈구조주의로, 구조주의 철학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페르디낭 드 소쉬르구조주의 언어학을 인문학에 적용하기 시작하면서 발전했으며, 탈구조주의는 자크 데리다질 들뢰즈가 구조주의를 비판하면서 만들어졌다. 이러한 흐름은 21세기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한편, 2차 대전 전후에 유럽에서 나치즘의 박해를 피해 아렌트, 마르쿠제, 레오 스트라우스와 같은 여러 유대인 대륙 철학자들이 유입되었음에도, 1960년대까지는 미국의 대부분의 대학들에 있어서 대륙 철학은 거의 강의되지도, 논의되지도 않는 분야였다. 그러나 1970년대 이래로 영미권의 대학에서 문학, 예술 비평, 사회학, 정치학 분과를 중심으로 대륙철학 연구가 빠르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하였다. 일부 학자들은 더 이상 대륙 철학이라는 분류는 지리적 환경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본다.

각주[편집]

  1. "첫 번째 접근으로서, 우리는 아마도 19세기와 20세기 유럽 대륙의 철학이 전통들의 연속된 물결로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브라이언 레이터(Brian Leiter)와 마이클 로젠(Michael Rosen), 《옥스포드 핸드북:대륙 철학》(The Oxford Handbook of Continental Philosophy) (옥스포드 대학 출판부, 2007), p. 2. 사이먼 크리첼리(Simon Critchley)와 윌리엄 쇼로버(William Schroder) (eds.), 《대륙 철학과 친구되기》(A Companion to Continental Philosophy) (Blackwell Publishing, 1998), p. 4.
  2. 사이먼 크리첼리(Simon Critchley), 《대륙 철학: 매우 짧은 입문》(Continental Philosophy: A Very Short Introduction)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 2001), p. 13
  3. 사이먼 글렌디닝(Simon Glendinning), 《대륙 철학의 개념》(The Idea of Continental Philosophy) (에든버러대학교 출판부, 2006), pp. 58-65.
  4. Russell, Bertrand. 1945. A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Simon & Schuster. p. 643, 641. Ibid., pp. 643–47.
  5. Rosen, Michael E., "Continental Philosophy from Hegel." In Philosophy 2: Further through the Subject, edited by A. C. Grayling.
  6. Solomon, Robert C. (1988). Continental philosophy since 1750: the rise and fall of the self. Oxford;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7. Gregory, Wanda T. 2001. "Heidegger, Carnap and Quine at the Crossroads of Language." Current Studies in Phenomenology and Hermeneutics 1(Winter).
  8. Merquior, J. G. 1987. Foucault, Fontana Modern Masters seri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ISBN 0-520-06062-8.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