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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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神秘主義, mysticism)는 좁게는 종교에 딸린 신비주의에 국한하지만, 넓게는 철학ㆍ역사ㆍ자연 신비주의로 확대 가능하다. 신비주의를 믿거나 실천하는 사람을 신비가신비주의자라고 칭한다.

일반으로, 신비주의에서 신비 지식[1] 追求(추구)와 신비 체험 追求(추구)를 모두 포함하지만, 이 둘은 구분된다[2].

신비[편집]

신비는[3] 감각 遮斷(차단)이나 초월한 사람과 직접으로 하는 접촉을 뜻하기도 한다. 신비는 신비한 감각이 있어야 하고 태어나면서 갖추지 못한 사람은 啓發(계발)해야 한다.

중요한 개념[편집]

신비주의에는 반드시 다음의 중요한 개념이 있어야 한다.

  1. 엑스터시. 흔히 怳惚境(황홀경)으로 언역되고 말할 필요도 없이 이때 단순한 混亂(혼란)이나 混沌(혼돈)으로 의식의 沈滯(침체)나 忘我(망아)나 무기와 구분되는 개념이다.
  2. 합일. 절대적인 존재나 고등한 단계나 차원으로 跳躍(도약)하여 합일되는 체험을 칭한다.
  3. 비존재. 비대상. 외양상 矛盾(모순)인 듯하나 중요한 진리가 含蓄(함축)된, 非有, 非無, 非無無로 묘사되고 어떻게 불리는지를 떠나 부정의 부정으로 묘사된다.

유대교 신비주의[편집]

기독교 신비주의[편집]

기독교에서 신비주의는 《디오니시오스 위서》에 의해 전파되었으며, 성 프란체스코의 체험에 생생하게 나타나고 에크하르트에 이르러 독특한 사상이 되었다. 이어 조이제(1295-1366)나 타울러(1300경-1361) 등 신비사상가들에게 계승되어, 벨기에의 로이스부르크(1293-1381)에 이르러서는 굶주린 신에게 먹힌다는 특수한 일체관(一體觀)을 의미하였다. 가톨릭의 정통 신앙에 입각하는 제르송(1363-1429)도 여러 학파의 절충을 바라면서 신비적 직관에서 내적(內的) 생명을 구했다.

그러나 신비주의는 결코 명상이나 개인적 도취에만 그친 것은 아니며, 실천활동을 중시하여 개혁운동과도 관련이 있었다. 11세기 코뮌의 자치권 요구 폭동에서는 클뤼니 개혁파의 신비적 설교자가 선두에 섰다. 성 프란체스코로부터 시작되는 탁발승단은 교회에 대한 무언의 개혁운동이었다. 토마스 아 켐피스를 낳은 네덜란드의 '공동생활의 형제회'도 세속적 활동을 중시하는 신비주의였다.

신비주의 음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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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 음악은 자연이나 신의 본질을 인식하여 최고 경지에 도달해 깨달아 기뻐한다는 종교상 체험에 토대한다. 사티가 한때 신비주의성 작풍을 보였으나 유대교도였던 스크랴빈은 이 종교에 딸린 체험과 예술 감각이 일치해 독특한 작풍을 선보였다. 신비 화음[4]이라는 독자 음 체계를 발명하여 멜로디나 화성도 모두 이 6음으로 된 음렬에서 나오게 한다는 후일 쇤베르크에 의거한 음렬 기법을 생각게 하는 수법을 엄격히 쓰고 음만이 아니라 색채를 내는 건반이 있는 도구를 쓰기도 하며 스크린에 색채의 변화를 영상화 하고 마지막에는 향기나 맛까지 포함시킨 모든 감각을 동원하는 '신비극'을 연출하기도 한다.[5]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秘儀(비의)
  2. 이론에 근거해 연구하려는 신비학, 체험하려는 신비술과 신비 체험으로 구분하자고 제안된 적이 있다
  3. <그리스어: myein →눈과 귀와 입을 닫는다
  4. 全音階(전음계)와 4도로 구성된 화음으로 성립된 6음으로 형성된 화음
  5.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 〈서양 음악의 역사 - 현대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