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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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튼후에서 발굴된 앵글로색슨 지도자의 투구 레플리카.

중세(中世)는 유럽 역사에서 서로마 제국이 멸망(476년)하고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4세기-6세기)이 있었던 5세기부터 르네상스(14세기-16세기)와 더불어 근세(1500-1800)가 시작되기까지의 5세기부터 15세기까지의 시기이나 이 개념은 동양사에는 적용하기 어렵고 유럽 이외 지역에 '중세'가 있었는지도 학자에 따라 의견이 상충하지만 유럽 이외 지역에 '중세'가 없었다는 지극히 유럽 중심주의적인 의견도 존재한다.

로망스어군의 역사학자들은 중세를 전기(High)와 후기(Low)로 양분한다. 독일어권과 영어권의 학자들은 일반으로 중세를 초기 · 성기 · 후기의 세 시대로 나눈다.[1] 벨기에의 역사가인 앙리 피렌(Henri Pirenne: 1862-1935)과 네덜란드의 역사가인 요한 하위징아(1872-1945)는 20세기 초에 다음의 세 시대 구분을 대중화하였다. (아래 연표도 이들의 구분에 따른 것이다.)

금장 칸국 몽골 제국 근세 고대 후기 문예부흥기 중세 후기 중세 성기 중세 초기

역사[편집]

고대 후기[편집]

중세 초기[편집]

중세 초기의 시작은 서로마 제국의 멸망(475년)부터 시작되며, 게르만족민족 대이동이 시작된 시기이다. 게르만족이 세운 프랑크 왕국(481년 ~ 843년)카롤루스 대제(740년/742년/747년 ~ 814년)카롤링거 르네상스는 유럽의 과학, 철학의 부흥을 이끌기도 하였다. 서유럽의 경우 이베리아 반도에는 이슬람 문명이 정복해 들어왔고, 이를 막기 위해 카롤루스 대제의 기독교 세계 수호와 신성 로마 제국의 건국이 이뤄졌다. 이 시기에는 삼포식 농업이 시행되었고, 봉건제가 확립되었다.

중세 성기[편집]

볼로냐 대학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1088년에 세워졌다.

이민족의 대이동이 줄어들면서 중세 성기에 이르러 정착을 하여 이들은 사회적, 정치적 조직화를 이루었다. 이 시기 카톨릭 교회의 권력은 절정에 이르러 카노사의 굴욕이 발생하였고, 카톨릭 교회의 권력과 영주의 이해 관계가 맞물려 십자군 전쟁이 발발하였다. 이 시기에는 중세 대학의 설립이 시작되었는데, 볼로냐 대학파리 대학 등이 그 예이다. 신학적으로는 캔터베리의 안셀모를 창시자로 하는 스콜라 철학이 시작되었고, 토마스 아퀴나스에 이르러 그 정점을 이루었다.

중세 후기[편집]

흑사병 의사. 흑사병의 유럽 유입 경로는 여러 가지가 거론되고 있으나 몽골 침략이 유력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1300년 경 유럽 전역에서는 기근과 흑사병이 창궐하기 시작하여 유럽 인구의 급감을 야기하였다. 이러한 인구 감소는 쟈크리의 난과 와트 타일러의 난과 같은 사회 불안과 폭동을 야기하였다. 반면 르네상스십자군 전쟁 이후 그리스 학자들이 피신을 오면서 시작되었고, 이는 오스만 제국콘스탄티노플 점령 이후 비잔틴 제국의 학자들이 서방으로 피난하면서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고전의 지식과 인쇄술이 결합하면서 이는 종교 개혁을 이끌었으며, 중세 말기 말엽에는 대항해 시대를 열기도 했다.

학문[편집]

철학[편집]

중세 서양 세계의 학자들은 이슬람의 아랍어 서적을 통해 고대 그리스 세계의 고전에 접근하였다.

중세 유럽에서 최초의 주목할 만한 연구 활동의 부흥은 카롤루스 대제피사의 피에트로알퀸의 조언을 받아 당시 고대의 철학을 보존하고 있었던 잉글랜드아일랜드의 학자를 초빙하고, 787년의 칙령에 의해서 제국 내의 모든 수도원에 학교를 병설시켰을 무렵에 시작한다. 이러한 학교(scola)는 스콜라 철학의 이름의 유래가 되어 중세의 연구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시기의 철학적 활동 중에서는 고대의 저작을 필사하는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중세 성기스콜라 철학은 일반적으로 이탈리아철학자, 신학자, 주교캔터베리의 안셀무스(1033년 ~ 1109년)에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안셀무스는 신의 존재의 존재론적인 증명을 처음으로 정식화한 인물로서 유명하다. 13세기 초기는 그리스 철학 부흥이 절정에 이르러, 버스의 아데 라드는 시칠리아나 아랍 세계를 여행해, 천문학이나 수학 문헌을 번역하였으며 그 중에는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의 첫 완역도 포함된다. 13세기 중반의 모에르베케의 비렘에 의한 그리스 철학의 문헌의 번역, 편집은 고대 철학,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를 명확히 묘사히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과학[편집]

교육[편집]

중세는 고대의 문화와 사상을 바탕으로 기독교 사상에 의해 시대적 통일성이 형성된 시기로, 모든 분야에서 단결된 요소가 등장하였다. 이러한 중세의 종교적 통일성은 교육이념과 내용의 통일성을 가져왔으며, 단일한 교육제도의 형성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중세 전반에는 기독교 교화를 목적으로 한 기독교 학교제도가 발달하였다.

중세 중반기로 접어들면서 세속적 교육이 성장하였다. 게르만 민족의 교화책으로서 카롤루스 대제를 중심으로 한 교육사업이 전개되었고 봉건제도와 함께 기사교육이 정비되었다. 농민 계급을 위한 특별한 학교가 설립되지는 않았다. 농민 계급의 자녀들은 가정 안에서 생활과업을 배웠기 때문이다. 중세 후반에 이르러 봉건 제도가 붕괴되어 도시가 발달함에 따라 시민사회과 성립되었다. 이에 따라 세속 교육기관으로서 시민학교와 대학이 출현하였다.

예술[편집]

미술[편집]

음악[편집]

건축[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Power, Daniel (2006). 《The central Middle Ages: Europe 950–1320》. The short Oxford history of Europe (illustrated ed.). Oxford University Press. pp. 304 ISBN 978-0-19-9253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