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마 제국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SPQR sign.png
로마
서로마 제국
Imperium Romanum Occidentale

395년 ~ 476년
문장
문장
표어Senatus Populusque Romanus
("로마 원로원과 인민")
Western Roman Empire.png
수도메디올라눔 (395년~402년)
라벤나(402년~476년)
정치
정부 형태전제 정치
로마 황제
395년 ~ 425년
475년 ~ 476년

호노리우스(초대)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말대)
역사
 • 제국 분할285년
 • 로마 제국의 분열395년
 • 제국의 멸망476년
인문
공용어라틴어

경제
통화솔리두스
종교
국교기독교
이전 국가
다음 국가
로마 제국
오도아케르 왕국
서고트 왕국
수아송 왕국
무어 관구
로마 치하 브리튼
부르군트 왕국
프랑크 왕국
반달족
알레마니아
수에비 왕국
아르모리카

서로마 제국(라틴어: Imperium Romanum Occidentale)은 395년부터 476년까지 유럽에 존재하던 제국이다. 395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의해 완전 분할되어, 생겨난 옛 로마 제국의 서부를 통치하였다. 서로마 제국은 476년에 무너졌으며, 라벤나에 형식적으로 존속하던 제국의 황정은 554년에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에 의하여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로마 제국이 능력있는 황제 1명에 의하여 평화로이 공동 통치된 적이 있기는 하였지만, 당시의 일반적인 견해는 로마 제국처럼 방대한 규모의 나라를 1명의 최고 권력자가 통치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하여 생긴 내전과 갈등을 모두 겪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286년에 제국의 동부와 서부에 정제와 부제를 각각 1명씩 두는 '사두정(Tetrarchy)'이라는 개념을 제국에 도입했다. 사두정 체제 자체는 오래가지 못했으나, 이때 나뉜 동부와 서부 제국은 이후 로마 제국 자체의 분열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후 내분이 이어지고, 중간에 콘스탄티누스 1세가 제국을 재통일하며 안정을 찾는 듯 하였으나 제국은 끊임없이 약해지고 있었다. 395년에 로마 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사망하자, 그의 아들인 호노리우스가 제국의 서부를, 또다른 아들인 아르카디우스가 제국의 동부를 차지하고 지배하게 되었다.

476년에 서로마 제국이 라벤나 전투에서 오도아케르와 게르만족 용병들에게 대패한 이후, 오도아케르는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를 폐위시켜버렸고, 첫 이탈리아의 왕으로 등극했다. 480년에 전임 서로마 황제였던 율리우스 네포스마저 암살당하자, 당시 동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제논은 서로마 제국의 완전 패망을 선언하고 자신을 로마 제국의 유일한 공식 황제라고 선포하였다. 저명한 학자 에드워드 기번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476년을 유럽의 고대와 중세의 분기점으로 보기도 한다. 참고로 서로마 제국 이후 이탈리아에 생겨난, 야만족들에 의하여 건국된 왕국들은 자신들의 국체를 로마에 두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로마 문화에 완전히 융화되어 로마 법을 따르고, 동로마 제국에 대하여 친선 관계를 맺고자 노력하였다. 이후 교황이 카롤루스 대제를 '서로마 황제위를 잇는' 적법한 후계자로 선포하고 신성로마제국을 열었으나, 이 제국은 고대 서로마 제국과 법적으로, 문화적인 면으로도 별 관련이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1054년에 생겨난 동서교회의 대분열로 인하여, 동로마 제국의 황제는 옛 서로마 지방에 대한 영향력을 거의 상실하고 말았다.

역사[편집]

사두정[편집]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로마 제국을 4등분한 첫 황제였다. 286년, 그는 막시미아누스를 서로마 제국의 정제(Augustus)로 임명하고, 자신은 동로마 제국의 통치를 맡았다. 293년에는 갈레리우스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가 각각의 부제(Caesar)로 임명되었다. 이 사두정 체제는 초기에는 제국을 효율적으로 나누었고, 이로 인해 로마 제국은 3세기의 대혼란과 내전에서 일부 벗어날 수 있었다. 막시미아누스는 메디올라눔을 자신의 수도로 삼았고, 클로루스는 트리어를 자신의 수도로 삼았다. 한편 동쪽에서는 갈레리우스가 시르미움을 자신의 수도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니코메디아를 자신의 수도로 삼아 통치하였다. 305년 5월 1일,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미아누스는 퇴위하였고, 갈레리우스와 클로루스가 새로운 정제가 됐다. 그들은 막시미누스 2세발레리우스 세베루스를 새로운 부제로 임명, 제국을 함께 다스렸다. 이로 인하여 2차 사두정이 성립되게 된 것이다.

2차 사두정은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가 306년에 사망했을 때에 끝났다. 클로루스 사후 그의 아들이었던 콘스탄티누스 1세가 브리튼 섬에 주둔하던 군단들의 추대를 받아 서방의 새 정제로 즉위하였으나, 나머지 부제들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이 기회에 서방을 공격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308년, 갈레리우스가 카눈툼에서 회의를 소집하여 로마 제국의 서방을 콘스탄티누스 1세와 리키니우스가 나누어가지는 합의안을 내놓았으나, 사두정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로마 제국을 통합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던 콘스탄티누스 1세는 314년에 본격적으로 리키니우스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324년 크리소폴리스의 전투에서 리키니우스를 꺾었다. 이후 리키니우스는 테살로니아에 감금되어 있다가, 끝내 살해당했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여기서 더 나아가 동방도 정복하였고, 로마 제국을 대통합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는 터키에 '노바 로마', 즉 새로운 로마인 콘스탄티노플을 세웠고, 로마 제국의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하여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했다. 이로서 사두정은 끝났으나, 여전히 제국을 동방과 서방으로 나누어 통치한다는 개념 자체는 남아있었다. 이때문에 콘스탄티누스 1세나 테오도시우스 1세와 같은 강력한 황제들이 등장했을 때에는 그나마 평화가 유지되었으나, 이들이 사망하자 곧바로 내전이 벌어지며 혼란기가 지속되었다. 이때부터 이미 동서 분열의 씨앗이 잉태되었던 것이다.

동서 분할[편집]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는 약해진 황제의 통치력으로는 더이상 로마 제국을 혼자서 통치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제국을 동서로 나눠 자신의 아들들에게 통치를 맡겼는데, 서로마 제국은 이때 만들어졌다.

서로마 제국의 판도는 서쪽으로는 히스파니아아프리카 북부, 북쪽으로는 갈리아브리타니아, 게르마니아, 그리고 본국 이탈리아로마를 포함한 영역이었으나, 이민족의 침입으로 인해 방위선이 무너져 국경지대는 점차 관할에서 멀어진다.

서로마 제국은 호노리우스 치세기에 알라리크의 로마 약탈 등 야만족의 계속되는 공격에 무너져갔으며 특히 훈족의 아틸라가 여러차례 제국을 침공해왔다. 아이티우스(Flavius Aetius)가 451년의 카탈라우눔 전투에서 아틸라를 격파하여 제국의 마지막 불꽃을 태웠으나 발렌티아누스 3세에게 453년에 암살당하였고 그의 사후 제국은 급속도로 무너져갔다.

그후 제국은 리키메르에 의해 황제가 계속되어 교체되는 등 혼란기를 겪었다.

마요리아누스(458~461제위)가 리키메르에 의해 즉위하여 군대를 재건하고 북아프리카를 탈환하려는 시도를 했으나 겐세리크의 계략에 의해 실패하고 결국 마요리아누스도 리키메르에 의해 제거됨으로써 제국의 마지막 희망이 사라졌다.

476년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게르만 족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 강제로 퇴위당함으로써 서로마 제국은 멸망하였다. 오도아케르는 이탈리아를 장악하고 제국의 기장(期章)을 동로마 제국의 황제인 제논에게 보냈다. 제논은 곧 대표 사절단을 파견하였다. 하나는 일단 오도아케르를 이탈리아의 군주로서 인정한다는 사절이었고, 다른 하나는 율리우스 네포스에게 보내어 황제 복위를 보장해 주었다. 480년 네포스가 죽자 제논은 달마티아 지방에 대한 지배권이 동로마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오도아케르는 달마티아를 공략하였고, 뒤이어 동고트의 왕 테오도리쿠스와도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기타[편집]

서로마 제국의 멸망으로 인하여 명목상으로나마 로마 제국의 통일이 이루어졌다.

역대 황제[편집]

관련 항목[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