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사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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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초기[편집]

5세기[편집]

연도 일자 사건 중요성
400년경 고지 마야가 저지의 도시국가 테오티우아칸에게 무너지다. 멕시코 고지대에서 마야 문화마야어의 쇠퇴의 시작.[1]
405년 히에로니무스불가타를 완역하다. 복음서가 라틴어로 번역됨.[2]
410년 8월 24일 서고트인의 왕 알라리쿠스로마를 약탈하다. 서로마 제국 멸망사에 있어서 결정적 변곡점.[3]
431년 7월 22일-7월 31일 에페소스 공의회 니케아 신경의 공인[4]네스토리우스의 이단 정죄. 네스토리우스는 서양 기독교와 갈라져 동방교회로 분리된다.
455년 6월 2일 반달인의 왕 가이세리크로마를 약탈하다.[5] 서로마 제국 멸망사에 있어서 또다른 결정적 사건.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 때 서로마 제국은 실질적으로 망했다고 평가한다.[6]
476년 9월 4일 오도아케르서로마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폐위하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 때를 서양 중세사의 시작점으로 평가한다.
480년 4월 25일 로마 원로원과 동로마 궁정의 인정을 모두 받은 마지막 황제 율리우스 네포스의 죽음.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 때를 서양 중세사의 시작점으로 평가한다.
500년경 티칼마야 문명 최초의 대도시가 되다. 티칼의 마야인들과 테오티우아칸인 사이에 상당한 문화적 교류가 있었다.[1]
500년경 바돈산 전투. 서색슨인들의 진격을 브리튼인들이 일시적으로 저지했다. 오늘날에는 아서왕 전설의 원형으로 알려져 있을 뿐 그 정확한 일자와 장소, 전투 경과는 불명이다.[7][8]

6세기[편집]

연도 일자 사건 중요성
507년 부이예 전투: 프랑크인의 왕 클로도베쿠스 1세서고트인을 무찌르다. 서고트인들은 서유럽에서 기반을 잃고 이베리아 반도로 밀려났다.[9]
524년 보에티우스가 『철학의 위안』을 쓰다. 이 책은 중세 서유럽 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책으로 평가된다.[10]
525년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부활절표를 간행하다. 현재 그레고리력율리우스력에서 쓰이는 서력기원(A.D.)가 여기서 처음 도입되었다.
527년 8월 1 유스티니아누스 1세동로마 황제가 되다. 유스티니아누스는 529년 민법대전을 반포하고 게르만족들이 점유한 옛 서로마 땅을 회복하는 등 동로마의 중흥군주로 평가된다.
529년–534년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민법대전』을 반포하다. 수 세기에 걸친 로마의 법문서와 황제 칙령들을 3부 1법전으로 집대성했다.
529년 베네딕투스 데 누르시아몬테카시노수도원을 설립하다. 베네딕토가 세운 12수도원 중 첫 번째 수도원이다. 이로써 베네딕토회가 시작되었다.
532년 1월 1일 니카 폭동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절반 이상이 불타고 파괴되었으며 시민 수만 명이 죽다.[11]
533년 12월 15일 벨리사리우스가 지휘하는 동로마군이 북아프리카반달인으로부터 탈환하다. 이로써 반달 왕국은 멸망했고, 동로마의 북아프리카 재정복 사업이 완료되었다.
535년–554년 고트 전쟁.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재정복 사업의 일환으로, 동고트인으로부터 이탈리아를 되찾았다. 그러나 이로써 동로마의 경제는 파탄이 났으며, 이후 랑고바르드인이 이탈리아를 정복하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된다.
563년 콜룸바 히엔시스이오나에 전도소를 세우다. 이오나 수도원은 794년 바이킹에게 파괴될 때까지 픽트인기독교 개종에 큰 역할을 수행했다.[12]
568년 랑고바르드 왕국이 세워지다. 랑고바르드인이 이탈리아를 정복해 세운 랑고바르드 왕국은 774년 프랑크인에게 정복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570년경 무함마드 태어나다. 무함마드는 이슬람교의 창시자로, 이슬람 신학에서는 그가 마지막 예언자라고 말한다.
577년 더르함 전투: 서색슨인이 브리튼섬 서쪽으로 진격을 계속하다. 이로써 앵글로색슨인에게 정복된 잉글랜드와 브리튼인 세력이 유지된 웨일스, 그리고 브리튼인 세력권이지만 웨일스와 바다로 분리된 콘월의 문화권이 영구히 분리되었다.
581년 3월 4일 수조가 중국을 재통일하다. 영가의 난 이래 270년만에 중국이 재통일되었다.
590년 9월 3일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즉위하다. 그레고리오 1세 재위기에 천주교 전도는 새로운 경지에 이르렀으며, 또한 의식과 전례 있어서도 혁명적 변화가 있었다(그레고리오 성가).
597년 아우구스티누스 칸투아리엔시스가 초대 켄터베리 주교로 임명되어 켄트로 파견되다. 이로써 앵글로색슨인의 기독교화가 시작되었다.
598년-614년 여수전쟁: 중국 수조가 고구려를 대규모 침공하다. 침공은 실패로 끝나고 수조는 나라가 거덜나 군벌할거기(수말당초)로 접어든다.
600년경 이유를 알 수 없는 방화테오티우아칸의 주요 건물들이 전소하다.[13] 테오티우아칸 문명과 그 제국이 멸망했다. 이로써 티칼이 메소아메리카 최대의 도시국가가 되었다.[1]

7세기[편집]

연도 일자 사건 중요성
602년–629년 최후의 대규모 로마-페르시아 전쟁. 동로마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 간의 오랜 분쟁으로 양국은 모두 국력이 탈진했고 이후 630년대에 흥기한 아랍인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
604년–609년 중국의 대운하가 완공되다.[14] 장강 유역과 황하 유역이 처음으로 연결되었다. 이후 대운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중화제국의 수도로 곡물을 수송하는 것이었다.
618년 6월 18일 당조가 중국을 재통일하다. 당조는 호한융합 침투왕조 중 최후의 승리자로, 당조에서 마련한 행정체계가 이후 286년간 지속된다.
622년 9월 9일 – 9월 23일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망명하다(헤지라). 이 때를 이슬람력 원년으로 삼는다.
626년 페르시아-아바르-슬라브 연합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 동로마가 방어에 성공하면서 아바르는 거덜났으며 페르시아는 수세로 몰린다.
627년 12월 12일 니네베 전투. 헤라클리우스가 지휘하는 동로마군이 사산조 페르시아군에게 대승했다.
632년 6월 8일 무함마드가 죽다. 이 시점에서 아라비아반도의 모든 아랍인은 무슬림이 되었다.
632년–668년 고대 대불가리아의 출현과 팽창. 대불가리아가 쇠망한 이후 불가르인들은 도나우 유역의 불가리아 제1제국볼가강 유역의 볼가강 불가리아로 나뉜다.
632년 6월 8일 아부 바크르 아스시디크가 초대 칼리파로 즉위하다.
633년–634년 헤븐필드 전투. 오수알데 왕이 지휘하는 노섬브리아군이 웨일스군에게 승리하다.
638년 예루살렘 공성전 (636년–637년). 예루살렘이 아랍군에게 함락되다. 공격군 대부분이 무슬림이었지만 시리아 기독교도도 있었다.
641년 나하반드 전투 무슬림이 페르시아를 정복하다.
643년 알렉산드리아 공성전 (641년) 암르 이븐 알아스가 지휘하는 아랍군이 알렉산드리아를 취하다.
645년 일본의 소가씨가 몰락하다. 이로써 중국 문화의 모방이 가속화되고 이듬해부터 나라 시대가 시작된다.
650년 슬라브족발칸반도를 완전히 점유하다.
650년경 올메카시칼란카가 알테페틀 쇼치찰코를 세우다. 쇼치찰코는 이후 이일 대의 중요한 문화적 경제적 중심지가 된다.[15]
663년 노섬브리아 국왕 오스위그휘트비 교회회의를 개최하다. 로마식 기독교가 켈트 기독교에 승리하다.
668년 한국의 삼국시대가 끝나고 통일신라가 세워지다.[16]
674년–678년 아랍인들이 처음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하다. 이슬람의 흥기 이래 무슬림 세력의 첫 패배. 이슬람 세력의 유럽 정복이 미연에 방지되다.
681년 불가리아 제1제국의 성립. 불가리아는 이후 중세 유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강대국이었다.
685년 둔 네크탄 전투 픽트인들이 노섬브리아에 승리하면서 노섬브리아의 브리튼섬 북부 패권이 무너졌다.
687년 테르트리 전투 이 전투에서 승리한 피피누스 2세네우스트리아아우스트라시아 전체의 궁재가 되었고, 메로베우스조의 권력은 더더욱 약화되었다.
698년 카르타고 전투 (698년) 아랍인들이 카르타고를 먹었다. 이로써 동로마는 북아프리카를 영구히 상실했다.
698년 발해가 건국되다. 이후 926년까지 통일신라와 발해가 공존한 시대를 남북국시대라 한다.[17][18]

8세기[편집]

연도 일자 사건 중요성
711년 우마이야조의 히스파니아 정복. 이후 15세기 말까지 지속되는 무슬림의 알안달루스 지배의 시작.
718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성전 (717년–718년) 아랍인의 두 번째 콘스탄티노폴리스 공격. 동로마와 불가리아 연합군의 방어로 실패로 돌아갔다. 이로써 동남유럽에 대한 아랍인의 위협이 중단되었다.
726년 동로마 황제 레온 3세 이사우로스성상파괴운동을 시작하다. 교황 그레고리오 2세는 성상파괴에 반대했다. 이로써 천주교회와 동로마 교회 사이에 결정적 차이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732년 10월 투르 전투에서 카롤루스 마르텔루스가 무슬림의 북상을 저지하다. 무어인의 서남유럽 북상을 막아냈을 뿐 아니라, 이후 카롤루스 제국의 형성을 가능케 한 결정적 순간.
735년 5월 26일 베다 베네라빌리스가 죽다. 베다는 "잉글랜드 역사의 아버지"로 여겨진다.
750년 1월 25일 아바스조의 시작. 아바스조는 가장 오래 지속된 칼리파조로, 1519년 오스만 제국에 정복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751년 피피누스 3세 브레비스프랑크인의 왕이 되다. 이로써 메로베우스조는 끝나고 카롤루스조가 개창되다.
754년 피핀의 기증. 피피누스 3세가 교황에게 중앙이탈리아를 약속하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이것이 교황의 세속권력의 기반인 교황령의 시초다.
768년 카롤루스 1세 마그누스가 프랑크인의 왕으로 즉위하다.
778년 8월 15일 롱세보 고개 전투.
786년 9월 14일 하룬 알라시드가 바그다드 칼리파로 즉위하다.
793년 린디스판 약탈. 바이킹의 브리튼섬 공격이 시작되다. 이후 2세기 동안 계속되는 바이킹 시대의 시작.
794년 일본에서 헤이안 시대가 시작되다. 헤이안 시대는 일본사의 마지막 고전시대로 여겨진다. 나라 시대부터 시작된 중국식 율령정치가 계속되면서, 이 시기 일본의 중국스러움이 가장 컸다.
795년 7월 29일 오파의 죽음. 잉글랜드에서 머시아의 패권이 끝났다.
800년 12월 25일 카롤루스 1세가 교황 레오 3세에게 서로마 황제로 대관받다. 이로써 카롤루스의 왕국은 로마 제국의 쇠망 이후 유럽에서 가장 거대한 나라로 교황의 공인을 받았다.

9세기[편집]

연도 일자 사건 중요성
9세기 중국에서 화약이 발명되다.
814년 1월 28일 카롤루스 1세 마그누스가 죽다.
820년 알콰리즈미, Algebrae et Alumcabola Algorithm 저술
825년 엘라둔 전투에서 에그버트가 머시아군에게 승리하다. 웨식스가 잉글랜드의 패권국이 되었다.
827년 무슬림의 시칠리아 정복. 동로마령 시칠리아에 대한 무슬림 세력의 첫 공격. 시칠리아의 마지막 동로마 전초기지는 965년 함락된다.
840년 무슬림들이 남이탈리아 대부분을 정복하고 바리 토후국을 세우다.
843년 베르됭 조약. 카롤루스의 제국이 그 손자들 사이에 분할되다. 이 때 분할된 동프랑크서프랑크는 각각 신성로마제국프랑스의 전신이 된다.
843년 키나드 1세 막 알핀픽트인의 왕위와 스코트인의 왕위를 모두 얻다. 오늘날의 스코틀랜드의 전신인 알바 왕국의 시작. 그러나 픽트인과 스코트인의 통합이 완료된 것은 키나드 1세의 손자 카우산틴 2세 막 아다(재위 900년-952년) 때로 본다. 알바 왕국의 기원 참조.
862년 류리크가 이끄는 바이킹들이 노브고로드, 키예프를 세우다.
864년 불가리아의 기독교화.
866년 일본의 후지와라씨 섭관정치. 후지와라씨는 이후 3세기에 걸쳐 최강의 씨족으로 군림하며, 무사들에게 실권을 잃은 뒤에도 공가 최고 끗발의 귀족가문으로 대우받아 근대 일본 제국까지 그 지위가 지속되었다.
866년 이교도 대군세가 잉글랜드에 상륙하다. 노섬브리아, 이스트앵글리아, 머시아가 바이킹의 대군세에 압도되어 못하고 무너졌다.
868년 중국에서 알려진 최초의 인쇄물이 만들어지다.
871년 앨프리드 대왕서색슨인의 왕으로 즉위하다. 앨프리드는 바이킹으로부터 웨식스를 지켜냈고, 새로운 법들을 만들었으며 종교적 학문적 활동의 재건을 지원했다.
872년경 하랄드 하르파그리가 노르웨이의 왕이 되다.
874년 노르드인 잉골프 아르나르손아이슬란드에 정착하다.
882년 키예프 루스가 성립하다. 이후 몽골의 침공을 받기까지 4세기 정도 유지되었다. 그 절정기는 11세기 중반 야로슬라프 1세 무드리 치세 때였다.
885년 불가리아키릴로스와 메소디오스의 제자들이 도착하다. 키릴문자의 발명. 이후 수십년 간 불가리아 제국은 동방정교회슬라브 세계의 문화적 종교적 중심지가 된다.
885년–886년 파리 공성전 (885년-886년). 바이킹이 파리를 공격하다.
893년 시메온 1세가 불가리아 제1제국의 군주가 되다. 시메온 1세의 치세는 불가리아 제1제국의 황금기였다. 프레슬라프 문학교오흐리드 문학교에서 키릴문자가 발명되었다.[19][20][21]
896년 아르파드7군장이 이끄는 마자르인들이 판노니아에 나타나다.
899년 10월 27일 앨프리드 대왕이 죽다.
900년경 티칼칼라크물팔렝케코판 등 남부 저지 마야 도시들이 붕괴하다. 마야 고전시대의 종말. 유카탄 북부의 마야 문명은 존속한다.

10세기[편집]

연도 일자 사건 중요성
907년 중국 당조가 망하다. 오대십국 시대가 시작되었다.
910년 앨프리드 대왕의 아들 에드워드 장형왕테텐홀 전투에서 요르비크의 바이킹들에게 승리하다. 이후 바이킹은 훔버강 이남을 침범하지 못한다.
910년 오베르뉴 백작 기욤 1세클뤼니 수도원을 세우다. 클뤼니는 서방 수도주의의 지도적 수도원으로, 이 수도원이 세워지면서 클뤼니 개혁이 시작되었다..
911년 생클레르쉬레프트 조약. 바이킹 공구 흐롤프가 오늘날의 노르망디에 정착, 서프랑크인의 왕 카롤루스 3세 심플렉스의 봉신이 되어 루앙 백국을 세우다.
913년 스리 케사리 와르마데와발리섬을 통치하다.
917년 아켈로오스 전투에서 불가리아의 시메온 1세가 동로마군을 격파하다. 동로마는 불가리아의 황제(차르) 참칭을 용인할 수밖에 없어졌다.
919년 작센 공작 하인리히가 독일왕으로 선출되어 오토조가 개창되다. 하인리히 1세는 중세 독일계 국가의 첫 왕으로 여겨진다.
925년 트르피미로비치조토미슬라브가 초대 크로아트인의 왕으로 즉위하다. 토미슬라브는 달마티아판노니아 일대의 크로아트인들을 하나의 왕국으로 통일하여 중견급 체급의 국가를 만들어냈다.
927년 애설스탠앵글로색슨 칠왕국을 통일, 잉글랜드 왕국을 건국하다.
927년 보스니아 고지 전투에서 토미슬라브의 크로아티아군이 알로고보투르 공작이 지휘하는 불가리아군을 패퇴시키다. 불가리아의 서방 팽창이 저지되었다.
927년 시메온 1세가 죽다. 그리고 유럽 최초의 독립 국민교회로서 불가리아 총대주교좌가 공인되다.
929년 알안달루스 후우마이야조아브드 알라흐만 3세칼리파를 칭하다. 코르도바 칼리파국의 시작.
936년 왕건한반도 후삼국을 통일하다.
938년 박당강 전투에서 응오꾸옌이 중국 남한군을 물리치다. 1000여년에 걸친 중국의 베트남 지배가 종식되다.
955년 레히펠트 전투에서 오토 1세마자르인을 격파하다. 마자르인의 중앙유럽 진출을 막아낸 결정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960년경 미에슈코 1세폴란인의 공작이 되다. 그는 역사상 실체가 확인되는 최초의 폴란드계 군주이며, 폴란드계 국가의 실질적 창업자라 할 수 있다.
960년 조광윤이 오대의 마지막 황조 후주로부터 선양받아 송조를 개창하다. 이후 송조는 북송남송을 합쳐 319년간 지속되었다.
962년 오토 1세가 교황 요한 12세에게 신성로마황제로 대관받다. 베렌가리우스 1세 포로이울리엔시스 이후 약 40년간 단절되었던 서로마 황통의 복구.
963년–964년 오토 1세가 교황 요한 12세를 폐하고 교황 레오 8세를 세우다. 로마 시민들은 황제의 허가 없이 새 교황을 선출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965년–967년 미에슈코 1세가 천주교로 개종하고 천주교가 폴란드의 국교가 되다.
969년 동로마 황제 니케포로스 2세가 암살되고 요안니스 1세 치미스키스가 즉위하다.
976년 요안니스 1세가 죽고 공동황제 바실리오스 2세가 단독황제가 되다. 바실리오스 2세 치세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 이래로 동로마 제국의 중흥기였다.
978년 알만수르 이븐 아비 아미르가 알안달루스 무슬림의 사실상의 통치자가 되다. 이베리아반도에서 무어인의 권세의 절정기.
981년 바실리오스 2세가 불가리아 정복을 시작하다. 정복은 1018년 완료되고 불가리아 제1제국은 멸망했다. 바실리오스 2세는 "불가르인의 학살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것은 동로마에 의한 불가르계 국가에 대한 마지막 징벌전쟁이었으며, 이후 동로마는 불가르계 국가를 통제하지 못한다.
985년 아이슬란드에서 쫓겨난 바이킹 에이리크 힌 라우디그린란드에 정착하다.
987년 위그 카페가 서프랑크인의 왕으로 선출되다. 카페조중세 프랑스의 시작.
988년 키예프 대공 볼로디미르 1세가 기독교로 개종하고 기독교를 국교로 삼다.
989년 하나님의 평화령과 휴전령. 천주교회가 종교적 권위를 사용해 사적 전쟁을 통제하려 한 최초의 움직임이며, 중세 유럽에서 사회문제를 비폭력적 수단으로 통제하려 한 최초의 움직임이었다.

중세 성기[편집]

11세기[편집]

연도 일자 사건 중요성
1001년경 레이프 에이릭손윈란드(오늘날의 캐나다 랑스 오 메도즈)에 정착하다. 레이프는 노르드인의 아메리카 식민화에 있어 신대륙에 처음으로 정착한 구대륙인이다.
1016년 크누트 대왕이 잉글랜드 국왕이 되다. 이후 26년간 데인인들이 잉글랜드 국왕을 역임하면서 바이킹 문화의 영향을 미쳤다.
1018년 동로마 황제 바실리오스 2세가 50년 전쟁 끝에 불가리아 제1제국을 멸망시키다. 동로마의 불가리아 정복이 완료되었다.
1021년 일본의 무라사키 시키부가 『겐지모노가타리』를 저술하다.[22] 이 이야기는 세계 최초의 장편소설로 여겨진다.[23]
1025년 페르시아인 이븐 시나가 『의학정전』을 저술하다. 이 책은 18세기까지 서양 의약학의 표준 교과서로 쓰였다.
1037년 투그릴 베그셀주크 제국을 건국하다. 셀주크 튀르크는 이후 제1, 2차 십자군의 주요 관여세력이었으며, 이후 한 세기에 걸쳐 동로마 제국의 적수가 된다.
1049년 교황 레오 9세가 즉위하다. 레오 9세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미카엘 1세 케룰라리오스파문했으며, 미카엘 1세도 레오 9세를 맞파문하여 동서 교회의 분열이 시작되었다.
1050년 고대의 항법기기 천체관측의가 유럽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천체관측의는 항법사, 점성술사, 천문학자 등의 직군에서 널리 사용된 초기 도구였다.
1050년 에드워드 참회왕웨스트민스터 수도원을 짓다.
1054년 동서 교회의 분열. 서방 보편교회동방 정교회가 정식으로 분열되다. 이후 중세시대 내내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는 시기별로 정도는 다르지만 긴장 관계에 있었다.
1066년 노르망디 공작 기욤잉글랜드를 침공,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승리하고 잉글랜드 국왕 윌리엄 1세로 즉위하다. 데인 왕조 이후 일시적으로 복구되었던 앵글로색슨 왕조가 완전히 끝나고 이후 잉글랜드 국왕들은 노르만 혈통에서 나오게 되었다.
1067년 교황 그레고리오 7세가 즉위하다. 그레고리오 7세는 교회개혁(그레고리오 개혁)을 시작했다.
1071년 알프 아르슬란이 지휘하는 셀주크 튀르크군이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동로마군을 격파하다. 한편 노르만인들이 남이탈리아 최후의 동로마 영토 바리를 정복하다. 이로써 동로마는 소아시아와 이탈리아를 영구히 상실했다.
1075년 교황 그레고리오 7세, 교황 교서를 발표해 교황의 권능을 정의하다. 그레고리오 개혁의 절정기이며 서입권 투쟁의 결정적 요인.
1077년 카노사의 굴욕.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 4세가 맨발로 카노사를 찾아가 교황의 용서를 빌고 서임권 투쟁의 패배를 인정하다. 비록 그레고리오 7세는 하인리히 4세의 역습으로 결국 패배했지만, 이것은 이후 450년간 교황을 서방세계의 수장으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효시적 사건이었다.
1077년 런던탑 건설이 시작되다. 런던탑은 이후 대영제국의 최종아성이 된다.
1086년 윌리엄 1세, 새로운 영토를 다스리기 위해 대규모 토지대장인 둠스데이 북을 만들게 하다. 로마 시대 이래 최초의 양전사업이었다.
1088년 볼로냐 대학교가 만들어지다. 유럽 최고(古)의 대학이다.
1095년 셀주크 튀르크를 격퇴하고자 한 동로마 황제 알렉시오스 1세 콤네노스의 원군 요청을 받은 교황 우르바노 2세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성지 탈환을 위한 십자군 소집을 발표하다. 이후 13세기 말까지 지속되는 9대 십자군과 기타 자잘한 십자군들의 시작이 되는 사건이다.
1098년 베네딕토회에서 시토회가 갈라져 나오다. 시토회는 방만해진 베네딕토회에서 이탈하여 베네딕토 회칙을 엄격히 지키는 초심으로 돌아갈 것을 지향했다.
1099년 제1차 십자군예루살렘을 무슬림에게서 탈환하다. 이로써 예루살렘 왕국이 건국되고 이후 거의 2세기동안 지속된다.

12세기[편집]

연도 일자 사건 중요성
1100년 콘스탄티누스 아프리카누스라제스, 이샤크 이븐 임란, 이삭 이스라엘리, 이븐 알자자르 등 아랍의학의 대가들을 라틴어로 번역하다.
1102년 크로아티아 왕국헝가리 왕국동군연합을 이루다. 연합의 사항은 팍타 콘벤타에 규정되었으며, 크로아티아는 사보르(크로아티아 귀족의회)와 (부왕)을 두어 별개의 국체를 유지하기로 하다. 크로아티아 귀족들은 각자의 작위와 봉읍을 그대로 유지하다. 이로써 헝가리와 크로아티아는 1526년까지 (국제법적으로 말하자면) 동맹국이었다. 동군연합 그 자체는 20세기 초까지 지속되어 트리아농 조약 때야 해소된다.
1102년 웨스트민스터 교회회의에서 안셀모 다오스타 대주교가 성직매매, 성직자의 결혼, 노예제를 금하다.
1106년 9월 28일 틴체브레 전투에서 잉글랜드 국왕 헨리 1세가 형 로베르 2세 드 노르망디 공작에게 승리하고 로베르 2세, 에드거 애설링, 윌리엄 클리토를 포로로 잡아 디바이지스성에 가두다. 이 승리로 노르만조 잉글랜드와 이후 흥기하는 카페조 프랑스의 충돌이 불가피해진다.
1107년 헨리 1세의 누이 아델 드 블루아 백작부인이 제안한 합의안으로 잉글랜드의 봉작분쟁이 종료되다. 이 합의에서 잉글랜드 국왕과 천주교회 사이의 마찰점 하나가 제거되었다.
1109년 나콰 전투에서 폴란인의 공작 볼레스와프 3세 크시보우스티포모제인들에게 승리하고다. 이로써 폴란드는 발트해로 통하게 되었다. 하지만 포모제인들은 번번히 폴란인들의 지배를 벗어났다가 다시 복속되기를 반복했다.
1109년 8월 24일 훈츠펠트 전투에서 볼레스와프 3세 크시보우스티가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 5세를 패퇴시키다. 이로써 독일의 중앙유럽 팽창이 멈추었다.
1116년 동로마군이 필로멜리온에서 튀르크군에게 승리했다. 튀르크족은 아나톨리아 해안지역을 모두 버리고 후퇴한다.
1117년 옥스포드 대학교가 세워지다. 옥스포드는 영국 최고(古)의 대학교다.
1118년 성전기사단이 창설되다. 성전기사단은 십자군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기사수도회였다.
1121년 12월 25일 노르베르트 폰 크산텐프레몽트레회를 세우다. 이 수도회는 신성로마제국 동부의 슬라브족, 벤트족을 개종시키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1122년 9월 23일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 5세교황 칼릭스토 2세 사이에 보름스 협약이 맺어지다. 이로써 서임권 투쟁은 종료되었지만 황제와 교황 사이의 쓰라린 악감정은 해소되지 않고 지속되었다.
1123년 3월 18일-3월 27일 제1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보름스 협약이 비준되다.
1125년 이르네리우스주석법학파를 개창하다.
1125년 작센 공작 로타르 폰 주플링부르크가 전 황제의 가장 가까운 계승자인 슈바벤 공작 프리드리히 폰 호엔슈타우펜을 제치고 신성로마황제로 선출되다. 이 선거의 결과 구엘프와 기벨린의 대분쟁이 시작되었다.
1125년–1127년 정강의 변 금조의 병사들이 개봉부를 약탈, 북송 시대가 끝나다. 송조는 남쪽으로 도망가 임안을 새 도읍으로 삼다(남송).
1130년 12월 25일 루제루 2세대립교황 아나클레투스 2세에게 시칠리아 국왕으로 대관받다. 이 대관식으로 형성된 노르만인의 시칠리아 왕국은 이후 신성로마제국, 교황령, 동로마제국과 함께 지중해 세계의 주요 강대국으로 부상한다.
1130년 피에르 아벨라르가 『그렇다와 아니다』 저술
1135년 잉글랜드에서 무정부내전이 시작. 19년간의 처참한 내전 끝에 헨리 2세가 즉위하고 노르만 왕조의 방계로서 플랜태저넷조가 개창된다.
1139년 4월 제2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성직자의 결혼을 금하고 성직자의 의복을 규제하며 성직자에 대한 공격을 파문으로 다스릴 것을 선언하다. 수십년 전 그레고리오 7세가 시작한 그레고리오 개혁의 내용 상당부분이 강제성을 가지고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1140년 그라티아누스, 『교령집』 저술.
1144년 수게리우스생드니 대성전을 재건하다.
1147년–1149년 제2차 십자군이 처참한 실패로 끝나고 최초의 십자군 국가 중 하나인 에데사 백국이 멸망하다. 왕작급 군주들이 참여한 최초의 십자군이었다.
1150년 러몸 버렁거 4세 데 바르셀로나 백작이 아라곤 여왕 페로넬라와 결혼하다. 이 결혼으로 아라곤은 바르셀로나를 흡수하여 지중해로의 통로를 열었고, 이후 지중해의 여러 땅으로 진출해 강력한 왕국으로 부상한다.
1150년 파리 대학교가 세워지다.
1152년 켈스-멜리폰트 교회회의에서 현재의 아일랜드 교구제도를 확정짓고 아마 주교가 주교 중 으뜸(대주교)임을 인정하다. 이로써 아일랜드 교회가 유럽 천주교회 주류에 흡수되었다..
1154년 헨리 2세가 여러 관습법들을 공인하다. 이는 오늘날의 영미법의 시초가 되다.
1158년 한자동맹이 창설되다. 북유럽의 무역과 경제개발에 새 지평이 열렸다.
1163년 노트르담 드 파리 대성당 건축의 첫 주춧돌이 놓여지다.
1166년 스테판 네마냐세르브인들의 땅을 통일하여 세르비아 대공국을 세우다. 이후 300여년간 발칸의 패권국이 되는 세르비아의 흥기의 시작. 이 시점에서 세르비아의 동맹은 헝가리와 베네치아였다.
1171년 헨리 2세가 아일랜드에 상륙하고 카셸 교회회의가 그의 주권을 인정하다. 이로써 이후 7.5세기 동안 계속되는 잉글랜드의 아일랜드 영토 주장이 시작되었다.
1174년 7월 12일 스코트인의 왕 일리엄 1세 막 안리크앨른윅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에 포로로 잡히다. 일리엄 1세는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의 봉건적 종주국임을 인정하는 조건으로 풀려나다. 잉글랜드의 스코틀랜드 침투의 시작점이다.
1175년 일본에서 호넨(법연)이 정토종을 열었다. 일본 불교의 종파주의의 시작.
1176년 5월 29일 레그나노 전투에서 신성로마황제 프리드리히 1세의 기병대가 롬바르디아 동맹의 보병대에게 패배하다. 기병대가 보병대에게 대패를 당한 최초의 사건으로, 시민계급의 등장을 알리는 효시였다.
1175년 게라르두스 크레모넨시스가 여러 과학 책을 아랍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하다.
1179년 3월 제3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교황 피선거권을 추기경에게로 한정하고 성직매매를 금하며 30세 미만은 주교가 될 수 없도록 정하다
1183년 신성로마황제 프리드리히 1세와 교황, 롬바르디아 성읍들 사이에 콘스탄츠 화약이 맺어지다. 이 조약의 여러 조항들로 제국 내부에서 독일과 이탈리아가 갈라섰으며, 이후 각자 역사적 발전을 거치게 된다.
1183년 미나모토노 요시나카교토에서 다이라씨를 내쫓다. 2년간의 겐페이 합전의 시작.
1184년 11월 교황 루치오 3세Ad abolendam을 발표하다. 이 칙령으로 중세 종교재판이 조직되었다..
1185년 풍차의 존재가 처음으로 기록되었다.
1185년 아센과 페터르의 난으로 불가리아 제2제국이 세워지다.
1185년 단노우라 전투에서 미나모토노 요시츠네가 다이라씨를 멸문시키다. 겐페이 합전은 겐지(미나모토씨)의 승리로 돌아가고, 일본의 첫 봉건시대인 가마쿠라 시대가 시작된다.
1186년 1월 27일 차기 황제 하인리히 6세가 시칠리아 왕녀 쿠스탄차 1세와 결혼하다. 이 결혼으로 구엘프와 기벨린의 다툼은 시칠리아에까지 번지고, 이것이 80여년 뒤 호엔슈타우펜가가 단절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1187년 예루살렘 방어전. 살라흐 앗 딘이 예루살렘을 재탈환하다.
1188년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잉글랜드 왕국의 법률와 관습에 관한 조약』이 만들어지다.
1189년 7월 6일 리처드 1세가 잉글랜드 국왕으로 즉위하다. 리처드가 대륙에서 군사적 모험을 거듭하느라 부과한 과중한 세금은 귀족들과 백성들의 왕권에 대한 이반을 초래했다. 하지만 리처드는 대륙에서 놀며 수도를 거의 비워놓고 있었기에, 반왕권파의 정치적 성장을 막을 수 없었다.
1189년–1192년 제3차 십자군. 여러 주요 전투에서 승리했으나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재탈환하는 데 실패한다.
1192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정이대장군으로 임명된다. 무가정권의 지도자로서 정이대장군을 칭한 최초의 사례.
1193년 무함마드 빈 바크티야르 킬리지날란다를 약탈하고 대학교를 불태우다. 이 때부터 인도 아대륙에서 불교가 쇠퇴하기 시작했다.
1193년 상공인조합이 나타났다.
1195년 알라르코스 전투에서 무와히드 칼리파국카스티야 왕국에게 결정적 승리를 거두다. 무와히드조는 기독교인들을 북쪽으로 더욱 몰아붙이고 알안달루스의 패권자로 등극했다.
1199년 유럽인들이 나침반을 처음 사용하다.

13세기[편집]

연도 일자 사건 중요성
1202년 제4차 십자군베네치아의 경쟁도시 자다르(이탈리아어 이름 자라)를 공격하다(자라 공성전). 십자군이 천주교 도시를 공격한 첫 사례였다. 교황 인노첸시오 3세가 이런 짓을 금하고 행할 경우 파문할 것임을 서한으로 알렸지만, 베네치아 물주들에게 갚을 돈을 마련할 방법이 딱히 없었던 십자군은 도시를 약탈했다.
1204년 제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약탈하다. 동로마 제국이 돌이킬 수 없이 쇠퇴하기 시작한 시점으로 여겨진다.
1205년 아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 칼로얀불가리아군보두앵 1세를 격파하다.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털고 제4차 십자군이 세운 라틴 제국의 쇠퇴의 시작.
1206년 쿠릴타이에서 징기스 칸몽골족카간으로 선출되고 몽골 제국이 출범하다. 이후 몽골족은 유라시아 대륙의 대부분을 정복하여 그 전까지의 정치적 국경을 뒤집어 놓았다.
1208년 교황 인노첸시오 3세카타리파 이단을 파괴하기 위한 알비 십자군을 소집하다.
1209년 케임브리지 대학교가 세워지다.
1209년 프란체스코회가 세워지다. 프란체스코 다시시가 세운 이 탁발수도회는 천주교회의 다른 수도회에 비해 보다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1212년 라스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에서 에스파냐 기독교인들이 무어인들을 격파하다. 레콩키스타의 결정적 변곡점으로, 이후 1238년이 되면 이베리아반도에서 무슬림 영토는 그라나다 토후국밖에 남지 않게 된다.
1215년 6월 15일 잉글랜드 국왕 대헌장에 도장을 찍다. 중세 군주가 자신의 권력을 제한할 것을 수용한 첫 사례다.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화체설, 교황의 우위, 성직자의 행실 등이 논해지다. 여기서 유대인무슬림은 기독교인과 구분될 수 있는 표를 해야 한다고 선언되다.
1216년 도미니코회가 교황에게 공인되다.
1219년 세르비아 정교회사바 1세 네마니치에 의해 독립교회가 되고 사바가 그 초대 대주교가 되다.
1227년 8월 18일 징기스 칸이 죽다. 징기스 칸의 제국은 그의 아들들과 손자들에 의해 원제국, 차가타이 칸국, 몽골 본토, 청장 칸국, 백장 칸국으로 분할되었다.
1237년–1240년 몽골의 루스 침공이 재개되다. 이로써 키예프 루스는 세 덩어리로 갈라져 각각 오늘날의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의 전신이 된다. 그 밖에도 몽골군이 약탈한 유럽의 여러 지역에 큰 영향이 있었다. 청장 칸국과 백장 칸국이 금장 칸국을 형성했다.
1257년 소르본 대학이 개교하다.
1257년 헨리 3세옥스퍼드 조항의 동의를 강요받다. 정부가 왕권을 제한하는 새로운 형태를 마련했다.
1258년 1월 29일-2월 10일 바그다드 공성전. 몽골족의 일 칸국이 이 일대를 장악하다. 대개 이 때가 이슬람의 황금시대의 종료시점으로 여겨진다.
1258년 제1차 몽월전쟁. 쩐 태종이 몽골군을 격퇴하다.
1272년–1273년 제9차 십자군. 최후의 성지탈환 십자군이다.
1273년 9월 29일 루돌프 1세가 신성로마황제로 선출되다. 이 때부터 합스부르크가가 1806년 제국의 해산 때까지 실질적으로 제위를 독점했다.
1274년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이 사후 출간되다. 이 책은 중세 신학의 요강을 이루었다.
1279년 3월 19일 애산 전투. 송조가 완전히 망하고 중국 전역이 몽골의 쿠빌라이 칸의 손에 떨어졌다. 쿠빌라이는 몽골의 카간이자 중화제국의 황제를 겸했다.
1282년 시칠리아 만종 사건. 시칠리아인들이 앙주 카페가의 지배에 반항하여 6주간의 반란 끝에 프랑스인들을 학살하고 쫓아내다. 이로써 20여년간의 서지중해 패권전쟁이 아라곤의 승리로 돌아갔다.
1283년 카탈루냐 후국에 일종의 의회로서 카탈루냐원이 설치되다. 카탈루냐원은 국왕권력이 일방적으로 입법하는 것을 금지한 최초의 의회권력이었다.
1285년 제2차 몽월전쟁. 쩐 인종이 다시 몽골군을 격퇴하다.
1287년 제3차 몽월전쟁이 베트남의 결정적 승리로 끝나다. 하지만 전쟁의 재발을 막기 위해 베트남은 원제국의 조공국이 되기로 하다.
1296년 에드워드 1세스코틀랜드를 침공하다. 제1차 스코틀랜드 독립전쟁의 시작.
1297년 11 9월 스털링교 전투. 윌리엄 월레스가 스코틀랜드의 항영세력의 지도자로 부상했다.
1298년 마르코 폴로루스티첼로 다 피사와 공저하여 『동방견문록』을 출간하다. 아시아와 유럽의 교역이 다시 연결되는 열쇠.
1299년 7월 27일 오스만 1세오스만 튀르크를 창건하다. 이후 제국이 된 오스만조는 이슬람 제국 중 가장 오래 지속되어(800여년) 20세기에야 무너진다.

중세 말기[편집]

14세기[편집]

연도 일자 사건 중요성
1305년 8월 23일 수요일 윌리엄 월레스에드워드 1세에게 붙잡혀 거열에 처해지다.
1307년 10월 13일 금요일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성전기사단에게 누명을 씌워 숙청하다. 십여년 간 쇠퇴해가던 성전기사단의 몰락이 앞당겨졌다.
1307년 아비뇽 유수의 시작. 이후 70여년간 교황은 로마가 아닌 프랑스 아비뇽에 붙잡혀 있었으며, 이는 대립교황들이 난립하는 서방 교회의 분열의 주요한 원인이 된다.
1310년 단테 알리기에리가 『신곡』을 출간하다. 『신곡』은 중세 말기를 대표하는 문학작품이며, 문학사상 전체로 봐서도 가장 인지도 높은 작품 중 하나다.
1314년 6월 23일–6월 24일 배넉번 전투. 로버트 1세 브루스가 스코틀랜드의 사실상 독립을 복원하다.
1325년 멕시카인들이 테노치티틀란을 세우다. 테노치티틀란은 200년 뒤 멸망할 때까지 아스텍 제국의 중심지이자 수도였다.[24]
1328년 에든버러-노샘프턴 조약. 제1차 스코틀랜드 독립전쟁이 스코틀랜드의 승리로 종료되고 스코틀랜드의 독립이 명목상으로도 성취되다.
1330년 7월 28일 벨바즈드 전투
1333년 일본에서 고다이고 천황가마쿠라 막부를 폐하고 왕정복고를 선언하다(겐무 신정). 겐무 신정은 불과 몇 년만에 뒤집어지고 무로마치 막부가 세워진다.
1337년 백년전쟁이 시작되다. 정확한 전쟁 지속기간은 116년이며, 그 특징이 뚜렷이 구분되는 세 개의 전쟁(에드워드 전쟁, 캐롤라인 전쟁, 랭커스터 전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세 전쟁의 사이에는 휴전기였기 때문에 116년 내내 전쟁만 한 것은 아니다.
1346년 8월 26일 크레시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이 승리하다. 프랑스군은 잉글랜드군을 4대 1로 수적으로 압도했으나, 웨일스 장궁을 주요 무기로 사용한 잉글랜드군에게 참패했다. 이 전투는 고전 기사도의 종말의 시작으로도 여겨진다.
1347년 흑사병의 시작. 흑사병은 유럽에서 진행된 제2차 페스트 범유행으로, 유행 첫 해에만 유럽 인구의 20-40%가 사망했고, 역병이 잦아들 때까지 유럽 인구의 50%를 죽인 것으로 추측된다.
1347년 프라하 대학교가 개교하다. 체코 최고(古)의 대학이며, 독일어권 최고(古)의 대학이다.
1364년 조반니 데 돈디아스트라리움을 제작하다.
1368년 원제국의 몰락. 하지만 몽골 지역에서는 그 후신인 북원이 존속했다. 팍스 몽골리카의 종말.
1370년 티무르왕조를 개창했다. 티무르는 무슬림이었지만 몽골 제국을 복원하겠다는 목표로 활동하여 금장 칸국이나 델리 술탄조 같은 무슬림 국가들도 공격해 쑥밭으로 만들었다.
1371년 마르코 므르냐브체비치프릴레프를 자기 도읍으로 삼다.
1378년 서방 교회의 분열. 세 명의 대립교황이 난립하다. 아비뇽 유수가 끝났다.
1380년 모스크바 공작 드미트리 돈스코이가 루스 제공국의 연합군을 지휘하여 쿨리코보 전투에서 몽골족에게 승리하다.
1380년 초서가 『캔터베리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다. 『캔터베리 이야기』는 초서의 역작일 뿐 아니라 근대 영어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토대가 되었다.
1381년 와트 타일러의 난. 잉글랜드 역사에서 가장 빠르게 확산된 반란이며, 중세 말기에 가장 규모가 큰 민란이었다.
1381년 존 위클리프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다. 최초로 불가타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성경을 서민언어로 번역해 아무나 읽게 하는 것은 이단시되었고, 위클리프의 가르침을 따르는 롤라드파는 탄압받았다.
1386년 10월 18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가 개교하다. 독일 최고(古)의 대학교.
1389년 6월 28일 코소보 전투에서 무라트 1세의 튀르크군이 세르브인들이 주축이 된 기독교군을 대파하다. 이후 옹스만 튀르크는 발칸반도 전역을 잠식해 오스트리아의 중심지 의 지척에까지 이른다.
1392년 한반도에서 이성계가 선양받아 조선왕조가 개창되다. 조선왕조는 한국사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통일왕조다.
1396년 니코폴리스 전투 마지막 대규모 십자군이 실패로 돌아가고 불가리아 제2제국이 오스만 튀르크에게 정복되었다.
1397년 칼마르 연합이 성립되다. 덴마크 여왕 마르그레테 1세가 스웨덴과 노르웨이 왕위를 겸하면서 성립된 인적 동군연합이다. 1523년까지 지속되었다.
1399년 잉글랜드 국왕 리처드 2세가 폐위되고 헨리 볼링브로크가 헨리 4세로 즉위하다. 플랜태저넷 본가는 이로써 단절되고 플랜태저넷 분가인 랭커스터가가 왕위를 차지했다.

15세기[편집]

연도 일자 사건 중요성
1402년 7월 20일 앙카라 전투에서 바예지드 1세티무르에게 포로로 잡히다. 오스만 공위시대가 시작되고 오스만의 팽창이 일시적으로 저지되었다.
1405년 정화의 원정. 명조는 이것을 시작으로 1433년까지 일곱 차례의 항해원정을 실시했다.
1409년 나폴리 국왕 라디슬라오 1세가 100,000 두캇달마티아에 대한 "권리"를 베네치아 공화국에 팔다. 이후 달마티아는 1797년까지 거의 4세기 동안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는다.
1410년 타넨베르크 전투 독일기사단국 몰락과 폴란드-리투아니아 패권의 시작.
1415년 포르투갈 왕국세우타를 정복하다. 대항해시대의 시작.
1415년 10월 25일 아쟁쿠르 전투에서 헨리 5세의 잉글랜드군이 수적으로 우세한 프랑스군을 격파하다. 5년 뒤 트루아 조약에서 헨리 5세는 프랑스 차기 왕위를 보장받는다.
1417년 콘스탄츠 공의회가 종료되다. 서방 교회의 분열을 마무리하고 교황 마르티노 5세가 즉위했다.
1419년 후스 전쟁이 시작되다. 전쟁 자체는 1434년경 무승부로 끝났으나, 종교개혁과 그로 인한 유럽 종교전쟁의 선구적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귀족 기사들의 십자군이 농민 잡병들에게 무승부를 거두었다는 것도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1428년 테노치티틀란의 제4대 틀라토아니 이츠코아틀텍스코코, 틀라코판과 삼각동맹을 이루어 아스카포찰코에게 승리하다. 3개 알테페틀의 동맹체로서 아스텍 제국이 탄생했고, 이후 90여년간 공격적인 팽창을 거듭한다. 이츠코아틀은 정복한 국가들의 책들을 불태우고 멕시카인 위주로 날조된 새 역사를 썼다.[24]
1429년 잔 다르크의 등장. 왕세자 샤를 7세렝스에서 국왕으로 대관하다. 오를레앙 공성전은 백년전쟁에서 프랑스가 공세로 돌아선 첫 전투였다.
1431년 5월 30일 잔 다르크가 종교재판에서 화형에 처해지다.
1434년 피렌체에서 메디치가가 대두하다. 메디치가는 이후 3세기 동안 은행가, 교황, 여왕, 공작들을 배출하며 승승장구한다.
1434년 얀 판 에이크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을 그리다. 볼록거울이 이 때 이미 사용되었음을 이 그림으로 알 수 있다.
1438년 쿠시 유팡키잉카 제국을 세우다. 잉카 문명은 그전부터 있었지만 비로소 "제국"으로서 팽창이 시작되었다.[24]
1439년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인쇄기를 발명하다. 유럽 전역에서 문예, 뉴스에 대한 접근이 훨씬 수월해졌다.
1442년 헤르만슈타트 전투에서 후녀디 야노시의 헝가리군이 오스만군에게 승리하다.
1443년 조선 세종훈민정음을 반포하다.
1444년 11월 10일 바르나 전투. 바르나 십자군의 마지막 전투. 오스만군이 헝가리-폴란드 연합군에게 승리하고, 폴란드 국왕 브와디스와프 3세가 전사했다.
1452년 신성로마황제 프리드리히 3세가 대관하다.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 동로마 제국의 멸망.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오스만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1453년 백년전쟁이 종전하다. 한때 잉글랜드가 프랑스에 가졌던 광대한 영토는 칼레로 축소되었고, 칼레 역시 곧 프랑스에게 넘어갔다. 이로써 잉글랜드는 유럽 대륙에 교두보를 모두 잃고 대륙과는 다른 궤적을 걷게 된다.
1455년 5월 22일 제1차 세인트알반스 전투. 전통적으로 이 전투가 장미전쟁의 시작으로 여겨진다.
1456년 베오그라드 공성전에서 오스만군이 패배하다. 이후 오스만의 유럽 정복은 다시 70여년간 저지된다. 후녀디 야노시의 마지막 승리.
1459년 스메데레보가 오스만 튀르크군에게 함락되다. 중세 세르브계 국가의 종말.
1461년 트레비존드 제국이 오스만군에게 멸망하다. 동로마의 마지막 잔여세력이 일소되었다.
1464년 오스만 튀르크의 무니르 알리다르다넬레스 거포를 만들다.
1467년–1477년 일본에서 오닌의 난이 일어나다. 무로마치 막부의 권력을 형해화시킨 여러 내전 중 첫 번째 내전.
1475년 크림 칸국이 오스만 제국의 봉신국이 되다.
1485년 토머스 맬러리가 『아서왕의 죽음』을 저술하다. 중세 아서왕물의 집대성으로, 이후 아서왕 관련 창작물들은 거의 이 책을 정본으로 삼는다.
1485년 8월 22일 보스워스 벌판 전투 리처드 3세가 전사하고 헨리 튜더가 헨리 7세로 즉위했다.
1487년 6월 16일 스토크 전투 장미전쟁이 끝났다.
1492년 레콩키스타의 종결. 이베리아반도에서 무어인 무슬림의 지배가 끝나고, 에스파냐가 통일되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신세계에 도달하다. 전통적으로 1492년을 서양 중세사의 끝으로 본다.
1494년 6월 10일 토르데시야스 조약.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유럽 밖의 세계를 분할해 갖기로 합의하다. 이로써 브라질이 남미에서 유일한 포르투갈어권이 되었고, 나머지 중남미는 에스파냐어권(히스패닉 아메리카)이 되었다. 또한 필리핀이 에스파냐의 식민지가 된 것과 포르투갈이 인도와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가진 것도 이 조약에 따른 것이다.
1494년 이탈리아 전쟁의 시작. 이후 1559년까지 계속된 전쟁으로 이탈리아는 쑥밭이 되고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몰락한다.
1497년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에 도달한 뒤 귀환하다. 다 가마는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항해로만 도달한 최초의 인물이다.
1499년 촌치오 해전에서 오스만 해군베네치아 공화국 함대를 무찌르다. 최초의 함상포격전.

각주[편집]

  1. “Civilization.ca – Mystery of the Maya – Maya civilization timeline”. 《www.historymuseum.ca》. 2017년 4월 2일에 확인함. 
  2. Chapman, John (1922). “St Jerome and the Vulgate New Testament (I–II)”. The Journal of Theological Studies. o.s. 24 (93): 33–51. doi:10.1093/jts/os-XXIV.93.33. ISSN 0022-5185.  Chapman, John (1923). “St Jerome and the Vulgate New Testament (III)”. The Journal of Theological Studies. o.s. 24 (95): 282–299. doi:10.1093/jts/os-XXIV.95.282. ISSN 0022-5185. 
  3. Moorhead, Sam; Stuttard, david (2010). AD 410 The Year That Shook Rome. 
  4. Schaff, Philip; Wace, Henry, 편집. (1890), The Seven Ecumenical Councils,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Second Series, 14, The Seven Ecumenical Councils, Grand Rapids, Michigan, U.S.A.: Eerdmans Pub Co., ISBN 0-8028-8129-7  [1] [2]
  5. “June 2, 455 – Gaiseric, The Vandals & The Sack of Rome”. Multiply. 2012. 2016년 3월 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3년 2월 28일에 확인함. 
  6. “Multiply.com”. History101.multiply.com. 2013년 5월 31일. 2016년 3월 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4년 2월 1일에 확인함. 
  7. Dupuy, R. Ernest & al. The Harper Encyclopedia of Military History From 3500 B.C. to the Present, 4th ed., p. 193. HarperCollins Pub. (New York), 1993.
  8. Hollister, C. Warren. The Making of England to 1399, 8th ed., p. 31. Houghton Mifflin Co. (New York), 2001.
  9. "[3]"
  10. The Consolation of Philosophy (Oxford World's Classics), Introduction (2000)
  11. “Medieval Sourcebook: Procopius: JUSTINIAN SUPPRESSES THE NIKA REVOLT, 532”. Paul Halsall. 1996. 2014년 1월 22일에 확인함. 
  12. “Scotland's History – Columba”. BBC. 1970년 1월 1일. 2014년 1월 22일에 확인함. 
  13. “Teotihuacan”. 《Ancient History Encyclopedia》. 2017년 4월 2일에 확인함. 
  14. Ebrey, Cambridge Illustrated History of China, 114: "[…] the Grand Canal, dug between 605 and 609 by means of enormous levies of conscripted labour."
  15. Snow, Dean (2010). Archaeology of Native North America. Upper Saddle River: Prentice Hall. p. 157.
  16. Encyclopedia of World History, Vol I, p.464 "Three Kingdoms, Korea", Edited by Marsha E. Ackermann, Michael J. Schroeder, Janice J. Terry, Jiu-Hwa Lo Upshur, Mark F. Whitters, ISBN 978-0-8160-6386-4
  17. 《Encyclopedia》, Naver 
  18. 《Korean Britannica Encyclopedia》, Daum 
  19. Dvornik, Francis (1956). 《The Slavs: Their Early History and Civilization》. Boston: American Academy of Arts and Sciences. 179쪽. The Psalter and the Book of Prophets were adapted or "modernized" with special regard to their use in Bulgarian churches, and it was in this school that glagolitic writing was replaced by the so-called Cyrillic writing, which was more akin to the Greek uncial, simplified matters considerably and is still used by the Orthodox Slavs. 
  20. Florin Curta (2006). 《Southeastern Europe in the Middle Ages, 500–1250》. Cambridge Medieval Textbooks. Cambridge University Press. 221–222쪽. ISBN 0521815398. 
  21. The Orthodox Church in the Byzantine Empire, Oxford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J. M. Hussey, Andrew Louth, Oxford University Press, 2010, ISBN 0191614882, p. 100.
  22. The Diary of Lady Murasaki, ed. Richard Bowring, Penguin Classics 2005, p.31, note 41. In his introduction to the text, Bowring discusses its dating which, in any case, is generally accepted by most authorities. Royall Tyler, in his edition of the Tale of Genji cited below, also draws attention to the entry in Murasaki Shikibu's diary: see the Penguin Books edition, 2003, Introduction, p.xvii
  23. Birmingham Museum of Art (2010). Birmingham Museum of Art : guide to the collection. [Birmingham, Ala]: Birmingham Museum of Art. 49쪽. ISBN 978-1-904832-77-5. 
  24. Restall, Matthew; Lane, Kris (2011). Latin America in Colonial Times. New York, NY: Cambridge University Press. 68–74쪽. ISBN 978-0-521-132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