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하이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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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정의원 본부

바하이 신앙 (-信仰) 또는 바하이교 (-敎) 19세기 페르시아에서 바하올라가 창시한 종교이다.

바하올라는 그의 가르침으로 인해 페르시아에서 오스만 제국으로 추방당하고, 사망할 때까지도 수감 상태였다. 바하올라 사후 그의 아들 압돌바하의 지도 아래 바하이 신앙은 페르시아와 오스만 제국까지 확장되었고, 미국과 유럽에 확고한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이란에서 공고화되었는데, 이 곳에서는 아직도 바하이 신앙이 심한 박해를 받고 있다. 압돌바하의 승천 이후, 바하이 공동체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으며, 바하올라께서 계획하신 이 시대를 위한 새로운 행정질서인 선출 기구와 임명 기구의 인도를 받게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200여 국가에 약 5백만명의 바하이가 있다.

바하이의 어원[편집]

바하이라는 단어는 바하이 신앙을 가리키는 형용사로 쓰이거나 바하올라를 따르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인다. 바하이라는 용어는 바하이 신앙 전체를 가리키는 명사는 아니며 바하이는 “영광” 또는 “광휘”를 의미하는 아랍어인 바하에서 나온 말이다.

믿음[편집]

바하이 가르침과 교리의 세 가지 핵심 원리는 하느님의 단일성, 종교의 단일성, 인류의 단일성이다.

바하이 가르침[편집]

요약[편집]

1921년에서 1957년까지 바하이 신앙의 수호자라고 하는 쇼기에펜디는 바하올라의 가르침의 주 원칙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는데, 케타베악다스(지성서)의 율법과 계율과 함께 바하이 신앙의 기본 원리를 구성한다고 한다.

  • 미신이나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진리를 독자적으로 탐구하기
  • 바하이 신앙의 중추적 원리이자 기본 이념인 인류의 단일성
  • 모든 종교의 일체성
  • 종교적, 인종적, 계급적, 국가적인 모든 종류의 편견의 제거
  • 종교와 과학의 조화
  • 남녀 평등; 남녀는 새의 양 날개와 같아서 두 존재가 있어야 인류라는 새가 비상할 수 있음
  • 의무교육의 도입
  • 세계보조어의 채택
  • 극단적인 빈부의 철폐
  • 국제분쟁 판결을 위한 세계 사법부의 설치
  • 봉사의 정신으로 일을 하면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로 높이 여김
  • 정의는 인간사회의 기본 원리이며, 종교는 세상 사람과 국민들을 보호하는 성채로 여김
  • 지속적이고 보편적인 평화를 모든 인류의 최상의 목표로 확립시킴

사회적 원칙[편집]

다음은 바하이 가르침의 핵심 요약으로 자주 인용되는 원칙들이다. 이 원칙들은 1912년 유럽과 북미를 방문한 압돌바하의 연설에서 언급된 원칙들이다.

  • 하느님의 단일성
  • 종교의 일체성
  • 인류의 단일성
  • 다양성 속에 융합
  • 남녀 평등
  • 모든 종류의 편견제거
  • 세계 평화와 새로운 세계질서
  • 종교와 과학의 조화
  • 진리의 독자적인 탐구
  • 지속적인 문명의 진보
  • 범세계적인 의무교육
  • 세계 보조어
  • 정부에 순종, 정당정치에 참여하지 않을 것

(신앙을 포기하도록 정부가 강요하는 경우는 제외)

  • 극단적인 빈부의 철폐

주요 바하이 사건[편집]

  • 1844년 바압이 이란 쉬라즈에서 사명을 선포함.
  • 1850년 바압이 이란 타브리즈에서 공개적으로 처형당함.
  • 1852년 수천 명의 바비가 처형당함.바하올라는 감금당하고 강제 추방당함.
  • 1863년 하느님의 계시를 바하올라가 처음으로 선언함. 바그다드를 떠나서 콘스탄티노플 및 아드리아노플로 강제 추방당함.
  • 1868년 바하올라는 악카에 강제 수감당함.
  • 1892년 바하올라 승천(악카 근처) 유언으로 압돌바하를 승계자로 임명함.
  • 1908년 압돌바하의 출소
  • 1921년 압돌바하의 사망. 유언으로 쇼기에펜디를 수호자로 임명함.
  • 1957년 쇼기에펜디의 사망(영국)
  • 1963년 세계정의원 최초 선거

바하이 역사는 이란 쉬라즈에서 1844년 6월 22일 저녁에 바압의 선언을 시작으로 궁극적으로 바하이 신앙의 중심인물이 설립한 행정체제로 이어지는 일련의 순차적 지도자를 따른다. 1892년 바하올라의 승천이후 까지도 바하이 공동체는 대부분 페르시아 제국과 오트만 제국에 국한되어 있었는데, 1892년에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13개국에 바하이가 있었다. 장남인 압돌바하의 지도력으로 말미암아 바하이 신앙은 유럽과 미국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이란에서는 공고화가 이루어졌으며, 이란에서는 아직도 바하이에 대한 박해가 심하다. 1921년에 압돌바하의 별세 후 바하이 공동체의 지도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며, 일인 체제에서 발전하여 선출된 기구와 임명된 의원으로 구성된 행정체제로 진보하였다.

바하이 행정체계[편집]

바하올라의 지성서와 압돌바하의 유훈록은 바하이 행정질서의 기본원칙에 대한 문서로서 바하올라는 선출되는 세계정의원을 설립했으며, 압돌바하는 임명하는 수호자직을 설립했으며, 두 기구의 관계를 명시했다. 압돌바하는 유훈록에서 장손인 쇼기에펜디를 바하이 신앙의 첫 번째 수호자로 임명했으며, 수호자는 별세할 때까지 36년간 바하이 신앙의 지도자의 역할을 했다.

쇼기에펜디는 평생동안 바하이 서적을 번역하고, 전 세계 바하이 공동체 성장 계획을 개발하고, 바하이 세계 본부를 설립하고, 전 세계 바하이 공동체와 개인 바하이들과 엄청난 양의 통신을 하며, 바하이 신앙의 행정구조를 세우고, 세계정의원 선출을 위한 공동체를 설립했다. 쇼기에펜디는 후계자를 임명하지 않고 별세했다. 소지역과 대지역 및 국가 차원에서 바하이들은 9명으로 구성된 신성회의원을 선출하며, 신성회는 바하이 신앙의 업무를 운영한다. 지역적, 국제적으로 다양한 차원에서 일하는 선출된 의원도 있는데, 이 기구는 바하이 신앙의 가르침을 널리 보급하고 공동체를 보호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9명의 의원은 성직자가 아니며, 바하이 신앙에는 성직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정의원은 1963년 처음으로 선출되어, 매 5년마다 9명의 정의원이 모든 국성회에 의해 선출된다. 21세 이상의 성인 바하이라면 세계정의원으로 선출된 자격이 있으며, 기타 모든 지위가 바하이 남녀 모두에게 열려있다.

바하이 한국공동체[편집]

대한민국에는 바하이신앙이 1921년에 처음으로 알려졌고, 2005년 말에 본부 건물을 단장하였으며 바하이신앙 율법서인 케타베악다스를 출판했다. 바하이즘의 교육 기관인 루히 연수원을 수료한 신자가 최근 들어 크게 늘었다.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