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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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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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론 혹은 그리스도론 (Christology, Χριστός와 λογία의 합성어)은 기독교 신학의 한 분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인격, 특히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의 관계에 대한 기독교 신학 이론을 말한다.[1] 기독교조직신학의 한 분야로서 기독론은 인간론 뒤에 따른다. 이른바 그리스도론의 고전적 교리는 451년의 칼케돈 공의회에서 일단 확립되었는데, 이회의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신성 · 인성을 모두 완전히 갖추고 양자는 서로 융합되거나 분리되거나 혼동되는 일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론의 맹아(萌芽)는 이미 《신약성서》 속에서 볼 수 있으며, 예수는 누군가 하는 물음에 대해 《성서》는 여러 형태로 신앙적 이해를 표명하고 있다. 이들 이해는 교회의 성립과 성장에 따라 차츰 신학적 · 그리스도론적인 형태로 정리되어 갔으며, 특히 기독교 교회가 유태인에서 이방인으로 발전되어 갔을 때 이 그리스도의 이해도 지금까지의 메시아적 틀을 벗어나 그리스도의 선재(先在)와 로고스의 성육신 교리로 발전하였다.[1]

본래 그리스도론은 신이며 인간이신 예수의 메시아에 대한 신앙고백에 뿌리박은 것이며, 그 고백의 기반은 기독교도의 공동체인 교회에 두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의 성장 · 발전에 따라 각 상황을 반영하는 그리스도론적 표현이 생겨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1]

원시교회의 그리스도론은 아직 후대(後代)의 교리나 논쟁의 의미에서 볼 때 그리스도론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그 때 이미 그리스도론이 전개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 후의 초대교회는 실로 눈부신 여러 가지 그리스도론의 출현과 논쟁의 시대였는데, 그리스도론의 결정이 교회의 원동력인 예수에 대한 신앙고백의 결정인 이상 교회의 조직이 형성도상에 있었던 당시로서는 불가피한 과제였다고도 할 수 있다. 이리하여 그리스도 교회가 이른바 정통적인 그리스도론을 확립하기까지는 갖가지 어려운 우여곡절과, 또한 교회 내외의 정치적 영향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단시된 그리스도론의 대부분은 "하느님이자 인간이다"라는 성서적 그리스도의 이해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즉, 이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하고 인성(人性)을 부정하며, 또는 반대로 그리스도의 인성을 택하고 신성을 배척하는 둘 중의 어느 한 흐름에 속하는 것이었다. 한편 그 후부터 현대에 이르는 그리스도론은 대부분 칼케돈의 고전적 교리의 노선을 따른 신학적 변증이라고 할 수 있다.[1]

기독론이 다루는 주제들[편집]

벌코프와 같은 신학자는 그의 조직신학 책에서 위격, 신분(비하, 승귀), 직분(선지자, 제사장, 왕직)의 구조로 설명한다. 이것을 좀더 풀어서 제시하면 기독론의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기독론 연구방법과 기독론의 역사와 종교회의

성경과 그리스도(선재와 창조, 구속, 재림)

기독론의 이단들

그리스도의 명칭과 본질(성질, nature, 신성과 인성)

그리스도의 신분, 비하, 승귀

그리스도의 사역- 선지자, 제사장(그리스도의 속죄), 왕직

기독론의 시작[편집]

기독론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다루는 학문이다. 조직신학에서 기독론의 위치는 신론인간론 뒤에 구원론(성령론) 사이에 위치한다.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과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님에 의한 구속의 적용으로 조직신학은 전개된다. 인간론의 마지막은 언약의 중보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다룬다. 그러므로 인간론은 그리스도가 누구라는 분 즉 우리의 중보자 하나님이신 것을 가르친다. 하나님과 죄인의 사이의 사다리이신 주님을 다루며 대속도 다룬다.

역사적 문헌들[편집]

실제로 존재한 인물로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역사적인 증거들[2]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놀랄만하게 많은 정보가 중요한 역사적 증거들의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 세기의 로마인이었던 타시투스(Tacitus)는 고대 시대의 아주 정확한 역사가들 중의 한 명으로 간주되는데, 그는 티베리우스(Tiberius)의 통치기간 동안 본디오 빌라도 밑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미신을 믿는 ‘기독교인들’(‘Christians’는 라틴어인 ‘Christus’로부터 유래)이라고 언급하였습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수석 장관이었던 수에토니우스는 서기 1세기에 살았던 이름이 크래스투스(Chrestus 또는 Christ)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기록했습니다(연대기, Annals 15.44).

조세푸스 플레비우스(Josephus Flavius)는 가장 유명한 유대인 역사가입니다. 그의 저서 고대사(Antiquities)에서, 야고보를 ‘그리스도라고 불려졌던 예수의 형제’로 언급합니다. 그 중에는 논란이 많은 구절(18:3)도 있습니다. “예수라는 사람이 있었는데(그를 사람으로 부르는 것이 합법적이라면)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그가 놀라운 축제들을 있게 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였다. 경건한 선지자들이 이것들과 그에 관해 일만가지의 다른 놀라운 일들을 미리 예언했던 대로 그는 삼 일째에 다시 살아나 그들에게 나타났다.” 다른 번역서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습니다. “그 당시 예수라 불리는 지혜로운 자가 있었다. 그의 행위는 선했고 고결하신 분으로 알려졌다. 많은 유대인들과 다른 나라들에서 온 사람들이 그의 제자가 되었다. 빌라도가 예수를 십자가 형에 처해 죽게 하였다. 그러나 그의 제자가 되었던 사람들은 제자의 신분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가 십자가형에 처해진 지 삼일 후에 그들에게 나타났고 그는 살아있었다고 그들은 보고하였다. 따라서 그는 아마도 선지자들이 경이롭다고 말하였던 구세주였을지도 모른다.”

율리우스 아프리카누스(Julius Africanus)는 그리스도의 십자가형에 드리워졌던 어둠에 관한 논의에서 역사가 탈루스를 인용합니다(Extant Writings, 18).

플라이니 더 영거(Pliny the Younger)는, Letters 10:96에서,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서 경배하였으며 매우 윤리적이었다는 사실을 포함해 초기 기독교 예배 관습을 기록하였고, 애찬식과 성찬식을 언급하였습니다.

바빌론의 탈무드(산헤드린 43a)는 예수의 십자가형이 유월절 전날 이루어졌다는 것과 그리스도에 대한 혐의는 술법을 쓰고 유대인들의 배교를 고무시킨 것이라 확인시켜줍니다.

사모사타의 루시안은 예수님께서 기독교인들에 의해 경배를 받았고, 새로운 가르침을 소개하였으며, 또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처형되셨다는 것을 인정한 서기 2세기 때의 그리스 작가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믿는 자들간의 형제애, 개종의 중요성, 그리고 다른 신들을 부인하는 것의 중요성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규율들에 따라 살았고, 자신들이 불멸한다고 믿었으며, 죽음에 대한 경멸, 자발적인 헌신, 그리고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금욕으로 특징되었다고 그는 말하였습니다.

마라 바 세라피온은 예수님께서 현명하고 고결한 자로 간주되셨고,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스라엘의 왕으로 여겨졌으며, 유대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고, 그의 추종자들에게 가르쳤던 그대로 사셨다고 확인해 줍니다.

그리고, 우리는 온갖 영지주의적인 글들(진리의 복음, 요한의 외경, 도마 복음, 부활에 관한 논문 등 (The Gospel of Truth, The Apocryphon of John, The Gospel of Thomas, The Treatise on Resurrection, etc.)을 가지고 있는데 이 모두가 예수님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실, 초기 비기독교적 자료들만으로도 우리는 거의 복음을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로 불려졌고(조세푸스), ‘마술’을 행하였고, 이스라엘을 새로운 가르침으로 이끌었고, 그들을 위해 유다에서(타시투스) 유월절 날 매달려 죽었으나(바빌론 탈무드), 자신이 하나님이며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주장했고(엘리에 잘), 그의 추종자들은 그를 하나님으로 경배하면서(플라이니 더 영거) 믿었습니다.

세속적 그리고 성경적 역사 모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에 대한 너무나도 엄청난 증거가 있습니다. 아마 예수님께서 존재하셨다는 가장 큰 증거는 1세기 때, 열두 사도들을 포함한 문자 그대로 수천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들의 목숨들을 기꺼이 바쳐 순교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료들이나 성경의 역사적 자료 양쪽 모두에서 이런 사실을 풍성하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진실이라 믿는 것을 위해 죽을 수는 있으나, 아무도 자신들이 거짓인 줄 아는 것을 위해 죽지는 않을 것입니다.

신학의 역사와 기독론[편집]

시대마다 신학은 세상의 문화 그리고 철학 사상에 의해서 큰 영향을 받았고, 반대로 윤리와 문화 그리고 정치 등 많은 영역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특별히

초대 교회의 신학- 성부와 성자의 동일본질[편집]

초대교회의 신학은 속사도 교부들과 변증가들의 문헌에서 그들이 주장하는 중심 교리와 신학 방법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들의 신학적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구주이며, 구약과 사도들의 가르침에 근거한 기독교의 참된 주체성을 변호하는 데 있었다. 초기 교부들의 시대에는 교회의 형태가 오늘날처럼 나타나고, 거기에 따른 교리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이단적인 교리와의 논쟁을 통하여 건전한 성경적인 전통들이 체계화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당시의 교부들은 철학을 사용하여 기독교의 진리를 정교하게 체계적으로 진술하였다. 예를 들면, 클레멘트와 오리겐은 필로를 통하여 플라톤의 이원론 사상을 신학의 방법과 성경 해석에 도입했고 터툴리안은 스토아 철학을, 후에 어거스틴은 신플라톤 철학을 이용하여 기독교의 신학을 발전시켰다. 이때로부터 본격적 헬라의 철학과 라틴 사상이 기독교 신학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기독교는 니케아 회의와 칼세돈 회의를 통하여 기독론을 정립하였다.

중세의 신학 - 교회와 교황의 세계[편집]

중세기는 동방 교회의 약화로 인해 서방 교회가 주도하였다. 교회의 감독들이 스스로 교황으로 승격한 후에 교회를 제도적으로 조직화하여 계급적 교권을 만들었고, 세속권에 대한 지배를 확장시켜 교회를 세상의 제일 원리가 되게 했다. 이런 교권의 확장 가운데 가장 성공한 도시의 교회는 로마교회였다. 가장 영향력 있는 로마시를 중심으로 한 구교는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신학을 로마 가톨릭교회의 수장인 교황의 시녀로 삼고 성경의 참된 가르침에서 멀어져 갔다. 로마교회의 신학이란 교황의 권위에 의한 강권의 신학으로 그 핵심은 성례전(sacramentum)에 나타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과 질료의 개념을 도입하여, 은혜의 주입 사상(gratia infusa)과 화체설(transubstantiatio)과 같은 중요한 로마 가톨릭 신학의 핵심 교리들을 만들어냈다. 신학의 철학화로 재생된 스콜라신학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지나친 철학의 의존은 성경을 왜곡되게 해석하고, 신학을 올바르게 발전시키지 못한 것을 보여준다. 로마교회는 로마의 종교와 법 그리고 정치를 기독교에 접목시키고 마리아를 숭배하며 성직자들을 제사장으로 만들어 성경과 정통 기독교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영광의 신학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보았다.

종교 개혁시대의 신학 - 그리스도를 오직 믿음으로[편집]

부패한 로마 가톨릭 신학을 개혁하려는 시도가 루터쯔빙글리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종교 개혁가들은 교황의 권위에 대항하여 오직 성경의 권위와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오직 구원을 위하여 이신칭의를 주장하였다. 그리고 부쩌와 파렐 그리고 불링거와 칼빈 같은 개혁자들은 성경적 종교개혁 사상을 후대에 전달해 주었다. 종교개혁의 반동으로 위기에 처한 로마 가톨릭교회는 트렌트 회의(The Council of Trent, 1545-1563)를 통하여 신학적, 교회적 결속을 다지게 되었다. 특별히 로마교회가 종교개혁자들의 성경관과 해석에 대한 반대로 결정한 것은 성경 해석의 권리는 개인에게 있지 않고 추기경이나 감독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권위 있는 자가 반드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개혁자들은 성경의 명료성을(the clarity of Scripture) 강조하였다. 기독교의 구원 진리에 관해 성경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누구에게나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 성경의 명료성은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라는 종교개혁자들의 새로운 성경 해석 원리를 사용하도록 했다. 이런 점에서 칼빈은 성경의 명료성을 근거로 자신의 신학적 성경 해석 방법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칼빈은 자신의 독창적인 성경 해석 방법으로 간결성과 용이성(brevitas et facilitas)의 방법을 사용하여 독자들이 성경을 이해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개혁자들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잘못된 교리에 있어서는 하나였지만 중요한 신학적 해석의 차이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성만찬 해석에 관한 논쟁이었다. 루터와 쯔빙글리가 말버그 회의(Marburg Colloquy, 1529)에서 갈라짐으로써 루터파는 공재설을, 쯔빙글리는 기념설을 주장하였다. 앞서 두 견해의 중간에 위치한 칼빈은 영적 임재설을 주장함으로써, 개혁자들은 일치를 보지 못하고 서로가 마음의 상처가 깊어져 가고 있었다. 개혁의 후예들은 지역과 나라, 언어와 문화, 신학적 차이를 따라 루터파, 칼빈파, 재세례파로 구분되어 각자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되었다. 이 기간을 특히 개신교 정통주의 신학의 기간으로 부른다. 개혁자들의 후예들은 초기에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고 기독교 교리의 순수성을 밝히려고 노력했으나, 차츰 자신들이 속한 교파의 울타리를 치고 경계심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소위 말하는 정통신학은 단순한 성경의 진리를 파수하고 전파하기보다는 자신들이 만든 교리를 스콜라신학으로 만들기 시작하여 실제 성도들의 삶에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이것이 성경 본문에 근거한 성경적 신학 탐구보다는 철학적 논리적 교리의 체계를 강화시켜 태동된 개신교 스콜라신학이었다. 바로 이때 지나친 교리로 인해 죽은 정통신학에 반기를 들었던 운동이 슈페너를 중심으로 한 경건주의였다. 이 운동은 딱딱한 교리보다는 실제적인 기독교의 삶을 강조하고 신앙의 실천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정통주의와 경건주의는 모두 장점이 있었지만 한 쪽 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 기독교의 진리와 본질을 현실의 문제와 맞추어 적절하게 조화로운 균형을 보여주지 못했다. 성경의 핵심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의 이르는 길을 루터종교 개혁가들은 가르쳤다.

근대의 신학- 이성의 한계안에 있는 그리스도[편집]

르네상스의 열기는 식지 않고, 인간 이성의 중요성을 모든 면에서 인식시켜 주었다. 데카르트부터 시작하여 칸트에 이르기까지 철학의 영향으로 지성인들은 신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의 이성과 자율성에 최고의 심판권을 부여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서 이성의 역할을 강조한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성경은 인간의 이성과 체험에 의하여, 즉 인간의 인식 한계 안에서 역사적이며 비평적으로 비판을 받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초월성과 창조주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직 이성의 한계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였다.

자유주의 신학 - 종교성의 지도자로서 인간 예수[편집]

자유주의 신학과 현대신학의 뿌리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자유주의 신학의 중심적인 방법이란 기존의 정통적인 신학 방법을 파괴하고 인간의 이성, 감정, 체험이 중심이 되어서 어떤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주관적으로 신학을 전개시키는 신학이다. 19세기 슐라이에르마허에 의해 시작된 자유주의 신학이 활개를 치면서 기존의 정통신학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영향은 아직도 멈추지 않고 21세기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정통주의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을 거부한다. 역사비평학을 통하여 역사적 예수의 연구에 관심을 가졌다.

현대 신학- 종교의 모델로서 인간적 그리스도[편집]

기독론의 새로운 부활은 칼 바르트였다. 칼 바르트의 출현으로 맹수와 같이 기독교의 신학을 휩쓸고 다녔던 자유주의 신학을 일시적으로 멈추게 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바르트는 기독교의 신학사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바르트는 기존의 정통신학으로 들어오기에는 역사관, 성경관 등에서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불트만과 폴 틸리히 이후에 현대신학은 급진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고 걷잡을 수 없는 신학의 자유로운 활동으로 심지어 사신신학까지 가게 되었다. 기독론 연구의 새로운 접근 판넨베르그의 아래로 부터 기독론이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동안 위로부터 기독론이 주도한 연구에 새로운 관점을 주었다.

포스트모더니즘- 다원주의의 메시야관- 여러명의 그리스도[편집]

지난 200년간 너무나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인지 신학을 사회와 인간, 문화와 환경, 그리고 생태에 조화시키려는 조용한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신학은 규범적인 형태가 해체되어 다양한 형태의 상대적 주장을 담은 모든 것을 받아드리는 관용의 신학으로 변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신학의 중심, 역사의 중심이 아니라, 종교의 한 부분이며 신에 이르는 길로서 하나의 메시야이며 하나의 구원주이다. 종교다원주의 관점에서 그리스도를 본다.


기독론 연구방법론[편집]

[김영한 교수 나사렛 예수의 역사성과 진실 (1)]

기독론의 방법의 3가지는 다음과 같다.[3]

고전적 기독론 방법[편집]

고전적으로 기독론은 ‘위로부터’ 아래로,신성에서 인성으로의 기독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독론의 방법은 연역법적이다. 고전적 기독론의 역사적 맥을 살펴보면, 요한복음과 바울 서신들의 신약성서에서 발원하여 고대, 중세, 종교개혁, 개신교 정통주의를 거쳐 현대의 칼 바르트와 초기의 에밀 브룬너 등의 변증법적 신학자들에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이런 방법론으로 기독교의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단도직입적으로 강력하게 선포함으로써 효과적으로 신앙의 응답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불러일으켜 왔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고전적 기독론은 다음 몇 가지의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으로 비판될 수 있다. 첫째, 우리는 ‘위에’ 계신 하나님을 오직 ‘아래에’ 역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행동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위로부터의 기독론은 하나님의 입장에서만 가능하며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는 불가능하다. 둘째, 육신을 입으신 로고스가 아닌 육신이 없는 로고스로서의 계시 이전의 하나님, 즉 숨어 계신 하나님은 단지 사변적인 하나님일 뿐이다. 따라서 고전적 기독론은 하나님의 본질적 존재를 인간의 역사적 현실과는 동떨어진 비역사적이고 숨어 계신 하나님으로 만듦으로써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오신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하나님의 본질적 존재와 삶의 모습이 아니며 신적 존엄성과 영광에 모순된다는 인상을 준다. 셋째, 따라서 그리스도의 온전한 인성의 개념을 확립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판넨버그의 지적대로 특히 예수의 삶과 메시지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그 당시의 유대주의와 전승사적 관련성이 여기서는 간과되기 쉽다. 넷째는 믿음의 본질과 내용에 대한 의문으로서, 케리그마와 믿음 속의 그리스도가 실제로 갈릴리와 유대 땅을 거닐었던 예수와 같은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다. 역사적 현실에 대한 경험적인 근거에 확고하게 서 있지 못한 믿음은 주관적 환상이나 전통 속에 화석화되어 버린 교조주의적 도그마일 수 있다.

역사적 예수 탐구 방법[편집]

예수 그리스도의 실재역사성에 대한 연구이다. 슈트라우스(David Strauss)와 르낭(Ernest Renan) 예수가 삼위일체중 하나가 아닌 선한사람, 위대한 영적 교사로 묘사 ㅱ하르낙(Adolf von Harnack) 복음서들이 예수의 초기생애에 대해 알려주지 않고 있기에 그의 전기를 구성할수 없고 일반적 관찰로 예수의 기적을 부인했다. 또 예수의 메시지에 대해 자유주의 신학입장의고전적인 진술 을 했다. ㅱ티렐(Gregory Tyrrell) : "하르낙이 본 그리스도는 깊은 우물의 바닥에서 보이는 자유주의 개신교도 의 얼굴의 반영뿐이다." 다음에 두 저술이 자유주의 예수탐구의 종말을 가져왔다. ㅱ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 [역사적 예수연구] 자유주의 탐구가들의 선입견을 지적하고 예수의 종말론적 모습을 예수안에서 발견한다. 그는 이 런 예수가 현대적인 한 사람으로 바꾸어지지 않아야 한다고했다. ㅱ켈러(Martin Kahler) : [소위 역사적 예수와 역사적인 성경의 예수] 그는 역사적 예수는 비교적 영향력이 없지만, 신앙의 예수는 매우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며 복음뒤에 가려진 사건들보다 의미있는 역사위에 우리 믿음을 세우자고 했다. 그후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는 감추어졌지만, 20C에 와서 불트만에 이은 에델베르트 슈타우퍼 (Ethelbert Stauffer)와 요아킴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에 이어 현재까지연구되고 있다.

현대적 기독론 방법[편집]

현대의 기독론의 방법은 대체로 ‘아래로부터’ 위로,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서 신성으로 나아가는 접근방식을 취한다. 이 방법은 귀납법적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연역적으로 전제하지 아니하고, 역사적 예수의 현실, 즉 그분의 삶, 사역, 죽음, 부활에 대한 역사적 탐구를 통하여 종국적으로 성육신 사건과 신성의 고백에까지 이르게 되는 과정을 고찰함과 아울러 그 신학적 의미와 타당성을 숙고한다. 귀납적인 기독론은 크게 두 가지의 근본적인 가정 위에 서있는데, 첫째는 인성과 신성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으며 이 연속성 때문에 인성에서 신성으로 옮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가정이다. 두 번째로, 귀납법적 기독론 방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전반적인 관심을 복음서에 묘사된 인간 예수에게 모아졌는데, 이들은 역사의 예수 위에 기독론적 상부구조을 세우기 위한 기초인 하부구조로서의 나사렛 예수라는 인간의 역사적 모습을 복음서, 특히 공관복음서로부터 도출해 낼 수 있다고 가정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두 가지의 가정은 각각 다음과 같은 문제점으로 인하여 비판을 받고 있다. 첫 번째 가정은 위가 존재론적으로 아래에, 그리고 종교적 의미가 윤리적 의미에 종속되는 현상을 초래한다. 근본적으로 이미 역사 안에, 우리 안에 있는 것을 관념적으로 투사하여 확증하는 셈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게 된다. 두 번째 가정은 복음서 설화들의 형태에 대한 역사비평적 탐구의 결과, 이들 설화가 기독론 형성 이전의 예수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라기보다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성육신하시고 부활하신 주님으로 고백하는 신앙 안에서 기록된 초대교회의 증언이라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그 근거를 잃게 되었다. 따라서 19세기의 신학자들이 찾아 그려보고자 했던 “역사적 예수”의 상은 성서의 설화들로부터 재구성해 내기 어려운 환상임을 알게 되었다. 예수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철두철미하게 기독론적이었다. 슈바이처에 의해 결정적으로 초래된 19세기의 역사적 예수의 탐구의 퇴조는 불트만의 양식사 비평으로 인한 성서의 사실성에 관한 심각한 회의주의로 인하여 더욱 가속화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일시적으로나마 다시 전통적인 위로부터의 기독론이 득세하였다. 바르트의 변증법적 말씀의 신학과 불트만의 실존론적 성서해석은 위로부터 기독론의 절정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부에 들어서서 케제만은 예수에 대한 믿음이 “예수가 누구였으며, 무엇을 행하셨는가?”에 대한 역사적인 연구의 바탕 위에 세워져야 할 필요성을 다시금 강조하였다. 후기의(변화된) 에밀 브룬너의 다음과 같은 표현은 아래로부터의 방법론을 잘 대변하고 있다. “예수 인식의 길은 인간 예수로부터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께 이른다.” 오늘날 아래로부터의 방법론에 따라 기독론을 전개하는 가장 대표적인 신학자는 판넨버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현실에 관한 객관적인 역사적 증거들과 주관적인 믿음의 해석은 스킬레벡스의 해석학적 표현을 빌면 구원의 제공과 그리스도인의 응답이라는 상호연관성 안에서 하나의 통전적인 단일한 실재를 구성한다.

통합적, 통전적 기독론 방법[편집]

그러므로 바람직한 통전적인 기독론은 연역법과 귀납법을 상호배타적이고 모순적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관계 안에서 파악하며 양자를 비판적으로 통합하는 방법론에 의해 가능하다. 오늘날 기독론의 접근방식에 있어서 연역법적인 위로부터의 방법론은 부활의 주님으로서 오늘 교회의 설교 속에서, 그리고 개인의 삶과 역사의 현장 속에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는 신앙의 그리스도를 만나는 방식을 효과적으로 설명해 주고 그 길로 인도해 주는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귀납법적인 아래로부터의 방법론은 성서 안에 그려진 역사적 예수의 현실, 즉 나사렛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고, 병고침과 이적을 행하고, 고난당하고 십자가에 죽음을 당하신 지상의 예수의 모습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 두 가지 기독론적 접근방법이 상호순환적으로 통합될 때, 올바르고 통전적인 기독론이 구성될 수 있다. 그러므로 위로부터냐 아래로부터냐, 연역법적이냐 귀납법적이냐 하는 양자택일의 강요는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이 둘은 상호배타적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관계성 안에서 조화롭게 종합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기독론적인 접근방법은 또한 “미래로부터”, 그리고 “바닥으로부터”의 방법에 의해 보완되어야 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하고 실천했던 하나님 미래의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를 위한 변혁적 실천에 달려 있다고 하는 사실에 대한 깊은 인식으로 말미암는 실천적 기독론이다. 기독론적 과제는 미래의 인간 실존과 세상의 역사를 창조적으로 변혁시키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역사에 실천적으로 동참하는 데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단지 역사적 현실을 아는 것만도, 성육신 교리를 아는 것만도, 또한 그분의 은혜를 아는 것만도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아는 것은 그분의 뒤를 따르는 것이다. “위로부터”와 “아래로부터”의 방법론과 더불어,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위한 연대성으로부터 삶의 “바닥”에서 창조적인 변혁과 구원의 “미래를 향한” 실천적 행동과 헌신의 결단을 기독론의 출발점과 궁극적인 목표로 삼음으로써 우리는 온전하고 통전적인 기독론의 이론과 실천을 지향하여 나아갈 수 있다. 

구약과 그리스도[편집]

그리스도는 성부와 동일본질로서 창조사역에 함께 참여하셨다. 구약속에서 그리스도는 창조주, 구속주, 심판주로 나타났으며 친히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구약에 자신이 기록되어 있음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 모든 기록과 사건들이 신약에서 성취되었다고 누가복음 24장: 44-48절에 주장하였다.

그리스도가 언급한 모세의 율법과 선지서와 시편[편집]

예수 그리스도는 누가복음 24장: 44-48절 에서 직접 언급하였다.

  • 44절 예수 그리스도는 모세의 율법, 선지자들의 글과 시편에 자신을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고 하심을 말하였다.
  • 46절 자신의 고난, 부활, 회개, 그리고 복음전파가 구약에 이미 기록되었다고 직접 주장하였다.

창세기와 그리스도

  • 창 1: 26, 삼위하나님의 제 2위도 포함되어 나타난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
  • 창 2: ,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
  • 창 3:15,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과 원수가 .."
  • 창 3: 21, "가죽옷.." 그리스도의 피를 의미
  • 창 6-7, 마지막 종말의 심판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줌, 예수 그리스도 직접 언급함
  • 창 12: 3(축복의 근원), 창 22: 18, 요한 8장 56절에서 인용됨 창세기 22: 18(씨), 이삭의 번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예표, 히 11장, 요 8: 56절

시편과 그리스도

시편 22편

  • 시편 22편 - 의인의 고난과 의인의 영광
  • 시편 40편 강해 -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는 그리스도
  • 시편 69편 강해 - 수치와 성전을 향한 열심과 신원의 기도와 찬송, 성전을 향한 열심과 교회를 향한 열심
  • 시편114 시편의 눈으로 본 출애굽사건 (시편114) 시편 가지는 출애굽 사건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한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 야곱의 짐이 방언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 때에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1-2절). 왜 하필이면 출애굽 사건에 대해서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시편 기자는 출애굽 사건을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루실 일에 대한 예표적 사건으로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1]

선지자 이사야와 그리스도

  • 고난의 종 사 53장- 고난의 메시야-세상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


* 전능하신 하나님;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사 9:6).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시기 오래 전에, 선지자 이사야는 이 말씀으로 이스라엘을 위로하였다. “전능하신 하나님”, 이 이름은

그리스도에게 알맞는 이름이다. 이 말씀은 단순히 이사야의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이 하신 말씀이다. 그리스도는 불가능한 것이 없으신 전능신 하나님이시다.

  • 창조주이신 그리스도 ; 사 40:25~26  “거룩하신 자가 가라사대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나로 그와 동등이 되게 하겠느냐 하시느니라.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사 40:25~26) 여기에 이사야가 언급한 창조주가 누구인가는, 같은 장에 있는 다른 구절들의 말씀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분 앞에는 “대로를 평탄케 하라”고 말하는 자가 있다. 또 강한 팔을 가지고 오셔서 상 주시는 분이시며, 목자와 같이 양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품에 안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이분은 그리스도이다.[4]

구약성경 전체에 나타난 그리스도[편집]

구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선재하신 하나님이며, 여러 구약의 여러 인물들은 신약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 희생양이 되시는 제사장, 선지자, 왕, 그리고 메시야로 나타난다.[5]

그리스도의 선재성이란[편집]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성(先在性)

1) 선재성의 의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재하셨다는 것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기 전부터 이미 계셨던 (선재하신) 영원하신 분이신 것을 의미한다 (창 1:1; 요 1:1).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으로(요 6:38), 아브라함보다 먼저 계신 분이시며(요 8:58), 창세전부터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영광 가운데 계셨던 분이시다 (요 17:5). 예수 그리스도는 만세 전부터 계신 하나님이시며 (미 5:2),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시다(사9:6).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하나님으로서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며, ‘처음과 나중’이 되시고, ‘시작과 끝’이 되신다 (계 1:8)

그리스도의 선재(先在; pre-existence) 교리는 그의 성육신 이전에 그리스도의 존재론적 또는 인격적 존재를 주장한다. 관련 성서 구절 중 하나는 요한 복음 1 장1~18이다. 삼위 일체 해석에서 그리스도는 로고스 혹은 말씀이라고 불리는 선재적 신성을 가진 위격으로 동일시 되었다. 이 교리는 요한 복음 17장 5 절에서도 예수님이 이별 담화 중에 "세상이 있기 전에"아버지와 함께했던 영광을 언급 할 때 반복된다. [1] 요한 복음 17 장 24 절은 또한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성부 하나님이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였다는고 기록한다. 삼위일체설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의 선재가 그리스도의 영원성과 신성의 핵심이다. 오리겐은 성자의 영원성을 주장하였다.

2) 선재성에 대한 성경의 증거 (1) 구약성경에 증거된 그리스도

  • 구약에 나타난 여러 사건을 통해 볼 때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 전부터 선재하셨음을 알 수 있다.
  • 구약에서 그리스도는 여러 사람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2) 신약성경에 증거된 그리스도

  •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 땅에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전에 선재하셨음을 증거하고 있다.

(3) 선재하신 그리스도의 창조 사역

  • 예수님께서는 창세 전부터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 선재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 창조사역에 동참하셨다
  • 성경에는 선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창조 사역에 대한 여러 증언이 있다.[6]

구약과 그리스도의 성품과 예표[편집]

  • 선재 -시편 2:7 성취 요 8:58, 탄생 사 7:14-자신이 인정 요 20: 28,29 
  • 예표

아담-롬 5:14, 첫 사람으로 불순종으로 사망했지만 제 2의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성부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망의 권세를 깨고 생명을 주는 분임을 보여주었다.

아벨-히 12:24, 죄없는 그리스도의 희생의 모습을 보여준다.

모세- 신 18: 15, 대선지자로서 말씀이신 하나님을 예표한다.

유월절 –고전 5:7, 만나-요 6: 32, 대 제사장으로 구속의 주

놋뱀-요 3:14 대 제사장으로 구원의 주

 구약에서 구세주로서 예언된 그리스도[편집]

 a. 여자의 후손으로(창3:15)

 b. 셈의 후손으로(창9:26)

 c.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창12:3)

 d. 야곱의 혈통에서(민24:17-19)

 e. 동정녀 탄생에 대하여(사7:14)

 f. 다윗의 혈통에서(렘23:15) 

 g. 탄생의 시기를 예언(단9:25,26)

 h. 탄생의 장소를 예언(미5:2)

그리스도 자신은 구약 성경을 어떻게 보셨는가[편집]

그리스도는 구약 성경을 어떻게 보셨는가?

 1) 구약성경은 전체가 유기적이며 통일성을 가지고 있고, 모든 부분이 일치를 이룬다.

  "....그러나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그러나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마 26:54,56)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눅 24:44)

 2) 그리스도는 구약을 완성시키러 오셨으며, 구약의 예언은 일 점 일획이라도 폐지되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 점 일 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18)

  "성경은 폐하지 못하리니..."(요 10:35)

 3) 구약 성경은 절대 진리이며 순종되어야 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 4:4-신 8:3 인용)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마 4:7)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마 4:10)

 4)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약 성경을 정경으로 인정하셨다.

  "모세와 시편과 선지자들이 말한 바..."(눅 24:44)

 5) 예수께서 친히 가르치신 내용도 구약 성경이었다. 

  예수 당시에는 신약 성경이 기록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성경이라고 언급된 말음 모두 구약 성경을 의미한다. 

2. 구약 성경은 그리스도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1) 모세 오경은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그(모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요 5:46)

 2) 시편이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마 22:45)

 3) 선지서가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눅 18:31)

 4) 구약 성경 전체가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제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5-27)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세 3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이 기록되었으니..."(눅 24:44-46)

  "이 성경이 곧 내게(그리스도)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

 5) 구약 성경이 증거 하는 그리스도

  가. 아담에게 약속된 메시야(그리스도)(창 3;15)

  나. 아브라함과 유다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그리스도)"(창 22:18, 49:10)

  다. 출생에 대한 예고

  * 이사야가 본 아기 그리스도(사 7:14)

  - 기묘자(기이하게 탄생하심(성령과 동정녀 탄생))

  - 모사(지혜와 지식이 가득하신 분)

  - 전능하신 하나님(예수님의 신성)

  - 영존 하시는 아버지(성부 하나님과 동일함)

  - 평강의 왕(하나님과 인류에게 평화를 주시는 왕)

  * "다윗의 자손"(사 11:1)

  "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 그리스도가 태어나실 곳: 베들레헴(미 5:2, 마 2;6)

  * 동방 박사의 경배 예고(사 60:3, 마 2;11)

  * 예수 탄생 시 헤롯이 아이들을 살해할 것을 예고함"(렘 31:15, 마 2:17-18).

  * 애굽으로 피난할 것을 예고함(호 11;1, 마 2;15)

  라,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예고

  * "예수님의 온유하심과 관용에 대한 묘사"(사 42:2, 마 11:29)

  *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예고"(사 61:1-3, 눅 4:16-21)

  *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것을 예고함"(슥 9:9, 막 10;16)

  * "온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실 그리스도"(욜 2;28)

  마.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예고

  * "고난 당하시는 그리스도"(사 53장)

  * "그리스도의 죽음 예고"(단 9:26)

  * "유다의 배신 예고"(시 41:9)

  * "은 30냥이 토기장이에게 던져질 것을 예고(11;12-13, 렘 19장, 마 27:3-10)

  * "예수가 죽게 되자 제자들이 흩어질 것을 예고함"(슥 13:7, 마 26:31,56)

  * "매를 맞고 침을 뱉고, 수족이 찔릴 것을 예고"(사 50:6, 마 26:67, 시 22:16)

  * "옷을 제비뽑고 목말라 신포도주 마실 것 예고"(시 69:21, 요 19:28-29) 

  * "엘리엘리라마 사박다니"(시 21;1, 마 27:46)

  * "뼈가 꺾이지 않을 것, 부자의 묘에 장사될 것

    (출 12:46, 시 34:20, 슥 12:10, 사 53:9, 마 27:60)

  바.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예고

  * "예수의 부활 예고"(시 16:10-11, 사 53:10-11)

  사. 그리스도의 재림 예고

  * "아담의 7대 손 에녹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증거함"(유 14절)

  * "욥의 증거"(욥 19:25-26)

  * "스가랴가 본 그리스도의 재림"(슥 14;4-9) 

 * 이 주제에 대한 참고문헌

1. "구약 속의 그리스도", 에드워드 뵐 저, 권호덕 역, 한국 로고스연구원

2. "성경에 계시된 그리스도", A.M. 하킨 저, 김광택 역, 생명의 말씀사

신약성경과 그리스도[편집]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즐겨 부름으로써 그리스도를 직분명칭으로가 아니라 고유명칭으로 사용하였다. 바울의 기독론은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결합한 통전적인 기독론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단지 자신의 개인의 주가 아니라 온 우주의 주로 고백함으로써, 우주적 기독론의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바울의 기독론이 비교적 신뢰할 만한 역사적 사실들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하지만 바울의 기독론의 근간을 구성하는 것은 순수한 역사적 사실들이라기보다는 그의 신학적 사고구조 속에서 해석된 역사들이다. 비의도적이고 불가피한 상황에서 새로운 신앙 공동체를 시작한 기독교의 예수에 대한 신앙고백적 해석을 유대적 기독론이라 할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책들은 공관복음서이다. 신약성서의 헬라적 기독론은 요한의 기독론에 의해 대표된다. 그의 사상은 영과 육, 정신과 물질을 상호배타적으로 이해하는 헬레니즘이나 영지주의의 이원론과는 대조적인 요한 자신의 독특한 기독교적 사상이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 유사점보다는 차이점들이 더 두드러진다. 신약성서 안에는 다양한 기독론적 은유들과 상들과 명칭들과 접근방식들이 나타난다. 바울의 둘째 아담론, 공관복음의 하나님 나라를 실현시킬 메시야(그리스도)로서의 예수론, 특히 마가의 이적 행위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상과 마태의 율법의 완성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요한의 영생을 가져오는 선재 로고스 기독론, 히브리서의 대제사장 기독론, 에베소서의 우주적 화해자 기독론, 요한 계시록의 영광의 어린 양 기독론 등이 대표적인 예들이다. 이러한 은유와 개념과 칭호들은 서로 쉽사리 조화되기 어려운 점들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중에 어느 하나만 옳고 다른 것은 그르거나 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어느 하나만 규볌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것들은 버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이러한 다양성과 다원성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주제에 대한 보다 풍요한 인식과 이해를 가능하게 해준다. [7]

기독론의 역사[편집]

  • 교부들 - 로고스 기독론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 니케아 - 아리우스의 성자 종속론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아타나시우스가 주장한 아들의 신성, 즉 아버지와 동일 본질(homoousios, consubstantialem Patri, όμοουσιον τω πατρι, 아버지와 동질)을 결의하였다.
  • 네스토리어스 - 그리스도안에 두 본성(natures)을 말하는데, 신성과 인성의 본질적인 특성은 영원부터 구별되었다고 한다.
  • 유티게우스주의 - 신성과 인성의 혼합으로 보았다.
  • 칼세돈 - duae naturae, una persona- 이성 일 인격(신인 이성 일 인격)을 강조하였다. 그리스도의 두 본성은 in duablus naturis inconfuse, immutabiliter, indivise, inseperabibliter, 앞의 두 개의 단어는 Eutychianism에 반대하며, 뒤에 두 개는 Nestorianism에 반대이다.
  • 중세 - 정통적인 그리스도론에 구속론적인 기독론을 첨가하였다.
  • 루터 - 죄를 속죄하는 그리스도에 신학의 중심을 두었고, ‘유한은 무한을 포용할 수 있다’(Finitum capax infiniti)는 사상으로 무한이 유한과 한 인격 안에 통일되어 있음을 강조하며, 속성의 교류 교리를 발전되었다.
  • 칼빈 -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주장하고 구속주 되신 하나님으로서 신성과 인성에 대한 주장이 칼세톤 신조를 따르고 있다. 승천한 후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는 ‘유한은 무한을 포용할 수 없다’(finitum non possit capere infinitum)는 사상이다.
  • 현대 - 교회론의 여러 문제와 결부되어 취급되었고, 역사적 예수에 관심을 가졌다. 현대인을 의식하여 실존주의적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 슐라이에르마허 - 절대적으로 완전한 신 의식의 소유자이다. 그리스도가 신성과 인성을 갖는 것을 부인하고, 신성 대신 신 의식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그리스도의 속성의 교환을 부인한다. 니케아 신조와 칼세돈 신조를 부인한다. ‘아래로 부터’(from below) 기독론을 주장한다. 그는 예수의 영원한 출생과 신적 로고스(영원한 하나님의 아들) 교리가 아니라, 신 의식의 인간 예수로부터 기독론을 시작한다.
  • 리츨 - 그리스도의 인격보다는 사역에 강조를 두어 신격화 한다.
  • 바르트 - 기독론을 신학의 중심으로 본다. 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Verbum caro factum est, ο λογος σαρξ εγενετο). 하나님의 계시를 받음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중보자)로 됨. 하나님의 계시가 그리스도라 본다. 그러나 박윤선 박사에 따르면, 바르트는 역사적 예수와 그리스도를 분리시킨다.
  • 브루너 -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점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며, 역사적 예수를 부인하고, 대속을 부인하고, 육체의 부활을 부인한다.
  • 틸리히 –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을 용해시키는 새 존재(New Being)라 한다.
  • 해방신학자들 – 사람들을 억압에서부터 해방하는 분으로 본다.
  • 라너 - 안셈의 보상 속죄론을 반대하며, 십자가(성례적인 인과관계)는 하나님의 은혜를 온 세상에 선포한 보편적인 사건으로, 보편적인 구원의 효과를 지닌다고 주장하며, 제한 속죄를 부인한다. 교회 밖과 다른 종교에도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는 쪽으로 변형시켰다. 비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만 아시는 비밀스러운 방법에 의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구원을 얻게 된다고 한다. 이것이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다.
  • 히크 - 예수는 구원을 위한 접촉점(the saving point of contact)이란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다. 문자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신화적이고, 사실적이 아닌 의미로 이해하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신인임을 부정한다. 타종교들도 신과의 접촉점을 갖고 있으며, 예수님과 유사한 역할을 담당하는 타종교의 인물들을 통하여 구원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종교 다원주의이다.
  • 뉴비긴 - 그리스도만이 구원을 준다고 하면서, 비 기독교인들도 우리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경우에도 기독교가 아닌 타종교를 통해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함께보기[편집]

기독론 이단과 논쟁들[편집]

아리안주의(Arianism)

유니테리어니즘

영지주의(Gnosticism)

가현설(假現說) 또는 도케티즘(Docetism)

유티키안주의Eutychianism

네스토리안(Nestorianism)

잘못된 견해들

  • 에비온(Ebionities)와 알로기(Alogi) - 소시니안(Socinians)과 유니테리안파(Unitarians)도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한다.
  • 노스틱주의(Gnosticism)와 도세틱(Docetae) – 영지주의의 영향으로 그리스도의 참된 인간성을 부인한다.
  • 사벨리안(Salbellians) - 성부의 한 형태가 나타난 분이 그리스도라 한다.
  • 아리안(Arians)- 그리스도를 창조된 피조물로 보았다. 그의 실수는 로고스의 본성 그 자체를 그리스도의 통일성 속에서 찾으려 한 것이다. 즉 로고스는 육신과 직접적인 육체적 연합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로고스의 본질은 피조적인 것으로 된다.
  • 아폴리내리스(Appolinaris) - 그리스도의 인성이 육체와 혼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고 신적 로고스는 영의 자리를 취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근본 동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하나님의 직접성을 보려고 한 것이었다. 그리스도에 있어서 육신만이 인성이요 영(νους)의 부분은 직접 로고스가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은 약간 가현설식으로 해석이 된다. 이성의 완전성에 대한 부정이다.
  • 네스토리우스(Nestorius) - 그리스도의 이성의 참된 통일성을 부정하였다. 양성을 날카롭게 구별하여 그리스도의 양성을 두 인격으로 만들었다. 도덕적으로 목적과 행동에서 연합시켰다.
  • 유티커스(Eutychians) - 이성을 인적도 신적도 아닌 제 3의 성질로 혼합하였다. 그리스도의 이성에 대한 부정이다. 인성이 신성 속에 흡수된 것처럼 표현되었다. 루터파의 기독론이 유티커스파와 조금 가깝다. 

관련 주제들[편집]

  • Catholic spirituality
  • Chalcedonian Definition
  • Christian views of Jesus
  • Council of Chalcedon
  • Council of Ephesus
  • Dyophysitism
  • Great Church
  • Mariology
  • Miaphysitism
  • Monophysitism
  • Names and titles of Jesus in the New Testament
  • New Testament view on Jesus' life
  • Religious perspectives on Jesus
  • Patriology (Christianity)
  • Pneumatology (Christianity)
  • Scholastic Lutheran Christology
  • Third Council of Constantinople

각주[편집]

참고 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