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니케아 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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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아 공의회(영어: First Council of Nicaea, 라틴어: Concilium Nicaenum Primum)는 325년 6월 19일 니케아(Nicaea, 현재 터키의 이즈니크) 콘스탄티누스 1세의 니케아 별궁에서 열린 기독교공의회이다. 부활절삼위일체 등이 논의되었으며, 니케아 신경을 채택하여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정죄하면서 보편교회(공교회)의 정치적 외연이 확대되었다.

사도행전예루살렘 공의회 이후의 기독교 최초의 공의회로 인정받고 있다.[1]

동기[편집]

콘스탄티누스 1세는 정치적으로는 하나지만, 신학적으로 갈라진 로마 제국의 통일과 화합을 위하여 기독교의 단결이 중요했다. 그러나 당시의 교회 내부에는 많은 교리의 대립이 있어 수습이 곤란하였기 때문에 이 대립을 끝내기 위해 비티니아의 니케아에서 주교들을 소집하였다. 참석 요청받은 주교가 1천 명 정도였으나 참석한 주교는 그것보다 더 적은 로마 제국의 주교 6분의 1인 318명 정도로 추산된다.[2]

  • 정리되지 않은 기독교의 교리 체계화
  • 예수를 피조물이라고 주장하는 아리우스와 반대자인 아타나시우스와의 교리 대립

공의회의 쟁점과 교파[편집]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막연설로 시작된 공의회에서 논쟁자들은 그들의 견해를 제시하도록 허락되자, 곧이어 맹렬한 논쟁이 이어졌다. 회의 내용은 주로 아리우스 논쟁, 즉 아버지인 하나님과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어떠냐는 것이었다. 의사내용(議事內容)은 아버지와 아들을 다르게 보는 니코메디아의 에우세비우스와 아리우스파 주교들, 아버지와 아들을 동질로 보는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더와 정통파 주교들, 아버지와 아들을 유사하다고 보는 카이사레이아의 에우세비우스와 오리게네스주의 중도파 주교들로 나뉘어 논의되었는데, 난항을 거듭한 결과 아버지와 아들을 동질(호모우시오스)로 보는 니케아 신조(오늘날의 니케아 신조와는 다소 다름)가 채택되어 아버지와 아들을 이질로 보는 아리우스파의 지도자 아리우스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니코메디아의 에우세비우스에게 출교의 경고를 주었다.[1]

공의회 결과[편집]

그러나 이 회의로 교리 논쟁이 해결된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 후에 더욱 격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회의에 있어서 황제의 권력이 교회 내의 문제에 개입하는 악례(惡例)를 남긴 것은 주목할 만하다.[1]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니케아 공회의, 《글로벌 세계 대백과》
  2. Elgin S. Moyer (1951). 《Great leaders of the Christian church》 [인물 중심의 교회사]. 번역 곽안전; 심재원. Moody Publishers. 120쪽. ISBN 89-511-0371--4. 

참고 자료[편집]

  • 알리스터 맥그래스, 그들은 어떻게 이단이 되었는가? p. 223
  • 간추린 교회사, 세종문화사, p. 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