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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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逾越節) 또는 과월절(過越節), 페사흐(히브리어: פסח), 파스카(라틴어: Pascha)는 유대인들이 이집트 왕국의 노예 생활로부터 탈출한 사건을 기념하는 날로, 유대교의 3절기 중 봄에 지내는 절기이다. 때문에 '하그 에 아비브'(봄축제)라고도 하며 노예 생활로부터의 탈출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즈만 헤루테누'(자유의 때)라고도 한다. 날짜는 유대력 니산월(1월) 14일 저녁이다.(레위기 23:5)

2016년에는 3월 22일이었다.

개요[편집]

유월절을 가리키는 여러가지 단어들은 '넘어간다'(passover)는 의미가 있다. 이것은 출애굽기 12장에 그 유래와 기념 방법이 제시되어 있는 유대교의 대표적인 절기로서, 이집트에 내려진 10대 재앙 중 마지막 재앙인 '장자들의 죽음'으로부터 넘어갔다는 것을 지칭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재앙에서 구원받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 유대교의 대표적인 축제이자 종교적 절기로 자리 잡았다. 출애굽기에 제시된 유월절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먼저 흠 없는 수컷 양을 잡아 그 피를 집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뒤 그 양을 살과 내장을 모두 굽고, 무교병(누룩을 넣지 않은 빵)과 쓴 나물을 곁들여 먹는다. 이 때 마치 바로 이집트를 떠날 채비를 하듯, 신을 신고 허리띠를 두른 뒤 지팡이를 잡고 식사를 하며 식사 후 아침이 될 때까지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이후, 유대인들이 이집트로부터 나오게되면서 이 축제는 이집트의 학정에서 구원하고 백성들을 재앙으로부터 넘겨주신 하나님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처음 유월절을 지내던 모습을 재현하는 장이 되었다.

이에 따라 유대교에서는 '하가다'라고 불리는 율법에 따라 결정된 예식 규범 및 결정에 따라 엄격히 시행한다. 니산월 10일부터 식사 때 먹을 어린양을 골라 '세데르'라 불리는 위에서 나타난 유월절 식사를 니산월 14일 밤마다 먹는다. 이 '세데르' 식사 자리에서 유대인 가정의 아들(보통은 막내) 한 명이 지명을 받아 어른들에게 '왜 오늘 밤은 다른 밤과 구별되는가'에 대해 질문을 하며 이집트에서 해방된 이야기와 로마 지배에서 해방되어야 함을 기도형식으로 대답하고, 식사를 끝낼 때 모인 사람들은 '내년은 예루살렘에서'라고 말한다. 이는 곧 유월절이 이집트에서의 해방이라는 과거를 기념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도래할 메시아에 대한 희망을 품은 성격이 있음을 의미한다.

유월절이 끝난 후 15일부터 7일 동안 무교절로 지내며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으며 첫 날과 7째 날에 성회를 가진다. 원래 이 두 축제는 별개의 축제로 취급되었으나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이 노예 생활에 대한 기억이며 죄악으로부터 정결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다, 실질적으로 무교절에 쓸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유월절 전부터 준비해야 했으므로 점차 하나의 절기로 여겨졌다.

유월절 다음 첫 안식일 다음날(주일)은 초실절(오메르)이다.

기독교에서의 변화 ==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닛산1월 14일 저녁에 성만찬을 하였다. 초기에는 노예등 하층민 신자들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점차 귀족들까지 입교하며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사도들이 세상을 떠난 후 로마에 위치한 로마교회의 주장이 점차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성찬식은 원래 그리스도의 부활이 아니라 죽으심을 기념하는 예식이다.(고린도전서 11:26)

그러나 로마교회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일요일에 성찬식을 하게 되었다.

1차 유월절 논쟁[교회사 초대편]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의 새로운 전통은 예수님께서 지킨 닛산1월14일 저녁에 성찬식을 행해오던 동방교회들과 충돌을 일으키게 되었다. 155년경 로마교회 지도자 아니케터스와 동방 서머나교회 감독 폴리캅은 이 논쟁에서 예수님의 제자 요한의 가르침을 받은 폴리캅은 유월절에 성찬식을 하는것은 예수님때로 내려온 전승임을 강조하였으나 양편은 서로를 설득할 수 없었다.

2차 유월절논쟁[유세비우스 교회사],교회사 초대편 이후197년경 당시 로마교회 감독 빅터는 유월절(닛산 1월 14일 저녁)이 아니라 유월절 다음 첫 일요일에 성찬식을 하는 도미닉의 규칙 을 채용하도록 전 교회에 강요하였다. 동서방 각지에서 여러가지 회의가 열렸는데 그 결과 동방교회을 제외한 각지에서 도미닉의 규칙을 채용하게 되었다. 동방 에베소감독 폴리크라테스는 빅터에게 편지를 보내어 동방교회들을 지도했던 사도 빌립, 사도 요한, 여러순교자들이 닛산1월14일에 유월절 지켰으며 8대 감독인 자신도 전승에 따라 지키고 있음을 설명하였다. 이에 빅터는 동방교회들을 비정통으로 몰아 제거하려 했으나 여러 교회 지도자들의 만류로파문을 취소했다.

이 분쟁이 4세기에 다시 점화되어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주재한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성찬식을 춘분후 만월 다음의 첫 일요일로 정해졌다[간추린 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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