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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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逾越節) 또는 과월절(過越節), 페사흐(히브리어: פסח), 파스카(라틴어: Pascha)는 유대인들이 이집트 왕국의 노예 생활로부터 탈출한 사건을 기념하는 날로, 유대교의 3절기 중 봄에 지내는 절기이다. 때문에 '하그 에 아비브'(봄축제)라고도 하며 노예 생활로부터의 탈출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즈만 헤루테누'(자유의 때)라고도 한다. 날짜는 유대력 니산월(1월) 14일 저녁에 시작해 15일까지이며이며 (레위기 23:5) 2013년에는 3월 25일이다.

개요[편집]

유월절를 가리키는 여러가지 단어들의 의미는 '넘어간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출애굽기 12장에 그 유래와 기념 방법이 제시되어 있는 유대교의 대표적인 절기로써, 이집트에 내려진 10대 재앙 중 마지막 재앙인 '장자들의 죽음'으로부터 넘어갔다는 것을 지칭하며, 하느님으로부터 재앙에서 구원받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 유대교의 대표적인 축제이자 종교적 절기로 자리 잡았다. 탈출기에 제시된 유월절의 모습은 다음과 같았다. 먼저 흠 없는 수컷 양을 잡아 그 피를 집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른 뒤 그 양을 살과 내장을 모두 굽고, 누룩을 넣지 않은 빵(무교병)과 쓴 나물을 곁들여 먹는다. 이때 마치 바로 이집트를 떠날 채비를 하듯, 신을 신고 허리띠를 두른 뒤 지팡이를 잡고 식사를 하며 식사 후 아침이 될때까지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이후, 유대인들이 이집트로부터 나오게되면서 이 축제는 이집트의 학정에서 구원하고 백성들을 재앙으로부터 넘겨주신 하느님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마다 처음 유월절을 지내던 모습을 재현하는 장이 되었다.

이에 따라 유대교에서는 '하가다'라고 불리는 율법에 따라 결정된 예식 규범 및 결정에 따라 엄격히 시행하며 니산월 10일부터 식사때 먹을 어린양을 골라 '세데르'라 불리는 위에서 나타난 유월절 식사를 니산월 14일 밤마다 먹는다. 이 '세데르' 식사 자리에서 유대인 가정 아들 한 명이 지명을 받아 어른들로부터 '왜 오늘 밤은 다른 밤과 구별되는가'에 대해 질문을 받으며 이집트로부터 해방된 이야기와 로마 지배에서 해방되어야함을 기도형식으로 대답하며 식사를 끝낼 때, 모인 사람들은 '내년 예루살렘에서'라고 말한다. 이는 곧 유월절이 이집트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과거를 기념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도래할 메시아에 대한 희망을 품은 기원제로써의 성격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유월절이 끝난 후에는 15일 저녁부터 7일 동안 무교절을 지내며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으며 첫날과 칠일에 성회를 가진다. 원래 이 두 축제는 별개의 축제로 취급되었으나 누룩 없는 빵이 노예 생활에 대한 기억이며 죄악으로부터 정결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다, 실질적으로 무교절에 쓸 누룩 없는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유월절 전부터 준비해야 했으므로 점차 하나의 절기로 여겨졌다.

기독교에서의 변화[편집]

기독교에서도 유월절은 유대교처럼 교회에서 공식적인 전례로 기념하진 않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구약의 절기로 여긴다. 흠 없는 양을 잡아 그 피로 재앙으로부터 구원받고 노예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러 온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예표로 상징되었으며 유월절을 전후로의 기간 즉,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말하는 파스카 성삼일 기간은 유월절 어린 양인 그리스도의 수난, 죽음, 부활을 기념하는 교회력의 핵심적인 절기로 자리 잡았다.

유월절은 성경에서도 명확하게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언제 있었는지를 이야기해주는 지침이 되는 날이었으며, 동시에 이 날은 저녁식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와 12사도들이 모임으로써(이른바 '최후의 만찬') 성체성사(혹은 성만찬)를 제정한 날이었다. 성체의 의미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위해 흘릴 몸과 피는 유월절 어린 양과 결합되어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유월절의 흠 없는 양이라는 것이 신학적으로 명확해진 것이었다. 이 날은 교회 전례력에서 '성 대 목요일'(성체성사 제정 기념일/주님 만찬 기념일)로 기념하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참된 유월절 어린 양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유월절을 전후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구원의 예표인 유월절 기간은 점차 진정한 구원인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간으로 바뀌어 갔다. 2세기부터 3세기까지 동방교회 특히 성 사도 요한필립보의 전통을 따르는 폴리카르포, 사르디스의 멜리토 등의 교부들은 유대적 전통과 신학적 예표 의미가 강한 유월절의 날짜인 니산월 14일을 그대로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삼자고 주장했으나, 서방교회는 성 사도 베드로바오로의 전통을 따라 부활이 일어난 니산월 14일 후 바로 돌아오는 일요일에 지내는 것을 주장했다. 부활절 논쟁이라 불리는 이 논쟁은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서방교회의 주장이 받아들여짐으로써 마무리되었다.

현대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공식적인 전례로 유월절을 기념하지는 않으나 본당이나 가정에서 기념 차원에서 재현할 수 있다. 이 예식 거행에서 최후의 만찬이 다시 이뤄지지는 않지만 구원 역사의 공통뿌리는 인식하는 차원에서 유월절의 참된 의미가 담긴 '하가다'에 규정된 예식을 정확하게 재현하며, 이는 또한 유월절 축제를 처음 시작하였으며 그 대상이었던 유대인들에 대한 신앙적 존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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