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조용기 목사
당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
직책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총회장
전임자 죤스텟츠 선교사
후임자 박정근 목사
성직
목회 순복음 신학교(現 한세대학교) 목사 안수
개인정보
출생이름 조용기, 아호는 영산(靈山)
출생 1936년 2월 14일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울산군 (현 울산광역시)
국적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교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부모 아버지 조두천, 어머니 김복선
배우자 김성혜 사모
가족 장모 최자실(1915년~1989년) 목사, 슬하 3남
전직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 (1958년 ~ 2009년)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 (2009년 ~ )
학력 약력 단락 참고

조용기(趙鏞基, 1936년 2월 14일 ~ )는 대한민국종교인이다. 개신교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원로 목사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함안이며, 울산 출신이다.

약력[편집]

  • 1958년 순복음 신학교(現 한세대학교) 졸업
  • 1958년 불광동에서 최자실전도사와 공동으로 천막교회 설립
  • 1966년 기독교대한 하나님의 성회 총회장 (~ 1978년)
  • 1968년 국민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 1968년 미국 베다니 성서대 명예신학박사
  • 1976년 국제교회성장연구원 (C.G.I) 총재 (현재)
  • 1978년 미국 캘리포니아 성서대 명예문학박사
  • 1988년 국민일보 이사장, 회장 (현재)
  • 1989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고문
  • 1990년 미국 리전트대 명예목회학박사
  • 1999년 사단법인 선한사람들 (NGO) 이사장
  • 2004년 재단법인 아가페(기독교교도소) 대표고문 (현재)
  • 2008년 재단법인 사랑과행복나눔 이사장
  • 2010년 출산장려국민운동본부 총재
  • 2010년 국민일보 회장 겸 발행인
  • 2011년 재단법인 영산조용기자선재단 이사장 (현재)

생애[편집]

조용기는 1936년 2월 14일 대한민국 경상남도 울산군 삼남면 교동리에서 아버지 조두천과 어머니 김복선의 5남 4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17세이던 2학년 때 폐결핵으로 인하여 죽음을 눈앞에 두다가 고향울산 진장에 내려가 휴양을 하며 부산으로 통원 치료를 받았다.1956년 서울로 올라와서 순복음 신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하였다. 그러던 가운데 같은 학교에서 만난 최자실 목사의 딸 김성혜와 1965년 3월 1일 결혼하였고 슬하에 3명의 자녀를 두었다.

조용기는 20세에 대조동 천막촌에서 최자실 전도사와 공동으로 목회를 시작하여, 교인 약 78만 명에 이르는, 세계 개신교 최대 교회인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당회장 목사로 목회하였다. 일어, 영어에 능숙하며, 해외에서의 오순절교회 선교활동을 통해 개신교 선교에 공헌했다.


2008년 5월, 당회장 목사로서의 임기를 마쳤고, 이후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 목사로서 활동하였다. 여의도 순복음교회는 제2대 당회장에 이영훈 목사를 압도적인 지지율로 선출하였다.[1]

상훈[편집]

기복 신앙[편집]

계명대 조직신학박사인 정용섭예수를 믿으면 모든 일이 잘되고, 건강의 축복을 받으며 영혼이 잘 된다는 소위 삼박자축복론은 신학적, 성서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비판했다.[2] 그러나, 프랑스 소르본대 역사신학박사인 김삼환은 이러한 복의 해석이 신학적, 성서적 근거가 있으며, 성서의 전반적으로 흐르는 사상이라고 주장한다.[3] 그러나 그것을 성경에 근거한 사상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유대인이 성경을 이해하는 관점이라는 주장도 있다.

저서[편집]

  • 《나는 이렇게 기도한다》(1990)
  • 《4차원의 영적세계》(1996)
  • 《조용기 목사의 Best 10분 설교》(2013)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조용기 목사 내년 5월께 은퇴. MBN. 2007년 5월 14일.
  2. 김성희. "무협 얘기 같거나 주술적" 유명 목사 설교 실명 비판. 중앙일보. 2006년 12월 28일.
  3. 지금은 조율(調律)이 필요한 때. 아멘넷. 2010년 8월 30일.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