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적십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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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적십자사(大韓赤十字社)
대한적십자사 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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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적십자사의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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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일 1903년 1월 8일 (1차)
1919년 8월 29일 (2차)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소파로 145 (남산동3가)
총재 김성주
웹사이트 http://www.redcross.or.kr/

대한적십자사(大韓赤十字社)는 대한민국의 비영리 특수법인이다. 1905년 대한제국 시절에 '대한적십자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설립되었으며, 일제 강점기 때 폐지되었다가 1919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의해 다시 설립되었다. 해방 직후인 1947년 '조선적십자사'로 조직되었고, 1949년 '대한적십자사'로 재조직되었다. 전 세계적 국제기구인 국제 적십자사·적신월사 연맹의 일원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적십자사이다.

적십자는 국제조약상의 기구로 적십자에 관한 제 협약과 국제적십자운동 기본원칙에 의거 전시와 무력충돌 시에는 제네바 협약에 따른 전시포로·희생자·전상자 치료 및 구호사업을, 평시에는 수재·화재·기아 등 중대한 재난을 당한 자에 대한 구호사업 등의 인도주의 사업을 수행한다. 특히 최근 100년 간의 각종 전쟁터에서 활동을 펼친 대표적인 인도적 구호기관인 국제적십자위원회가 보급하는 국제적십자운동의 기본원칙에 따라 평시 및 전시의 다양한 인도적 지원활동을 수행한다.

보건복지부 산하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본사는 서울특별시 중구 소파로 145 (남산동3가)에 위치하고 있다. 혈액관리본부, 교육원, 혈액수혈연구원, 사업추진국(재난구호팀), 병원보건안전국(보건안전교육팀)은 2014년 5월에 원주 혁신도시(강원도 원주시 혁신로 50)로 이전하였다.

역사[편집]

대한제국 말기인 1903년 1월 8일, 대한제국 정부가 최초의 제네바 협약에 가입하고, 2년 뒤인 1905년 10월 27일 칙령 제47호로 대한적십자사규칙이 제정 반포되며 처음 설립되었다. 초기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대한제국 의양군 이재각과 의친왕 이강 등 황족이 맡았다. 그러나 그 해 11월 17일 일본의 강압에 의해 을사조약이 체결되었고, 한일병합 1년 전인 1909년 7월 23일 일본은 소위 칙령이라는 미명하에 대한적십자사를 강제로 폐지해 버렸다.

그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8월 29일, 임정 내무부 총장 안창호 명의로 대한적십자회 설립을 공포하였고, 1919년에 설립한 대한적십자회를 모태로 1947년 3월에 조선적십자사를 설립했다. 제1공화국 정부 수립 후인 1949년 10월, 대한적십자사로 재조직되었다. 1955년 9월 28일에 74번째 회원국으로 국제적십자사연맹에 가입했다.

7대 기본원칙[편집]

  1. 인도 - 전쟁터에서 부상자를 차별 없이 도우려는 열망에서 탄생한 국제적십자운동은 국제적, 국내적 역량을 발휘하여 어디서든지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고 예방하기 위해 노력한다. 적십자운동의 목적은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장하는데 있다. 이러한 적십자운동은 모든 사람들 간의 이해, 우정, 협력 및 항구적 평화를 증진시킨다.
  2. 공평 - 국제적십자운동은 국적, 인종, 종교적 신념, 계급 또는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고 차별하지 않는다. 오직 개개인의 절박한 필요에 따라 고통을 덜어주고 가장 위급한 재난부터 우선적으로 해결하도록 노력한다.
  3. 중립 - 적십자운동은 지속적으로 모든 사람의 신뢰를 받기 위해 적대행위가 있을 때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고 어떤 경우에도 정치적, 인종적, 종교적 또는 이념적 성격을 띤 논쟁에 개입하지 않는다.
  4. 독립 - 적십자운동은 독립적이다. 각국 적십자사는 정부의 인도주의 사업에 대한 보조자로서 국내 규를 준수하지만 어느 때든지 적십자 원칙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항상 자율성을 유지해야 한다.
  5. 자발적 봉사 - 적십자운동은 자발적 구호운동으로서 어떤 이익도 추구하지 않는다.
  6. 단일 - 한 나라에는 하나의 적십자사만 존재할 수 있다. 적십자사는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야 하며, 그 나라 영토 전역에서 인도주의 사업을 수행해야 한다.
  7. 보편 - 국제적십자운동은 각 나라의 적십자사들이 동등한 지위와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서로 돕는 범세계적인 운동이다.

업무[편집]

  • 적십자 제협약에 의한 전시포로 및 희생자 구호사업과 군의료보조기관으로서의 전상자 치료사업
  • 천재지변, 비상재해, 화재, 질병 등으로 재난을 당한 이재민에 대한 구호사업
  • 전쟁 또는 돌발사태로 인한 외국난민의 수용보호사업
  • 병원, 이동진료소, 응급의료정보센터운영등의 의료사업
  • 국민헌혈운동추진, 혈액원운영등 혈액사업
  • 응급처치법, 수상안전, 산악안전 및 환경보호등 각종 안전사업
  • 보건지식, 가정보건, 언어치료, 무료진료등 지역보건사업
  • 청소년적십자활동 및 교육사업
  • 각종 자원봉사조직운영 및 사회봉사활동
  • 종합봉사회관, 민ㆍ군병원봉사실등 각종 복지시설 운영
  • 적십자 이념 및 국제인도법 보급
  • 국제적십자기구 및 자매적십자사 등과의 상호협력과 지원
  • 남북적십자교류사업과 남북적십자회담운영 및 이산가족 재회알선
  • 원폭피해자 등 특수복지사업

적십자 표장[편집]

적십자표장은 1863년 10월 “적십자창설 제네바회의”에서 처음으로 제정되었으며 보호표장과 표시표장으로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다. 회교(이슬람)국가에서는 적십자 표장대신 적신월 표장을 사용하며, 이스라엘은 적수정 표장을 사용하고 있다.

적십자와 적신월 표장은 충분히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때로는 문화적, 종교적 또는 정치적 의미를 함축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무력충돌의 희생자, 군 의무기관, 그리고 인도적 구호 요원들에게 부여되는 보호의 의미를 위태롭게 한다.

적십자 표장의 역사[편집]

1859년 이탈리아 북부를 여행하던 스위스 실업가 앙리 뒤낭솔페리노 전투의 참혹한 광경을 목격했다. 그는 제네바로 돌아가자마자 자신이 목격했던 것을 기술한 ‘솔페리노의 회상’을 집필했으며, 여기서 그는 전쟁 희생자에 대한 원조를 개선하기 위해 다음의 두 가지를 제안했다.

  1. 평시에 모든 국가 내에 전쟁 희생자를 지원할 준비가 된 자원봉사자 단체를 설립할 것[1]
  2. 전쟁터의 구호요원과 부상자를 보호하려는 제안에 대해 국가들의 동의를 구할 것[2]

표장의 구분과 기능[편집]

  • 보호표장 : 무력충돌에 있어서 제네바 제협약과 추가의정서에 의해 구호, 의무 또는 군대 종교요원의 시설, 운송수단들에게 부여된 보호를 나타내는 표시이다. 이 경우에 있어 표장의 크기는 가능한 큰 규격이어야하며 어떠한 다른 내용과 함께 표시되어서는 안된다.
  • 표시표장 : 이 표장은 적십자의 요원 또는 물자나 시설 등 국제적십자운동과의 연관성을 나타낸다. 이 경우의 표장에는 추가 정보(예, 각국 적십자사의 이름)를 함께 표시하고 있어야 하며, 상대적으로 작은 규격이어야 한다. 표시적 수단으로 사용될 때는 표장의 크기는 작은 규격으로, 보호적 장치로 사용되는 표장들과의 어떠한 혼돈도 피하기 위하여 완장이나 건물 지붕에 부착되어서는 안된다.

표장의 오남용 방지[편집]

표장의 보편적 존중과 보호를 확보하기 위하여, 1949년 제네바제협약의 개별 체약국은 표장의 사용을 규제하고 무력충돌시와 평시에 무단사용을 방지하고 억제하기 위한 조치를 위할 의무가 있다. 적십자/적신월사 표장은 국제법(제네바협약추가의정서)과 국내법(대한적십자사 조직법, 상표법 등)에 따라 사용되어야 한다.

적십자사나 군 당국으로부터 표장의 사용승인을 받지 아니한 자는 적십자 표장이나 이와 유사한 표장을 사용할 수 없다.

  • 부적절한 사용예 : 표장을 사용할 권리가 없는 단체 또는 개인(기업, 약사, 개인병원의 의사, NGO, 일반인 등)이 표장을 사용하는 경우

역대 총재[편집]

대한제국 적십자사 총재[편집]

  1. 1905년 7월 24일 의양군 이재각
  2. 1906년 7월 12일 의친왕 이강
  3. 1907년 4월 24일 의양군 이재각

대한적십자회 총재 (대한민국 임시 정부 주관)[편집]

  1. 초대 회장 : 이희경(李喜儆, 1890년~1941년)[3]
  2. 2대 회장 : 손정도(1922년 2월 23일 선출)

조선적십자사 총재[편집]

  1. 1947년 3월 16일 초대 총재 김규식
  2. 1948년 6월 9일 ~ 10월 2대 총재 서재필 박사
  3. 1948년 10월 ~ 1949년 10월 총재서리 백상규 박사

대한적십자사 총재[편집]

중앙위원회에서 선출하며 대통령의 인준을 받도록 되어 있다. 임기는 3년으로 하고 재선에 관한 규정은 없다. 총재는 대한적십자사를 대표하며 사무를 통리한다.

  1. 1949년 10월 ~ 1950년 6월 - 양주삼 총재
  2. 1950년 11월 ~ 1952년 9월 - 윤보선 총재
  3. 1952년 9월 ~ 1954년 2월 - 구영숙 총재
  4. 1954년 4월 ~ 1960년 6월 - 손창환 총재
  5. 1960년 8월 ~ 1972년 8월 - 최두선 총재
  6. 1972년 8월 ~ 1975년 7월 - 김용우 총재
  7. 1975년 7월 ~ 1981년 7월 - 이호 총재
  8. 1981년 7월 ~ 1982년 8월 - 김용식 총재
  9. 1982년 8월 ~ 1985년 8월 - 유창순 총재
  10. 1985년 8월 ~ 1991년 8월 - 김상협 총재
  11. 1991년 8월 ~ 1997년 7월 - 강영훈 총재
  12. 1997년 8월 ~ 2000년 7월 - 정원식 총재
  13. 2000년 8월 ~ 2000년 12월 - 장충식 총재[4]
  14. 2000년 12월 ~ 2003년 12월 - 서영훈 총재[5]
  15. 2003년 12월 ~ 2004년 12월 - 이윤구 총재[6]
  16. 2004년 12월 ~ 2007년 12월 - 한완상 총재[7]
  17. 2007년 12월 ~ 2008년 10월 이세웅 총재[8]
  18. 2008년 10월 8일 - 2011년 10월 유종하 총재[9]
  19. 2012년 3월 14일 - 2014년 10월 7일 유중근 제27대 총재
  20. 2014년 10월 8일 -2017년 6월 30일(예정) 제28대 총재 김성주 (기업인) 총재 - 대한적십자사 창립 이후 첫 기업인 출신 총재
  • 참고
    • 명예총재와 명예부총재 - 대한적십자사 조직법 제14조에 의하여 대한적십자사의 명예총재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고, 명예부총재는 국무총리가 된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각국 적십자사 및 적신월사의 설립으로 이어졌으며, 2011년 1월 현재 국제적십자운동내에는 186개 회원국 적십자사가 있다.
  2. 제네바협약 제정의 첫 국제회의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고, 오늘날 국제인도법의 기본이 되는 제네바 4개 협약은 거의 모든 국가들이 가입하고 있다.
  3. 이희경은 1905년 미국으로 건너가 의과(시카고 대학교)를 전공하였다. 그 후 1915년 하와이에서 병원을 개업하고 하와이에 거주하는 교포에게 의료봉사를 하는 한편 애국동지들을 도우며 조국광복의 길을 모색하였다. 1918년 1월 귀국하였다가 그 해 12월 상해로 망명하여 조국광복을 위하여 활약하던 중 1919년 5월 13일 제4회 임시정부 의정원에서 평안도 대표의원에 선출되었고, 대한적십자회 설립을 추진하면서 그 해 8월 20일에는 거류민단 사무소에서 적십자상의회를 개최, 초대 회장으로 선임되어 1919년 8월 20일부터 1921년 12월 24일까지 회장직을 수행하였다.
  4. 전 단국대 이사장
  5. 제22대 총재
  6. 제23대 총재
  7. 제24대 총재
  8. 제25대 총재
  9. 제26대 총재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