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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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표: 북위 37° 36′ 40.1″ 동경 126° 59′ 44.1″ / 북위 37.611139° 동경 126.995583° / 37.611139; 126.995583

국민대학교
Kookmin University
The emblem of Kookmin University.jpg
표어 이교위가(以校爲家), 사필귀정(事必歸正)
설립 1946년 9월 1일
종류 종합대학
설립자 신익희
총장 유지수
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위치 북악캠퍼스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로 77 (정릉3동)

평창캠퍼스(가칭)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동

규모 14 대학·1 독립학부·48개 학과(부)·14 대학원
학생 수 학부: 15,493명 (2014년)
대학원: 2,731명 (2014년)
교직원 수 전임교원: 623명 (2014) 직원: 463명(2014)
상징 용두리
학교법인 국민학원
웹 사이트 http://www.kookmin.ac.kr

국민대학교(國民大學校, Kookmin University)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3동에 있는 대한민국의 해방 이후 최초의 민족사학이다.

1946년 9월 1일 서울 창성동에 국민대학관으로 설립되었다. 독립 후 김구, 조소앙, 신익희 등 임시정부 각료들은 긴 시야에서 민족 지도자를 길러낼 필요가 있다는 데 합의하였고, 그것이 곧 국민대학교의 기치가 되었다. 국민대학교 설립의 주요인물 중 하나였던 신익희가 초대 학장으로 취임하였다.

국민대학교는 8개 본부처 및 1개 산학협력단, 37개 부속 및 부설기관과 46개 부설연구소, 14개의 단과대학 및 1개의 독립학부(교직과정부), 48개의 학과(부), 1개의 일반대학원과 3개의 전문대학원, 10개의 특수대학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민대학교에는 정문이 존재하지 않는데, 이는 자연친화적인 열린 캠퍼스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교문을 없앴다고 한다. 국민대학교의 표어인 이교위가는 '학교를 내 집같이 여기고 사랑하라.' 라는 뜻이 담겨져 있고, 사필귀정은 '올바르지 못한 일이 잠시 통용되거나 득세 할 수는 있지만,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 길로 돌아간다.' 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2014년 현재 학부생 15,493명, 대학원생 2,731명, 전임교원 623명, 교직원 463명이 재적하고 있으며 교지 보유면적과 교사시설은 각각 222,475 평방미터와 248,651 평방미터이다. 개교 이래 2014년까지 학사 85,505명, 석사 5,964명, 박사 1,007명을 배출하였다.

2016년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전국 21위, 서울 소재 대학 중 14위에 올랐다.

연혁[편집]

1946년 9월 1일 서울 창성동에서 국민대학관으로 설립하여 개교하였고, 1971년 성북구 정릉동으로 이전하였다. 1948년 국민대학으로 승격되었고, 1981년 종합대학으로 개편되었다.

1965년 중앙농민학교를 인수하여 1969년 국민산업학교로 합병하였으나 1972년에 폐지하였다. 1962년에 부설하였던 국민여자초급대학1965년 폐지하였다.

2002년 교육인적자원부에 의해 '교육개혁 우수대학,' 2007년 대교협에 의해 '대학종합평가 최우수대학'에 선정되었으며, 2014년 산학협력 선도대학(LINC) 육성사업에 선정되었다. 2015년 교육부에서 실시한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A등급 대학으로 판정되었다.

교통[편집]

역대 총장[편집]

개설 학과·전공[편집]

학부와 대학원 과정이 모두 개설되어 있으며, 2017년 학칙개정안에 의한 과정은 다음과 같다. (2017년 총정원 : 2,863명)

학부 과정[편집]

대학원 과정[편집]

북악 캠퍼스[1][편집]

  • 본부관
  • 북악관
  • 조형관
  • 법학관
  • 국제관
  • 경상관
  • 경영관
  • 형설관
  • 체육관
  • 과학관
  • 혜랑관, 휘랑관, 미랑관(기숙사)
  • 예술관
  • 7호관
  • 종합복지관
  • 공학관

산학협력관[편집]

콘서바토리관[편집]

영빈관[편집]

민주광장[편집]

성곡동산[편집]

용두리[편집]

대운동장[편집]

부속시설[편집]

명원민속관
7호관

성곡도서관[편집]

1946년 12월 개교와 함께 '국민대학 도서관'으로 발족하였고, 이어 1971년 현재의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 교사로 이전되면서 도서관으로 승격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국민대학교 설립 당시 재단이 없어 겪고 있던 재정난을 인수를 통해 혁신적인 발전까지 이룩하는데 도움을 주신 쌍용그룹의 창업자인 성곡 김성곤의 호를 따서 '성곡도서관'이라 명명되어 1993년 3월 개관하였다. 장서량은 분관인 법학도서관, 디자인도서관을 포함해 2010년 현재 모두 1,013,586권이다.[2]

명원민속관[편집]

본래 조선 말기 참정대신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내각총리대신이었던 한규설의 자택이었다. 1892년경에 지어졌으며 원래 소재지는 서울시 중구 장교동이었지만 도시 개발 계획에 철거 위기에 놓이게 되자, 김성곤의 아내인 김미희가 현재의 국민대학교 위치에 이 저택을 옮겼다. 서울시민속자료 제 7호로 지정되어 있다.

부설 어린이집[편집]

글로벌센터[편집]

기숙사[편집]

2003년에 처음 지어진 교내기숙사가 지어진 이후로 2011년에 교내 기숙사 C,D동이 층축 되었고 2013년에는 길음, 노원, 태릉 기숙사가 2015년에는 정릉 기숙사, 2016년에 제 2정릉 기숙사가 연달아 개관하였다. 2016년에는 사정상 사라진 기숙사를 제외하면 교내, 정릉, 제2정릉, 길음 기숙사를 운영중이며, 전체 기숙사에 수용하고 있는 인원은 1,753명이다.

  • 교내 기숙사는 가장 가까운 학교 건물과는 도보로 2분 거리일 정도로 가깝다. 공강시간과 아침시간의 활용에 있어서 어느 기숙사보다도 큰 장점을 갖고 있다. 수용인원은 1,016명이다. 만 이루어져있어 4명의 학생이 여유롭게 사용하기엔 매우 협소한 구조로 이루어져있다. 식당, 휴게실, 체력단련실등 많은 편의시설이 갖추고 있다.
  • 제 2정릉 기숙사는 수용인원은 196명이다.
  • 길음 기숙사는 4호선 길음역 8번출구에서 도보 5분거리에 위치해 있는 기숙사이다. 2인실부터 3인실 4인실로 취사는 불가능하다. 국민대학교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셔틀버스의 운행으로 접근이 용의하다. 수용인원은 297명이다. 길음 뉴타운이 근접해 있어 도보 10분거리에 다양한 음식점과 편의시설들이 주변에 위치해 있다. 2인실, 3인실, 4인실로 다양한 구성되어 있고 기숙사 건물이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는 만큼 탁트인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4인실은 교내 기숙사보다는 넓찍한 공간으로 학생들끼리 개인적인 자유로운 생활이 가능하다. 공과금이 별도로 측정되지 않는다.

(가칭)평창 캠퍼스[편집]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동 일대에 조성 예정인 캠퍼스이다.

주요 학내 단체[편집]

  • 국민대신문 : 《국민대신문》은 현재 반월간으로 발행되며, 1948년 12월 18일에 국민대학보(國民大學報)로 창간되어 3호까지 발간 후 정간했다가 1959년 7월에 국민대학월보(國民大月報)로 명칭을 바꾸어 복간, 29호까지 발간되었다. 그 후 1962년 5월에 국민대학보로 제호를 환원하여 2003년 1월까지 발행되었다. 이어 2003년 3월에 현재의 이름으로 제호를 바꾸었다. 2012년 1월 1일 신년호부터 국민대신문의 판형을 학내 구성원의 여론을 수렴하여 기존 대판에서 베를리너판으로 지면의 크기를 변경하고 제호 디자인도 현대 감각에 맞게 새로이 제작하였다. 국민대신문은 정확성·공정성·창의성을 바탕으로 본교 공동체의 원활한 의사소통과 대외홍보, 바람직한 대학문화의 창달, 그리고 학술·언론문화의 창달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현재 취재부, 사회부, 문화부로 구성돼 있는 국민대신문은 창간 이래 60여 년 동안 국민대학교의 역사를 기록해 오고 있다. 한편 정기적인 신문 발간 이외에도 1976년에는 자체적인 문학상인 국민문학상을 제정하여 시상하기 시작, 1979년에 북악문화상(北岳文化賞)으로 개칭 및 시상범위를 확대하여 매년 문학·학술 분야에 걸친 현상 공모를 하고 있다.
  • 국민리뷰(The Kookmin Review) : 《국민리뷰》는 1975년 3월 15일 《국민타임스(The Kookmin Times)》를 제호로 창간된 영자신문을 모체로 한다. 현대적인 감각을 살리기 위하여 1976년 9월호(제12호)부터 제호를 《국민타임스헤럴드(The Kookmin Times Herald)》로 변경하였고, 1980년 5월 19일 계엄 확대에 따른 휴교 조치에 즈음하여 제호를 《국민트리뷴(The Kookmin Tribune)》으로 변경하였다. 1987년부터는 신문의 판형을 기존의 타블로이드판에서 스탠더드판으로 바꾸면서 지면의 크기가 확대됐다. 그 후 1993년 8월부터 슈퍼 타블로이드판으로 판형을 바꿔 발행했다. 1995년 3월호(제145호)부터 발행을 월간에서 계간으로 바꾸고, 판형도 슈퍼 타블로이드판에서 32쪽 매거진판으로, 제호를 오늘날의 《국민리뷰(The Kookmin Review)》로 바꾸고 전체 36쪽의 잡지를 연간 4회, 호당 5천 부씩 2002년 6월(164호)까지 발간하였다. 2002년 10월(165호)부터는 판형을 슈퍼 타블로이드판으로 변경하여 한 학기에 3회 발행하고 있다. 페이스북 페이지는 facebook.com/thekookminreview 이며 블로그 주소는 kmreview.egloos.com이다.
  • 북악방송국(BBS; Bukak Broadcasting Service) : 정의와 진리를 추구하는 사명을 목표로 두고 있는 《북악방송국》은 대학 생활을 조화롭고 윤택하게 하여 정서 함양에 이바지하고, 긴급을 요하는 중요 사항이나 공지 사항을 학내 구성원에게 방송을 통하여 전달하는 임무가 있으며 방송을 통한 학생들의 복지 증진과 순수한 대학 문화 창달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1973년 4월에 발족하였으며 1976년 3월 방송국의 직제 개편으로 호출부호 《KUBS》를 《BBS(Bukak Broadcasting Service)》로 개칭하였다. 1975년 5월 방송국 출력을 300w, 1978년 9월 1kw로 증설하였다. 1984년 9월에는 대담용 고성능 기재 등을 도입 보강하였고 완전방음 스튜디오 및 네트워크를 신설하였다. 이어 1993년 6월 방송국 출력을 1.5kw로 늘리는 등의 기술적 개선을 이뤄냈다. 2002년에는 교내 네트워크 설비를 교체하고, 방송기기도 새로이 구입하여 교내 전역에 양질의 방송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2013년 3월 2일 현재 방송 시간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방송(오전 8시20분~8시50분), 낮 방송(오후 12시10분~12시50분), 저녁 방송(오후 5시20분~5시50분)으로 하루 세 차례에 걸쳐 100분간 교내 스피커를 통하여 정규방송을 하고 있다. 2015년부터 영상 방송을 실시하고 있다.
  • 국민저널(The Kookmin Journal) : 《국민저널》은 국민대신문사와 북악방송국에서 해직 또는 면직된 기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2012년 9월 12일 창간한 학생 자치 언론이다. 학교 본부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고 주간교수가 존재하는 신문방송사와 달리 학생들이 독자적으로 편집권을 행사하며, 재정 운용·기획·취재·기사 교정·인쇄 감독·배포·홍보 등 운영의 전(全) 과정을 직접 담당한다. 초창기 타블로이드판 단색 8면으로 발행하다가 2013년 3월부터 타블로이드판 단색 16면 형태로 발행하고 있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여 평시 사안별, 이슈별 기사를 생산하며 심층 보도 기사, 분석 기사를 추려 학기 중 매월 말(1년에 약 8회) 인쇄 신문을 발행한다. 2013년 6월 현재 《국민저널》제작위원회 휘하에 편집국과 운영국으로 나뉘어 총원 10명의 구성원이 활동하고 있다. 2013년 2월 5일 대학언론의 단결과 발전에 공헌한 노력을 인정받아 제4회 《시사iN》 대학기자상 특별상[3] 부문을 수상했다. 이어 2014년 1월 6일 《국민저널》 박동우 취재부장이 ‘예술대 지 아무개 교수 비리 추적 연속 보도’로 제5회 《시사iN》 대학기자상 학내취재보도상을 수상했다.

협정대학[편집]

협정대학 개요[편집]

2015년 현재 51개국 357개 학교와 협정을 맺고있다. 학교명등 기타 자세한 교류내용은 국민대학교 국제 교류팀 사이트를 참조.

복수학위 프로그램[편집]

미국의 오리건 대학교(University of Oregon)와 호주 선샤인 코스트 대학(University of Sunshine Coast)과 복수학위 과정을 실시하고 있으며, 전자정보통신대학에서는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교(Illinois Institute of Technology), 행정정책학부에서는 미국 미주리대학교 세인트루이스캠퍼스(University of Missouri, St Louis)로의 복수학위 과정을 실시하고 있다.

에피소드[편집]

오자와 이치로 강연[편집]

2009년 12월 12일 오자와 이치로 일본 민주당 간사장은 국민대학교를 방문하여 ‘새로운 한·일 관계와 그 역할을 담당할 지도자 육성’이란 주제로 강연을 하였다. 이는, 일본의 정치가가 대한민국의 대학에서 처음 강연을 한 것으로,[4] 2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오자와 이치로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미래설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5][6][7]

박사학위 논문 표절 사건[편집]

국민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전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 문대성씨의 학위 논문이 표절한 것이라는 의혹이 2012년 3월에 제기 되었다. 이에 국민대는 2012년 4월 4일 연구윤리위원회를 열어 문대성씨의 박사학위를 철회하는 것을 검토한다고 하였다.[8]

비상학생총회 4년만의 소집 요구, 24년만의 성사[편집]

2016년 11월 30일 오후 1시 40분경 국민대학교 대운동장에선 국민대학교 비상학생총회(이하 비상총회)가 성사됐다. 인원은 개회 당시 1,076명으로, 의장은 개회가 성사됨을 알렸다. 그리고 비상총회가 개회됨으로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국민대 결의안>은 회칙에 따라 의결됐다. 다만 의장 발언과 학생들의 자유 발언이 이어지면서 결의문 낭독 시엔 540여 명의 학우만 참석해 있었다.

이 비상총회에서 국민대 학생회 처음 성사된 것이라고 알렸다. 그래서 제1회라고 덧붙여 말하기도 했다. 물론 엄밀히 얘기해선 사실이 아니다. 이전에도 비상총회는 성사된 적이 있다. 다만 매우 오래전의 일이기에 자료가 소실돼 명맥이 끊긴 문제가 있었다.

맨 처음 학생총회는 71년에 성사됐다. 국민대 신문 보도에 따르면 천여 명이 참석했으며 학생들의 건의 내용이 총회의 주를 이뤘다. 선후배 관계를 원만히 하고 국민대생들의 단결을 원한다거나 서관에 도서 대출증을 만들고, 학교 버스운영 완화 등으로 당시 학생총회는 공청회의 의미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이후 1980년엔 비상계엄 즉각 해체, 유신헌법 철폐 등을 두고, 1985년에는 학생자치기구의 인정투쟁으로 등으로 비상총회를 성사시켰다. 그리고 87, 88년 91년에 지속해서 비상총회가 성사되다, 92년 학생총회 성사를 마지막으로 24년간 학생총회는 모두 무산됐다.

국민대 신문 보도에 따르면, 2000년, 2003년, 2004년에는 모두 등록금 관련 비상총회 소집 요구가 있었지만 참여 저조로 모두 무산됐다.

이후 2012년 5월 17일, 논문 표절로 드러난 문대성, 염동열 당선자에 대한 대응에서 비롯한 비상총회 소집 요구가 있었다. 하지만 국민대 신문 보도에 따르면 정족수 1천518명에 훨씬 못 미치는 67명으로 총회 개회는 무산됐다.

갑자기 비상총회 소집 요구가 발의된 이유는 동맹휴업에 있다. 전국대학생시국회의는 박근혜 퇴진 촉구를 위한 동맹휴업을 대학가에 제안했다. 이에 국민대 학생회는 21일 제29차 중앙운영위원회에서 논의했으며 그 결과 동맹휴업은 여건상 하지 않는 대신 총궐기와 범국민대회에 참여하고, 29일 학내 집회 개최로 논의됐다. 하지만 이후 29일 학내 집회는 30일 비상총회 소집으로 변경됐다.

이런 일정에 대해 이성훈 제48대 공감 부총학생회장은 “학생사회에서 동맹휴업이라는 개념은 조금 낯설다고 생각했다.”며 “그러므로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준비해야 하는데, 여건상 조금 힘들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동맹휴업은 아니지만, 그동안 잘 열리지 않았지만 중한 무게를 가지고 있는 비상총회 개최를 생각했다.”고 일정 변경 이유를 밝혔다.[9]

북악가족한마당 기념행사 개최[편집]

2016년 10월 28일(금) 대운동장에서 학교 본부와 총학생회가 개교 70주년을 맞아 북악가족한마당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이 행사에는 정릉3동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배밭골 위원장 등 지역사회와 관련된 여러 외빈이 참석했다. 개막식을 알리는 미디어 파사드의 주제는 “혁신의 70년, 국민*의 미래-변화, 기회, 도전”으로 학교의 설립부터 발전 과정까지 70년 역사를 되돌아보고 학교가 추구하는 인재상을 특수 기법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다 함께 앞으로 나아가자는 국민대의 의지와 열정을 표현했다. 행사를 총괄 기획한 김인준 학생처장은 “이번 미디어 파사드는 70년의 험로를 헤치고 세월을 달려온 과거의 모습을 돌아보고 학교의 상징인 쌍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며 미래로 도약하는 모습을 담았다”며 “도전하는 국민*인을 외치며 모든 교내 구성원이 한마음으로 정진해 나아간다는 국민*인의 정신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10]

출신 유명인[편집]

정치계[편집]

종교계[편집]

언론계[편집]

예술계[편집]

각주[편집]

  1. http://www.kookmin.ac.kr/FUNC/cybertour/cybertour.php?language=korean
  2. 대학알리미 교육여건 참조
  3. “‘안티 팬’이 더 많은 진짜 독립언론 탄생”. 
  4. 일본민주당 공식사이트 관련기사1 중반부 참조
  5. 일본민주당 공식사이트 관련기사1
  6. 일본민주당 공식사이트 관련기사2
  7. 국민대학교 관련기사 참조
  8. 국민대 “문대성 후보 박사학위 철회 검토
  9. 국민대학교 학생자치언론 국민저널
  10. 국민대학교 신문사 국민대신문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