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드로 윌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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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로 윌슨 노벨상을 수상한 인물 또는 단체입니다.
Thomas Woodrow Wilson
우드로 윌슨
우드로 윌슨
미국 미국제32·33대 대통령
(28번째 대통령)
임기 1913년 3월 4일 ~ 1921년 3월 3일
부통령 토머스 R. 마셜
후임: 워런 G. 하딩(제34대)

출생일 1856년 12월 28일
출생지 미국 미국 버지니아 주 스토턴
사망일 1924년 2월 3일 (67세)
사망지 미국 미국 워싱턴 D.C.
정당 민주당
학력 프린스턴 대학교
버지니아 대학교 법학대학원 (졸업하지 않음)
존스 홉킨스 대학교
종교 장로교
배우자 엘렌 루이스 액슨 윌슨
에디스 볼링 골트 윌슨
서명 Woodrow Wilson Signature 2.svg

토머스 우드로 윌슨(Thomas Woodrow Wilson, 1856년 12월 28일 ~ 1924년 2월 3일)은 미국의 28번째 대통령이자 프린스턴 대학 총장을 지낸 학자, 교육자이다. 남북 전쟁 이후 미국의 대통령에 당선된 첫 남부 출신이기도 하다. 원래 우드로 앞에 토마스라는 이름이 있었지만, 나중에 어떤 이유로 떼버렸다.[1] "유럽의 문제에 관여하지 마라"는 조지 워싱턴의 고립주의를 버리고, 유럽의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한 첫 번째 미국의 대통령으로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다. 그는 민족자결주의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린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된다.

업적[편집]

그의 초상이 들어간 10만달러 지폐

그의 외교 정책은 19세기까지 국제 정치를 지배하던 "힘의 균형" 원리에 대립되는 도덕주의와 이상주의를 내세웠으며, 이런 이념을 바탕으로 독일에 대해 연합국의 도덕적 명분과 이상을 내세웠다. 1차 대전 이후에 설립된 국제 연맹도 윌슨의 이런 정치적 신념에 기초한 것이었지만, 다시 고립주의 전통으로 복귀를 결정한 미국 의회국제 연맹 조약 비준을 거부함으로써 좌절되었다.

미국 행정학의 아버지[편집]

윌슨은 19세기 말에 미국 정치를 좌지우지하던 엽관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와 행정의 분리를 골자로 하는 펜들턴 법을 제정하였으며, 행정을 정치 권력적 현상이 아닌 관리 기술로 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정치행정이원론을 주장했다.

그는 1887년에 《행정의 연구》라는 저서를 통해 이러한 이론을 발표했는데 이는 사실상 미국 내에서 행정학정치학으로부터 독립된 개념의 학문으로 보는 최초의 이론이기 때문에 우드로 윌슨을 '미국 행정학의 아버지'라 부르기도 한다.

연방준비제도 비준 (1913년)후 자신의 행적에대한 회고[편집]

"한 위대한 공업 국가는 신용 시스템으로 단단히 통제된다. 이 신용 시스템은 고도로 집중되어 있다. 이 나라의 발전과 우리의 모든 경제 활동은 완전히 소수에 의해 좌우된다. 우리는 가장 악랄한 통치의 함정에 빠져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완벽하고 가장 철저한 통제를 받고 있는 것이다.

정부에게는 더 이상 자유로운 발언권이 없으며, 죄를 다스릴 사법권도 없다. 이제 다수 의견으로 선거하는 정부가 아니라 극소수의 지배권을 가진 자의 강압으로 움직이는 힘없는 정부다.

이 나라의 많은 상공업계 인사는 하나같이 모종의 대상을 두려워한다. 보이지 않는 이 권력이 얼마나 조직적이고 은밀하며, 얼마나 무소불위하고, 얼마나 상호 결탁이 잘되어 있으며, 얼마나 철저하고 완벽한지 사람들은 감히 이 권력을 공개적으로 비난하지 못한다."

비판[편집]

윌슨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10만 달러 초상화의 주인공도 되었으나 좋지 않은 면도 많았다. 우선 민족자결주의는 세계식이 아닌 미국식 잣대로 본 세계평화론으로, 이는 어디까지나 제1차 세계 대전 승전국들이 패전국들의 식민지를 자신들이 가로채려고 만든 것이었다.

백인우월주의자라는 의혹을 받기도 한 그는 흑인을 탄압하지는 않았지만, 흑인에 대해 벌어지는 범죄에 무관심했다는 비평을 받았다. 또한 그 민족자결주의 혹은 민족자결권이란 것도 윌슨이 주장하기 1년 전 러시아 혁명 정부가 발표한 민족자결권 선언에 맞대응하기 위해 나온 것에 불과했으며, 그 내용도 러시아 혁명 정부의 것보다 빈약했다는 평 또한 존재한다.[2]

또한 그가 세계를 융통성 있게 바라보고 의회와 타협하여 국제 연맹에 가입했다면 제2차 세계 대전도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있다.[1].

사망[편집]

1924년 2월 3일, 향년 68세로 사망했다.

주석[편집]

  1. 《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미국3 - 대통령 편). 이원복 저.
  2. 《혁명을 꿈꾼 시대》. 장석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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