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시즈 S. 그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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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 심프슨 그랜트
Ulysses Simpson Grant
율리시스 심프슨 그랜트
율리시스 심프슨 그랜트
미국 미국제21·22대 대통령
(18번째 대통령)
임기 1869년 3월 4일 ~ 1877년 3월 3일
부통령 스카일러 콜팩스
헨리 윌슨
전임: 앤드루 존슨(제20대)
후임: 러더퍼드 B. 헤이스(제23대)

출생일 1822년 4월 27일
출생지 미국 미국 오하이오 주 포인트플레젠트
사망일 1885년 7월 23일 (63세)
사망지 미국 미국 뉴욕 주 마운트맥그래거
정당 공화당
학력 미국 육군사관학교
종교 감리교
배우자 줄리아 덴트 그랜트
자녀 제시 그랜트
율리시스 심프슨 그랜트 2세
네빌 그랜트
프레드릭 그랜트
서명 Ulysses S Grant Signature.svg

율리시스 심프슨 그랜트(Ulysses Simpson Grant, 1822년 4월 27일 ~ 1885년 7월 23일)는 미국의 18번째(1869년-1877년) 대통령이자 장군이다.

초기 생애[편집]

오하이오 주에서 가죽 가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쯤에는 감리교에서 '하이럼 율리시스'(Hiram Ulysses)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으나, 육군사관학교 입학 후, 율리시스 심프슨 그랜트으로 개명하였다.

멕시코-미국 전쟁[편집]

1843년웨스트포인트 육군 사관 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임관하였으며, 1846년에는 멕시코 전쟁에 참전하여 공을 세웠다. 그러나, 성격이 내성적이던 그랜트는 결혼 후,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알콜중독증에 시달렸으며, 이로 인하여 1854년에 불명예 퇴직당하였다.

남북전쟁[편집]

1861년남북 전쟁이 시작되자, 그랜트는 다시 준장으로 군에 복귀, 남부군이 차지하고 있던 헨리요새와 도넬슨요새를 점령하였다. 여기서 그랜트는 적에게 무조건 항복과 전투 중에 선택하라고 하여 별명이 'Unconditional Surrender' 즉, 무조건 항복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빅스버그 전투에서도 큰 전과를 세우자 당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그랜트를 북부군 총사령관에 임명하였다. 그랜트는 게티즈버그 전투 이후 사기가 꺾인 남부군을 몰아붙였으며, 그리하여 1865년에 애포매톡스에서 남부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의 항복을 받아내었다.

정치 입문[편집]

링컨 암살 후, 앤드루 존슨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였고, 그랜트는 국가군통수 대원수 겸 육군참모총장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존슨은 의회의 탄핵을 받았고 그랜트는 당시 여당인 공화당의 눈길을 끌어 1868년 선거에서 제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랜트는 대통령이 되자 빈부격차와 인종차별 등 극심한 문제에 시달리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정부 각료들과 그의 비서들이 공공연히 뇌물을 주고받는 사태와 대규모 금융 스캔들이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전쟁영웅인 그의 이미지는 완전히 추락하였으나, 1872년의 선거에서 재선되어 많은 국민들이 의아해 할 정도였다.

대통령 임기 이후[편집]

백악관을 떠난 뒤에는 친구 퍼니낸드 워드가 경영하는 중개회사에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었다가 사기를 당해 알거지 신세가 되어 1884년 파산 선언을 했다. 같은 해 <센추리 매거진> 지에 남북 전쟁 회고담을 쓰기 시작해 자서전을 준비했다. 그랜트는 사망 직전에 자서전을 완성했고 그 자서전은 미국 군 역사상 최고의 자서전 중 하나로 평가되며 친구 마크 트웨인과 출판 계약을 맺어 당시 화폐로 50만 달러의 저작권료를 받았다.

1885년 7월 23일 후두암으로 63세의 생애를 마쳤다. 사망 당시 몸무게는 108킬로그램으로, 미국 역대 대통령 중 4번째로 뚱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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