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 (18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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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
李甲
생애 1877년 음력 5월 12일1917년 양력 6월 13일 (41세)
출생지 조선 평안도 평원
사망지 러시아 제국 프리모르스키 주 니콜리스크
본관 경주(慶州)
별명 아명(兒名)이휘선(李彙璿)
아호(雅號)는 추정(秋汀)
종교 유교(성리학) → 개신교
부모 이응호(부)
배우자 경주 박씨 부인
자녀 이정희(딸)
친척 형 2명
누이 2명
남동생 1명
사위 이응준(前 육참총장)
외손자 이창선(육군 중령 예편)
외손서 이형근(前 합참총장)
복무 대한제국 육군
복무 기간 1900년 ~ 1907년
최종 계급 대한제국 육군 참령
지휘 조선 육군 작전장교
주요 참전 대한제국 조선 고종 황제 폐위 반대 투쟁
서훈 내역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기타 이력 중화민국 만저우 지방 헤이룽장 성 무단장 부 무링 현에서 대한국인 국민회 원동지회장으로 재임

이갑(李甲, 1877년 음력 5월 12일 ~ 1917년 양력 6월 13일)은 대한제국 조선 왕조육군 장교 및 항일 무관(抗日 武官)이며 일제 강점기 초기의 항일 독립운동가이다.

생애[편집]

일생[편집]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아명(兒名)은 이휘선(李彙璿)이고 호(號)는 추정(秋汀)이다.

평안남도 평원 출생이며 평안남도 숙천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1896년독립협회에 가입하고 1898년만민공동회가 개최될 때도 주도적으로 참여한 개화파였다. 이후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유학하여 대한제국 육군 장교로 복무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무관직에서 물러나 애국계몽운동 계열에서 활동하였다. 1906년서우학회를, 1908년에는 서북학회를 창립하였으며, 서북협성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독립 운동[편집]

1907년신민회를 창건하고 1910년에는 러시아 영토로 망명하였다. 선생은 군부 교육국 교무과장을 지내던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이 일어나자 황제 폐위 반대투쟁을 전개했다. 대한제국 군대 해산 뒤에는 일본 육사 출신 군인 유동열, 김희선, 노백린 등과 함께 군대 부활을 위해 노력했다.

최후[편집]

1910년 신민회 인사와 함께 망명한 선생은 수수명의 러시아 외교관, 정치가와 교류하고 현지에 한인 청년 양성소를 만드는 등 독립운동 기지 개척에 힘쓰다 니콜리스크에서 41세의 나이로 숨졌다.[1]

사후[편집]

  •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학력[편집]

가족 및 친척 관계[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1월의 독립운동가 이갑(李甲)선생 정책브리핑(2011.12.30) 기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