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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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근
1951년의 이형근
1951년의 이형근
생애 1920년 11월 2일 ~ 2002년 1월 13일
출생지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공주군
사망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복무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 육군
복무 기간 1942년 ~ 1959년
최종 계급 일본군 대위/대한민국 육군 대장
근무 육군본부, 합동참모본부
지휘 육군참모총장, 합동참모의장
주요 참전 태평양 전쟁, 한국 전쟁
기타 이력 외무부 본부 대사

이형근(李亨根, 1920년 11월 2일 ~ 2002년 1월 13일[1])은 일본대한민국군인, 대한민국의 외교관이다. 본관은 공주, 호는 청재(靑哉). 창씨개명 당시의 이름은 마쓰야마 다케오(松山武雄). 초대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이응준의 사위이다.[2] 대한민국 국군 초기 창군 주역이자 원조(元祖)로 평가받는다.[3]

생애[편집]

이형근은 1920년 충청남도 공주에서 출생하였고,[4] 1942년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56기로 졸업하였고 그 후 일본 육군야전포병학교를 졸업하였다. 일본군 포병 대위로 복무하다가 태평양 전쟁 종전을 맞았다.[5]

종전 후 1945년 12월 5일 군사영어학교 1기생으로 입교 신청을 하였지만, 뛰어난 영어능력으로 UNGHQ로부터 면제를 받았다. 1기로, 대한민국 육군 사상 최초로 대위로 임관하였다.(1946년 1월 15일)[6] 그는 대한민국 국군의 상징인 "군번1번"인데,[7] 당시 군번은 유엔군사령부에서 각국의 참모들의 의견들을 받아들여 엄격히 정해진 것으로 최고사령관의 1번을 의미하였다. 문제는 이형근은 군번 "1번"이라는 문제 때문에 자신이 군번 1번이 되고 싶었던 채병덕과 불구대천지 원수지간이 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임관 후, 그는 남조선국방경비대 제2연대장을 맡았다.[8] 이어서 1946년 5월 1일에 초대 조선경비사관학교 교장을 맡았고, 잠시 남조선국방경비대 총사령관 대리를 겸하였다(1946년 9월 28일 ~ 1946년 12월). 1948년 6월에는 통위부 참모총장[9]이 되었고, 대한민국 국군으로서는 최초로 미국에 건너가(1948년 8월) 미국의 군사시설을 시찰한 바 있다.[10] 육군 제8사단장(1949년 6월 20일)을 맡았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후방인 육군 제2사단장에 임명(1950년 6월 18일)되어 대전의 사단 본부로 부임(6월 20일)하였고 부대 순시를 마치기도 전에 전쟁 발발 소식을 접했다(6월 25일 8시).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김백일(金白一) 대령으로부터 “지금 적이 전면남침하고 있으니 병력을 끌고 빨리 올라와 달라.”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11][12] 1950년 10월에는 육군 제3군단장, 1951년 8월에는 육군본부 교육총장을 맡았으며, 1951년 9월에 초대 휴전회담 대표로 참여하였고, 한국군이 북진을 계속하던 1952년 1월에는 육군 제1군단장을 맡았다. 이때부터 그는 동부전선에 진출했다. 유명한 “351고지 전투”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으며 휴전당시 동부휴전선을 38선에서 북쪽으로 훨씬 밀어 올려둔 것도 그의 공이 컸다.[13] 진급을 거듭한 끝에, 종전 후인 1954년 2월 14일 정일권 장군과 동시에 사성(四星)장군이 되었다. 초대 대장인 백선엽 장군의 뒤를 이어 두 번째의 대장이 된 셈이다.[14] 1954년 2월 초대 합동참모총장, 1956년 6월에는 제9대 육군참모총장이 되었다가 스스로 물러났다.(1958년 5월)[15] 1959년 8월 6일에 대장으로 예편하였다. 예편한 이래 재향군인회회장으로서 예비역 군인들을 지도해오다가 1961년 6월 주필리핀 특명전권대사를 거쳐 주영(駐英)대사를 지냈다.[16]

그 밖에, 미국 육군보병학교와 미국 육군참모대학교도 졸업하였다. 그는 한국 전쟁 당시 10대 미스터리를 제기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사후[편집]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군 부문에 선정되었다.

가족[편집]

학력[편집]

각주[편집]

  1. 《동아일보》 (2002.1.14) 이형근 전합참의장 별세
  2. “일제괴뢰 만주국서 끈끈한 '군맥' 다져 - 해방후 군부장악.. 5.16때 정치 전면에”. 세계일보. 2007년 10월 18일에 확인함. 
  3. “退役大將② 李亨根”. 경향신문. 
  4. “退役大將② 李亨根”. 경향신문. 
  5. “退役大將② 李亨根”. 경향신문. 
  6.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 1940년대편 1권》(2004) 196쪽.
  7. “退役大將② 李亨根”. 경향신문. 
  8.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 1940년대편 1권》(2004) 196쪽.
  9. “統衛部發表”. 동아일보. 
  10. “退役大將② 李亨根”. 경향신문. 
  11. 韓國戰爭史 第1卷(改訂版) 北傀의 南侵과 緖戰期》 〈第3章 北傀의 全面南侵 4. 抱川-東豆川-議政府地區 戰鬪〉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戰史編纂委員會) (1977, 개정판) 356쪽.
  12. “6ㆍ25를 회고한다-이형근”. 동아일보. 
  13. “退役大將② 李亨根”. 경향신문. 
  14. “退役大將② 李亨根”. 경향신문. 
  15. “退役大將② 李亨根”. 경향신문. 
  16. “退役大將② 李亨根”. 경향신문. 

참고자료[편집]

전임
러셀 베로스
남조선 국방경비대 총사령관 직무대리
1945년 9월 28일 ~ 1946년 12월
후임
송호성
전임
(초대)
초대 연합참모본부총장
1954년 5월 5일 ~ 1956년 6월 27일
후임
정일권
전임
정일권
제9대 육군참모총장
1956년 6월 27일 ~ 1957년 5월 17일
후임
백선엽
전임
백선엽
육군참모총장 권한대행
1959년 2월 23일 ~ 1959년 8월 6일
후임
송요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