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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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성
宋虎聲
Song Ho seong.jpg
생애 1889년 ~ 1959년 3월 24일 (71세)
출생지 조선 함경도 함주
사망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남도 평양특별시 양덕군에서 병사
자녀 송무성(아들)
복무 대한민국 대한민국 육군
복무 기간 1914년 ~ 1950년 5월 12일
최종 계급 ROK army Junjang.svg 준장(准將)
근무 조선경비대 총사령관
육군 총사령관
육군 제5사단장
육군 제2사단장
육군 태백산지구 전투사령관
주요 참전 제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기타 이력 한독당 광복군군사행정위원장(1943년)
통위부 차장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

송호성(1889년 ~ 1959년 3월 24일)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군인이다.

학력[편집]

생애[편집]

그는 광복군 훈련처장을 거쳐 광복군 지대장을 역임하였다. 1946년 12월 대한민국 육군의 전신인 조선경비대 초대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가, 정부수립후 조선경비대가 대한민국 국군으로 확대·개편되면서 육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1] 대한민국 육군 창군 주역의 한 사람이다.

육군 총사령관 직위에서 밀려난 이후에는, 통위부 차장(1948년 6월),[2] 1949년 3월 호국군 사령관, 육군 제5사단장(1949년 5월 12일)[3], 1949년 7월 12일을 기하여 육군 제2사단장(육군 태백산지구 전투사령관 겸임), 1950년 2월 참모학교를 수료하고, 1950년 5월 12일을 기하여 대한민국 육군 준장으로 예편, 이후 1950년 6월 10일 청년방위대 고문단장을 역임하였다.[4]

김구의 측근으로, 김구의 암살과 함께 권력에서 밀려나며 1950년 5월 12일을 기하여 대한민국 육군 준장으로 강제 예편되었다. 한국 전쟁 발발 직후, 한강 인도교 폭파로 인해 남하하지 못하고, 납북되었다. 1953년 인민군 해방전사 여단장을 지냈고, 1956년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을 지냈다. 1954년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혀 1958년 평남 양덕으로 유배되었고, 1959년 뇌출혈로 사망했다.[5]

통일신보 2018년 3월 13일 자의 기사에 의하면 1956년 5월 중순 송호성은 재북인사로서 내각청사에서 김일성주석의 접견을 받았으며 또 1957년 10년에는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으로 활동하뎐 중 김일성주석을 다시 만나 조국통일에 앞장서 달라는 당부를 받았다.

그는 1959년 3월 70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김일성 주석은 그의 장례를 사회장으로 치르도록 하였고,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위한 애국의 길을 걸은 그를 기려 조국해방 45돐이 되는 때에 조국통일상을 수여하였다. (주일봉 기자, 통일신보 2018년 3월 13일)

참조[편집]

  1. 한국전쟁사 1권 해방과 건군, p270
  2. “統衛部發表”. 동아일보. 1948년 6월 19일. 
  3. “각 여단을 사단을 승격”. 동아일보. 1949년 5월 20일. 
  4. 한국전비사 상권, p538-539
  5. 이정훈, 北으로 간 장군 아버지, 대만 스파이 된 아들 Archived 2014년 2월 22일 - 웨이백 머신 주간동아

외부 링크[편집]

전임
이형근
(직무대리)
제3대 국방경비대 최고사령관
1948년 6월 15일 ~ 1948년 11월 20일
전임
원용덕
제2대 국방경비대 육군 총사령관
1946년 12월 13일 ~ 1948년 8월 15일
후임
송호성
(대한민국 육군 총사령관)
전임
송호성
(국방경비대 육군 총사령관)
제1대 대한민국 육군 총사령관
1948년 8월 15일 ~ 1948년 11월 20일
후임
이응준
전임
이응준
제2대 통위부 차장
1948년 6월 19일 ~ 1948년 7월 27일
후임
(미군정 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