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1월 조소앙 등에 의하여 임시정부 산하 정당으로 창당되었다. 1935년 5월 해체를 선언한 뒤, 신한독립당·의열단·조선혁명당·대한독립당과 함께 민족혁명당(1935.7)으로 통폐합 합병되었다. 하지만 민족혁명당이 사회주의 계열의 김원봉과 의열단계에 의해 주도되어가자 조소앙 등은 9월 하순에 민족혁명당을 탈당하고 한국독립당(1935.9.25)을 재건하였다. 한편 민족혁명당에 참가하는 데 반대했던 김구는 한국국민당(1935.11)을 창당했다. 1937년 3월에 지청천 역시 민족혁명당을 탈당하고, 조선혁명당(1937.4)을 창당했다. 한국독립당은 위의 두 당과 합당을 논의하여 1937년 8월 1일에 우익계열 독립운동 단체들의 연합체인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를 결성하였다. 1939년 9월에는 한국독립당을 포함한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 산하 단체들과 좌익계열 독립운동 단체들의 연합체 조선민족전선연맹 산하 단체들 간의 통합 논의가 진행되어 좌우익을 아우르는 독립운동 단체들의 연합체 전국연합진선협회가 결성되었다.
이후 중일전쟁 도중인 1940년5월충칭으로 옮겨온 뒤 우익 3당 한국국민당,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 간의 통합을 이루어 김구를 중심으로 한 한국독립당으로 개편되면서 임시정부의 여당이 되었다. 1942년 10월 김원봉의 민족혁명당(조선민족혁명당)이 임시정부에 참가한 이후로는 좌익계열과도 협력하며 지금의 야당역할도 했다.
한국민주당과 함께 양대 보수정당이었으며 1946년4월 18일 국민당 등을 흡수 통합하였다.
그러나 1947년6월초 김규식 및 여운형과 노선을 같이하던 한독당 내의 안재홍, 박용희, 조헌식, 이의식, 이승복, 장지필, 엄우룡 등 구 국민당 세력은 김구 등의 반탁 노선에 반기를 들고 미소공위의 성사를 위해 한독당을 탈당하였다. 이들은 '우리 민족의 총의인 자주독립을 쟁취키 위해서는 기동성 있는 총명 과감한 발전적 투쟁을 요한다' 면서 미소공위에 지지를 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2][3] 1947년 6월 미소 공위의 참석에 찬성하는 혁신파와 민주파는 한독당을 이탈하여 신한국민당과 민주독립당을 결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