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환 (18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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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요인들과 함께. 뒷줄 오른쪽 두 번째 서있는 사람이 조성환

조성환(曺成煥, 1875년 ~ 1948년 10월 7일)은 대한제국의 군인이자 일제 강점기 한국독립운동가이다.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호는 청사(淸史)이다. 가명은 조청사였다.

생애[편집]

생애 초기[편집]

조성환은 1875년 한성에서 태어나 무관학교에 입학하였다. 이 곳에서 부패한 장교들에게 항의하다가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독립운동에 투신[편집]

이후 1907년에는 양기탁, 전덕기, 이동녕, 김구 등과 함께 신민회를 조직하는데 가담하였고, 헤이그 특사 사건에 일조하였다.

1943년 5월 중경에서 열린 '재중 한인대회'에서. 조성환 (윤기섭과 차리석 사이에 안경쓴 사람)

한일 합방 이후에는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1912년에는 만주에 온 일제의 총리 가쓰라 다로를 암살하려다 실패해 옥살이를 하였다.

임시정부 참여[편집]

1919년 4월 상하이에서 임시의정원 의원이 되고, 상하이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국무위원으로 취임하였다.

1926년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취임하였다. 1927년 8월 임시정부의 내각이 개편될 때 다시 국무위원으로 추대되었다.

광복군 창설[편집]

맨 앞줄 좌로부터 (박찬익, 조완구, 김구, 이시영, 차이석
두 번째 줄 맨 왼쪽 성주식, 오른쪽 김붕준
맨 뒷줄 왼쪽부터 조성환, 조소앙, 이청천, 이범석, 이름 미상

1935년 10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장에 선출되었다.[1]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위원, 군무 총장 등을 지내며 광복군 창설에 힘을 쏟았다. 1940년 9월 임시정부가 충칭으로 이동한 뒤 국무위원 겸 군무부장에 선출되었고, 9월 한국 광복군 창설에 참석하였다.

귀국 후[편집]

1945년 12월 3일. 임시정부요인 귀국기념 사진.
오른쪽 앞줄 끝이 조성환

해방이 된 이후에는 45년 11월 귀국,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12월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위원장이 되고 신탁통치 반대 운동에 참여하였다. 그 뒤 46년 6월 29일 이승만, 김구 등에 의해 민족통일총본부(民族統一總本部) 10인협의회 위원으로 선출되었고, 이어 민족통일총본부 협의원에 지명되었다.

최후[편집]

이후 우국노인회 총재 등을 지내며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1948년 병으로 사망하였다.

사후[편집]

기타[편집]

그의 자택은 낙산장(駱山莊)이라 불렀다.[2]

함께 보기[편집]

각주[편집]

  1. 하련생, 《선월》 (하련생 지음, 강영매 번역, 범우사, 2007) 521페이지
  2. 동아일보 1987년 8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