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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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우조(楊宇朝, 1897년 3월 29일 ~ 1964년 9월 24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아호는 소벽(少碧), 본관은 중화이다.

생애[편집]

평양 출신으로 한학을 공부하다가 1915년 상하이로 건너갔다. 상하이에는 신규식 등 일찌감치 이곳에 자리 잡은 민족주의 독립 운동가들이 설립한 동제사가 조직되어 있었는데, 그는 동제사의 주선으로 이듬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1917년, 이미 21세의 나이였으나 인디애나주의 초등학교에서부터 공부를 시작하여 중학교를 졸업한 뒤 1924년 매사추세츠주의 직조학교에 입학하여 방직 기술을 공부했다. 1925년 안창호흥사단에 가입했고, 1927년 잠시 귀국했다가 다시 상하이로 건너가 흥사단을 통해 독립 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한국독립당에 가담해 활동했고 기관지 《한성(韓聲)》을 발행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가하여 광복군 정훈처에서 근무하다가 광복을 맞았다. 광복후에는 귀국하여 방직 산업계에서 실업가로 일했다.

양우조는 중국에서 독립 운동가 최선화를 만나 결혼하였다. 1938년 중국에서 맏딸 양제시를 낳으면서 부인과 함께 육아일기를 겸한 일기장을 1946년 귀국 때까지 작성했다. 이 일기는 외손녀 김현주가 《제시의 일기》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평가[편집]

유언[편집]

과거를 회고하건대, 좋게 말해서 나의 일생은 국가와 민족이 사람다운 생을 살기위하여 희생된 인생 중 일인이었다고 하련다.....이 몸은 이제 세상사와 멀리 하였거니와 생전 함께 한 가족은 부디 명심하여 고인의 미진한 애국애족 정신, 즉 전체 동포의 위복을 위하여 노력하는 동시에 개인의 일도 잊지 말아라. 개인은 전체의 일분자요, 일분자가 모여 대체가 되는법이다. 그러나, 비겁은 취하지 말고, 절대 자존심을 굽히지 말아라.[1]

참고자료[편집]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