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기 말렌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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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기 말렌코프
Гео́ргий Маленко́в
Malenkow.jpg
소련 소련의 제2대 서기장
임기 1953년 3월 6일 ~ 1953년 3월 13일
전임 이오시프 스탈린
후임 니키타 흐루쇼프

기본정보
출생지 러시아 제국 러시아 제국 오렌부르크
사망지 소련 소련 모스크바
정당 소련 공산당
종교 무신론러시아 정교회

게오르기 막시밀리아노비치 말렌코프(Гео́ргий Максимилиа́нович Маленко́в, 1902년 1월 8일 ~ 1988년 1월 14일) 는 소비에트 연방의 정치인으로,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의 지도자였다.

그는 이오시프 스탈린의 중요 측근으로, 스탈린의 사후인 1953년 3월부터 1953년 9월까지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의 서기장을 지냈다.

그리고, 소비에트 연방의 지도자 중에서 가장 임기가 짧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생애와 경력[편집]

소련 정계에서의 말렌코프[편집]

말렌코프는 러시아 제국 오렌부르크에서 마케도니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에는 적군의 정치 위원이 되었고, 1년 후에는 소련 공산당에 정식으로 가입해 스탈린의 심복 중 한 명이 되었다.

1930년대 후반에는 라브렌티 베리야와 함께 스탈린의 대숙청에 가담하였다. 또 그 공으로 1939년 3월 당 중앙위원회 서기가 되었고, 1941년에는 소련 공산당 정치국원의 후보가 되었으며, 그 후에는 라브렌티 베리야와 정적 관계가 되었다.

1941년 6월 대조국전쟁이 발발하자 국가 방위 위원회의 위원이 되었으며 각 전선의 전력 조직화에 진력을 다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후인 1946년, 당 중앙위원회의 정치국 정국원으로 승진해 1947년에 각료회의 부의장이 되었다. 이후에는 정적이었던 안드레이 즈다노프라브렌티 베리야에 의해 쫓겨났지만, 즈다노프의 죽음으로 곧바로 스탈린의 심복으로 복귀하였다.

그는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자 서기장 겸 공산당 필두 서기에 올라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그러나, 집단 지도 체제를 구상했던 말렌코프는 곧바로 공산당 필두 서기에 니키타 흐루쇼프를 임명하였다. 부수상 겸 내상이 된 베리야는 스탈린에 대한 비판을 전개했지만, 말렌코프와 흐루쇼프는 이 의견을 지지하지 않았으며 베리야는 체포돼 사형에 처해졌다.

말렌코프는 총리 자리에 있던 2년간 핵병기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또한, 세계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를 발표하면서 "평화 공세"에 착수했다. [1]이러한 서방 국가와의 관계 개선 방침은 보수파들의 반발로 지도자에서 물러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소련 공산당 정치국에서는 유임하여 1957년 6월, 니콜라이 불가닌,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라자르 카가노비치 등의 반당 집단을 주도, 니키타 흐루쇼프를 실각시키려고 했기 때문에 정치국에서 마저 사직당했다.

그 후의 말렌코프[편집]

정치국에서 사직당한 이후 소련 내를 전전해 카자흐스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외스케멘에 위치한 댐 수력 발전소의 지도자가 되었지만, 1961년 59세가 되던 해에 당적이 박탈되어 공산당에서 추방당했다.

공산당 추방 이후에는 무신론을 버리고 러시아 정교회의 신앙을 되찾아 여생을 교회의 봉직자와 성가대의 일원으로 보냈다. 은퇴 후 모스크바 시내의 아파트에서 연금 생활자로 지냈고, 1988년 1월 14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주석[편집]

  1. 김진웅, 《냉전의 역사, 1945~1991》비봉출판사(1999) 81~82쪽. 그의 뒤를 이어 니키타 흐루쇼프가 제1서기가 되자 "평화"라는 단어는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
전 임
이오시프 스탈린
소비에트 연방의 총리
1953년 ~ 1955년
후 임
니콜라이 불가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