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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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군
大韓民國國軍
Republic of Korea Armed Forces
Flag of the Republic of Korea Armed Forces.svg
창립일 1946년 1월 15일(남조선국방경비대)
1948년 8월 15일(대한민국 국군)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전신 Flag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svg 한국 광복군
편제 대한민국 대한민국 육군
대한민국 대한민국 해군
대한민국 대한민국 해병대
대한민국 대한민국 공군
충원방식 징병제(1952년 9월 1일 ~)
상비군 59만 9천명 (2018년)[1]
예비군 Flag of the Republic of Korea Reserve Forces.svg 대한민국 예비군
대한민국 민방위대
지휘체계
명령체계 대통령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본부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통수권자 대통령
국방장관 국방부장관
합참의장 합동참모의장
군사비
예산 40조 3,347억 (2017년 기준)
GDP 대비 2.5% (2017)
정부재정 대비 14.7% (2017)
기타 대한민국의 주한미군 분담금: 약 9,200억 (2014년. 전액 원화 부담)
방위산업
국내 공급 주요 공급 업체의 목록[2]
해외 공급 주요 공급 국가의 목록
함께 읽기
웹사이트 http://www.mnd.go.kr/

대한민국 국군(大韓民國國軍, 영어: Republic of Korea Armed Forces)은 1948년 8월 15일에 창설된 대한민국군대이다. 또한 대한민국 국군은 대한민국 육군, 대한민국 해군, 대한민국 공군, 대한민국 해병대로 구성되어 있다.

대한민국 국군의 창설 후, 한국 전쟁을 거쳐 1964년에는 베트남 전쟁에 파병, 1973년 철수 때까지 32만 명이 참전하였다. 그 외에도 1991년 걸프전, 1993년 소말리아, 1999년 동티모르 등에 세계평화유지를 위해 파병되었다. 창설 당시 국군의 모든 지휘권은 대한민국 정부에 있었으나 한국 전쟁 당시에 이승만 대통령이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더글라스 맥아더 에게 국군의 모든 작전지휘권을 이양하고, 1978년 7월 한미연합사령부가 창설되면서 유엔군 사령부에 있었던 국군의 모든 작전지휘권(작전통제권)이 한미연합사로 이양되었다. 1992년에 지상군 사령부에 대한 지휘권이, 1994년에 평시작전통제권이 한국군에게 환수되었다.

병력[편집]

대한민국 육군은 병력 약 49만 2천, 전차 약 2300 대, 장갑차 약 2500대, 견인포/다연장 로켓 약 5200문, 유도무기 약 30기, 헬기 약 600기를 보유하고 있다.[3]

대한민국 해군(예하 해병대 포함)은 병력 약 6만 8천명, 잠수함 약 20척, 전투함정 약 140척, 지원함정 20척, 헬기/해상초계기 약 50대를 보유하고 있다.[4]

대한민국 공군은 병력 약 6만 5천명, 전술기 460대, 감시통제기 약 40대, 공중기동기 약 40대, 훈련기 180대, 헬기 약 40대를 보유하고 있다.[5]

2017년 12월 육군에는 현재 39개 사단(전방 기계화보병사단 6개[6], 그 외 상비사단 16개, 향토 방위 12개, 동원 예비군 5개)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외 해군 예하 해병대 2개 사단이 있다. 2026년까지 1군3군지상작전사령부로 통합하며, 5개의 지역군단과 1개의 기동군단으로 개편하고, 31개 이하의 사단을 유지할 계획이다.

지휘권[편집]

지휘, 통수권[편집]

1950년 7월, 국군의 모든 지휘권과 작전 통제권은 한국전쟁(6.25전쟁) 당시 유엔군사령관에게 이양했으나 1992년에 평시작전통제권 중 지상군에 대한 지휘권이, 1994년에는 나머지 평시작전통제권 전부가 국군에 이양되었다. 2012년 4월 12일에는 전시 작전통제권도 국군에 이양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10년 6월 27일, 이명박 대통령미국 오바마 대통령2015년 12월로 연기하기로 합의하였다. 그 이유는 2010년 3월 26일 대한민국 해군 함정 천안함 이 서해 백령도 부근에서 북한군 반잠수정에 의해 침몰된 사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재연기는 없는 것으로 하였으나 2014년 10월 2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 대한민국과 미국의 국방부 장관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를 정하지 않고 2020년대 중반에 전환 여부를 검토한다고 합의하여 사실상 무기한 연기하였다.

지휘 권한[편집]

대한민국대통령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거하여 대한민국 국군(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등)을 통솔하며, 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받아 군사에 관한 사항을 정리하고 합동참모의장과 각군의 참모총장을 지휘·감독하고, 모든 군에게 명령을 직접 지휘하고 하달한다.

합동참모의장은 군령에 관하여 국방부장관을 보좌하며, 국방부장관의 명을 받아 전투를 주임무로 하는 각군의 작전부대를 작전지휘·감독하고, 합동작전의 수행을 위하여 설치된 합동부대를 지휘·감독한다. 육군에 육군참모총장, 해군에 해군참모총장, 공군에 공군참모총장을 두며, 각군 참모총장은 국방부장관의 명을 받아 각 군을 지휘·감독하나, 전투를 주임무로 하는 작전부대에 대한 작전지휘·감독은 제외된다. 해병대는 해군 산하로, 해병대에 해병대 사령관을 두며, 해병대사령관은 해군참모총장의 명을 받아 해병대를 지휘·감독하며 서북도서방위사령부 사령관을 겸직한다.

군사 조직[편집]

역사[편집]

기원[편집]

대한민국 국군대한제국군과 의병, 일제 강점기의 독립군, 1939년 1월 8일에 결성된 한국독립당의 당군(黨軍), 그리고 1940년 9월 17일중국 충칭에서 창설된 한국 광복군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자처하고 있다.

그러나 실체적으로는 1946년 1월 15일에 편성된 미군정남조선국방경비대가 대한민국 국군의 시작이었다. 남조선국방경비대는 백선엽, 이용무, 양국진, 최덕신, 김백일, 유재흥, 신학진, 박동균 등 주로 일본군만주군 인맥들이 주축이었다.[7]

창군[편집]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더불어 움트기 시작했다. 과거 일본군·만주국군·중화민국 국민혁명군 등에 소속하였던 군사 경험자들은 조국의 광복(1945.8.15)과 때를 같이하여 군사단체를 조직했다.

해병대(1945년 8월 23일)·국군준비대·육해공군 동지회·학병동맹·해방병단(海防兵團)(1945년 11월 11일) 등이 결성되었으나, 1945년 11월 13일 미 군정 법령 28호로 아놀드 군정장관 지휘하에 국방사령부가 설치되자 앞서 발족한 여러 군사단체들이 서서히 하나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이 국방사령부의 설치는 국군 창설의 최초의 시도로서 이때부터 비로소 대한민국의 국방을 위한 조직·편성·훈련이 착수되었다. 최초로 국군의 기간장교가 육성되기 시작한 것은 1945년 12월 5일미군정청(美軍政廳)이 군사영어학교를 설치하여 110명의 요원을 배출하는 때부터였다.

1946년 1월 15일에는 불과 1개 대대의 병력으로 남조선 경비대(초대 대장 마셜 미 육군중령)가 창설되었으며, 1946년 3월 29일 공포된 미 군정법령 제64호에 따라 국방사령부가 국방부로, 1946년 6월 15일에는 군정법령 86호에 따라 국방부는 다시 통위부(統衛部)로 개칭되었다(초대 통위부 부장 유동열, 초대총사령관 송호성).

이 때부터 통위부 밑에 조선국방경비대와 해안경비대가 창설되었으니, 1946년 1월 15일자로 발족했던 남조선 경비대는 국방경비대로, 그리고 1945년 11월 11일 발족했던 해방병단은 해안경비대로 각각 발전하였다. 그해 12월 1일에는 현행 계급제도가 채택되었으며, 1948년 4월 1일에는 국방경비대 안에 항공부대가 창설되었다.

1948년 7월 17일에 대한민국 헌법과 정부조직법이 공포됨에 따라 초대 국방장관에 이범석 장군이 임명되었고, 8월 29일 국방경비대와 해안경비대는 국군으로 편입되어 9월 5일 마침내 육군(초대 참모총장 이응준) 및 해군(초대 참모총장 손원일)이 정식으로 발족하게 되었다. 이후 육군에서 공군과 육군이 나뉘고, 해군에서 해병대가 창설 되면서 현재의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한편 1948년 4월 1일 국방경비대 안에 창설되었던 항공부대는 9월 13일 육군 항공사령부로 승격하고 1949년 10월 1일 육군으로부터 군이 분리되어 공군(초대 참모총장 김정렬)으로 정식 발족함으로써 비로소 3군 체제형성의 발전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보다 앞서 1949년 4월 15일 경상남도 진해시에서 해군의 예하인 해병대(초대 사령관 신현준)가 창설되었다.

한국 전쟁(6.25 전쟁)[편집]

한국 전쟁 초기 대한민국 육군은 동부전선의 이성가, 김종오 대령이 지휘하는 대한민국 8보병사단, 대한민국 6보병사단이 선전을 했으나, 서부전선의 경우 고전을 치러야 했다. 옹진반도를 방어하던 대한민국 육군참모본부 직할 17연대(백인엽 지휘)는 개전 직후 철수했으며, 청단-개성-문산을 방어하던 1사단(백선엽 지휘)은 동년 동월 27일까지 효과적으로 방어를 하였으나, 우측의 7사단이 괴멸하여, 서울이 점령됨에 따라 한강 이남으로 철수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1사단도 전투력의 60%이상을 상실하였으나 건제를 유지하였다. 의정부-포천축선을 방어하던 7사단의 경우 의정부지구 1연대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포천축선의 9연대가 괴멸되고 이에 축차투입된 수도경비사령부(현재 육군 3군사령부 예하수도기계화보병사단) 3연대, 2사단, 5사단도 붕괴됨으로써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된다.

이에 중국 국부군 2성 장군 출신의 김홍일 장군이 시흥지구 전투사령부를 조직하여 혼성 사단을 조직 한강선을 7일간 방어함으로써 미군이 전개할 시간을 얻었다. 50년 7월 5일과 7월 24일에 단행된 사단 재편성을 거쳐 해체되지 않고 유지되는 사단은 1사단, 6사단, 8사단 이상 3개 사단이며 3사단은 7월 5일부로 해체되었으나, 예하 22, 23연대의 건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고 7월 24일부 다시 사단이 구성된다. 상기 4개사단 (1, 3, 6, 8사단)을 제외한 나머지 사단 (2, 5, 7사단)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가 후에 재창설된다. 수도경비사령부의 경우 7월 5일부 수도사단으로 개칭되었다. 초기 창군 과정에서 장교들이 고속 승진을 거듭한 끝에 장군이라고 해도 김홍일, 김석원, 이응준 장군을 제외한 나머지 장군들이 20대 후반 ~ 30대 중반이었던 관계로 지휘 경험과 대규모 군대 운영 및 행정 경험이 부족하여 전쟁 기간 내내 지휘력, 전투력 부족 문제로 시달려야 했다. 그나마 위의 3 장군도 50년 9월 이후는 전쟁 일선에서 물러났다.

사단급 제대가 다시 10개로 늘어난 후에도 군단 편성이 늦어진 점이나 편성된 군단도 다른 나라 "군단" 급 부대에 비하면 보병사단 3개를 모아둔 것에 불과할 뿐, 군단으로서 전투력을 가지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실제로 이들 제1, 2군단은 모두 해체되는 아픔을 겪었고, 현재의 제1군단은 1952년에 지리산 공비 토벌전을 위해 임시 편성인 기동 부대 성향의 백야전사령부를 모태로 새로 창설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국군은 투지는 강했으나, 훈련의 양과 질, 장군의 지휘 능력, 보유 장비 등에서 부족함이 많았다. 백선엽은 회고록에서 "1개 보병사단 전체를 105mm 1개 포병대대가 지원하고, 연대는 4.2인치 박격포 중대가 지원하는" 상황이었다고 술회했다. 당시 미군 보병사단은 1개 155mm 대대와 3개 105mm 대대로 사단 포병을 구성하고 있었다.

1951년 이후 미국이나 대한민국 모두 국군의 군사력 증강을 위하여 노력을 기울였다. 미국도 NATO의 창설과 냉전 분위기 등으로 인해 대한민국에서 병력을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에 따르면 1951년까지 미국과 이승만 대통령은 증강에는 동의했지만, 그 방식에서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승만대통령은 기존 10개 사단 외에 10개 사단 추가 증설을 위한 지원을 요구했고, 미국은 기존 사단들도 전투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데 무슨 10개 사단 증설이냐면서 기존 사단들의 전투력 배양이 먼저라고 맞받아쳤다. 즉, 양이냐, 질이냐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전자를, 미국은 후자를 주장한 것이다.

이 와중에 현리 전투에서 대한민국 3군단이 맥없이 패배하여 수십Km를 후퇴했고, 이웃한 미군 사단들이 급히 수습에 나서야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전투에서 국군이 보여준 무기력한 모습은 결국 미국 8 군 사령부와 유엔군 사령부의 중대 결단을 낳게 했다. 당시 대한민국 육군참모본부는 최전방에 전방지휘소를 두고 국군 군단에 대해 어느 정도의 작전지휘를 하고 있었다. 1950년 7월 협정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에 국군의 전체 지휘권을 넘겨주었지만, 미군은 적당히 융통성을 발휘해 육본의 독자 지휘를 어느 정도 인정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전방지휘소 뿐만 아니라 제3군단마저 폐지하고 모든 국군 사단을 미군 군단에 배속시키게 된다. 군단급 이상 상급 부대가 모두 폐지된 것은 국군에게는 치욕이었으나, 이승만도 미군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전쟁 중 국군의 1차 증강은 미군의 주장에 따라 기존 사단들의 전투력 배양과 장교에 대한 교육 과정 강화를 우선 사업으로 시작하게 된다.

휴전 후 병력증강과 M4 셔먼, M47 패튼 전차 도입 등 장비증강이 진행되었고, 1954년까지 제1, 2군 사령부와 군수기지사령부·군관구사령부, 10개 예비사단이 창설되었다.

베트남 전쟁(월남전) 참전[편집]

1963년부터 미국베트남 전쟁에 파견, 지원할 군사적 협력을 세계 각국에 요청하였고 대한민국 역시 미국의 파월 지원 요청에 응하여 1964년 제1차 파병단(제1이동외과병원 및 태권도교관단)을 시작으로 1972년까지 32만명의 국군을 파병하게 된다. 32만명 파견 중 전사 5천명, 부상 1만 9천의 사상자가 나오기도 했다.

국군 발전사상 베트남 전쟁 파병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1964년 9월 11일 1300명으로 구성된 제101 이동외과 병원과 10명으로 구성된 태권도 교관단의 파견, 1965년 3월 16일 육군 건설공병부대인 비둘기 부대(1개 공병대대, 해병 공병중대, 경비대대, 수송중대)가 파견된 이후 계속 증파되어 10월 9일에는 제2해병여단(청룡부대)를, 10월 22일수도사단(맹호부대)를, 1966년 8월 30일제9사단(백마부대)가 파병됨으로써 무려 약 5만명(군단 규모)을 헤아리게 되었다.

국군의 베트남 파병에 대해서는 그 때마다 남베트남 정부의 요청과 대한민국 국회의 승인이 있었으나 그 심의과정에서는 야당인사인 윤보선, 장준하 등의 반대를 시작으로, 파병 찬·반 양론이 엇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월남전에 파월(월남에 파병)한 국군은 극복할 수 있는 문제점을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다대한 전공과 업적을 쌓았으며, 베트남 땅에 국군에 대한 많은 신화를 남겨 놓게 되었다. 베트남 파병의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받은 자금과 노획한 무기로 군사무기 개량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경제 개발 사업 자금 등으로 활용되었다. 베트남전이 서서히 막을 내리던 1973년 3월 파월 국군은 완전히 베트남 땅에서 철수하였다.

국방비[편집]

  • 국방비는 2014년 기준 31조 5,627억 원이다. GDP 대비 2.62%, 정부재정대비 14.7%이다. 군사 강국(미국, 러시아, 영국, 중국, 일본 등)들에 비해 국방비가 매우 적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8]

부대별 운영비용[9][편집]

평균 경상운영비에는 인건비, 급식 및 피복, 국방정보화, 장병보건복지향상, 군수지원 및 협력, 교육훈련, 군사시설운영, 예비전력관리, 기타 행정 경비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해외 파병[편집]

대한민국 국군은 2014년 3월 기준으로 17개 지역에 1,195명을 파병하고 있는데, 이 중 유엔 평화유지군으로는 640명, 다국적군으로는 555명을 파병하고 있다.

항구적 자유 작전 - 아프리카의 뿔(OEF-HOA)에서 해상안보의 확립을 위해 청해부대로도 잘 알려진 해군의 소말리아 해역 호송전대를 파견하였다.

안보 협력 혹은 동맹군 지원[편집]

진행중인 파견대
군종 부대 명칭 별명 기간 전쟁/임무
시작일 종료일
육군 국제평화지원단 온누리 2010년 7월 1일 현재 -
해군 소말리아 해역 호송전대 청해 2009년 3월 13일 현재 아프리카의 뿔
육군 UAE 군사훈련협력단 아크 2011년 1월 현재 아랍에미리트와의 군사 훈련 협력
종료된 파견대
군종 부대 명칭 별명 기간 전쟁/임무
시작일 종료일
합동 주월한국군사령부 - 1965년 9월 25일 1973년 7월 1일 베트남 전쟁
해군 해군 수송지원단 해성 2001년 12월 18일 2003년 9월 1일 아프가니스탄 전쟁
공군 제57항공수송단 청마 2001년 12월 18일 2003년 12월 31일
육군 제924의료지원단 동의 2001년 12월 18일 2007년 12월 23일
공균 제100건설공병단 다산 2003년 2월 6일 2007년 12월
공군 제58항공수송단 다이만 2004년 8월 31일 2008년 12월 19일
육군 이라크 평화재건사단 자이툰 2004년 2월 23일 2008년 12월 20일 이라크 파병
육군 제320의료지원단 제마 2003년 4월 30일 2008년 12월 20일
육군 제1100건설공병단 서희 2003년 4월 30일 2008년 12월 20일
육군 대한민국 지역재건팀 오쉬노 2010년 7월 2014년 6월 아프가니스탄 전쟁
합동 한국군 필리핀 합동지원단 아라우 2013년 12월 27일 2014년 12월 23일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필리핀을 위한 복구 지원

유엔평화유지군[편집]

대한민국 국군의 유엔평화유지군
부대 명칭 별명 지역 임무 기간
시작일 종료일
레바논 평화유지단 동명 레바논 UNIFIL 2007년 2월 -
남수단 재건지원단 한빛 남수단 UNMISS 2013년 3월 1일 -
상록수 부대 - 소말리아 UNSOM II 1993년 6월 29일 1994년 1월 15일
앙골라 UNAVEM III 1995년 10월 1997년 2월
동티모르 UNAMET 1999년 10월 2003년 10월
아이티 재건지원단 단비 아이티 MINUSTAH 2010년 2월 17일 2012년 12월 24일

조직[편집]

국방부[편집]

육군[편집]

대한민국 육군기

대한민국 육군은 병력 약 492,000 명, 전차 약 2,300 대, 장갑차 약 2,500 대, 견인포/자주포/다연장 로켓 약 5,200 문, 유도무기 30 기, 헬기 60 여 기를 보유하고 있다.

해군[편집]

림팩 2006 훈련에 참가중인 DDH-976 문무대왕
항공모함 등 30여 척 함정의 계류가 가능한 부산해군작전사령부

대한민국 해군[10]은 병력 약 68,000명, 잠수함 약 15 척, 이지스함 3척을 포함한 전투함 약 140 척, 지원함 20 척, 헬기/해상초계기 약 60 대를 보유하고 있다.

해병대[편집]

한 대한민국 해병대원이 강습 훈련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해병대1949년 4월 15일 경상남도 진해시에서 초대 지휘관에 신현준 중령이 임명되고, 해군 장교 26명, 부사관 54명, 300명으로 창설되었다. 해군 예하의 국가 전략기동군으로서 상륙 작전을 주임무로 하며, 그 외 김포, 강화, 포항, 경주, 진해, 제주, 도서지역 등을 방어하고, 예비군 교육 및 훈련 등의 임무도 수행한다. 한국 전쟁에서의 전과기록 등을 통해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별명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2018년 8월 현재 2개 사단과 2개 여단을 보유하고 있고, 이외에도 연평도진해 및 기타 여러 도서 지역들에도 해병 부대들을 주둔시키고 있다.

국방개혁 307계획에 의해 신속대응과 공중, 지상 기동작전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로 개편하기 위해 제주부대, 해병대 사령부 직할 항공단을 신설하고, 사령부 예하로 정보단과 통신단을 정식으로 편제하였다.[11]

공군[편집]

대한민국 공군의 주력기체 중 하나인 F-15K (슬램 이글)

대한민국 공군의 장비는 KF-16 (Block 52+) 134대와 F-16C/D (Block 52+) (PB형) 35여대, F-15K 60대, KF-5E/F 제공호F-5E 타이거 II 195대, F-4E 팬텀 80대 (퇴역 중), T-103 러시아제 훈련기 IL-103 72대, KT-1 기본 훈련기 105대, KA-1 전선항공통제기/경공격기 20대, T-50 고등 훈련기 60대+98대 생산 확정, T-50B (블랙 이글스) 10대를 보유 중이며, TA-50 전술입문기 (LIFT) 22대를 운용 중이고 KF-16에 버금가는 다목적 공격기인 FA-50 파이팅 이글 60~120대를 도입 중에 있다.

수송기는 BAe-748 2대, VCN-235 1대, 보잉 737-300 1대, 보잉 747-400 1대, C-130J-30 수퍼 허큘리스 4대, C-130H 허큘리스 12대, CN-235-200M 20대, C-118 1대의 수송기와 기타 정찰기로 금강 정찰기, 백두 정찰기, RKF-16 5대를 보유, 운용하고 있으며, 공중 조기 경보 통제기 보잉 E-737 피스아이 4대, F-15K 60대를 운용 중이며 F-4E, KF-5E/F (제공호)와 F-5E (타이거 II)등은 지속적으로 도태되고 있어서 F-5E 타이거 II, KF-5E/F 제공호FA-50 60대로 대체되고, F-4EF-35A로 대체된다. 그리고 2019년 1월 A330 공중급유기 1호기가 도착하였으며 KC-330 시그너스라 명명하였다. 향후 3대가 더 들어올 예정이다.

논란과 비판[편집]

예비군[편집]

상비군 수준의 정예화 된 예비군1961년 12월 27일, 박정희대통령이 '향토 예비군 설치법'과 '향토 예비군 설치법 대통령 시행령', '비상 대비 자원 관리법', '징발 법에 관한 법률'을 정한 뒤 공표하였고, 1968년 3월 31일에 들어서 향토 예비군을 창설하게 되었다.

군사 독재[편집]

1961년 5월 16일5.16 군사 정변 이후 대한민국 국군의 지휘관 출신 인사들이 대한민국 정부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경제발전등의 성과는 있었으나 이후 12.12 쿠데타,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의 학살 등의 문제로 군사 독재의 문제점은 드러나게 되었고, 결국 1993년 문민 정부의 출범과 함께 군사 독재 정권은 종결되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제5공화국까지의 시대를 군사 독재 시기로 간주하기도 한다.

장교의 인사적체[편집]

대한민국 국군은 심할 정도로 장교를 과다하게 선발한다. ROTC제도를 하는 국가들 중에서 후보생 전원을 현역 소위로 임관시키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미군의 경우는 상위 5%만 현역에 배치하고 나머지 95%는 석사장교처럼 임관과 동시에 전역한다. 서방권 군대의 경우, 중대에서 1소대장만 소위 및 중위급 장교 소대장을 배치하고 나머지 소대에는 상사 및 원사 소대장을 배치하여 처음부터 장교를 적게 선발하고 그로 인해 소령에 이르러서는 인원이 적재적소에 정확하게 배치되지만 대한민국 국군의 경우 상비사단 보병소대의 경우 소대장을 전원 소위 및 중위급 장교 소대장으로만 배치하기 때문에 과다한 장교 숫자로 인해 소령 계급부터 심각한 인사적체가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위관급 장교 : 영관급 장교의 비율이 영국군은 1:1이지만 대한민국 국군은 2.8:1일 정도로 장교를 과다하게 선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정희가 대통령이던 시절에는 이렇게 과다한 장교들을 유신 사무관이라는 이름의 고급 공무원으로 특채하여 인사적체를 해결했으나 유신 사무관 제도가 폐지된 이후에도 여전히 장교 정원을 감축시키지 않아서 인사적체가 심각한 수준이다. 당장 대령부터 보직 대비 인원 초과율이 거의 2배에 달하고 있다. 또한 이렇게 초과 보직된 대령들 중 무시못할 비율이 부사단장, 각 대학교 ROTC 단장, 연구관 등으로 배치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 문제가 왜 심각하냐 하면 부사단장은 1개 사단에 작전 부사단장, 지원 부사단장, 행정 부사단장 등으로 나눠서 1명이 수행할 임무를 여럿이 나눠서 수행하는 문제가 있으며 연구관은 더 심해서 업무는 아예 없는데 급여와 예우는 중령~대장[12]이라는 것에 있다. 연구관의 경우는 명백히 계급낭비이자 급여낭비이다.

특이한 점[편집]

대한민국 국군은 다른 나라의 군대에 비해 다소 특이한 부분이 몇 가지 존재한다. 구조가 오직 대한민국 국군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비정상적인 부분이 있는 것이다.

징병제와 학군사관(ROTC) 제도 병행[편집]

보통 학군사관(Reserve Office Traning Corps)이라 함은 군복무를 하지 않는 장교라는 의미가 있으며 이는 임시장교 및 예비장교로서 당장 현역에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모병제 국가가 전면전 상황에서 병역을 징병제로 전환할 경우 장교로 징병할 인원을 미리 훈련시키는 제도가 학군사관의 진짜 의미이다. 그래서 학군사관은 소위로 임관한 이후 바로 제대하는 제도이며 일부 뛰어난 인재에 한해서 소위로 임관한 이후 바로 제대하고 제대하자마자 재응소를 하는 방식으로 군복무를 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군은 징병제이면서 동시에 학군사관 제도를 운영하기 때문에 소위로 임관까지는 같으나 임관하자마자 제대와 제대 후 재응소 과정을 빼버리고 바로 자대에 투입시키는 다소 이상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부사관을 장교처럼 선발[편집]

원래 정상적인 군대에서 부사관은 병사가 오래 복무해서 진급하면 도달하는 위치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군은 최초 선발계급이 다음과 같이 굉장히 많으며 이 중에는 부사관도 포함되어 있다.

  • 이등병: 사병
  • 상병: 사관학교 1,2학년 퇴교자
  • 병장: 사관학교 3학년 퇴교자
  • 하사: 사관학교 4학년 퇴교자, 일반하사, 전문하사
  • 중사: 장교 출신 부사관
  • 준위: 준사관
  • 소위: 일반장교
  • 중위: 전문사관
  • 대위: 전문사관

이렇게 된 것은 역사적인 문제에 기인한다. 본디 부사관은 오래 복무한 병사가 담당해야 하지만 1948년 대한민국은 건군 초기라서 부사관을 급하게 충원해야 했기 때문에 간부 지망생들을 한곳에 섞어놓고 같은 훈련을 시킨 뒤 고졸 이상의 햑력이 있으면 갑종장교, 중졸 이하의 학력이 있으면 을종하사관으로 각각 나눠서 임관시켰는데 이것이 오늘날 부사관 선발의 시발점이 된다. 또한 특수한 목적으로 인해 부사관을 선발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바로 특전부사관이다. 특전부사관의 경우는 징집병이 하기엔 임무의 강도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지원자를 받아서 운영해야만 했고 그 '지원자'에 대한 보상으로 이등병이 아닌 하사 계급부터 군복무를 시작시켜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사관으로 선발하고 있다.

참고로 미군에서 처음 선발하는 계급은 대한민국 국군에 비해 상당히 간소화되어 있다.

  • 이등병: 저학력자 사병
  • 상병: 고학력자 사병(대졸 이상)
  • 소위: 장교

이런 방식의 부사관 선발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부사관의 경험 부족을 야기하기 때문이며 그래서 '부사관'이라는 호칭의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군인 계급 체계[편집]

군인사법 제 3조는 "장군은 장성으로 장교는 영관 및 위관으로 구분하고 장성은 원수, 대장, 중장, 소장준장으로 한다. 영관은 대령, 중령소령으로, 위관은 대위, 중위소위로 한다. 준사관은 준위로 한다. 부사관원사, 상사, 중사하사로 한다. 병은 병장, 상등병, 일등병이등병으로 한다." 라고 대한민국 국군의 계급을 정의 한다.

징집병의 경우, 모병제를 시행하는 국가의 계급보다 통상 2계급이 낮다. 예컨대 국군의 하사미군상등병과 연합체계로 볼때, 유사하다. 그러나 이는 , 하사관, 준사관의 경우이며 실제로도 유럽의 군대와 자위대는 주임원사에 해당되는 직책이 주임준위이며 미군 역시 2014년에 주임준위를 신설했다. 다만 장교의 경우는 어떠한 국가이든 계급이 동일하다. 즉 국군의 대위는 미군대위와 동일하다.

계급 계급장
육군 해군 해병대 공군
장성 (將星) 원수 (元帥)[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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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大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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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 (中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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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少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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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장 (准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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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관 (領官) 대령 (大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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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령 (中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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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령 (少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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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관 (尉官) 대위 (大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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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위 (中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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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少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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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사관 (准士官) 준위 (准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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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관 (副士官) 원사 (元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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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 (上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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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사 (中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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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사 (下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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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兵) 병장 (兵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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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등병 (上等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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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병 (一等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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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병 (二等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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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2018 국방백서
  2. “보관된 사본”. 2018년 10월 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10월 4일에 확인함. 
  3. 2010년판 국방백서 <도표 3-2> "육군의 주요 조직과 보유 전력" 41쪽
  4. 2010년판 국방백서 <도표 3-3> "해군의 주요 조직과 보유 전력" 42쪽
  5. 2010년판 국방백서 <도표 3-4> "공군의 주요 조직과 보유 전력" 43쪽
  6. 수도, 8, 11, 20, 26, 30
  7. “陸軍八中領昇進”. 동아일보. 1948년 12월 31일. 
  8. http://mnd.go.kr/mndInfo/publication/policyDataBook/policyDataBook_1/index.jsp[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국방부 국방정보공개 간행물 정책자료집 중 '2010 국방백서 국문판 부록'
  9. http://bemil.chosun.com/nbrd/bbs/view.html?b_bbs_id=10040&pn=1&num=65560 유용원의 군사세계 2012년 2월 1일 국방부 질의 자료
  10. 예하 해병대 포함
  11. 박영민(글) 박흥배(사진) (2008년 11월 25일). “육군 군단, 기동 2·지역 5개로 재편”. 국방일보. 2012년 11월 2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2월 28일에 확인함. 
  12. 박찬주가 대장 계급으로 연구관 보직을 받은 적이 있다.
  13. 원수는 국가에 대한 공적이 현저한 대장 중에서 임명하며, 국방부장관의 추천에 의하여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행한다. (군인사법 제 17조의2), 현재까지 대한민국 국군에는 원수로 임명된 군인은 없다.
  14. 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2588466& 내년 병 월급 15% 인상…상병 15만 원 돌파. KBS 단신뉴스. 2012.12.27

외부 링크[편집]

공식 웹사이트[편집]

관련 웹사이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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