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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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지리 유형: )
아차산에서 바라본 한강과 구리암사대교 건설 현장.
(2008년)
나라 대한민국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지방 강원도 · 충청북도 · 경기도 · 서울특별시 · 황해북도
소속 한강 독립수계
본류 한강 (골지천 · 조양강 · 동강 · 남한강 · 조강)
지류
 - 왼쪽 달천 · 청미천 · 복하천 · 경안천 · 안양천
 - 오른쪽 섬강 · 북한강 · 중랑천 · 공릉천 · 임진강
여의도 · 선유도 · 밤섬 · 노들섬 · 서래섬
발원지 백두대간 금대봉의 금대봉골 계곡 [1][2]
 - 위치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 고도 약 1200m 지점 [2]
하구 김포반도 서북단 부근의 황해 수역
 - 위치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
목록
길이 494km (307mi)[3]
면적 35,770km² (13,811sq mi)[3]
유량 서울 한강대교에서
 - 평균 613m³/s (21,648cu ft/s)[주 1][4]
대한민국의 3대 하천 수계(금강·낙동강·한강)와
소백·태백산맥을 표시한 지도.
참고 문헌:
《월간 山 — 통권 467호》[1]
한국의 산하』(등산 전문 웹사이트)
한국하천일람 — 2012.12.31 기준[3]
《우리가람 길라잡이 — 우리 강을 찾아서…》[2]
한국하천정보시스템』(한국수자원공사GIS)

한강(漢江)은 대한민국 강원도 태백시에서 시작하여 한국 중부를 동에서 서로 관통해 경기도 김포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황해북도 개풍군의 경계에서 황해로 유입되는 한국의 주요 하천이다. 태백산맥의 금대봉 정상부 북쪽 비탈에서 발원하여 강화해협 부근의 어귀로 흘러가는 물줄기를 본류로 한다. 대한민국의 관찬 자료집인 《한국하천일람》 2013년 판에 따르면 본류 총연장은 494km[3] 남짓이다.

한강 본류는 경기·관동·해서·호서, 네 지방에 걸쳐 북한강·임진강(문화어: 림진강) 을 위시한 수백 개의 지류를 거느리고 있으며, 이 지류들을 기반으로 한 수계망인 한강 수계한국을 지나는 모든 하천 수계망 중 두 번째로 넓은 빗물받이(35,770km², 한반도 전체 넓이의 약 1/6)를 가졌다. 길이(494km)로는 압록강·두만강·낙동강에 이어 한국에서 네 번째,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길다.

구간[편집]

같은 한강 본류 중에서도 특정 구간만을 따로 떼어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런 경우, 그 지역의 큼직한 합수머리를 기준으로 구간을 나눈 경우가 많다.한강의 최장 발원천은 금대봉 북쪽 정상부의 고목나무샘(태백시 창죽동)에서 발원하며,[3] 이 물줄기는 금대봉골이라는 골짜기를 타고[1] 산 중턱에 위치한 유명한 샘인 검룡소(태백시 창죽동)까지 흘러내려온다. 한편, 태백시청은 비록 검룡소가 고목나무샘보다 하류에 있긴 하나 금대봉골 유로 상에서 제일 큰 샘이라는 점을 들어, 검룡소가 한강의 발원지라고 홍보하고 있다.

한강이 충분히 커져 법적인 의미의 '하천'으로써 관리되기 시작하는 기점은 태백시 상사미동의 디디기벌 인근에 있으며, 여기서부터[주 2] 아우라지로 유명한 송천 합류점(정선군 여량면 여량리)까지의 구간을 골지천(骨只川)이라 한다. 이어 송천 합류점에서부터 동대천 합류점(정선군 정선읍 가수리)까지의 구간은 조양강(朝陽江), 동대천 합류점에서부터 평창강 합류점(영월군 영월읍 하송리)까지는 동강(東江), 평창강 합류점에서부터 북한강 합류점(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까지의 구간은 남한강(南漢江)이라 일컫는다. 끝으로 임진강 합류점(파주시 탄현면 성동리)에서부터 어귀까지는 조강(祖江)이라 한다.

한강의 역사[편집]

암사동 선사유적지

구석기 시대부터 한강 유역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포전리 점말 동굴과 단양군 애곡리 수양개 선사유적지가 한강의 대표적인 구석기 유적이다. 신석기 시대에는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을축년 대홍수 때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동 선사유적지에서 신석기 유적이 발견되었다.

청동기 시대를 지나 철기시대에는 백제국을 비롯한 마한의 몇몇 소국이 한강에 자리를 잡았고, 그 중 하남 위례성에 도읍한 백제가 한강 일대를 통일하고 전성기를 맞았고, 이후에는 고구려가 한강을 점령하고 전성기를 맞는다. 진흥왕 때에 신라는 한강을 점령하고 전성기를 맞은 후에 백제와 고구려의 일부를 통일한다. 이처럼 한강 유역을 소유하면 나라가 번영했다는 것에서 한강이 한반도에서 지리·인구·외교 등에서 훌륭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한반도를 띠처럼 둘렀다는 뜻으로 대수라 불렀다.[5] 그리고 고구려는 한강을 아리수[6], 백제욱리하라 했고,[7] 동진과 교역하기 시작한 후에는 한수라 불렀다. 신라는 한강의 상류를 이하, 하류를 왕봉하라 하였다.[8] 현재의 서울 일대는 고구려가 한산군이라 하였으나, 신라의 점령 이후에는 한주·신주·한산주·남천주 등으로 부르며 군주·도독을 두고 다스렸다.[9] 삼국사기에 의하면 이때 한강을 한산하·북독이라고 했다.

고려 시대에는 한강 유역 대부분을 양광도가, 그리고 북한강 유역은 교주도가 관할했고, 지방 3경 중 하나인 남경12목 중 광주목·충주목·청주목이 있었다. 당시 한강은 물줄기가 맑게 뻗어 내린다 하여 열수라 했고, 모래가 많아 사평도, 사리진이라고도 불렀다.

고려가 멸망하고 건국된 조선은 한강 유역의 한양에 도읍을 정했다. 한양으로 천도한 이유는 한강의 수운 조건과 풍수지리설의 영향 그리고 정치적 배경 때문인데, 당시에 한강이 교통이 편리하고 지리적으로도 좋은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양의 경창은 조세로 징수한 미곡과 포백을 운송하는 조운제도의 중심이 되었고, 9개의 조창 중에서 충주의 가흥창·원주의 흥원창·춘천의 소양강창 총 3개소가 한강 중류와 상류에 있었다. 한양 근처의 한강은 경강이라 했는데 조운을 통해 경강에 많은 상인이 모이며 하나의 경제권이 형성되었다. 이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서울 강(Seoul river)이라는 표현이 외국 문헌에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한강 곳곳에 을 설치하고 수비하게 하였다.

조선 말에는 프랑스미국이 한강과 강화도에 침입했고, 개항을 한 후에는 증기선이 한강에서 운항하기도 하였다. 1900년에는 한국 최초의 근대식 철교인 한강철교가 완공되었고, 1916년에는 최초의 인도교가 가설되었다. 1912년, 1920년, 1925년에는 큰 홍수가 났었는데, 특히 1925년의 을축년 대홍수로 인해 한강 유역이 수몰되는 등의 큰 피해를 입었다.

광복 후에는 한국 전쟁한강철교인도교가 파괴되었고, 이후 재건되었다. 1970년에는 잠실지역의 하중도를 육지로 만드는 공사가 시작되어 육지와 연결됐고, 잠실지역이 개발되었다.[10] 이 과정에서 남류하던 흐름을 끊으면서 하적호석촌호수가 생겨났다.[11]

근대화·산업화로 당시 한강의 수질은 심각하게 악화되었다. 이에 한강종합개발사업을 통해 공원을 조성하고 올림픽대로가 만들어지고 수질을 개선시켰다. 이후 수위를 유지하기 위한 수중보인 잠실보신곡보가 건설되었다.[12]

2007년에 서울시는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한강에서 수상택시 운영이 이뤄지고 있고, 공원 조성사업으로 한강공원의 개발사업 등이 이뤄지고 있다.[13]

최근, 정부에서 한강에 경인운하·한반도 대운하 등을 건설하여 수운을 이용한 교통체계를 마련하려고 하나, 효율성 등에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14]

이름[편집]

고구려가 불렀던 이름 '아리수'의 '아리'와 백제가 불렀던 이름 '욱리하'의 '욱리'는 같은 어원을 가진 말을 한자의 음을 빌려 표기하는 과정에서 생긴 차이로 보인다. 현재 한국어의 '으리으리하다'의 '으리'와 같은 어원으로서 '크다'의 뜻을 가진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는 한강의 '한' 역시 크다는 뜻이므로 가능성이 있는 주장이다. 한자로 된 우리 지명도 그 어원은 대부분 순우리말인 경우가 많다.

한강의 이름은 그 지역에 따라 다른 경우가 많은데, 송파 부근의 한강을 송파강이라 하던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나 그 지역은 예전에는 섬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구분하며 부른 것으로 보인다. 한강을 부르는 이름은 모든 지류를 통틀어 말하거나 양수리와 한강 하구 사이의 한강 본류를 일컫는 경우가 많다.

한강을 기록한 문헌은 삼국사기·동국여지승람·연려실기술·세종실록지리지·고려사지리지·팔도지리지·택리지 등이다.

지형과 지질[편집]

한강 유역은 주로 산계가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향하고 있으며, 해발 300m에서 500m 사이 높이의 산이 주로 분포한 저산성 구릉지에 속한다. 한강의 지류들은 보통 수지상 하계망을 이루지만 가평·춘천 등지의 경춘가도 부근 등에는 단층에 의한 직각상 하계망이 발달해 있다.

한강 유역의 대부분은 경기 육괴 지역에 속하며, 남한강 일부는 옥천지향사대에 속한다. 화성활동으로 북한산부터 철원 사이의 광주산맥 부근과 관악산에는 화강암 저반이 발달하였다. 양수리부터 하류 사이의 서울 지역은 연천계 편암편마암 그리고 중생대 말기의 불국사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강 남쪽에서부터 동북 쪽으로는 준편마암류와 편암류의 암석이 넓게 분포하고 있으며, 남한강을 비롯한 차령산맥 부근은 화강암이 발달했는데, 불국사 화강암과 함께 쥐라기대보화강암이 옥천지향사대를 중심으로 널리 퍼져있다.

충적층은 한강의 상류에서 평균 5.29m, 중류에서 5.97m, 하류에서 6.95m의 두께로 나타났다.

지류[편집]

한강에는 다른 곳에서 온 많은 하천들이 합쳐져 흘러 들어온다. 남한강은 한강의 본류이며, 북한강경기도 양평군의 양수리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한강의 주요 지류는 다음과 같다.

발원지~양수리까지의 구간[편집]

양수리 이후의 구간[편집]

경기도 동부 합류
서울특별시 합류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
경기도 서부 합류
임진강

* 국가하천으로 지정된 지류

교통[편집]

양수리 이후 구간의 다리[편집]

지금까지 한강을 가로지르는 여러 다리가 건설되었다. 하류에서 상류 순으로 다음과 같다. 현재까지 한강의 양수리 이후 구간에 있는 다리는 모두 27개이다. 대부분이 자정, 또는 오전 1시까지 야간 조명을 밝힌다.[15]

양화대교
당산철교
동작대교
반포대교와 잠수교
동호대교

한강을 가로지르는 횡단 교량이 아닌 강변을 통과하는 종단 교량이 있다.

여의도 남단을 통과하는 한강의 샛강에는 세 개의 다리가 있다.(강 상류~하류 순으로 나열)

강 내부의 하중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가 있다.

도로 및 지하철[편집]

서울에서 한강의 북쪽과 남쪽에는 각각 강변북로올림픽대로가 건설되어 있다. 1·2·3·4·7호선·인천국제공항철도철교를 통해, 5호선분당선하저 터널을 통해 한강 본류를 관통하고 경의·중앙선북한강을 철교로 가로지른다. 이외의 지하철 노선들은 한강 본류를 관통하지 않지만 지하철 8호선과 신분당선은 한강 본류를 관통할 예정이다.

한강시민공원[편집]

한강을 옛날과 같이 깨끗한 강으로 되살리자는 목표로 1982년부터 현재까지 서울지역 41.5km의 구간(강일동-개화동)을 살아있는 강으로 변화시킨 공원이다. 아울러 강변에 시민 휴식공원과 축구장·배구장·농구장·수영장 등 각종 체육시설과 수상스키장·요트장·보트장·낚시터·주차장 등을 갖추어, 시민들이 오락·휴양지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 그 밖에 자전거 도로 및 산책로가 한강을 따라 개설되었으며[16] 한강 접근을 쉽게 하기 위해 주요다리에 승강기가 설치되고 있다.[17] 또한 6개의 교량에는 한강전망카페가 설치되어있다.

갤러리[편집]

파노라마[편집]

한강의 파노라마 사진
63빌딩에서 본 한강의 파노라마 사진

관련 드라마[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내용주
  1. 원 출처에는 2004년~2013년의 유량 평균이 단위로 제시되어 있었으나, 위키백과로 옮기는 과정에서 이를 단위로 변환하였음. 변환 후 소수점 이하 버림.
  2. 검룡소~디디기벌 구간을 골지천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다만 하천법 상 '지방하천 골지천'의 기점은 검룡소가 아니라 디디기벌의 부정당마을로 설정돼 있다.
참조주
  1. "월간 山 특별부록 2008년 9월호 함백산(금대봉/대덕산/매봉산)", 《월간 山 — 통권 467호》, 조선일보사:서울, 2008-09-01.
  2. 《우리가람 길라잡이 — 우리 강을 찾아서…》 113쪽, 한국수자원공사 조사기획처:대전, 2007.
  3. 한국하천일람 — 2012.12.31 기준》 82-83쪽, 국토교통부 한강홍수통제소:서울, 2013.
  4. "보도 자료 — 2014년 1월 월간 수자원 현황 및 전망" 3쪽, 국토교통부 한강홍수통제소, 2014-01-13. 2014-09-03에 확인.
  5. 반고, 《한서》 제28권 ― 지리지.
  6. 광개토왕릉비 396년 기사
  7. 삼국사기》 25권 <백제본기> 제3 개로왕
  8. 삼국사기》 3권 <신라본기> 제3 자비마립간 11년 기사
  9. 《삼국사기》 35권 <잡지> 제4, 지리 2
  10. “영동, 잠실지구 개발”. 경향신문. 1970년 6월 16일. 2010년 2월 19일에 확인함. 
  11. “잠실종합 개발 확정”. 매일경제. 1974년 8월 1일. 2010년 2월 19일에 확인함. 
  12. “한강 종합계발 준공”. 매일경제. 1986년 9월 10일. 2010년 2월 19일에 확인함. 
  13. 김선일 (2009년 9월 25일). “여의도 한강공원 1년 만에 준공”. 내일신문. 2010년 2월 12일에 확인함. 
  14. 김병국 (2009년 1월 15일). “경제성없는 경인운하, 정책적으로 강행”. 내일신문. 2010년 2월 19일에 확인함. 
  15. 최명애 (2007년 12월 27일). “ [트래블] 겨울, 도시, 불빛 순간을 가두다”. 경향닷컴. 2007년 12월 27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16. “자전거 산책도로 2백50리 조성”. 연합뉴스. 1994년 8월 2일. 2012년 9월 5일에 확인함. 
  17. “서울시 수영장 전면 리모델링”. 조선일보. 2012년 8월 16일. 2012년 9월 5일에 확인함.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