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초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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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초천 중상류와 한양도성 지도

만초천(蔓草川)은 인왕산의 서쪽과 남산의 남서쪽에서 각각 발원하여 삼각지 인근에서 합쳐진 뒤 한강으로 합류하던 하천이다. 일제 강점기부터 산업화 시기까지는 일본식 명칭인 욱천(旭川 (あさひかわ), 아사히카와)으로 개칭되어 불렸으며[1], 달리 무악천(毋岳川), 갈월천(葛月川), 덩쿨내라고도 하였다.

과거 만초천의 게잡이는 용산팔경(龍山八景) 중 하나였다. 현재 이 하천은 남영역에서 용산역 간의 약 150m 구간과, 용산 미군기지 내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복개되었다.

연혁[편집]

  • 청일전쟁 이전 : 일본의 용산 점령. 만초천 개수.[2]
  • 1914년~ : 한강의 역류를 막기 위한 제방공사 착수.[2]
  • 1972년 : 만초천을 복개한 부지에 들어선 서소문아파트 준공.[3]

과거의 다리[편집]

조선 시대의 만초천의 다리 목록이다.

  • 연적교(硯滴橋) : 옥천동에 있었으며, 개울물을 건너는 곳에 물이 빠지는 구멍이 연적과도 같게 생겼다 하여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4]
  • 석교(石橋) : 교남동 100번지 북쪽에 있었으며, 대동지지에는 초교(草橋)라고 적혀 있다.[5] 이 다리 남쪽에 있는 동네라 하여 교남동이라고 명명되었다.
  • 경교(京橋) : 충정로1가 90번지 서울적십자병원 앞쪽에 있었으며, 경기감영 창고 인근에 위치하여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5] 경교장의 유래가 되었다.
  • 신교(新橋) : 의주로1가 106번지 남동쪽에 있었으며, 새로 놓은 돌다리라 하여 이러한 이름이 되었다.[6]
  • 이교(圯橋) : 합동 16번지 서소문공원 북쪽에 있었으며, 흙다리[圯] 또는 헌다리라고도 불렸다.[6]
  • 염초청교(焰硝廳橋) : 중림동 9번지 남쪽에 있었으며, 염청교(焰廳橋) 또는 염천교(鹽川橋)라고도 불렸다.[6]
  • 주교(舟橋) : 청파동1가 168번지 부근에 있었으며, 청파배다리라고도 불렸다.[6]

각주[편집]

  1. 만초천 배우리(한국땅이름학회장), 2003년 11월 27일 작성.
  2. 이상배 (2000). 《서울의 하천》. 서울: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77쪽. ISBN 9791160710182. 
  3. 황두진 (2016년 6월 13일).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도로와 뒷골목 그리고 철도변으로… 물길 따라 연결되는 소통·미덕의 공간”. 《서울신문》. 2016년 12월 11일에 확인함. 
  4. 공순정 (1924년 7월 27일). “옥천동 연적교”. 《동아일보》. 2016년 12월 11일에 확인함. 
  5. 이상배 (2000). 《서울의 하천》. 서울: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48쪽. ISBN 9791160710182. 
  6. 이상배 (2000). 《서울의 하천》. 서울: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49쪽. ISBN 9791160710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