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류동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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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류동천
(지리 유형: )
옥류동 바위글씨
나라 대한민국
지방 서울특별시
소속 한강 수계
발원지 인왕산
 -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옥인동
하구 백운동천
 -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의동
옥류동천과 한양도성 지도

옥류동천(玉流洞川)은 인왕산 동쪽에서 발원하여 백운동천으로 합류하는 하천으로, 현재는 대부분이 복개되었다. 준천사실에는 옥류동하류(玉流洞下流)로, 동국여지비고에는 옥류동수(玉流洞水)로 되어 있고, 한경지략에는 누락되어 있다.[1]

이 하천은 수성동 계곡에서부터 내려오는 인왕동(仁王洞)의 본류, 옥인동 171-1번지 앞에서 본류로 합류하는 지류 누각동천, 누하동 77-15번지 앞에서 본류로 합류하는 옥류동(玉流洞)의 물이 합쳐져[2], 현재의 우리은행 효자동지점 남쪽에서 백운동천과 합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옥류동천의 본류 일대를 인왕동(仁王洞), 현 옥인동 47번지 일대를 옥류동(玉流洞)이라 하였으며, 이 둘을 합하면서 옥인동이라는 지명이 생겼다.[2] 반원형으로 형성된 필운대로6길은 옥류동천이 한 해에 가장 높이 범람했을 때의 높이를 따라 생긴 골목이다.[3]

수성동 계곡으로 불리는 옥류동천 본류의 상류부는 조선 시대에 명승지로 유명하였으며,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 중 〈수성동〉(水聲洞)에 등장하기도 하였다.[4] 또 옥류동 계곡으로 불리는 지류 일대에는 우암 송시열의 글씨로 전해지는 ‘玉流洞’(옥류동)이 새겨진 바위가 있었으며, 1950년대 이후 사라졌다가 2019년에 재발견되었다.[5] 그 일대에서 조선 중기에 중인들이 모여 결성한 시사의 이름도 옥류동천의 이름을 따 옥계시사(玉溪詩社)라 하였다.[4]

연혁[편집]

  • 1925년: 옥류동천의 일부 구간을 복개하는 제2기 하수도개수계획이 수립됨.[6]

수성동 계곡[편집]

인왕산 수성동 계곡
(仁王山 水聲洞 溪谷)
대한민국 서울특별시기념물
기린교
종목기념물 제31호
(2010년 10월 21일 지정)
면적10,097.2m2
소유공유
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옥인동 179-1외 8필지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수성동 계곡은 옥류동천 상류의 계곡부를 의미한다.

과거의 다리[편집]

조선 시대의 옥류동천의 다리 목록이다.

  • 기린교(麒麟橋) : 수성동 계곡에 있는 통돌로 된 다리로, 길이가 3.8 m에 폭이 0.9 m이다.
  • 운교(雲橋) : 누각동천의 합류부와 옥류동 물길의 합류부 사이 지점에 있었으며, 도성도(都城圖)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 석교(石橋) : 옥인동 47-144번지 앞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벽수산장으로 들어가던 옥류동 쪽 물길을 건너던 다리로, 오홍교(五虹橋)라고도 하였는데, 그 난간석의 일부 부재가 옥인동 56번지 안에 남아 있다.[7]

각주[편집]

  1. 서울특별시 홍보기획관 홍보담당관 (2006). 《청계천복원사업 백서 1》. 서울: 서울특별시. 10쪽. 
  2. 김창희; 최종현 (2013). 《오래된 서울》. 서울: 동하. 177-178쪽. ISBN 9788996787228. 
  3. 김창희; 최종현 (2013). 《오래된 서울》. 서울: 동하. 214-215쪽. ISBN 9788996787228. 
  4. 오진희 (2012년 8월 17일). “水聲 시원한 그 동네, 겸재가 그렸고 추사가 읊었던...”. 아시아경제. 2015년 5월 3일에 확인함. 
  5. 채윤태 (2019년 2월 12일). “조선 문인들 명소 ‘옥류동’ 바위글씨 60년 만에 드러났다”. 한겨레. 2020년 2월 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0년 2월 2일에 확인함. 
  6. 조광권 (2005). 《청계천에서 역사와 정치를 본다》. 서울: 여성신문사. 131쪽. ISBN 9788991591028. 
  7. 김창희; 최종현 (2013). 《오래된 서울》. 서울: 동하. 247쪽. ISBN 9788996787228.